[이수남의 되돌아본 향토문단 .32] 시인 김원중 |
'오늘도 지팡이 짚고 산책 인생, 고희 돼서야 깨달아'
"뇌졸중 환자가 된 지/ 어언 3년에 들어섰다// 일 년이 지나니/ 친척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2년이 지나니/ 친구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 이제 가끔 찾아오는/ 한두 사람 제자들에 힘입어// 오늘도 지팡이 짚고/ 산책길에 나선다// 이것이 인생인 것을/ 고희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2002년 12월, 건강에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시인 김원중은 고지혈증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차츰 회복되면서 요즘은 외출도 챙기고 있다. 앞의 시는 그가 올 봄 50년 만에 출간한 '칡넝쿨·2'에 발표한 시 '아픈 역사'의 전문이다.
김원중은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야간부만 12년 다닌,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것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193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고 안동에서 성장한 김원중은 6·25 때 청도로 피란했다가 다시 안동으로 올라갔으나 1·4 후퇴 때 대구로 온다.
그리고 시청 앞에서 잡화상을 하면서 15세의 소년가장으로 어머니와 동생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러면서 틈틈이 '새벗' '소년세계' '학원' 등을 읽고, 작품을 투고하면서 문학에로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서문시장, 교동시장, 염매시장 등은 그곳에서 화장품 등을 취급하는 김원중에게는 쉽지 않은 생존경쟁의 터전이었다. 삶의 현장에 그렇게 일찍 뛰어든 탓일까. 김원중은 금전에 대해 일찍 깨친 면이 없지 않다.
중 3년 때 학원에 '야학'이 입선되었고 5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동화가 한꺼번에 입선되기도 했다. 김원중의 응모는 등단이 목적이 아니라 상금을 바라보는 쪽이었다. 현상모집이 있는 곳에는 '모조리 투고' 했다.
57년 고 3년이던 때 시집을 팔아 대학 갈 학자금을 마련한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지금 경주에 있는 서영수와 함께 시집 '별과 야학'을 내기도 했다. 세상물정을 잘 알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구예식장에서 출판기념회도 가졌다. 그 때 방추암이란 주먹이 와서 행패부린 것도 잊을 수가 없다.
김원중은 "내가 낮에 했던 일을 소설로 쓰면 한 권이 넘을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에도 관심을 가져 60년에 '신태양'의 현상 소설 모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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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한국문인협회 세미나가 열린 수성관광호텔에서 기념촬영한 모습.(맨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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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살다보니 서울대, 미국, 유학 한 번 못가고 일요일도 온종일 일하느라 장로도 못되었고, 중·고·대학 12년 꼬박 야간에만 다녔으나 그래도 사람들은 나더러 박사, 교수, 시인이라 부른다"며 다소 자조적이긴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 봐도 허무한 이력을 김원중은 '나의 이력서'란 시에서 토로하고 있다.
소년가장 김원중은 50년대 중반 민주당 경북도당에 취직한다. 말단사원이었다. 당시 조병옥, 장면 등 쟁쟁한 정계 인사를 보면서 시인을 꿈꾸기도 했지만 거기서 다소 정치적인 영향도 받았다. 56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신익희가 수성천변에서 유세할 때 그는 단상에 물주전자를 올려놓기도 했다.
김원중의 뒤에는 언제나 대부같은 박양균이 있었다. 김원중이 박양균을 처음 만난 것은 55년 민경철, 박곤걸, 서영수, 장윤익, 조주환 등과 함께 '칡넝쿨' 동인을 할 때 지도교수로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칡넝쿨 동인은 당시 청구대학, 미문화공보원 등에서 '문학의 밤'도 개최했다.
그 때부터 박양균은 김원중에게 인간적인 보호자가 됐다. 박양균을 통해 이응창을 만났고 그로 인해 첫 교직인 원화여고와의 고리를 만들 수 있었다. 김원중이 영남대 교수, 대구한의대 부학장, 포항대 교수를 역임하면서 75년 계간지 '시와 의식(현 문예한국)'을 창간, 수십 명의 문인을 배출한 일에도 그랬다. 그와의 인연은 혈연 그 이상이었다.
89년 김원중은 박양균의 등단 40년을 기념해 문집 '만나서 기쁘지 아니하랴'를 출간했고 다음 해 박양균이 별세하자 '박양균 시선집'을 냈다. 대학에서 연극도 강의한 그는 한때 주말마다 기차로 서울을 오르내리며 명동소극장 등에서 공연되는 연극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본 적도 있다. 논저 '연극과 희곡의 이해'를 비롯해 시집 '과실속의 아기씨' '별', 수필집 '하늘 만평 사뒀더니' 등이 있으며 문협 경북 지부장, 한국문협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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