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현모양처의 귀감이었다.
유년의 기억속 엄마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위로 할머니부터 아래로 부리는 사람까지 두루 챙기셨으며 언제나 부지런 하셨다.
늦둥이 막내였던 나를 귀애 하시면서도 엄격 하셨고, 명절 열흘 전 즈음부터는 시간만 나면 큰절하는 법과, 반절하는 법을 가르치셨으며, 반가의 법도에 따르는 예절을 잊지 않도록 반복 학습을 시키셨다.
틈이 나면 재봉틀에 앉아 옷을 짓고는 하셨는데, 심심해하는 나를 위해 자투리 천으로 인형의 옷도 만들어 주시고 끈달린 예쁜 원피스도 만들어 주셨다.
가끔은 장롱속 깊은 곳에 넣어둔 보자기를 풀어 보실 때가 있었는데, 그때의 엄마 표정은 엄숙하면서도 손길은 한 없는 사랑으로 들여다 보시곤 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궁금해 하는 나에게 여린 웃음으로 답하시며 시집와서 베짜는 법을 배워 직접 짠 천들이라 말씀하셨다.
유복한 집안의 막내였던 엄마는 갑자기 조실부모하였고, 당시에 일본으로 유학 간 오빠들과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재산을 지킬 수 없어, 우여곡절 끝에 가난한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게 되어 직접 길쌈을 하였노라 담담히 말씀하셨다.
정갈하게 정리된 천들을 꺼내어 거풍을 시키기도 하셨고, 모시천으로 할머니와 아버지의 여름 등지기를 만들어 풀을 먹이고 다림질 하는 모습은 어린 내가 닮고 싶은 천상 여자의 모습이었다.
“ 난, 크면 엄마처럼 맏 며느리 될거예요”
할머니의 의중을 언제나 따르는 엄마의 모습이 좋아 그렇게 말하곤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희생이 지금의 우리집안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고, 먼 발치도 엄마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작년 오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날, 우리곁을 영원히 떠나셨는 엄마.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지는 모습이 아니라, 더욱 진하게 스며드는 것은 다해 드리지 못한 마음이 너무 미안 하였음이리라..
내 시골집과 엄마집은 같은 지역에서도 동쪽끝과 서쪽끝이라 가깝고도 먼 곳이어서 오시라고 말씀드리면 엄마는 천리길처럼 말씀하셨다.
어른이 되고보니 숙명처럼 받아들인 엄마의 삶이 너무 무거워 닮고 싶지 않다고 다짐하고는
입버릇처럼 이야기 했었다. 그런데 내 바램과는 달랐을까? 아니면 가슴 바닥에 자리한 내 마음의 시킴이었을까?
자연섬유에 관심이 많은 나를 본다.
용돈을 아껴 틈나면 구해두는 모시, 무명, 실크천등은 보물처럼 보자기에 켜켜로 사서 반닫이 깊은 곳에 넣어 두었다가 잠이오지 않는 밤에 살며시 꺼내보면, 내 입가엔 엄마의 여린웃음처럼 같은 모습의 미소가 피어나는 것이다.
삶은 유년의 기억을 쫒아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엄마가 다듬던 손길따라 내가 자라면서, 생각의 주머니가 커져 갔기에 지금의 시골살이 자양분이 되었고, 계곡물 지천으로 흐르는 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 또한 천연염색으로 새로 태어나는 색과 천의 향연을 가슴으로 느끼며 하나되고 싶었음을 늘 기억한다.
생전에 엄마가 좋아하시던 꽃을 주문하면서, 시리도록 보고픈 마음이 꽃잎처럼 달렸다.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러 갈 것이다. 그리고 주말엔 그녀의 손길처럼 차분히 보자기를 열어 아껴두었던 천들을 꺼내어 봄 마중을 해야 겠다. 끝.
첫댓글 햇수로 10년째 매일아침 애들셔츠를 다려주고 있습니다.
빨래는 굳이 우물가에서 빨래방방이 두들이지 않아도 세탁기가 알아서 해주고
커다란 가마솟에 장작불로 붉은색 큰 다라이에 목욕물 데워주지 않아도 지들 스스로 따뜻한 물로 언제나 샤워할 수 있고
돈만 보내주면 학원에서 알아서 애들 키워줍니다.
애들에게 부모로써 흔적 남겨줄게 별로 없는것 같아 장수가 선택한 부모흔적 남기기 한가지 그것이 다림질입니다.
장수도 애들에게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기억될 수 있는 애비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