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정진(奇正鎭) 찬(撰)
[생졸년] 1798년(정조 22)~1879년(고종 16) 수(壽) 81세
■ 성산배씨족보서(星山裵氏族譜序)
성산 배씨(星山裵氏)의 족보가 이미 간행에 들어가 그 문로(門老)인 대찬씨(大璨氏)가 편지를 보내 나에게 서문을 써달라고 청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배씨의 대동보는 영종(英宗) 갑신년(1764, 영조40)에 편수되었습니다. 지금 세대로 헤아리면 세 번이 지났습니다.
옛날의 동포가 혹 무복친(無服親)에 들게 되고 이름이 보첩(譜牒)에 오르지 않기도 하여, 원근의 제파(諸派)들이 마침내 민몰되기도 하고 산일된 것이 두려워서 모두가 파보를 만들었는데, 오직 우리 파만 겨를이 없다가 이제야 완성되었습니다.
족보는 완성되었지만 그 신구보(新舊譜)의 조례(條例)의 동이의 사이를 살펴보면, 그 쓰기를 기다리지 않고 드러난 것도 있고, 쓸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고, 또 새로 쓰지 않으면 안 될 경우도 있으니 바라건대 그대가 은혜롭게 한마디 말씀을 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내가 삼가 그 보첩(譜牒)을 받아서 열람을 해보니 배씨가 성을 얻은 것은 계림(鷄林)의 오부(五部)로부터였다. 생민(生民)에 공이 있었고 고려에 이르고 조선에 이르러 개국에 공을 세웠으니 무릇 이런 사실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실려 명산에 보관되어 있다.
그 후 나뉘어져 사가(四家)가 되어서는 관향을 받음이 같지 않았으나 근본을 살펴보면 타수(沱水)와 잠수(潛水)처럼 한 근원에서 나왔다. 배씨는 고금의 보첩이 함께 전하니 이것이 이른바 쓰기를 기다리지 않고 드러난 것과 굳이 쓸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고려 시중공(侍中公) 이상 22대의 명휘(名諱)는 구보(舊譜)에 산일되어 있으나 지금의 편에는 재록(載錄)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리라. 내가 듣건대 ‘드러나고 감춰짐은 운수가 있다.’ 하니 미세한 것도 하물며 그러한데, 참으로 그 진적(眞蹟)이라면 뒤늦게 나왔더라도 무엇을 혐의하겠는가.
이 때문에 고서가 장벽(藏壁)에서 나오고 옛 묵적이 소릉(昭陵)에서 나와서 끝내 사라지게 할 수 없었으니 오직 그것이 진품이면 된다. 일찍이 여러 집안의 보첩을 보건대 무릇 뒤늦게 나온 고계(古系)를 흔히 책머리에 별록을 하여 “의심난 것은 의심난 대로 전하고, 믿는 것은 믿는 대로 전한다.”는 뜻을 붙여두는데 오직 배씨만은 그렇지 않았다.
대개 광중(壙中)의 금석에서 얻어서 인간 세상의 좀먹고 떨어져나간 나머지와는 신뢰의 정도가 같지가 않다. 다만 배씨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니 어찌 감히 그 사이에 군더더기 말을 덧붙이겠는가. 우선 이와 같이 기록하여 훗날 씨족(氏族)을 기록하는 자들이 채택하기를 기다린다.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ㆍ조선대학교 고전연구원 | 박명희 김석태 안동교 (공역)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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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星山裴氏族譜序
星山裴氏族譜旣入梓。其門老大璨氏以書丐弁卷於正鎭曰。吾裴大譜。編于英宗甲申。於今以世計者三之。昔之同胞者。或入于無服。而名不登於譜牒。遠近諸派。遂泯遂軼是懼。咸有派譜之役。獨吾派未遑。今而後有成譜則成矣。顧其新舊譜條例同異之間。厥有不待書而著者。厥有不必書者。而亦有不可不書者。惟子圖惠一言。正鎭謹受其譜牒而閱之。裴氏得姓。自鷄林五部。功存生民。曁麗迄我。帶礪開國。凡此東史所載。藏之名山。及其分爲四家。受貫不同。原原本本。沱潛一出。裴氏古今譜牒同傳之。此所謂不待書而著。與不必書者也。獨其高麗侍中公以上二十二代名諱。舊譜所軼。而今編載錄。是乃所謂不可不書者耶。正鎭聞顯晦有數。微細猶然。苟其眞蹟晩出何疑。是以古書出藏壁。古墨出昭陵。而卒不可磨泐。惟其眞而已矣。嘗觀諸家譜牒。凡古系之晩出者。多爲別錄於篇首。以附傳疑傳信之義。獨裴氏不然。蓋得之壙中金石。與人間蠧魚斷爛之餘。疑信自不侔矣。只可爲裴氏幸。何敢贅辭於其間。姑記如右。以備異日志氏族者採焉。<끝>
노사집 제19권 / 서(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