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월송정 / 소지지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정로 517(월송리 362-8)
월송정의 창건 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존무사 박숙(朴淑)이 창건하였다거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관찰사 박원종(朴元宗,1467~1510)이 처음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축(安軸,1287~1348)의 취운루 기문에 의하면, 고려 충성왕 4년(1312)에 벌써 월송정(越松亭)이 있었으며, 또 안축이 강릉도존무사로 1330년에 임명되어 해당 지역을 둘러보고 남긴 『관동와주(關東瓦注)』와 『 관동별곡(關東別曲)』에 월송정이 이미 나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곡(李穀,1298~1351)의 시에 정자가 기록되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려 말, 즉 늦어도 14세기 초에는 이미 월송정이 창건되어 있었던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울진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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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송정기(越松亭記)
저작년도: 1659년(음)
월송정은 군청(郡廳) 소재지의 동쪽 6, 7리 거리에 있다. 그 이름은, 어떤 이는 “‘신선이 솔숲을 날아서 넘는다.[飛仙越松]’는 뜻을 취한 것이다.” 하고, 어떤 이는 “월(月) 자를 월(越)자로 쓴 것으로 성음(聲音)이 같은 데서 생긴 착오이다.” 하니, 두 설(說)은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내가 월(月) 자를 버리고 월(越)자를 취한 것은 이 정자의 편액을 따른 것이다.
푸른 덮개 흰 비늘의 솔이 우뚝우뚝 높이 치솟아 해안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몇만 그루나 되는지 모르는데, 그 빽빽함이 참빗과 같고 그 곧기가 먹줄과 같아, 고개를 젖히면 하늘에 해가 보이지 않고, 다만 보이느니 나무 아래 곱게 깔려 있는 은부스러기 옥가루와 같은 모래뿐이다.
그리하여 까마귀나 솔개가 깃들지 못하고 개미나 땅강아지가 다니지 못하며, 온갖 풀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왕왕 진달래와 철쭉이 백사장 곁에 떨기를 이루고 자라지만 가지와 잎이 짧고 성글며 땅 위로 나왔다 하면 이내 시들해지고 만다.
그런데 때로 혹 밤이 깊고 인적이 끊기어 만뢰(萬籟)가 모두 잠들 때면 신선이 학을 타고 생황을 부는 듯한 소리가 은은히 공중으로부터 내려오곤 하니, 이는 필시 몰래 이곳을 지키러 오는 귀신이나 이물(異物)이 있는 것일 터이다. 솔숲 동쪽에는 모래가 쌓여 이루어진 산이 둘 있는데, 위의 것을 상수정(上水亭)이라 하고 아래 것을 하수정(下水亭)이라 하니, 지긋이 물을 누르는 형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자 아래에는 한 줄기 물이 가로 흘러 바다 어귀와 통하며, 물을 사이로 동쪽에는 모래 언덕이 휘감아 돌아 마치 묏부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언덕에는 모두 해당화와 동청초(冬靑草: 겨우살이)뿐이며, 그 밖은 바다이다. 솔숲 서쪽은 화오촌(花塢村)으로 민가가 근 수십 호이며, 솔숲 남쪽은 곧 만호포(萬戶浦)의 성루(城樓)로 누각이 분곡(粉鵠)과 마주하여 있다.
솔숲 북쪽에는 바위가 불쑥 솟아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데, 그 이름은 굴산(堀山)이다. 이 고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신령하다고 믿어 무릇 구원을 바랄 일이 있으면 반드시 여기에 빌곤 한다. 이 정자에는, 매양 해풍이 불어오면 송뢰(松籟)가 파도 소리와 뒤섞여 마치 균천광악(勻天廣樂)을 반공에서 번갈아 연주하는 듯,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털이 쭈뼛하고 정신이 상쾌하게 한다.
내가 일찍이 화오촌에 우거(寓居)하면서 기이한 경관을 실컷 차지하였다. 따스한 봄날 새들이 다투어 지저귈 때면 두건을 젖혀 쓴 채 지팡이를 끌면서 붉은 꽃 푸른 솔 사이를 배회하였고, 태양이 불덩이 같은 여름날 땀이 비오듯 흐를 때면 솔에 기대어 한가로이 졸면서 울릉도 저편으로 정신이 노닐곤 하였다.
그리고 서리가 차갑게 내려 솔방울이 어지러이 떨어지면 성긴 솔가지 그림자가 땅에 비치고 희미한 솔바람의 운율을 들을 수 있었으며, 대지가 온통 눈으로 덮이어 솔숲이 만 마리 흰빛 용으로 변하면 구불텅 얽힌 줄기 사이로 구슬 가지 옥잎이 은은히 어리었다. 게다가 솔비늘이 아침 비에 함초롬히 젖고 안개와 이내가 달밤에 가로둘러 있는 경치로 말하자면, 비록 용면거사(龍眠居士)를 시켜 그리게 하더라도 어찌 만분의 일이나 방불할 수 있으리요.
아아, 이 정자가 세워진 이래로 이곳을 왕래한 길손이 그 얼마이며 이곳을 유람한 문사(文士)가 그 얼마였으랴. 그중에는 기생을 끼고 가무를 즐기면서 술에 취했던 이들도 있고, 붓을 잡고 먹을 놀려 경물(景物)을 대하고 비장하게 시를 읊조리며 떠날 줄을 몰랐던 이들도 있을 것이며, 호산(湖山)의 즐거움에 자적(自適)했던 이들도 있고, 강호(江湖)의 근심에 애태웠던 이들도 있을 것이니, 즐거워한 이도 한둘이 아니요 근심한 이도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나 같은 자는 이들 중 어디에 속하는가. 왕래하고 유람하는 길손도 문사도 아니며, 바로 한 정자의 운연(雲煙)와 풍월(風月)을 독차지하여 주인이 된 자이다. 나를 주인으로 임명해 준 이는 누구인가. 하늘이며 조물주이다.
천지간에 만물은 크든 작든 저마다 분수(分數)가 있어 생겼다 사라지고 찼다가 기우니, 이는 일월과 귀신도 면할 수가 없는 법인데, 하물며 산천이며, 하물며 식물이며, 하물며 사람일까 보냐. 이 정자가 서 있는 곳이 당초에는 못이었는지 골짜기였는지 바다였는지 뭍이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거니와 종내에는 또 어떠한 곳이 될까.
또한 솔을 심은 이는 누구며 솔을 기른 이는 누구며, 그리고 훗날 솔에 도끼를 댈 이는 누구일까. 아니면 솔이 도끼를 맞기 전에 이 일대의 모래 언덕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져버릴 것인가. 내 작디작은 일신(一身)은 흡사 천지 사이의 하루살이요 창해에 떠 있는 좁쌀 한 톨 격이니, 이 정자를 좋아하고 아끼어 손이 되고 주인이 되는 날이 그 얼마일는지 알 수 없거니와, 정자의 시종과 성쇠는 마땅히 조물주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출처>동북아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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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越松亭記
越松亭。在郡治之東六七里。其名也或以爲取飛仙越松之義。或以爲以月爲越。乃同聲之誤。二說未知孰是。而余之捨月取越。從浦樓之扁額也。翠蓋白甲。亭亭高聳。環擁海岸者。不知其幾萬株也。其密如櫛。其直如繩。仰之不見天日。而但見銀沙玉屑。平鋪於樹根之下。烏鳶不得棲。螻蟻不得行。衆草凡卉。不得托根於其間。而往往杜鵑躑躅。叢生沙際。枝葉短疏。出地便老。時或夜深人絶。萬籟俱寂。則依依如笙鶴之聲。自空而下。其必有鬼神異物。陰來守之者矣。松之東。沙之積而成阜者有二 。上曰上水亭。下曰下水亭。以其壓水也。亭之下。一水橫流。與海口通。隔水而東。沙岸縈廻。如岡巒之狀。岸皆海棠冬靑。而其外則海也。松之西。爲花塢村。民居幾數十戶。松之南。乃萬戶浦之城樓。樓與粉鵠相對。松之北。有巖突起爲峯。其名曰堀山。鄕人信其靈。凡有求必禱焉。每海風之來。松聲與濤聲相雜。如勻天廣樂。交奏半空。令人髮豎而神爽也。余嘗僑寓花塢 。飽占奇勝。春日暄暖。禽鳥交鳴。則岸巾曳杖。徘徊於花紅松碧之間。火日當空。流汗如瀉。則倚松閑睡。神遊於蔚陵之外。霜露凄凄。松子亂落。疏影在地。微韻可聽。積雪糢糊。萬龍齊白。瓊柯玉葉。隱映交偃。至於鱗甲半濕於朝雨。煙嵐橫帶於月夕。則雖使龍眠模寫。亦豈能髣髴於萬一乎。嗚呼。自有是亭以來。賓客之往來者幾人。騷人之遊賞者幾人。而或有載妓女携歌舞。沈酣於杯酒者。或有操觚弄墨。對景悲吟而不去者。或有自得於湖山之樂者。或有惓惓於江湖之憂者。樂之者非一。而憂之者亦不一。若余者何居。非賓客騷人之往來遊賞者也。乃管一亭之雲煙風月而爲主人者也。命之爲主人者誰。天也造物也。抑天地之間。物無大小。各有其數。而消息盈虛。日月鬼神之所不得免者。則況於山川乎。況於植物乎。況於人乎。是亭也。未知其始也爲淵爲谷。爲海爲陸。而其終也又爲何地歟。抑未知種松者誰。長松者誰。而他日之斧斤松者誰歟。抑不待斧斤而與一區沙岸同歸於澌盡歟。吾身之眇然。如天地之蜉蝣。滄海之一粟。則樂之愛之。爲客爲主人者。未知其幾時。而松亭之盛衰終始。當與造物者而詰之也。<끝>
鵝溪遺稾卷之三 / 雜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