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호롱불 아래서 시골소년은 ‘복숭아에 들어 있는 벌레는 약이 되니 그냥 먹어라.’는 어른들 말씀을 들으며 바가지에 담긴 복숭아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달콤한 맛과 독특한 향기로 입맛을 사로잡는 복숭아는 예나 지금이나 여름철에 환영 받는 과일이다.
요즘에는 잘생기고 맛있는 것들만 골라 먹지만 과거에는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고 병해충 감염된 과일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그냥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심식나방 애벌레가 들어 있던 복숭아도 약이 된다고 또는 아까워서 그대로 먹었고 상업적으로 과수원을 하지 않았던 일반 가정에서는 두어 그루의 과일 나무를 위해 당연히 병해충 방제를 위한 농약사용도 하지 않았다.
복숭아는 역사적으로 볼 때도 재배가 오래된 과일이다.
우리나라는 3천 년 전의 복숭아씨가 출토되었고 삼국사기의 백제 본기(기원전 16년)에 복숭아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와 같은 복숭아는 1902년 소사부근(현재 부천시)에서 일본에서 도입한 품종을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1906년 원예모범장이 설치되고 연구가 시작되면서 외국 도입 품종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품종은 과일 껍질의 털의 유무에 따라 유모종과 무모종으로 나누며 과육의 색에 따라 황육종과 백육종으로 나눈다. 또한 품종육성의 경로나 재배연혁, 품종적응성 등에 따라서 유럽계 품종과 화북계 품종으로 나누고 다양한 품종들이 여름부터 가을까지 생산된다.
복숭아를 뜻하는 영어 ‘peach’는 라틴어 persicum(페르시아의 과일)에 유래되어 식물학자들은 원산지가 페르시아로 생각했으나 사실은 중국이 원산지이다. 또한 혈색이 좋다거나 근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훌륭한 사람이나 예쁜 소녀를 가리키는 말로도 통한다.
털이 없는 천도복숭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마셨다는 맛있는 음료와 술인 넥타르(Nectar)와 같다고 해서 넥타린(Nectarine)이라고 한다.
복숭아가 중국이 원산지인 만큼 중국어 발음으로 ‘타오(桃)’로 불리던 복숭아는 친구나 연인들 간에 사랑의 정표로 주고받았다.
또한 복숭아의 한자어인 도(桃)는 나무(木)와 점괘(兆)과 합쳐진 글자로 복숭아를 반으로 쪼개 갈라진 모습을 보고 점을 치기도 하였고 사람의 발 모양 중 복사뼈라고 하는 부분은 모양이 복숭아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마천의《사기》에는 ‘복숭아와 자두가 익을 무렵 먹으로 오는 사람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길이 생긴다.’는 말이 있는데 덕이 있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감복시킨다는 의미이다.
중국에서 기원전 6년경 만들어진 신화집인 《산해경》에는 3천년에 한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 과수원을 가진 ‘서왕모’ 이야기도 있고 ‘신도’와 ‘울루’ 형제가 복숭아나무로 못된 귀신을 다스리기 위해 형별을 가하는 이야기는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도연명은《도화원기》에서 복숭아나무 숲을 이상향으로 표현하였다. 복숭아꽃 하면 떠오르는 말은 무릉도원과 별천지이다. 분홍색은 핑크빛 사랑이고 마음을 술렁이게 만드는 색이다. 옛날 선비들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곳에서 도화주를 마시며 여흥을 즐겼다. 중국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를 정복하고 나서 전쟁에 쓰였던 소를 복숭아나무 숲에 놓아주고 군대를 해산시켰는데 이 소를 빗대어 ‘도림처사’라고 하였고 정치에 관심 없이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공자는 《시경》‘도요’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싱그러운 봄을 생명의 탄생으로 여기며 복숭아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싱싱한 복숭아 나무여 / 붉은 그 꽃 화사하네.
시집가는 아가씨여 /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리.
싱싱한 복숭아 나무여 / 탐스런 열매 열렸네.
시집가는 아가씨여 / 온 집안을 화목하게 하리.
싱싱한 복숭아 나무여 / 푸른 그 잎 무성하네.
시집가는 아가씨여 / 온 집안사람들 화목하게 하리.
유교에서는 복숭아의 생김새가 여자의 엉덩이 모양 같다고 천시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의 무속에서는 복숭아는 이른 봄 잎이 피기 전에 꽃을 피우는 것은 양기가 왕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점을 치는 도구로 복숭아나무 가지를 이용하였고 중국에서는 아이를 악귀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복숭아 씨앗을 목걸이에 걸어주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성종은 음력 9월 30일에 서리 맞은 복숭아를 바친 노인에게 저고리를 선물하였고 연산군은 매년 3월(봄)과 8월(가을)에 복숭아나무로 만든 칼과 판자를 이용하여 전염병 귀신을 쫒게 하였다.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홍씨 회갑연에 3천 송이의 복숭아꽃을 바쳐 장수와 불로뿐만 아니라 효도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복숭아는 열매뿐만 아니고 봄에는 화사한 분홍색과 붉은색 또는 흰색의 꽃을 피워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또한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여 항암작용과 노화방지 효능도 있다.
특히 나이아신(비타민 B₃)이 많아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게 된다.
복숭아는 특이하게 온대과일이지만 낮은 온도에서 보관하면 열대과일 같은 저온장해가 발생한다. 따라서 평상시에는 상온에서 보관하다가 먹기 1∼2시간 전에 냉장고에 넣었다가 먹는 지혜가 필요하다.
냉장고에 오래 보관하면 포도당은 증가하고 단맛을 내는 자당과 과당 함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 짜증나는 일들을 날려버리고 원기충전을 위하여 복숭아를 먹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