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가발 공장 여공에서 하버드생으로 거듭나기까지 역동적인 인생 유전을 펼쳐온 저자가 딸 조성아 양을 키우면서 웃고 울고 가슴 쓸어 내리며 보낸 3년간의 이야기가 풍부한 사례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하버드 역사상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같은 교정에서 나란히 공부하면서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우등생. 엄마의 복제인간이 되고 싶다며 재학 시절 ROTC를 자원한 성아는 지난 6월 하버드대학교(국제외교 전공)를 졸업하고 현재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에서 교육 장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성아가 이처럼 아름답고 건강한 젊은이로 성장하는 데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우선 성아는 엄마가 두 번이나 이혼한 결손 가정의 딸이었다. 거기에다 군인인 엄마를 따라 미국, 한국, 독일, 일본 등지를 떠돌아야 했던 성아는 초등학교 시절 심각한 언어 장애까지 겪는 꼴찌였다. 그러나 서진규씨는 형편없는 성적표를 들고 오는 딸아이를 한 번도 나무라지 않았다. 대신 보다 궁극적으로 오랫동안 아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로서 도와줘야 할 길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목표에서 눈을 떼지 마라.'
서진규씨의 인생철학은 딸 성아를 키우는 그대로 적용됐다. 당장의 성적표를 무시하는 대신 용기와 사랑과 겸손과 근면함을 줄기차게 체득시킴으로서 성아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공부의 참맛을 스스로 터득해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집행하는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성장과정을 통해 구김살 없이 반듯한 인성 구조를 가진 어린아이로, 용기와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청소년으로, 경쟁력 있는 젊은이로, 사회와 국가에 대한 책임을 실행할 줄 아는 성인으로 거듭나도록 만들어내는 모습이 압권이다. 이제 성아를 더 큰 세상으로 내보내면서 서진규씨는 자식을 가진 모든 부모들에게 말한다. "아이는 작품이다. 성아 역시 처음부터 특별한 아이는 아니었다."
1. 우리는 많은 날들을 함께 가야 한다
아름다운 별
만삭의 몸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나는 유산위기를 넘긴 후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식당은 그만 두었으나 우리 식구들의 밥줄이자 태어날 아이의 보험 혜택을 줄 회사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영어도 못하는 데다 변변한 기술도 없던 남편을 대신해 많은 일을 도맡아 처리해야 했지만 뱃속의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내 슬픔과 고통을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비록 남편은 딸이 태어나자 아이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와 둘이 함께 이루어 나갈 일들이 많다는 것을 예감했다. 아이의 이름은 별 성(星), 아름다울 아(娥)로 내가 직접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
마누라는 무조건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 남편은 툭하면 손찌검을 해댔다. 그의 손찌검 후에는 참기 힘든 혐오감에 시달리면서도 성아가 가여워 이혼을 결정하지 못한 채 7년의 결혼 생활이 계속 되었다. 만삭인 나를 발로 걷어차는 남편에게 증오심도 커져만 갔다. "나는 총이 있다. 총으로 남편을...." 이라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이혼만은 않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목표만 확고하다면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일곱 살짜리의 여행
군의 합동훈련에 참가해야만 했던 나는 당장 아이를 돌볼 수 없어 결국 제천의 부모님에게 보내게 되었다. 승무원의 손을 잡고 혼자 탑승구로 걸어 들어가는 일곱 살 성아를 보며 모든 걸 포기하고 그만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그러나 이미 엄마와 떨어지는 데 적응이 되어 있던 아이는 내 걱정과는 달리 이 여행을 새로운 일로 받아들였다.
활달하게 키워라
성아의 별명은 까불이다. 성아가 까부는 이유는 두 가지다. 남을 유쾌하게 하고 또 자신도 즐거워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활달하게 키우는 게 좋다. 아이들이 가진 기발함, 창의력은 그런 행동을 통해 나오기도 하며 자신감 있는 환경에서 자라면 구김살 없이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를 드는 대신에...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아이들 앞에서 존경받을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 앞에서 권위를 잃을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아이를 야단치고 윽박지르고 때리기보다 아이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아이에게도 해명할 기회를 주고 야단을 칠 수밖에 없는 내 입장도 이해시켰다. 세 번째는 아이 앞에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야 부모 말을 믿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가 원칙을 가지고 어려서부터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길들여야 한다.
우리의 심부름꾼
집안의 심부름꾼은 가장 나이 어린 성아였는데 이것은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받은 사랑에 대한 일종의 의무이기도 했다. 성아는 나의 칭찬을 받으려고 더욱 열심히 심부름을 하다보니 아예 습관이 되어 버렸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어디서나 환영을 받는 법이다. 내 자식이 귀엽고 사랑스러울수록 올바른 버릇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쳐야 한다.
모든 경험은 다 유효하다
나는 성아에게 가능한 여러 가지 일을 혼자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엄마가 해줄께'라는 말보다는 '성아야 네가 해라'는 말을 썼다. 조금 커서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삶의 요령을 익히고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 판단력, 자신감 등을 쌓아나갔다. 아이는 어차피 혼자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자립심을 키우길 바랐다. 살면서 쌓이는 경험은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다 필요한 것이다. 부당한 일이나 모욕, 굴욕을 이겨내는 힘도 또한 필요하다.
내가 터득한 다섯 가지 인생 철학
첫째, 인간이 태어나는 데는 아무런 선택이 없다. 둘째,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에도 아무런 선택이 없다.
셋째, 인간에게는 이승에서 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넷째, 그러나 이 한 번의 기회를 어떻게 살다 가는가는 바로 내가 결정한다. 다섯째, 이왕 태어난 삶이다. 한번 힘차고 보람 있게 살다감도 멋지지 않은가.
2. 나에게는 가르쳐야 할 이유가 있다
텔레비전? 마음껏 봐도 돼
여덟 달 때 한국에 보내져서 다섯 살 때 미국으로 돌아온 성아는 텔레비전을 즐겨 보고 동네 아이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조금씩 영어를 익혀갔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들은 때로 아이에게 맡기고 물러나 기다리는 태도도 필요하며 외국어를 배울 때는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놀면서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배려와 사랑이 용기를 부른다
성아는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영어를 잘하는 성아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학생들과 선생님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려 있다는 것을 알고 누구를 만나든 스스럼이 없는 학교 생활을 했다. 선생님의 배려와 친구들의 우정으로 한국어 실력이 쑥쑥 늘었고 주변의 사랑과 관심으로 어려움을 이겨 낼 용기를 키워 갔다.
자존심 강한 아이
성아는 아주 어려서부터 남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 애쓰는 아이였고 그것을 보고 나는 이 아이가 자존심이 무척 센 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성아가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들도 다들 잘 울지 않는다. 어쨌든 역경에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자기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자존심 센 여자가 나는 아무리 봐도 멋지다.
운동을 통해 얻게 되는 것들
나는 성아에게 태권도를 배우게 했다. 운동을 함으로써 인내와 강인함을 키우고 자신감과 정의감을 키울 수도 있다. 성아는 여자아이들을 괴롭히는 남자애들을 도맡아 혼내 주었다. 아마 스스로를 친구들을 지켜주는 영웅쯤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성아는 불의 앞에서는 의젓한 영웅이 되었다.
"선택은 네 자유야."
어느 부모나 자기 아이들이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기다려 주는 인내가 부족한 경우를 자주 본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틀린 선택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아이는 잘못된 선택 때문에 고통을 겪어보고 어리석은 선택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물에 빠진 아이에게 수영 가르치기
내가 성아에게 강제로 시킨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수영이다. 며칠을 눈물이 번진 채 수영장에 끌려갔던 성아는 한 달도 안 돼 더 이상 물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때론 아이를 위해 단호한 결정이 필요하다.
꼴찌가 아는 것
나는 성아에게 공부를 못했다고 야단을 친 적도 또 공부하라고 성화를 부려 본 적도 없다. 아마 그때 나는 성아가 우등생보다는 꼴찌의 경험을 쌓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꼴찌의 서러움을 알면 나중에 꼴찌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력할 것이고 나중에 리더가 되었을 때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배려 할 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성아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초등학교 시절 1등이 아닌 인생의 성취감을 배우기 바랐다.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나와는 달리 성아는 유난히 동물을 좋아했다. 한번 사랑을 준 것에는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 최선을 다해 동물을 돌보는 성아의 모습에서 나는 감동을 느꼈다.
인간 사회는 힘센 자들이 판을 치게 돼 있어
성아는 일제시대가 무엇인지 궁금해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고생스런 경험담을 듣고는 몹시 억울해 했다. 나는 성아에게 "받아들이기 싫은 사실이지만 인간 사회는 힘센 자들이 판을 치게 되어 있어. 약한 자들이 힘센 자를 이기려면 각자가 실력을 쌓고 또 같이 도와가며 힘을 합해야 돼. 중요한 건 앞으로는 당하지 않게 너부터 실력과 힘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된다는 거야" 하고 말해 주었다.
장대비 속에서 잔디를 깔던 날
조카인 승희, 승용이와 함께 성아는 세차, 잔디깎기, 잔디깔기 등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무더위 속에서도 힘든 일을 하며 성아는 인내력을 키우는 중이였다. 비가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때려대는데도 잔디를 새로 까는 일을 완수하고 돌아왔다. 비록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그 뿌듯함으로 성아의 얼굴은 환한 대낮처럼 밝았다. 강한 자녀로 키우기 위해서는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키워 줘야 한다.
한번 터뜨린 상처는 오래도록 남는다
하루는 저녁을 먹는데 할머니가 내가 남긴 밥을 성아에게 주었다. 성아가 얼굴을 찡그리며 싫다고 밀어냈다. 순간 나는 기분이 무척 상했다. 며칠 뒤 성아를 불러 그동안 서운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성아는 훌쩍이며 "배가 부른데....할머니가 먹으라고 해서......그랬는데...." 하는 것이 아닌가. 자제력을 잃기는 쉽다. 자제력의 둑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면 둑 안에 있던 잔인성은 홍수처럼 순식간에 모든 것을 휩쓸어 간다. 그런 불행한 사태와 직면하고 싶지 않거든 부모는 자식 앞에서 부단히 인내해야 한다.
타고난 성품과 길러진 성품
우리 부모님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가난 때문에 '자녀교육'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를 자극한 것은 엄마의 남존여비 사상이었다. 엄마의 차별에 대한 분노와 그런 부당함에 대한 복수심이 오늘의 나를 키웠다. 또 나는 언니를 보며 가시나는 공부보다 실림을 배워서 아이 낳고 시부모와 남편 잘 받들면 된다는 식의 삶을 거부했다. 이렇듯 같은 양육 환경이라도 각자의 타고난 성품에 따라 이루어지는 결과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성아의 경우에도 나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나름대로 관찰하고 연구했다.
3. 용기와 사랑을 깨달을 때까지
"누가 우리 이모 좀 도와 주세요!"
교통 사고로 창유리가 박살나면서 성아 얼굴로 튀어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이모 머리에서 쏟아진 피가 성아 옷을 벌겋게 적셔 놓았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성아는 자기는 괜찮으니 빨리 이모를 구해달라고 말하고 얼굴에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경찰들 조사에 혼자 통역을 다 했다는 것이었다. 성아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부쩍 커 있었다. 더 이상 열한 살짜리 응석받이가 아니었다. 책임감을 갖춘 한 사람의 어른으로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숏다리가 되고 싶니, 곱슬머리가 되고 싶니?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얼굴이라든가 몸매 등 자신들의 생김새에 민감해진다. 성아에게도 한가지 고민이 생겼다. 자신의 곱슬머리가 싫었던 것이다. 미장원에서 한국 아주머니들이 '얘, 너 혼혈아지? 아빠가 흑인이니?" 하고 묻자 성아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 날 저녁을 먹고 성아와 산책을 하며 어차피 바꿀 수 없는 현실은 마음을 달리 먹으면 행복 할 수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못생긴 쪽만 생각해 불만에 빠지지 말고 잘생긴 쪽을 집중적으로 생각해 만족하면서 살기를 권하며 우리의 산책길은 어느덧 끝이 나고 있었다.
못말리는 삼총사
손이 큰 할머니는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운전을 즐기던 할아버지는 두 사람을 싣고 어디든지 다녔다. 손녀의 재롱은 두 사람을 마냥 즐겁게 하며 통역관의 역할까지 훌륭히 해냈다. 삼총사는 무서울 것이 없는 양 언제나 용감하게 외출을 감행했다. 삼총사는 교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도토리 줍기, 고사리 뜯기 등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성아에게는 이 시간이 마음껏 논 시기이자 책임감을 배운 시기이기도 했다.
그럼, 누구 딸인데!
성아를 보며 무엇이든지 좀 모자란 듯하거나 없을 때 그것을 갈망하게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성아에게서 또 한가지 발견한 것은 경쟁심이었다. 나는 이 경쟁심을 활용하기 위해 성아에게 배구를 권했다. 배구를 처음 해본 성아는 남보다 못한 자신이 너무 창피하다며 악착 같이 연습을 한 결과 '발전상'을 받아왔다. 배구를 통해 성아는 자신을 위한 경력을 쌓고 자신과 경쟁을 해서 이긴 것이다.
우정은 영원히
1989년 6월, 동북아 지역 전문가 교육을 받으러 우리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떠나게 되었다. 성아는 2년간 사귀어온 친구들과의 작별을 아쉬워했다. "성아야, 친한 친구들은 오래, 또 멀리 떨어져 있다가도 다시 만나면 언제 헤어졌느냐는 듯이 반갑고 좋거든. 잠깐 헤어졌다고 해서 우정이 끝나는 건 아니야. 한번 친해진 친구는 계속 남고 새로운 곳에서 또 좋은 친구를 만나는거야." 성아의 얼굴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귀중한 유산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할아버지는 그토록 귀하게 여기던 손녀도 알아보지 못해 성아와 나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미국에서 초상을 치를 수 없다는 할머니의 말에 따라 성아 그리고 할아버지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당신이 사랑하시던 손녀의 품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일찍부터 아버지를 떠나 보낸 성아에게 할아버지는 가족의 푸근한 사랑이라는 귀중한 유산을 남겨 주신 것이다.
맹자 어머니 따라잡기
1987년 봄, 노스캐롤라이나의 포트 브래그로 발령이 났다. 나는 이때부터 맹자 어머니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학교를 고를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첫째, 범죄로부터 안전한 환경인가, 둘째,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가였는데,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학교는 대부분 범죄가 없는 곳이기도 했다.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최종 선택은 성아에게 있지만 부모로서 공부할 기회는 만들어 주어야 했다.
미끼 작전
일본어를 배우면서 나는 성아에게도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만화 작전을 써보기로 했다. 나는 빌려온 만화책을 열심히 읽으며 몇 권은 일부러 탁자 위에 죽 늘어놓았다. 성아는 내가 더 이상 해석을 해주지 않자 그림만 열심히 보다가 답답한지 더러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 나도 알아들었으면 좋겠는데......" 내 올가미에 성아가 걸려 들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아는 일본어 학교를 다니며 단어 찾는 법을 읽혀 틈만 나면 사전을 들고 만화책을 읽었다. 또 '내가 일본어를 배우게 된 이유'라는 제목으로 웅변대회에 참석, 발음상을 받기도 했다. 성아는 일본어를 공부라 생각지 않고 즐겁게 배움으로써 급속도로 실력을 키워 나갔다.
4. 마주보며 걸어가기 위하여
"일본 학교 한번 다녀볼래?"
나는 실제로 보고 듣는 산 교육의 가치를 믿는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얻는 것이다. 나는 성아가 외국어를 잘하길 바랐기 때문에 일본에서 한 1년 고등학교를 다니기를 제안했고 성아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어서 매우 좋아했다. 나는 아이의 백그라운드를 만들기 위해 언제나 최선의 노력을 하였다.
"떨어질 각오로 출마해봐."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성아는 미래의 미국비즈니스 지도자(FBLA:Future Business Leader of America) 라는 조직에서 회장 출마 권유를 받았다. 자신도 없고 떨어지면 창피하다는 성아에게 출마해서 떨어졌다는 건 아무런 영향이 없지만 당선된다면 그 경험이 네 꿈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하자 출마를 결심, 당선이 되었다. 아무튼 떨어지는 연습도 중요하고, 떨어지기 위해 용기를 내는 건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권리
남자 야구팀의 남자아이들은 여자가 자기네 팀에 끼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성아의 자존심과 오기가 발동하여 "여자는 별 수 없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남자아이들도 힘든 훈련을 참아내자 그들은 성아를 멤버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들과 같이 고된 교육을 받으면서 성아는 자녀교육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누구는 호랑이로 키우고 누구는 고양이로 키우지 말고 여자애들한테도 공정한 경쟁을 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성아의 말은 옳은 말이었다.
I saw America
"엄마, 오늘 고급 영어반에서 써낸 작문이 A+ 받은 거 있죠. 내 글이 굉장히 감동적이었데요. 그리고 나보고 글쓰는 소질이 있다고 잘 키우길 바란대요." 성아가 쓴 글의 제목은〈I saw America(나는 미국을 보았다)〉였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출구를 향했다. 비행기에서 꾼 꿈이 떠올랐다. 문득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의 목소리였음을 깨달았다. 그 꿈을 생각하면서, 나는 또 하나의 꿈을 보았다. 올바르고 자유로운 세계를 향한 꿈. 나는 기회가 가득한 나라의 꿈을 보았다. 그리고 그 꿈이 내 눈앞에서 현실로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성아를 안으며 흑흑 흐느껴 울었다. 엄마를 그리도 잘 알아주는 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복받쳐 올라왔다.
보석을 캐기까지
나는 성아에 대해 시시콜콜히 꿰고 있다. 나는 단지 듣기만 할 뿐이다. 듣기만 하는 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첫째, 무조건 맞장구를 쳐준다. 둘째,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셋째, 내 일인 것처럼 들어준다. 나는 성아의 남자 친구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함께 속상해 하고 위로도 하며 성아의 게이 친구에 대한 부정적 견해에 대해서는 좀더 넓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포용하기를 권하기도 했다. 이렇듯 쉼없는 대화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읽고 느낄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값진 보석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값진 보석을 얻었을 때의 환희를 무엇에 견주랴!
"재스민 정말 고등학생 맞아요?"
코오꼬는 매년 여름 미국 유명 대학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몇 명을 국제 스태프로 채용해 오카야마로 데려왔다. 성아는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오카야마시 국회의원의 당당한 국제 스태프가 되었다. 어느 날, 성아는 일본 자민당의 거물급 국회의원인 오자와 이치로를 만나 일본 아이들이 일본 역사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오자와씨는 눈이 둥그래져서 "재스민 정말 고등학생 맞아?" 하고 재스민의 의견에 동의를 하더라는 것이다. 재스민은 성아의 미국 이름이었다.
꿈보다 멋진 현실
1995년 6월, 성아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생회장이었던 딸은 그날 1등으로 졸업하는 영광을 엄마인 내게 돌렸다. 그보다 더 큰 영광은 해마다 250만 미국 고교 졸업생들 중에 141명에게만 주어지는 대통령상을 받게 된 것이다. 성아가 상을 받으러 백악관에 있을 때 나는 비록 그 자리에 가지 못했지만 클린턴이 성아에게 메달을 걸어주는 장면을 상상하며 살다보니 꿈보다 더 멋진 현실이 있구나, 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가시나, 다 컸다
우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하는 침대차를 타고 있었다. 배가 출출하자 성아는 영어-러시아어 회화책을 들고 나가더니 차장에게 음식을 부탁했으니 곧 갖다준다고 우쭐거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성아와여행을 다니면 여간 든든한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성아는 내 보호자를 자청했다. 그리고 그때 성아는 완벽하다고 생각한 엄마가 눈물도 흘리고 한없이 약해지기도 하는 인간임을 깨달아 가며 나에 대한 이해와 보호하려는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맛있게 저녁을 먹는 성아를 보며 공연히 가슴이 뿌듯해졌다. '가시나, 다 컸다.'
덜렁이, 조성아
성아는 건망증이 심한 편이다. 그 날도 내일까지 해 가야 할 수학숙제에 필요한 수학책을 학교에 두고 온 것을 알고 밤중에 혼자서 학교를 다녀왔다. "앞으론 찬찬히 준비 좀 하고 다녀라, 이 녀석아." 나는 성아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했던가. 성아는 그 후에도 멍텅구리짓을 자주 했다. 약점은 그만큼 극복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내가 성아한테 한 유일한 잔소리가 있다면, "제발 찬찬히 준비 좀 하고 다녀라." 일 것이다.
멋진 반항아
성아는 학교에서 졸업식 때 여자애들은 치마, 남자애들은 바지를 입으라고 방침이 정해졌다며 지금이 어느 땐데 학교에서 이런 옷을 입으라 저런 옷을 입으라고 학생들 의사는 안 물어보고 방침을 정할 수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며 연신 투덜거렸다. 졸업식 날, 아이들이 입장할 때 유독 성아만 눈에 띠었다. 머리긴 여학생이 바지를 입은 것은 성아뿐이었기 때문이다. "재스민, 해냈어!" "역시 재스민이야!" 나는 '멋진 반항아'라는 말을 좋아한다. 올바른 성격과 태도에 실력을 가진 자는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가 수월하다. 이렇게 긴 안목으로 뜻을 세우고 기어이 성취를 해내는 자가 바로 내가 말하는'멋진 반항아'이다.
하버드에 떨어지다
1995년 봄, 군대 일로 큐슈에 출장 중 성아가 하버드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성아는 하버드에 떨어진 '불행'을 자신의 희망의 재료로 활용했다. 그를 통해 성아는 더 큰 겸손을 배웠다. 성아의 '불행'은 나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버드와 군의 갈림길에서 나는 성아의 말을 몇 번이고 마음 속에서 되뇌었다. '내가 뭐든지 잘되고 있어 모든 것을 시시하게 보기 시작하는 건방이 들었거든요....." 1997년 1월, 나는 20년의 군 생활을 접고 하버드로 돌아왔다. 나는 나의 처음 목표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5. 너는 내 희망의 첫 번째 증거였다
다시 찾은 기회
"왜 성아는 하버드로 안 오고 조지타운으로 갔지?" 성아가 일부러 조지타운을 택한 것으로 아는 눈치였다.하버드의 정식 사무원으로 꽤 오랜 경력이 있는 일레인은 성아가 하버드에 떨어진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며 대통령상을 탄 것이 입학결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적극 전학을 권하는 것이었다. 나는 교수의 추천서 약속을 받고 좀더 확신이 섰다. 성아를 설득, 성아는 도전을 결심했고 마침내 하느님은 성아에게 '자신을 아는 겸손'을 가르치신 후 엄마와 나란히 공부할 기회를 주었다.
난 왜 이 모양일까
성아는 기숙사 친구들은 나름대로 즐겁게 생활하면서도 성적이 나쁘지 않은 반면 자신은 죽어라 노력해도 성적이 신통치 않은 것에 대해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성아에게 공부에 대해서 친구들의 똑똑한 면과 너의 단점을 비교하는 건 불공평하며 그 아이들도 어떤 것은 한심할 정도로 못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더니 그제서야 마음이 많이 누그러지는 모양이었다.
밑바닥 삶을 체험하라
워싱턴으로 날아간 성아는 조지타운에 있는 일본식당에서 일하며 엄마가 처음 미국 와서 일하셨던 게 생각나 가슴이 찡해왔다는 말을 전했다. 성아가 허드렛일을 한다지만, 20여 년 전 내가 가졌던 절망과 그리고 어떡하든 살아내야겠다는 오기 등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옆에서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물은 새로운 물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1997년 9월, 하버드에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성아와 나란히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다. 엄마와 딸이 함께 다니는 것은 하버드 역사상 두 번째, 동양인으로써는 첫 번째라고 들었다. 우리는 각자의 기숙사에 들어갔다. 정신 없이 바쁜 일과 중에도 가끔 찰스 강변에서 만나 조깅을 하기도 했다. 세월은 어쩔 수 없어 이젠 ROTC 훈련으로 단련된 성아가 엄마를 앞질러 갔다.
두 여자
성아는 자신도 엄마처럼 난관을 극복하고 성취를 이뤄보고 싶을 때가 많다며 나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남들은 특히, 많은 젊은이들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탐하고 무엇이든 쉽고 편하게 얻기를 바라는데. 조금만 고생을 해도 부모를, 그리고 자신의 '불운'을 원망하려 드는데. 성아가 대견했다.
성아가 행운아인 것은 엄마가 있어서라기보다 도전을 갈망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면 그 과정을 통해 도전과 극복의 행복감을 성아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나를 한 여자로, 자신의 인생을 성취해 나가는 데 있어 하나의 기준이자 경쟁자로 바라보는 딸과 정말이지 한잔 나누고 싶은 밤이었다.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들
성아는 한번도 삼촌 명규가 저능아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동네아이들과 놀 때도 삼촌을 빼놓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성아에 대한 명규의 태도도 각별했다. 성아는 명규가 정상적인 생활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더 헌신적으로 보살피기 시작했다. 성아는 이미 명규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명규는 우리 가족에게 평화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었다. 언제나 즐거워하고 어린아이의 영혼을 가지고 있으므로 남을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나쁜 감정을 모른다. 성아가 장애인에 대해 헌신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우리 식구들, 특히 나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무 늦기 전에
한국의 시골생활을 체험해 보고 싶다며 성아는 상동 큰 외삼촌댁으로 갔다. 상동의 사촌오빠는 성아가 다녀간 후 내게 전화를 걸어 성아의 근면함과 겸손함을 칭찬해 주었다. 치매에 걸려 손자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동 큰할머니를 보고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가족을 사랑한다면 바로 지금 사랑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녹색 군복에 싸인 푸르른 청춘
성아는 현재 미 육군소위로 있다. 나 역시 지난 20년 동안 군복을 입고 있으면서 늘 신념과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했다. 어쩌면 그애 마음에서는 나를 닮고 싶은 욕망과 나에 대한 경쟁심리가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성아는 한마디로 군대가 체질이라 할 만큼 모든 훈련을 잘 해냈다. 지금 성아는 워싱턴주의 포트 루이스에서 푸른색 제복에 담긴 군인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 우리가 둘 다 녹색군복을 입었다는 것은 두 사람의 인생관과 삶의 목표가 같다는 것을 뜻한다. 성아가 정의로움을 추구하고, 보다 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과 봉사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머리 위의 무지개
2000년 6월 8일, 성아가 하버드를 졸업하는 날이다. 엄마와 언니, 오빠와 올케, 그리고 막내동생 명규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아들 성규가 오게 되었다. 졸업식 날, 하버드의 교육과 졸업이 실제로 인류를 위해 쓰이지 못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라는 졸업생 연설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벅차 오르는 가슴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마치 우리의 미래를 축복해 주는 천사들의 선물 마냥 하늘에는 무지개가 펼쳐져 있었다. 여행을 떠나는 딸아이를 보며 이젠 딸과 엄마가 아닌 친구로 살아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의 엄마 역할이 이제 끝났다는 것 때문에 며칠 동안 그렇게 서운하고 우울했을까? 성아는 이제 세상 어디에 갖다놓아도 당당히 제 인생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늘 성아가 희망을 발견하고 성취해가기를 바란다. 내가 희망의 증거가 되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