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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해전인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함대는 왜 패했을까요?
해전을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해전으로 나누자면 고대해전은 갤리선, 중세해전은 갤리선과 범선,
근세해전은 풍력인 범선이고 근대해전은 증기력 철갑선이니 1905년 일본이 러시아함대를 격파한
쓰시마 해전이고 최강 해군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미국과 일본 두 나라에 추월당하니...
일본은 처음 "야마토함" 등 거함 거포를 위주로 했으나 야마모토 이소로쿠 해군 사령관은 새로운
개념인 항공기 전투를 위주로 하는 “항공모함” 으로 방향을 바꾸니..... 다섯번째 “현대해전” 입니다.
1941년 11월 26일 440대 전투기를 실은 6척 항공모함 등 20척 일본 기동부대는 북태평양을 우회해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해 12척 미 함정을 격침하고 188대 비행기를 파괴했으며 2,400명
미군 사상자를 냈으나, 미국 항공모함은 미국의 식민지 필리핀을 방어하기 위해 비행기와 군수물자
에 병력을 싣고 필리핀으로 향한지라 없었으니 피괴하지 못했지만..... “진주만 기습” 으로 “일본
은 태평양의 제해권” 을 차지했으나, 6개월후 “미드웨이 해전” 이 벌어지니 4척 항모를 가진 일본
함대에 대해 수리중인 것 까지 포함해 3척 항모에 불과한 미군이 예상을 깨고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미드웨이해전은 태평양전쟁의 일환이니 팽창하던 군국주의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아 일어났는데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이 일본에 중국과 북베트남에서 철수를 요구하며 1941년 7월 "석유금수"
조치를 취한건데... 당시 "비축재고가 2년" 에 불과한 일본은 해군력이 미국의 70% 수준 이지만
1944년이 되면 30%로 줄어들 것이니..... 그나마 유리할 때인 지금 협상을 멈추고 전쟁을 해서
미국 해군에 일격을 가하고 인도네시아 유전을 확보한후 미국과 다시 협상에 나선다는 것입니다.
호사카 마사야스가 쓴 1,136쪽에 달하는 “쇼와 육군” 이란 책에 강경파와 온건파(협상파) 가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게 수백페이지에 걸쳐 나오는데.... 또 소련을 가상적국으로 해서 북쪽으로 진출하자는 의견은 육군
에서 다수파를 이루고 미국을 가상적국으로 해서 남방으로 진출하자는 의견은 해군에서 다수파가 되는데
만약에 온건파가 주도권을 잡았으면 "일본 영토는 조선과 만주, 몽고" 를 포함한 대국이 되었을 것 입니다.
일본은 1900년 의화단난 때에 베이징을 함락한 8국 연합군 1만 8천명 중에 절반인 9,000명을 파병했고
1905년 러일전쟁때는 영국과 동맹국이요 미국과는 우호국이었으며..... 1914년 1차대전 때도 영국,
미국과 연합국이었으니 파리 개선문 최상층에는 일장기를 든 일본군이 개선문을 지나 상제리제를 행진
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1918년 시베리아출병 때는 미,영,프 등과 함께 7만 3천을 파병해 전체의
90% 를 차지한 연합군이니 5번째로 2차대전때도 타협했으면 "연합군으로 승전국" 이 될수도 있었습니다.
강경파가 승리해 벌어진 태평양전쟁중 미드웨이해전에서 일본이 패한 원인을 제 나름대로 생각해
보면.... 첫 번째는 “일본군 암호가 미군에 해독” 되어 “함대규모와 기습장소 및 기습날자” 등을
미군은 상세하게 알고 미리 대비했는데 일본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으니 하와이 진주만때
처럼 “기습이 성공” 할 것이라 믿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통신을 금지” 한 탓에 기함이 탐지한
“항모 호출신호를 항공모함에 전달하지 못해” 미 항모에서 출격한 폭격기에 대비를 못한 것입니다.
“암호 해독” 의 원조는 같은 앵글로 색슨 민족인 영국이니 수학자 앨런 튜링은 1943년 진공관
으로 작동되는 전자해독기를 개발해 프로그램만 바꾸는 방식으로 독일 암호시스템 애니그마
를 해독해 독일군 배치도 까지 알게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숨은 영웅이지만..... 전쟁
후에 "동성애자" 로 밝혀져 1954년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한입 베어물고 자살" 했는데
훗날 스티브 잡스는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애플의 로고를 “한입 베어문 사과” 로 정했습니다!
3번째는 당시 항모는 “일본이 8척으로 미국 3척” 에 비해 많았으나 산호해 해전때 손상되어 2척은
수리중이었으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조급한 마음에 정비를 기다리지 못하고... 정치적
이유로 쫃기듯 급히 출격했으며 또 경항모 2척은 알류산열도로 보내는등 여유를 부린 탓에
“전력 집중의 원칙” 을 어겼으며 반면에 미국은 수리선을 옆에 붙여 요크타운을 수리하면서 출동
시켰고 또 “미드웨이섬이 불침 항모로 2척” 구실은 하니 항모수가 오히려 “4대 5로 뒤진” 것입니다.
네 번째는 “정찰기” 를 띄운 횟수가 미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결과 “적 항모를 미군 보다도
하루 늦게 발견” 한게 치명적인 실수이며.... 게다가 미군에 "레이더" 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다섯번째는 “최악의 위기에 대비 매뉴얼” 이 없었으니... “폭격후 돌아온 아군기 ”를 먼저 회수
하느냐, 상륙작전 작업인 미드웨이 폭격을 위해 “폭탄을 장착한 비행기를 먼저 출격” 시키느냐,
아니면 항모를 타격할 “어뢰를 장착한 폭격기를 먼저 출격” 시키느냐를 빨리 결정못한 것입니다?
여섯번째는 제로전투기의 성능과 조종사의 실력이 미군 보다 우수해 수차례 적 뇌격기를 격추한
것은 좋으나 뇌격기 사냥에 매달려 “동남쪽 저고도에 제로기가 몰리고” 일부는 실탄과 급유를
위해 착함한 기막힌 타이밍의 순간에 “서북쪽 고공과 서남쪽 고공” 에 2척의 미국 항모에서
발진한 “폭격기가 동시에 나타난게 불운” 인데...... 이들 폭격기를 고공에서 막을 제로기가 전혀
없었으니 ”미국 해군의 한 간부는 이 해전에서 승리한 것은 “행운의 혜택이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일곱번째는 여유가 넘쳐서 육군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알류산 열도와 미드웨이” 를 동시에 작전했고
여덟번째는 현지에서는 무모하게도 “미드웨이 폭격과 적 항모” 공격 이라는 “두 마리 토끼” 를
동시에 쫓았는데.... 일본 해군은 하와이 진주만 기습과 산호해전을 거치며 몇번 승리한지라 이때는
자신감이 넘쳐 “방심” 으로 “최악의 사태” 를 미리 대비하지 못한 “교만이 큰 화” 를 부른 것 입니다.
1942년 4월 18일 미 항공모함에서 출격해 도쿄를 공습한후 중국으로 날아가 논에 불시착한 “두리틀 폭격”
에 충격을 받았으니 “육상 폭격기를 항공모함” 에 적재하고 출격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군부는 공습
에 대처하지 못했으니... 일왕(천황) 이 있는 도쿄에 적의 폭격이 가해지는건 군민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참변이며 게다가 미 항공모함은 육상폭격기만 발진시킨후 재빨리 철수했으니 "보복" 을 못한 것입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해군사령관은 “미드웨이 - 알류산 열도” 를 점령해 적 항공모함이 다시는 일본
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해 10월 예정된 “하와이 점령 작전의 교두보” 로 삼겠다는 생각
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와이를 일본 영토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전혀 아니고 하와이 땅과 주민
들을 인질로 해서 미국과 "종전 협상" 을 벌여 협상이 만족하게 타결되면 철수할 생각이었습니다.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에 나섰던 제1기동함대 나구모 사령관은 진주만 공격후 남태평양 “산호해 전투”
작전에 동원되었던 함정과 항공기, 군인의 피로가 쌓여 정비와 휴식이 필요하고 미군 항모 격퇴 가능성
이 낮다며 “작전 연기” 를 건의했으나 조급해진 야마모토는 “미드웨이 해전” 은 시간을 다투는 것 이라며
강행하는데.... 항모 쇼카쿠는 산호해해전 손상수리에 수개월 걸리는데다 산호해 해전에서 조종사 손실이
많았던 항모 즈이카쿠는 남양 트럭섬에서 정비중이라 “항모 두척이 빠진" 것은 매우 아쉬운 것이었습니다.
일본 해군의 항공기는 319기로 미군은 하와이의 비행기까지 포함 348기로 비슷한데, 북쪽 “알류샨
열도에 경항모 류조와 호쇼“ 를 분산 투입한 것은 ”전투력 집중“ 원칙에서 야마모토의 또다른
실수였으니, 1942년 5월5일 나가노 군령부장은 대해령을 발령하는데...... 일본군 보다 한수
위였던 ”미군의 정보능력“ 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으니 1942년 3월 4일 일본군의 장거리 비행정
두 기가 오하우 섬을 폭격하였고 11일에는 비행정 1기가 미드웨이섬에 접근했다가 격추 됐습니다.
미 태평양함대 니미츠 제독은 “일본이 공세를 취할 징후” 라고 보고 경계를 지시하니 일본군은 진주만
공격 직전에 변경한 암호체계를 “D" 라고 불렀는데.... 미 해군은 ”일부 암호 해독“ 에 성공 했으니
암호에 등장하는 ”AF“ 는 공격목표로 판단됐는데, 니미츠는 하와이 인근 ”미드웨이섬“ 일 것이라고
판단했고 첩보대 홈스는 미드웨이섬의 해수 정화장치가 고장나서 식수가 다 떨어져 간다는 ”긴급
위장보고“ 를 하와이에 평문으로 하자 웨이크섬 일본 첩보대가 ”AF 에 식수가 떨어졌다“ 고 보고합니다?
이것이 미해군 통신 정보대에게 감청되어 AF 가 미드웨이임이 밝혀졌고 암호가 더 해독되어 공격부대의
“병력과 지휘관 및 예정항로와 공격시기” 가 밝혀지자 미군은 “원거리에서 적을 발견, 포착하여 항모
들을 격파” 하는 작전을 하달했으며 또 잠수함을 초계와 공격용으로 활용하고 미드웨이섬 수비대는
섬을 사수하라 지시하며 해병 수비대 3,000명을 급파하고 “항공기 150기” 를 파견했으며 대공 포대망이
급속히 구성됐고 남태평양에서 산호해 해전을 겪은 “플레처 제독의 17 기동부대” 를 하와이로 이동시킵니다.
5월 산호해 해전에서 항모 렉싱턴이 격침되고 요크타운은 손상을 입었으며 항모 사라토가도 잠수함
의 어뢰공격으로 수리중이라 니미츠는 플렛처 제독의 기동부대의 두척의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만으로 작전을 할수 밖에 없었는데 수리중인 요크타운에 하와이 수리도크는 72시간의
불면불휴 돌관 작업으로 출항할수 있게 응급조치를 완료하였으니 “요크타운” 은 5월 30일
수리도크에서 나와 전장으로 달리는 동안에도 “수리선이 옆에 붙어 계속해 긴급수리” 를 했습니다.
5월 27일 나구모 중장은 “엄중한 무선봉쇄” 를 실시하며 출격했는데 항모는 제1 항공전대의 아카키 및 카가,
제2 항공전대의 히류, 소류 네척이었으니 6개월전 하와이를 공격한 기동부대에서 제 5 항공전대의 쇼카쿠
와 즈이카쿠가 빠졌고, 전함 기리시마와 하루나가 뒤를 세계 최대전함 야마토를 포함 5척 전함을 중심으로
대함대가 출동하였으니 인류 역사상 “사상 최대의 함대” 가 출동한 것으로... 6월 3일 나구모 기동부대를
후속하던 기함 “야마토함 통신 감청반” 은 미드웨이섬에서 미군이 발신하는 “항모 호출 신호” 를 잡았습니다.
“항모가 미드웨이”에 나타났다는 징조라 야마모토 사령관은 앞서 가는 나구모 기동부대에 전달하도록 지시
했으나 “무선 봉쇄상태라 결국 전달을 포기” 하는데 항모의 통신 안테나는 전함의 통신 안테나 수신 능력
보다 낮아 기동부대에서는 이를 감청하지 못했는데도 항모에서도 감청했을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했는데
만약 “나구모 부대가 정보를 접수하고 경계” 를 했더라면... 미드웨이 해전 전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사전에 미드웨이 공격을 알고 있었던 미해군은 5월 30일 미드웨이 항공대 32기 비행정들을 초계 임무에
배치하고 있었으며 6월 2일 플랫처 소장의 제17 기동부대와 스플루언스 소장의 제16 기동부대가
미드웨이섬 북동 해역에서 합류하였는데... 6월 3일 오전 9시 카타리나 비행정 1기가 “미드웨이에서 930
km (부산에서 신의주 거리)” 떨어진 곳에서 일본 수송선단을 호위하고 있던 제 2 수뢰전대를 발견 합니다.
“일본이 미국 함대를 발견한 것보다 하루 빠른” 것인데..... 미드웨이 7 육군 항공부대 B-17 9기가
발진해 오후 4시 폭격을 개시하였고 태평양함대 사령부는 기동부대라고 판단하고는 6월 3일
저녁“미 기동함대는 남서로 진로를 변경“ 하는데.... 6월 4일 새벽 4시에 미드웨이 기지에서
비행정이 출격하였고 잠시후 제 17기동 함대의 항모 요크타운에서 돈트레스 급강하 폭격기가
정찰 임무로 출격해 일본군 수상정찰기 1기와 교전한 시점에 “나구모 기동부대는 요크타운의
서방 370km” 를 항해하고 있었으니 4시 30분 나구모 기동부대는 미드웨이 공습대를 발진시킵니다.
도모나가 공격대 규모는 급강하 폭격기 36기, 수평 폭격기 36기, 제로 전투기 36기 합계108기 였는데
일본군 해병대가 상륙작전을 실시할 날짜를 6월 7일로 잡았으니 그전에 “미드웨이섬의 전투력을
섬멸” 하려는데 미 항모 출현에 대비해 격납고에 “어뢰로 무장한 함상 공격기” 에 대함이나 대지 공격
의 무장을 하지 않은 예비기들이 있었으니, 제 8전대 사령관 아베 소장은 정찰기 부터 발진시켰으며,
나구모 기동부대는 침로를 바꾸어 함재기 수용을 위해 미드웨이섬 방향으로 항했고 05시경에 미해군
카타리나 비행정은 도네에서 발진한 수상정찰기를 발견하고 수색에서 “나구모 기동부대를 발견” 합니다!
일본함대도 “미해군 비행정” 을 발견해 경순양함 나가라와 전함 기리시마는 연막을 살포했으며 나구모부대
의 제로 전투기들이 급히 발진해 요격했지만 미군 비행정은 구름속으로 숨어서는 “일본 함대를 미행”
하는데...... 체이스 대위의 비행정은 일본 함재기들이 미드웨이섬을 향해 비행하는걸 발견했으니
미드웨이섬에서는 일본 공격대를 요격할 전투기 26기가 출격했고 “뇌격기 6기와 마로더 폭격기 4기,
급강하 폭격기 6기 공격대가 나구모 부대” 를 향해 출격했으며 항모 요크타운에 공격준비 를 명령합니다.
제16 기동부대 사령관 스플루언스도 일본 기동함대 공격대를 발진시키도록 명령받았으며 미군 항모
3척은 출격준비를 개시하니아및 7시에 스플루언스 제독의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이 공격대를
발진시켰는데 107기 일본 전투기들은 미드웨이에서 대기중인“미군기들의 선제공격을 받고 공중전”
이 벌어지니 15분간의 공중전에서는 실전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조종사들인“일본 제로전투기의
승리” 로 되었으니, 성능이 떨어지는 미해군 버팔로기 20기 중에 13기 그리고 와일드캣 2기등
15기가 격추됐으며 도모나가 공격대는 저유소, 비행정 격납고, 전투 지휘소와 발전소를 폭격했습니다.
대공포대와 활주로가 파괴되는등“시설이 타격”을 입었으며 일본군은 함상 공격기 5기, 함상폭격기 1기,
제로 전투기 2기등 8기가 격추됐는데 도모나가 대위는 “나구모 기동부대에게 2차공격” 을 요청하니
8시경에 도네에서 발진한 1호기는 “적 항공기 15기가 아군 함대를 항하여 이동중.” 이라는 급전
을 발신하자 전투초계 중이던 제로기에 6기의 제로기가 더 발진했고 미군공격대는 요크타운에서
발진한 10기로 일본 기동함대는 제로기 21기에 출격을 명해 함대의 항공엄호를 강화하였는데....
일본군 공격대가 미드웨이 를 공격하는중 미군 해군과 육군 항공대는 일본 기동함대를 공격 합니다.
중순양함 도네는 미군 폭격기 10기를 발견했는데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어벤저 뇌격기 공격대 6기
와 어뢰로 무장한 B-26 4기로 미군은 미드웨이를 공격하는 도모나가 공격대 요격에 모든
전투기를 투입했기 때문에 일본 함대 공격대에는 “전투기 호위” 를 붙이지 못했으니 항모
아카키와 도네에서 대공사격하고 제로기 10기도 공격에 가세했으니 아카키에게 저공으로
접근한 미 뇌격기 6기중 3기가 격추되고 남은 3기중 2기는 어뢰투하후 격추되었으며 어네스트
중위가 지휘하는 “한기만 무사히 귀환” 했는데 항모 아카키는 “투하한 어뢰” 들을 모두 피했습니다.
나구모는“미드웨이 2차공습”을 결정하는데 곤도중장의 2함대 미드웨이 공략부대가 6월 7일 실시할 “상륙
작전의 성공” 을 위해 “미군 항공전력의 파괴” 가 필수적이라 만일에 “적 함대 출현에 대비해 공격용 어뢰
를 장착”하고 대기하던 함상공격기들을 “육상공격을 위한 폭탄으로 무장전환” 하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무장하지 않고 대기했던 폭격기들도“신속한 폭장의 명령”이 내렸으니, 미드웨이 해전 전에 항모 히류에서
실험해보니 뇌장의 어뢰를 풀고 폭탄을 장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시간 반” 이라는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함대 엄호 제로기 편대들이 미 공격대와 공중전을 치루고 연료 보급과 실탄 장전을 위해 “항모에 귀환”
하고 있었으며, 미드웨이에 공중공격을 가한 도모나가 대위의 “1차 공격대도 귀환” 하고 있었으니
항모들은 “무장전환 작업” 이 있던 비행 갑판아래 격납고나 갑판은 “극히 혼란한 상황” 이 되어
갔으니, 미 해군 기동부대는 하와이에서 중계된 카타리나 비행정의 보고로 일본 기동부대 위치
를 알았으니 “공격 타이밍” 을 저울질 하던 미해군 17 기동부대 플렛처 소장은 “남서 변침, 수색 공격
하라” 한시간후 16 기동부대 스플루언스 소장도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항모 호넷에 공격명령 을 내립니다.
항모 엔터프라이즈에서 “57기의 함재기” 가, 호넷에서 “60기의 함재기” 가 출격 채비에 나섰는데
일본 정찰기가 상공에 나타나자 미군은 공격대 함재기가 이륙을 완료해 상공에서 편대를 짜고
공격해가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항공대” 부터 각기 적대로 향하도록 했으니 “선제공격”
으로 “각개 약진의 전법” 은 병력의 축차 투입이라 미 공격대들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일본 기동함대에게 미 항모부대 공격대를“발진할 기회”를 주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적 방공망을
약화시켜 치명적 일격을 가할 기회라 여겨 플렛처소장은 8시 반에 35기 공격대를 발진시킵니다.
6월 4일 아침 7시 도네 4호 정찰기가 나구모 기동부대에 “적함 10척 발견” 긴급 타전했으니 위치는 나구모
부대에서 200 해리 떨어진 곳인데, 그러나 미 함대 실제 위치는 160킬로 더 북쪽 해역에 위치해 있었으니
수상 정찰기에 새로 탑재한 “컴파스에 자차수정” 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 도네 4호기가 미 함대를
발견하기 전에 지쿠마의 정찰기가 미군 기동부대 상공을 비행했지만 “낮은 구름” 에 가려 발견하지 못했는
데 미 함대 발견의 정보를 수신한 나구모 기동부대 사령부는“어뢰를 폭탄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중단” 합니다.
도네 4호기에게 추가 정보를 요구했지만 나구모 부대는 미군 공격대가 날아오고 있는 “긴박한 순간
에야 적의 위치” 를 알게 되었으니 “일본 패배의 원인” 을 볼수가 있는데... 도네 4호기 보고를
기다리는중 미 항공대가 접근하고 있었으니 8시경 전함 기리시마는 “연막 차장” 을 개시했으니
“적기 출현” 이라는걸 알수 있는 긴급 행동 이었는데...... 공격기들은 헨더슨 소령이 지휘하는
미드웨이섬의 미 해병대 돈트레스 16기 급강하 폭격대로 일본 항모 히류와 소류를 조준 합니다.
미 해병대 폭격대는“제로 전투기의 요격”을 받고 헨더슨 소령 기를 포함한 8기의 SBD 폭격기가 격추
되었으며 공습에서 명중탄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미군기들은 파상공격을 했으니 B-17 4발 폭격기
17기는 기함 아카키, 소류 및 히류를 노렸으나 “단 한발도 명중” 시키지는 못했지만 피해없이
도주했고.... 그후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미해병대 빈디케이터 폭격대가 공격해오니 일본해군
기동함대가 제로 전투기의 엄호를 받는 사실을 알고 공중호위가 약한 전함 하루나를 노렸으나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1기가 격추되었으니 “제로 전투기의 호위” 가 강해 명중탄은 없었습니다.
도모나가 부대는 귀환중 아카키 호위 구축함들에게서“오인사격”을 당하는등 어수선했는데 혼란이
극심한 가운데 도네 4호기가 추가 정보를 타전했으니 “적 함대는 순양함 5척, 구축함 5척“ 보고
에 미 기동함대를 찾던 일본 기동 함대 수뇌부는 조바심만 더해지고 8시 반에 “적 함대 후방에
항모 1척 발견! 미드웨이 방위 8도. 250해리” 추가타전이 있었는데 “미 항모 호넷” 이었으니
나구모 부대는 전문에 대응하지 않고 야마구치 제독의 소류 항모에 배치된 두기 스이세이 정찰기
에게 정찰을 명하는데 직후 소류의 공격대를 선두로 미드웨이 1차 공격대가 귀환하기 시작합니다.
또 미드웨이 2차 공격대가 폭탄을 장비하고 출격 준비를 완료해 “갑판에서 정렬” 했는데 야마구치소장은
“미 항모 발견” 소식에 “일분일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 이다. 1차 출격했던 도모나가 대위의
“100기 회수를 포기” 하더라도 즉시 “전 항모 공격대 발진 준비” 가 급하다고 건의했지만 귀환하는
“1차 공격대를 수용”하는 것이 먼저냐, “2차 공격대를 발진”하는 것이 먼저냐, 적 항모들을 부수기 위한
“어뢰 출격이 먼저냐” 하는 “3가지 결정” 을 놓고 “격심한 갈등” 이 있었으니 “갑판은 대혼란” 으로 빠져
들어가는데... 항모의 상공에 도착한 미드웨이 1차 공격대 함재기들은 “연료가 고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차해서 상황이 나빠지면 “100기 정도의 함재기들과 200여명의 탑승원들을 수장” 시켜야 하는 상황
이라 겐다 미노루 항공참모는 노련한 경험을 쌓은 “비행사들이 죽어” 가는 것을 차마 눈을 뜨고
볼수 없다고 생각하고... “1차 공격대 함재기 회수” 가 급선무라고 강행했는데, 새로 출현한 미군
항모 부대가 공격대를 발진시키더라도 전투 초계 “제로 전투기 부대가 방어” 하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니...... 귀환하는 미드웨이 공격대를 수용하고 기동부대 공격대를 발진시키기로 결정합니다.
이때“함대 공격용 어뢰”를 장착하고 비행갑판에서 대기중인 공격기들은 전혀 없는 가운데 나구모 기동
부대는“미드웨이 1차 공격대를 수용”시작했으니 함재기 회수완료후 북으로 변침 적 기동부대를 포착
격멸하라는 명령이 하달되는데, 도네 4호 정찰기가 추가정보를 보내온건 9시경으로 체공시간 10시간인
수상정찰기는 귀환중이었으며 일본은 미드웨이 1차 공격대를 수용한 시각은 9시 반인데 공격대 발진
준비를 서두르던중 왈드론 소령의 “항모 호넷 뇌격대 14기” 가 기동부대 상공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뇌격대는 구름 때문에 호위기와 떨어졌는데 항모 아카키에 최초로 목격되었고 엄호하던 제로기 8기가 요격
하자 제로기들을 무시하고 아카키에 육박했으나 “일본 초계 전투기들의 요격능력” 은 막강했으니 호넷
뇌격기 모두가 격추되었으면 단 한기만 아카키의 함교에 접근하다가 추락하여“전멸”하였고, 폭격기들
과 전투기들은“일본 항모를 찾지 못하고”헤매다가 연료가 떨어지자 미드웨이섬으로 향하였으니 전투기
와일드캣과 폭격기 3기는 연료 고갈로 바다에 불시착하였으며 나머지 20기는 항모 호넷으로 귀환합니다.
6월 4일 9시 반경에 린제이 소령의 엔터프라이즈 “뇌격대 14기” 가 나구모 부대 상공에 도달했으나 통신상
와일드캣 전투기부대 호위를 받지 못하고 “제로기들의 공격” 을 받는데 뇌격대는 항모 카가를 노렸으나
10기나 격추당했으며 일본항모 소류에서 발진한 스이세이가 미 함대를 발견했으니 함대의 정확한
위치는 도네 4호기가 보고한 위치와 “100km 차이”가 있었으며 요크타운 제 3 뇌격대 12기가 나구모
부대 상공에 도착했으니 뇌격대는 구름에 가려진 3척의 항모 보다 앞에서 노출된 항모 히류를 공격합니다.
뇌격대는 전투기 호위를 받았으나 “제로기 공격에 10기가 격추” 되고 2기는 연료부족으로 불시착했으니
요크타운 뇌격대원 24명중 21명이 전사했는데 항모 히류에 “어뢰 5발” 을 발사했지만 명중탄은 없고
섬멸 되었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해군이 승리하는데 큰 기여를 하니 첫째, 뇌격대는 일본 기동부대를
“연속 흔들어 신속한 반격” 에 나서지 못하게 했고 둘째, 일본 전투초계기들이 “뇌격대에 눈이 팔려 위치
를 이탈” 하게 만들었으며 셋째 “제로기 실탄과 연료를 소모” 하게 만들어 미군 폭격대 요격에 대처하지
못하게 했으니 제로기들은 “이함-전투-착함-보급-이함” 을 되풀이 하느라고 “피로가 누적” 되고 있었습니다.
“섬멸된 요크타운 뇌격대는 승리에 중대한기여” 를 했으니 “남동쪽에서 저공” 으로 공격해온 뇌격대
를 영격하느라 일본 전투기들은 모두 남동쪽 해역 저공에 몰려들어 일본 기동부대 “상공의 고공을
비워” 놨었기 때문인데, 요크타운 요격 직후 발생한 일본 초계기들의 방심은 참변으로 이어지니
미 항모 3척 뇌격대들이 일본함대를 명중시키지 못하고 괴멸되고 난뒤 맥클러스키 소령이
지휘하는 “엔터프라이즈 급강하 폭격대 32기가 해역 상공” 에 진입했는 일본 기동함대가 “이동”
했기 때문에 폭격대는 먼저 출격했던 뇌격대와 달리 나구모 기동부대를 쉽게 접촉할수가 없었습니다.
맥클러스키 소령은 일본 기동부대가“북방으로 이동”했으리라고 판단하고 변침과 수색을 되풀이하며
바다를 뒤졌는데 함재기 발진과 회수에는 “바람 방향” 이 중요하니 “북풍” 이라 항모들이 “함재기
발진을 위해 북진”했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는데 미군 폭격대는 “연료부족” 에 시달리면
서도 수색을 계속해 일본 구축함 아라시를 만났는데 아라시는 일 전함 기리시마를 뇌격했던
미군 잠수함 노티러스에게 폭뢰 공격을 가한후 “나구모 기동부대를 향하여 되돌아” 가고 있었으니
맥클러스키 폭격대는 “아라시의 항진 방향에서 나구모 기동 부대의 위치” 를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10시 반 무렵 엔트프라이즈 폭격대는 나구모 기동부대를 발견하였으니 “총 30기가 역사적인 급강하 폭격”
에 가담했는데 이후“요크타운 폭격대가 후속해”왔으니 나구모 부대는 최악의 순간에“더블 펀치”를 맞는데,
레슬리 소령의 요크타운 폭격대가 맥클러스키 소령의 폭격대를 후속하다 목표 상공에 도달하자 “다른 공격
방향” 으로 갈라지는데 맥클러스키 소령은 “남서쪽 상공” 에서 돌입했고 레슬리 소령은 “북서쪽에서 돌격”
했으니 “제로 전투기들은 남동쪽 저공” 으로 몰려가 있거나 “항모에 착함해 보급” 을 받거나 “급유” 중이라?
항모 비행갑판이나 격납고 안에는 연료공급을 위한 “연료 호스가 어지럽게” 깔려있거나 예비기들이 “무장
전환을 하면서 방치한 폭탄이나 어뢰” 들이 널려 있었으며 갑판에는 미드웨이 “2차 공격대가 대기중”
이었으니“최악의 상황”인 가운데 10:22 엔터프라이즈의 폭격대는 둘로 갈라져 두척 일본 항모에 급강하
했는데 통신 오류로 두 편대가 급강하해간 목표는 “ 항모 카가” 였으니 급강하중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베스트 대위와 그의 두 윙맨은 급강하를 풀고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기동부대 “기함 아카키” 로 향했습니다.
“적기! 급강하!” 카가의 견시가 미군기를 발견하고 경고했지만 늦었으니 두 편대로 부터 급강하 공격을 받은
“항모 카가는 네발의 직격탄” 을 맞아 통제할수 없는 “대화재” 가 발생했고 폭탄 한발은 함교부근에 낙하해
지휘부 간부를 전사시켰으며, 수분후 베스트 대위는 아카키를 향해 급강하 했는데 세 기가 투하한 폭탄
중에 “명중한 폭탄은 단 한발” 이었지만 아카키에 치명타를 입혔으니 비행갑판 엘리베이터를 관통하고 함의
“엔진 터빈에 맞자 폭발로 화재” 는 연료와 폭탄을 적재한 항공기로 가득찬 상부격납고 전체로 확산시킵니다.
엔터프라이즈 폭격대가 “두척의 항모” 를 격침할때 레슬리 소령의 요크타운 폭격대는 “소류를 공격해 세발의
폭탄을 명중” 시켰으니 최대의 피해를 입고 20분만에 총원 퇴함명령이 내려졌으며 “히류도 공격” 했으나
명중탄을 내지는 못했는데 기습에 성공했지만 미군도 30기중 14기가 격추 되었습니다. “10분도 안돼
일본 기동부대는 결딴” 나고 역사는 바뀌었으니...... 소류와 카가는 화재가 발생해 함을 태우며 퍼져갔는데
직격탄을 한 발만 맞은 아카키는 화재의 확산 속도가 느렸지만 결국 화재가 전파되어 함을 포기하게 됩니다.
제1기동함대 나구모사령관은 경순양함 나가라로 피신했으며“ 일본 항모 세척은 침몰" 하니 조종사들을 포함
수많은 해군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으니 항모 3척 격침에 망연자실한 야마모토 사령관은 긴급지시를 하니
“미드웨이 상륙 수송선단” 을 북서쪽으로 철수시키고 알류샨 공략부대에 속한 제2 기동부대의 “경항모
호쇼와 류조를 남하” 시켜 나구모 제1 기동부대에 합류하게 했지만 거리가 멀어 합류는 닷새 후인 6월
9일에나 있을 예정이니 우카키 참모장은 “두척 항모를 북쪽으로 분산” 시켰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 합니다.
이무렵 나구모는 야전(夜戰)으로 미군 기동함대를 격멸하기로 하고 준비를 명령하는데 미드웨이
출동 항모중 “단 한척 생존 항모인 히류는 공격대” 를 발진시켰으니 첫 공격대는 고바야시 대위
가 지휘하고 6기의 전투기가 호위하는 18기의 급강하 폭격대로 일부 공격기들은 미드웨이
2차 공격 발진 대기중에 급히 출격하느라 대함 공격의 대형폭탄으로 무장 전환을 하지 못하고
“육상 공격용의 작은 250kg 폭탄” 을 그대로 달고 있었는데...... 중순양함 치쿠마에서 발진
했었던 수상 정찰기 치쿠마 5호기가 “요크타운의 위치” 를 정확히 알고 히류 공격대를 유도 합니다.
히류 공격대는 “요크타운을 직격해 3발의 폭탄을 명중” 시켰고 요크타운은 비행갑판 중앙에 큰 구멍이
생기고 보일러실에도 피해를 안겼으며 대공 포대도 파괴되었지만 응급 팀이 필사적으로 노력하여
구멍을 메우고 보일러의 기능을 살려내 “작전 가능” 상태로 되돌려 놓았는데, 히류 공격대가 치룬
대가도 컸으니 12기의 급강하 폭격기와 4기의 호위기가 격추되었으며 한시간후 히류 2차 공격대
가 쇄도해 왔으니 10기의 뇌격기와 6기의 전투기들로 2차 공격대 지휘관은 미드웨이 1차 공격대
를 지휘했던 도모나카 대위였으니 그의 함상 공격기는 연료 탱크 파손으로 귀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귀환할수 없음을 예상하고도 “폭탄대신 어뢰” 로 무장하고 출격했으니 뇌격대는 양쪽에서 어뢰 공격을
했는데 대장 도모나카 대위는 대공 포화에 격추돼 전사했으나 2차 공격대도 요크타운에 피해를
입혔으니 “두발 어뢰를 맞고 엔진” 이 멎어버렸고 함에 침수가 심해 요크타운은 26도 좌측으로 기울어
지자 플렛처 제독은 중순양함 아스토리아 함으로 지휘부를 옮겨야 했는데 스플루언스 제독 휘하의
16 기동함대는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2파 공격의 성공으로 침울했던 일본 함대의 분위기가 일변했으니
일본 기동함대의 지휘부는 1파, 2파의 “히류 공격대가 공격한 미 항모는 또 다른 항모” 로 오판을 했습니다.
미항모 두척을 격침했으니 “한척만 더 격침” 시키면 3척 항모를 잃은 일본 기동부대의 “복수” 를 할수
있다고 믿었던 것인데 3파 공격대를 발진시키기 전에 미 기동함대의 공격대가 쇄도했으니 요크타운
의 정찰기는 히류를 발견하였고 미 기동부대 엔터프라이즈가 즉각 폭격대를 발진시킵니다. 피격후
다른 항모로 피신하였던 요크타운의 급강하폭격기 10기가 합류했는데 히류는 10기 이상 제로
전투기의 공중엄호를 받았지만미 공격대는 초계망을 뚫고 히류에 급강하 공격을 가했으니......
“네 발의 폭탄이 히류” 를강타해 화재가 나고 함의 기능이 정지되었으며 히류는 다음날 “침몰” 합니다.
사령관 야마구치 소장과 가쿠 함장은 함과 운명을 같이 했는데 주력 항모 네척을 잃고도 일본함대는
“수상함의 화력으로 적 함대를 격멸” 한다는 “실현난감한 목표” 를 갖고 북동쪽으로 항진속해
“야전(夜戰)” 을 준비하였으니 “한쪽은 공격하고 한쪽은 도피하는” 야전이었습니다. 요크타운 피격
후 중순양함 아스토리아로 지휘부를 이동한 플렛처 제독은 지휘권을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을
지휘하는 사령관 스플루언스에게 넘기는데 일본 함대가 아직도 미드웨이 공략의 욕심을 버리지
않고 야전을 시도하고 있다고 판단한 스플루언스는 “야전을 피하기 위해서 동쪽으로 후퇴” 합니다.
나구모 중장은 야전으로 만회하고자 동쪽으로 항진하며 미 기동함대를 찾았는데 연합함대 야마모토
사령관은 중순양함 부대가 미드웨이섬을 포격하도록 파견했지만 “스플루언스의 회피 기동” 으로
“야전의 성공 가능성” 이 낮아지자 작전을 중지하고 “함대를 서쪽 으로 철수” 합니다. 해전 다음날 6월
5일 스플루언스 기동부대는 일본함대를 수색했는데 6월 6일 미드웨이 섬 서쪽 90해리 해역에 잠복
해 있던 존 머피 소령 의“잠수함 탐버” 는 여러척 함대를 발견하자 정체 미상이라 보고했고 정보는
플루언스에게 전달되자 함정들이 미드웨이 공략부대의일부 함대라 보고 공격가능 해역으로 이동합니다.
탐버가 발견한 함정들은 야마모토로 부터 미드웨이 포격명령을 받고 가다가 작전중지 명령에
본대와 귀환하는 곤도 중장의 제7 전대 소속 4척 순양함들과 두척 구축함이었는데 야마모토
로 부터 작전포기와 항로변경중에 “잠수함 탐버에게 발견된” 것입니다. 일본함대는 미 잠수함
을 발견하자 “대잠회피 기동” 에 들어갔으니 “급격한 기동중에 중순양함 모가미와 미쿠마가
충돌” 하는 바람에 속도를 12노트로 낮추어야 했으니..... 이 충돌은 미드웨이에 전개했던 미
해군 잠수함 18척이 거둔 최고의 성과로 탐버는 잠항하여 어뢰를 발사했으나 성공하지 못합니다.
함장 머피는 사령부에 중순양함 정보를 타전하자 이날부터 다음날까지 두 척의 순양함들은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폭격대와 스플루언스 함대의 공격을 받는데 “미쿠마는 스플루언스 급강하 폭격기에게 격침”
되었으나, 모가미는 일본으로 귀환할수 있었으며 미 항모 요크타운은 하와이로 견인되던중 6월 6일
“일본 잠수함” 이 추적해 어뢰를 발사했고 “두발이 요크타운에 명중” 하니 결국 6월 7일 오후 다섯시
경에 바닷속으로 침몰하는데.... 스플루언스의 기동 부대는 일본 함대를 웨이크섬까지 추격후 철수합니다.
만신창이가 된 일본 함대는 서쪽으로 항해하여 6월15일 일본 히로시마 로 돌아왔는데... 해군 최고위층과
일왕 히로히토에게는 미드웨이 해전 패배에 대한 간단한 사실만 알렸을뿐..... “재앙에 가까운 패배는
숨겼으며 ”심지어 견원지간인 “육군에도 숨겼는데 ”침몰함에서 살아 남은“장병들은 가족과 면회도 금지”
당하고 머나먼 “남태평양 부대” 에 재배치 되니 무엇이든 "불리한건 숨기려는 체질화된 습성" 이 보입니다?
미군 항공공격을 막아내던 일본 전투기가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급강하 폭격대가 가한 단 한차례 기습에
세척 항모를 잃고 개전 6개월에 해군 괴멸이 시작되는 비극을 맛본 것인데 최악의 상황에서 맞은 불운은
“미드웨이 점령과 미 주력함대 격멸” 이란 두마리 토끼를 쫓은 결과가 빚은것이니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이
무릎을 꿇은 최초의 전투” 인데 몇번 항모 기동전에서 승리를 거두고는 방심해서는 교만해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미드웨이해전으로 해군 지휘부는 “국가 멸망을 걱정” 하기 시작했으니 " 일본 해군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라고 한탄 했습니다. 영국 해군이 쇠락하는 가운데 세계 1, 2위를 다투던
일본 해군 이 2차 세계대전에서 몰락한 후에 이제 세계의 바다는 ”미국 1국 체제“ 로 굳어
졌으며 소련의 도전도 무위로 끝난 지금 일본의 재무장이 주목되는 가운데 중국이 G2 를 주장합니다.
”중국이 항모“ 를 건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 해군에는 역부족 입니다. 하지만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은 한자와 종이, 금속활자와 인쇄술, 화약과 나침판에 비단과 도자기며 차를 생산해 유럽에 수출했던
문명국이었으니..... 시진핑이 권력을 공고히 한후 한나라, 당나라, 명나라 시대에 세계를 제패했던 영광을
재현하고자 “중국몽” 구호를 내걸고는 1대 1로 정책에다가 대양 해군을 강화하니 30년 후라면 또 모르지요?
1916년 1차대전 유틀란트 해전은 영국은 전함 28척등 151척이고 독일은 전함 16척등 99척인데
5월 31일과 6월 1일 덴마크 서쪽 유틀란트에서 교전했으니 이때만 해도 1905년 쓰시마해전
처럼 전함끼리 대포로 적의 함선을 포격해서 승부를 내었으니...... 영국은 14척이 침몰하고
6,094명이 전사한데 비해 독일은 11척이 침몰하고 2,551명이 전사했으니 전술적으로 보면 독일
의 승리이나 해전후에도 독일 해군이 대양으로 진출하지는 못했으니 전략적으로 보면 패배입니다.
반면에 25년이 지난 1941년 일본 해군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과 1942년 산호해 해전 및 1942년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은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폭기가 지상용 폭탄이나 함대용 어뢰를 투하해 공격한 것으로
바뀌었는데... 미래 해전은 “미사일” 이 주 공격무기로 “해킹을 통한 적 암호” 파악과 “전파 교란과 방해”
에다가 “핵잠수함” 과 스텔스 및 인공지능 함정, 무인 수상함과 잠수함등 신 기술의 각축장이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 미드웨이 해전, 조너션 파셜, 앤서니 털리 ( 848 쪽 )
쇼와육군(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일본 제국주의의 몸통), 호사카 마사야스 ( 1,13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