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전화 없이 생활한 지가 꽤 되었다.
작년 10월 26일 더부살이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니 벌써 70일도 넘었다.
핸드폰이 있지만 요금이 비싸서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연락을 하지 않으니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전화...
한때 가정환경 조사에서 빠지지 않고 들어 있던 항목이다.
우리 집은 약방을 했던 관계로 대구에 나오면서부터 전화가 있어 이 부분을 조사할 때면 자랑스레 손을 들곤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공중전화 비용이 5원이었다.
그 뒤 10원 30원, 50원을 하던 요금이 지금은 얼마를 하는지도 모른다.
동전이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한때 사은품을 2000원 정도하는 공중전화 카드로 주던 시절도 있었고,
KT에서 전화카드를 발급하여 현금이 없이도 얼마든지 전화를 할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심지어 용진이는 놀다가 귀가가 늦어져 혼이라도 날라치면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입구에서 전화를 하기도 한다.
물론 콜렉터 콜(수신자 부담)이지만...
조만간 아예 공중전화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부스가 가장 많이 설치되었던 시절의 5분의 1에 불과한 정도란다.
전화 부스 바로 옆에서 핸드폰을 꺼내드는 사람도 심심찮게 보는 실정이니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집에 제일 처음 나온 전화번호는 봉덕동 약방 시절의 4-6490이었다.
아버지가 약방을 잠시 비워두고 나가시면 동네사람들이 돈을 내고 거는 요금은 전부다 챙겼다.
혼자 있으면 수입이 많았고 3~4명 있으면 돌아가며 챙기기도 했다.
다이얼식 전화를 함부로 쓰지 못하게 0자에 작은 자물쇠를 채우기도 했지만
재주가 좋은 사람은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추어 수화기 놓는 부분을 두드려 공짜 전화를 쓰기도 했다.
다음에 대명동으로 살림을 합치면서 6국이 되었다가 두 자리, 세 자리 수 국번으로 바뀌면서 66국, 637국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뒷자리는 여전히 그대로여서 우리 식구에게 있어서 6490은 하나의 공동 아이디나 마찬가지였다.
초창기 네 자리 비밀번호를 쓸데 사용한 기억도 있고(나뿐이 아니었으리라) 지금껏 세하는 폰번호를 이것으로 하지 않는가?
큰형수님도 그렇고 이 번호를 못 구한 고헌 형님은 6498로...
그러다가 전화가 보편화되기 시작하여 전화국에 전화를 신청할 때는 수Km씩 줄을 서기도 했다.
백색전화니 녹색전화니 하는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개념도 존재하여 전화가 부동산 가치가 있었던 때도 있었고...
좋은 전화번호가 다이얼 시절에는 숫자가 5이하로 구성된 것이었고(그런 의미에서 6490은 별로 좋지 않은 번호)
지금의 버튼식 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1자로 선 빙고식 전화번호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를테면 2580이 가장 좋은 번호고 6490은 여전히 별로 좋은 번호는 아닌 셈이다.
두 번째 전화 혁명은 휴대전화(핸드폰)일 것이다.
처음에는 허리띠에 차고 다닐 정도로 큰 전화였는데 크기가 다리미와 비슷했을 것이다.
얼마전만해도 구식의 좀 큰 모델을 냉장고니 무기니, 이렇게 부른 것만봐도 짐작하고 남을 것이다.
그래도 그 전화가 15년 전에 2~300만 원 가량 했으니 그걸 차고 다닌 사람은 얼마나 목에 힘을 줬을까?
카폰도 귀한 시절이었는데, 핸드폰이 나오며 카폰은 보급도 제대로 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그러다가 이른바 PCS가 나오면서 핸드폰도 대중화하였는데 가정용전화가 보급될 때만큼 대기자가 많아
단말기를 신청해놓으면 심한 경우에는 한달이 걸릴 때도 있었다.
나도 99년에 거의 보급화가 다 된 후에 이제는 이용료에서 이익을 보려는 시기에 하나 장만하였다.
물론 공짜였고...
그 기계를 4년 반 쓰고 다음 것은 약 3년, 그리고 지금 것은 1년째 쓰고 있다.
그런데 교단에 서는 사람의 입장에서 휴대용전화는 정말 골칫거리다.
수강인원이 많은 교양과목 같은 경우 20%정도는 수업 시간이 폰 채팅 시간이다.
열성이 많을 때는 잔소리도 좀 했는데 이제는 그냥 "컬러링 울리지 않도록" 당부만 하는 실정이다.
바뀐 전화는 형진이가 단말기 대리점에 있을 때 번호 이동으로 공짜로 해준 것이다.
나뿐만 아니고 울산 새형님과 헌누나네도 하나씩 했다.
나는 걸 일은 별로 없다하여 기본요금이 제일 싼 것으로 하여 통화료가 비싸다.
형진 말로는 30분 이상하면 손해라는...
그래서 웬만한 연락은 문자로, 집전화로 하고 동반 외출을 할 때는 윤진 이름으로 달아놓아 정액제로 된 마누라 것을 많이 쓰는데
12월에는 이사를 하면서 연락할 곳이 많아 지나치게 많이 썼다.
한번 충전을 했는데도 금방 다 써버려 다시 충전을 하려니 규정 위반으로 안 된다고 한다.
별다른 의식없이 무한정 썼다가 지나친 요금 부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고등학생이 나온 다음부터 그렇게 바뀐 모양이다.
내일 이제 집전화가 개통된다고 한다.
공짜 좋아하는 마누라가 하나로로 바꿨다가 이사를 한 지역이 하나로 서비스가 안 되는 것이어서 KT로 번호 이동을 하는 것이다.
하나로가 마누라 이름으로 된 것도 모르고 내 이름으로 신청을 했다가 안 되어서 다시 신청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개통이다.
사흘만 더 있으면 이사한 지 4주나 되는데...
전화 하나 없으니 정말 불편한 점이 많다.
이판에 전화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 많아 한번 끄적여 보았다.
첫댓글 우리 전화는 본리동 살 때 562-8140이었다가, 범어동 오니 793-8148로 변경되었다가 사월동 이사 온 이후로는 하나로로 번호이동을 했는데도 지금까지 793-8128을 계속 유지. 요즘은 1인 1전화 시대가 되어 작은형집에는 한때 전화가 9대나 있었다고... 게다가 한번은 큰아지매에게서 마누라에게 전화가 와서 대뜸 하는 말이 "어 집에 있었네..." 하더라나. 마누라 왈 "이건 핸드폰인데요." 아지매 "..." 하여간 큰형님 집에서는 전화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언젠가 안개 자욱한 묘사날 청리서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야, 여기가 도대체 어디냐. 안개 때문에 하나도 안 보이네." 형님 있는 곳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소.
봉덕동에서 한약방 하던 시절 사용한 전화는 백색전화였는데 그 당시 무려 39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입한 것임, 그야 말로 재산목록 1호였지 아마, 그리고 우리 신혼 시절에 쓰던 전화번호가 60국에 9678번이었는데 번호치고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번호로 다이얼을 돌리면 정말 지겨웠었다. 생각해 보라구 5번 이하는 하나도 없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 무렵부터 다이얼식이 전자식으로 바뀌기 시작했었는데, 우리 번호는 아마 다이얼식 번호의 마지막 세대였을 걸
평균 7.6이상이니 급한 전화 때는 정말 많이 답답했겠다. 그래서 범죄신고는 112인가 빨리 신고하라고... 형 말마따나 우린 신혼때부터 버튼식 전화. 지금도 생각나네 연한 핑크빛 개구리 전화. 후배들이 결혼 로 돈을 모아 해준...
그런데 발형은 정말 금전의 액수와 관계된 기억력은 정말 비상하네. 어디 참고 자료로 적어둔 것이라도 있는지 옛날 대명동 집값 등등하며...
있으면 귀찮을 때도 있지만 정말 없으면 불편한 것이 전화...요즘은 핸드폰 때문에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심지어는 초등생 녀석들도 5학년 이상이면 한 반에 평균 67명은 있는 실정이고 6학년의 졸업은 거의가 핸드폰이라나 녀석들이 글짓기 수업에 5분만 늦어도 문자를 보내네."쌤청소때메쫌늦어요"라고...그러고 보면 우리 아들들 원시인 수준.환이는 고교졸업로 해줬는데 그때까지 자기 반에 핸드폰 없던 애들이 5명이었고,규진이는 수능 전날 해줬는데 자기 반에 없는 애가 규진이랑 저소득층 자녀 하나뿐이었다는...
아직 수진,유현은 자기 전화번호는 없음.지엄마 전화기 바꾸면서 쓰던 휴대폰 주었는데... 충전하여 거의 오락만 하고 있는 실정,,,,
그건 전화가 아니라 오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