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신조
베네딕도 아버님과 벨라뎃다 어머님이 멀리 용인에서 오셔서 뵙기로 한 날이다. 두 분은 2013년 귀천한 고 김진규 다니엘 신부님의 부모이시다. 같은 성당 젬마 자매님께서 몇 포대 쌀을 준비하셔서 이웃 돕기를 희망하셨는데 베스트 드라이버인 아버님은 배달 기사로 찜 되셨고, 수녀원에 기부하고 싶다고 하셨다. 처음엔 당연히 더 필요한 곳에 나누시라고 맹렬하게 사양했지만, 주방 수녀님께 알아보니 마침 쌀이 얼마 없다고 하여 받기로 했다. 요즘 수녀원 살림도 꽤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아픈 회원들은 속출하여 의료비는 대거 지출되고, 여러 사정으로 일선에서 은퇴하는 회원은 늘어가고 새 회원을 아예 없다. 염치가 좀 없지만 감사히 받기로 하였다. 어머니는 3년째 파킨슨 병을 앓고 계셔서 동행이 매우 불편하시겠지만, 한편 힘들고 부담스런 환경에서 벗어나 모처럼 함께 밥과 차,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 두 분께도 응원이 될 것 같아 두 분이 꼭 같이 오시라고 하였다. ‘오시면 잘 해드려야겠다.’라고 기특한 결심도 단단히 했다.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셨다. 아버님은 차에서 쌀을 내리시고 나와 젬마 자매님이 어머님을 부축하여 현관 안까지는 무사히 잘 들어왔다.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분들에겐 항상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곳, 성당에서 잠시 기도를 함께하기 위해 실내화를 갈아 신고자 했다. 잠시 스치는 생각, ‘움직임이 이토록 불편하신데 신발을 바꿔 신게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다’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성당 당번 수녀님이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곳을 실내화로 신고 가는게 맞지’라고 재차 판단을 했다.
이런 순간의 비상적이고 어리석은 판단은 어떤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이런 환자를 돌 본 경험이 없는 내가 우물쭈물하는 잠시 지체하는 사이, 서 있을 힘이 없으신 어머니가 그대로 뒤로 넘어지시고, 어머니를 붙잡고 있던 나는 어머니를 위로 엎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현관은 차거운 돌 바닥이었다. 머리와 몸 전체가 하늘을 향해 넘어지셨으니 뇌진탕, 허리 다리 뼈 무사할지 기절할 걱정이었다. 어머니는 파킨슨, 나는 왼 무릎이 시원찮아 머지 않은 날 수술을 해야 할 처지인 사람들이지 않은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을 보며 옆에 있던 수녀님, 현관 손잡이 수리 중이었던 형제님, 차에서 쌀을 내리던 아버지, 젬마 자매님 모두 기함을 했다. 나는 넘어지면서 머리를 현관 문에 찧었는데 약간의 통증과 머릿수건이 찢어졌을 뿐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어머니를 부축해 일어나고 정신을 차려 보니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았다. ‘천우신조! ’하느님, 수호천사, 성모님의 도우심을 강렬하게 감지하는 순간이었다. ‘그분들이 빛의 속도로 오셔서 도우셨구나!’ 감사가 사무쳤다. 60년 이상 세월을 살아오면서 숱하게 그리고 이렇게 또 한 번 하느님의 도우심과 섭리하심을 몸으로 깨닫는다.
식당에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면서도 몇 번씩 확인했다. 착하고 선한 환자 어머니는 엄청나게 놀라셨을 속마음을 감추시고 매 번 괜찮다고 하시는데 정말 괜찮기를 계속 기도한다. 그분들과, 나 젬마님, 우리들의 하느님과 성모님께 그리고 수호천사들께.
첫댓글 밤 새 또 추가 증상이 있을까 걱정되어 아침에 전화를 드렸다. 본인은 괜찮다고 하시는데(이렇게 착하고 선한 환자라니....)아버님 말씀이 엉덩이가 좀 아프다하셔서 연고를 발라드렸다고. 나도 몸이 묵직하다. 그래도 천만다행 천우신조에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께 계속 감사를 드린다. 얼마전 은경축을 맞은 수녀들이 고백하기를, "자신의 수도 여정을 한 마디로 감사와 은총이고 한 단어로만 하면 감사"라더니 그것은 나의 중간 고백과 최종고백일 것이다. 감사는 인간의 가장 마땅하고도 옳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