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지역미술사연구를 위한 제언
이영준
큐레이터. 김해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장
한국에서 지역미술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너무도 부족한 실정이다. 미술사에 대한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기초는 진행된 사실에 대한 1차적인 자료가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역마다 미술관을 가지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설령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형편은 비슷하지만 - 미술사에 대한 기초작업은 요원한 일이다. 그렇게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도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역미술사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부족한 것은 아카이브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각 지자체의 미술사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를 시작하겠다는 시도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미술사에 대한 체계적인 정립은 단지 자료만 모여 있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1차적인 자료를 DB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사실 김해문화의전당에서는 2년전 김해미술사에 대한 DB사업을 이사회와 시의회를 통과해서 정식으로 사업인가를 받았지만 당해연도 예산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포기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당시 사업내용은 김해의 지역미술사를 편년으로 정리하고 각 작가별로 일종의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사업이었다. 그렇게 되면 김해문화의전당 홈페이지와 연동하여 김해지역 작가들을 검색하고 이들의 작업경향을 확인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김해지역의 작가를 홍보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였다. 하반기에 진행할 예정이었던 이 사업은 비수익사업으로 분류되면서 사업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내년도 사업에 이를 반영하여 김해미술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갈 것이다.
이처럼 정보화하는 부분도 매우 중요하지만 지역미술의 역사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텍스트들이 생산되어야 한다. 역사라는 것은 객관적인 무엇이아니라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가변적인 그 무엇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학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가령 김해미술의 외현을 어디까지로 둘 것 인가에서부터 언제부터로 기점을 잡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비롯해 지역미술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보편성을 확인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지역출신작가들의 발굴하고 이들의 예술적 성취를 재고하는 사업도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김해문화의전당에서는 매년 김해를 빛낸 예술가 시리즈라는 타이틀로 전시를 진행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 단색회화로 분류될 수 있는 김홍석을 비롯해 국보급 전각가인 안광석, 한국만화계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코주부 김용환의 전시를 진행하였다. 김용환의 경우는 김해가 놓혀서는 안될 문화적인 자산이다. 코주부라는 캐릭터도 중요하지만 김용환은 한국만화계에 있어 거부할 수 없는 거인이다. 한국최초의 만화잡지를 창간하기도 했으며 시사만화가로서의 지평을 넓혔고 한국최초의 만화책인 <홍길동>을 만든 역사적인 인물이다. 다행히 개인 수집가에 의해 그의 작품이 상당수 원화가 본존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사실이다. 적어도 조그만 미술관이나 기념관을 김해에서 만들어야 할 인물로 판단된다.
현재 김해에서 활동했던 작고작가들의 경우 예를들어 서양화의 김창환, 윤소남 조각의 박상규 그리고 서화의 차산 배전 선생을 비롯해 우죽 배병민, 아석 김종대, 수암 안병목, 청사 안광석, 운정 류필현, 한산당 화엄선사 등은 그 작업이 많이 남아있지 않을 뿐 아니라 유실의 가능성이 매우 많다. 유적들이 관리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상업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도 김해를 빛낸 예술가 시리즈에 김창환, 류필현, 박상규, 윤소남의 작품으로 전시를 진행하면서 이들 작품을 하루라도 빨리 공공미술관에서 소장이 되어야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들의 예술적 성취를 떠나 김해미술의 원류를 확인하기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보존이 시급하다. 올해에는 차산 배전, 우죽 배병민, 아석 김종대, 수암 안병목의 작품으로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남도립미술관의 의지와는 달리 이번 전시는 많은 부분이 누락되어있다. 이번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나열해 놓거나 그것도 최근의 작품들이 맥락없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사를 정립하기 위해서 적어도 도큐멘터식의 전시형식으로 진행되어야하는데 전시공간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지역의 원로들의 인터뷰라던지 당시의 사진 등 사실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하는 것이 취지에 더욱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해미술의 역사중에 몇가지 중요한 지점을 선택해서 이를 이슈화 하고 이에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하는 것이 더욱 나은 방법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공간도 아닌 곳에서 억지로 짜 맞춘 듯 한 모양새는 지역 작가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또한 김해미술사를 정리하면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사진과 건축과 같은 인접장르의 문제이다. 사신은 예술로 공인받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미술관에 진입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지연되어왔다. 또한 건축도 분명 예술적 결과물이지만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잘 안되고 있는 장르이다. 김해지역에 미학적인 건축물에 대한 자료들도 함께 정리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지역미술사정립을 위해서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협조와 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김해문화의전당과 클레이아크 김해를 비롯한 기관과 김해미협과 관계협회나 동호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리고 경남지역 전체적인 구조는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제시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인 포맷을 정리해서 자료를 수집해야 각지자체별로 정보의 호환성이 극대화 될 것이다. 이번사업이 각 지자체별로 지역미술에 대한 아카이브상업의 단초가 되어야만한다. 감각적인 큐레이팅으로 전시를 보여주는 것 못지않게 지역미술에 대한 정보화 사업은 가장 중요한 미술관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