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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안산 90코스 제1부
대부남동보건진료소-대남초등학교-고래뿌리-
행낭곡-펜션단지-흘곶갯벌체험장-메추리섬입구
20240710
1.코스 소개(두루누비)
1)코스개요
- 청정갯벌과 바다 위 바위섬으로 모습을 감추는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
2)관광포인트
- 군사지역과 인접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청정갯벌에서 체험을 할 수 있는 '흘곶갯벌체험장'
- 박을 엎어놓은 모양의 바위섬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쪽박섬'
3)여행자 정보
- 거리 16.0km, 소요시간 5시간, 난도 보통
- 시점 :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 산284-5 '고랫부리입구' 버스정류장
교통편) 지하철4호선 오이도역 정류장에서 좌석 790번 버스 승차, 종현동정보화마을 하차 727번 환승
- 종점 :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642-267 (독도바다낚시터 건너편 남측)
교통편) 지하철4호선 오이도역 정류장에서 좌석 790번 버스 이용, 대부중고등학교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1.6km
- 주요경로 : 남동보건진료소입구 4.7Km 흘곶갯벌체험장 4.7Km 흥성리마을회관 3.2Km 흥성리선착장 3.4Km 바다낚시터 입구
2.야생화의 천국 풍도와 청일전쟁
서해랑길 89코스 종점이자 90코스 시점인 대부남동 보건진료소 입구에 2주 만에 다시 왔다. 이곳에서 지난 달 6월 26일 서해랑길 89코스 탐방을 역방향으로 출발하여서 이곳은 낯익고 정겹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바다 풍경이 활짝 열려 있어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한 곳으로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어 더욱 인상적인 곳이다. 이번에는 비가 내린 뒤 맑은 날씨 덕분에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투명하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 환호하며 감사한다. 그런데 우편물 보관함 옆에 설치되어 있던 서해랑길 안내도와 경기둘레길 스탬프함이 온데간데없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서해랑길 90코스 시작 지점이 고랫부리 입구 버스정류소 옆으로 변경되었다. 이곳에서 650m 서쪽 대남초등학교를 지나서 '섬마을선생님 노래비' 공원 앞으로 설치물들이 옮겨졌다고 한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어릴 적 라디오를 통해 듣고 불렀던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은 대부도 대남초등학교 총각 선생님들과 관련된 노래라고 한다. 그 노래의 본향을 찾아 서해랑길은 이어진다. 도로명은 '섬마을선생님 해당화길' 1.8km이다. 이 도로에서 특별히 대남초등학교 진입부~노래비 설립지까지 0.4km의 길은 '그리움길'이라 명명되어 있다. 풍경에 감탄하다가 아련한 추억으로 머리와 가슴은 텅 비고 울렁울렁거린다.
'그리움길' 입구에서 아름다운 자선비를 만났다.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안산 출신의 자선가인 이찬 선생은 가난한 민중의 어려움을 돕는 등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이에 은혜를 입은 마을 사람들이 이찬 선생의 고마운 마음과 뜻을 기리기 위해 그가 죽은 뒤 자선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찬자선비는 행랑곡마을 표석 뒤 수풀에 버려져 있는 듯 숨어 있다. 부농으로서 소작농들의 고통을 돕고, 땅 일부는 소작농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후손들의 몰락으로 묘소에 있던 자선비를 돌보지 않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하는데 이 역시 무성한 수풀 속에 버려진 듯 숨어 있어 탐방객들은 무관심하게 지나갈 뿐이다.
대부도는 '큰 언덕'을 뜻하는 대부도(大阜島)이다. 화성시 남양 쪽에서 대부도를 바라보면 섬 같지 않고 큰 언덕처럼 보인다고 하여 대부도(大阜島)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안산시 단원구 대부도(大阜島)는 행정구역으로 대부동동(大阜東洞), 대부남동(大阜南洞), 대부북동(大阜北洞) 세 개의 동(洞)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서해랑길 90코스는 대부도 남쪽 끝의 대부남동(大阜南洞) 해안을 돌아서 북진하여 대부북동(大阜北洞) 남쪽 끝 해안에서 마치게 된다.
대남초등학교를 거쳐 '고랫부리 입구' 버스정류소 뒤쪽의 '섬마을 선생님 노래비' 공원에서 삶은 영원한 그리움임을 다시 느낀다. 삶은 그리움과 보챔의 연속인 것 같다. "種花愁未發(종화수미발) 꽃 심을 때는 안 필까 걱정하고/ 花發又愁落(화발우수락) 꽃 피면 다시 질까 걱정하네./ 開落總愁人(개락총수인) 피고 지는 것 모두 걱정이니/ 未識種花樂(미식종화락) 꽃 심는 즐거움 알지 못하네." -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種花(종화, 꽃을 심으며)' 전문. 우리는 섬마을 선생님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그리움으로 살아간다. 현실에 있든 없든 그 누군가는 삶의 영원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뜨겁게 한다.
안산시는 그리움으로 안산의 역사적 인물을 불러낸다. 정류소 유리벽 뒤쪽에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 일제강점기의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을 소개하고 있다. 이익은 안산시 상록구에 칩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여 실학의 선구를 이룬 학자로 다산 정약용이 그의 학통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단원 김홍도는 안산시 상록구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 강세황의 지도를 받아 풍속화가로 우뚝 섰다. 그래서 안산시는 단원 김홍도를 기려서 단원구라는 행정 지명도 지었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의 최용신은 안산시 샘골에서 농촌계몽에 힘쓰다 요절한 여인으로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인물이었다고 한다. 안산시가 그리움의 역사적 인물들을 얼마나 그리움으로 보채는가? 아니면 그리움만 내세울 뿐 내버려 두는가?
안산시의 시조(市鳥)이자, ‘바다 위 순백의 신부’로 불리는 노랑부리백로는 대부해솔길의 방향표시판 모형물로 해솔길에 세워져 있다. 방향표시판에는 해솔길을 그리움으로 그려내는 시인들의 시 작품들이 적혀 있다. 그들 중에서 박가을의 '해솔길' 詩를 읽어본다. "단원 김홍도 붓끝이/ 은빛 대부도를/ 화폭에 담아 놓았다./ 솔향기 그윽한 해솔길/ 아, 내 어머니 품속 같다." 가슴이 울컹 들썩인다. 어머니, 고인이 되신 지 6년이 지났다. 어머니 돌아가시던 2018년 5월에 해파랑길 탐방을 처음으로 출발하여 해파랑길과 남파랑길 탐방을 끝내고 서해랑길 90코스를 탐방하고 있다. 어머니, 코리아 둘레길 탐방은 당신과 동행하는 길, 그리운 당신과 함께 길을 걸으며, 국토 사랑의 마음은 눈물로 방울집니다.
이번 탐방길에 날씨가 투명하게 맑아서 아랫동심길 해안에서 경기만 일대가 전체적으로 분명히 확인된다. 지금까지 탐방한 경기만의 서해랑길을 확인하는 감격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대부도 지역에서는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돌출된 곳을 뿌리라고 하는데 현재는 ~ㅅ부리라고 이르는 것 같다. 느리뿌리는 느릿부리로, 고래뿌리는 고랫부리로 이르고 있다. 대부도 해안의 독특한 지형인 뿌리를 조망한다. 대부남동의 느릿부리와 곶(串)이라고 불러주고 싶은 대부남동의 중부흥 반도가 바다로 돌출한 모습이 아랫동심길 해안에서 선명하게 확인된다. 대부도 지역에서는 해무(海霧)가 잘 덮이는 섬인 해무섬을 해미섬 또는 줄여서 햄섬이라 하는데, 대부동동의 가운데햄섬과 큰햄섬이 선명히 확인된다.
대부남동의 느릿부리와 고랫부리 사이의 습지를 고랫부리 습지라 이른다. 아랫동심길 해안에 습지보호지역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고랫부리 습지와 경기만 해안 그리고 바다의 섬들을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의 누에섬, 화성시 서신면 제부리의 제부도와 매바위,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 도리도가 바다에서 손짓하며 부른다. 그 남쪽 경기만에 부속되는 아산만 해안 지역들이 확인된다. 아산만 남쪽 끝의 삽교천방조제와 삽교호 관광지,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아산국가산업단지와 송악읍 고대리 현대제철소 당진공장, 당진시 석문면 석문방조제와 석문국가산업단지, 석문면 마섬포구와 장고항, 용무치항, 왜목마을, 당진화력발전소가 어제 그 길을 걸은 것처럼 선명히 떠오른다. 걸어온 길을 바라보고 있으면, 걸어온 길이 걸어갈 길을 벅차게 재촉한다.
고랫부리길을 따라 행랑곡(골)마을을 돌아간다. 행랑곡은 조선시대에 말을 돌보는 사람들이 잠을 잤던 곳이라 하여 행랑골이라 불렀으며, 또는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라 하여 학란골이나 환란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해안 끝에 고래 모양과 같이 생겨서 고래 뿌리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그러니까 행랑곡은 이 지역의 유래를 통하여 지명이 되었고, 학란골과 고래뿌리는 이 지역의 지형을 통하여 지명이 되었다. 그렇다면 행랑곡, 학란골, 고래뿌리는 이 지역의 지명으로 통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서해랑길은 고랫부리길에서 학란길로 이어지는데, 결국 고랫부리나 학란이나 같은 지명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랫부리 선착장을 행낭곡 선착장이라고도 부르는 것도 이해된다.
고랫부리 구릉지 능선을 타고가다가 흘곶동 해안으로 내려갔다. 펜션들과 캠핑장들이 즐비하다. 흘곶동은 대부도 남쪽의 끝 부리를 품은 지역을 뜻하며, 고래뿌리와 같이 메추리섬뿌리가 뾰족하게 바다로 뻗어 나간 곳을 이른다. 상세하게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고래뿌리와 메추리섬뿌리 사이의 지역을 흘곶동이라 이르는 것 같은데, 더 넓게는 고래뿌리에서 북골산에서 쪽박섬으로 내리벋는 쪽박솔섬뿌리까지를 흘곶동이라 이르며 중심되는 마을은 큰말이라고 한다. 메추리섬은 밀물 때는 섬이지만 썰물 때 걸어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연륙되어 있다.
흘곶동 해안에서는 아산만 입구가 잘 조망된다. 서산의 최고봉 망일산이 솟아 있고, 삼길산과 삼길포항에서 당진화력발전소와 왜목마을로 이어지는 아산만 입구가 확인되며 그 앞의 소난지도와 대난지도를 가늠할 수 있다. 기준이 되는 섬은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의 도리도와 당진화력발전소이다. 찬찬히 살피면 그들이 누구인지 말을 걸어온다. 그 북쪽에는 화성시 우정읍의 입파도와 안산시 단원구의 풍도가 분명한 존재를 드러낸다. 야생화의 천국 풍도 앞바다는 조선의 비극적 역사인 청일전쟁의 시발점이 되는 풍도해전이 발발한 곳이다. 1894년 7월 25일 일본군 함대가 청군 함대를 공격하면서 풍도 앞바다는 동아시아의 패권을 좌우하는 전쟁이 일어나 결국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조선은 일본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꼴이 되었다.
서해랑길은 흘곶 해안을 따라 흘곶갯벌체험장 앞으로 이어간다. 흘곶갯벌체험장에서는 해루질하는 탐방객들은 없고 마을 주민들이 조개류를 채취하고 있다. 풍도는 메추리섬 뒤쪽으로 사라졌다. 흘곶 해안에서 보면, 메추리섬의 막뿌리가 메추리 머리처럼 생긴 것처럼 보인다. 메추리 모습임에 틀림없다. 메추리섬이라고 누가 처음 부르기 시작했을까?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에게서 멋들어진 작명이 나온다. 메추리섬 입구에서 메추리 선착장까지 가보고 싶지만 시간의 여유가 없다. 메추리섬 입구에서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꺾어 쪽박섬 방향으로 제방길을 따라간다. 서북쪽의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영흥도에 영흥화력발전소가 보이고 그 앞에 측도가 손짓한다. 가자, 가자, 어여 가자. 내 국토를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보자.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6.18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11분
지난 달 6월 26일 이곳에서 서해랑길 89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할 때 서해랑길 안내도와 경기둘레길 스탬프함이 우편물 보관함 옆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영문을 모르고 출발하였는데 90코스 시작 지점이 고랫부리 입구 버스정류소 옆으로 이동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650m 서쪽 대남초등학교를 지나서 섬마을선생님 노래비 앞쪽에 있다.
우편물 보관함 옆에서 동남쪽을 조망하면 왼쪽 바로 앞에 느릿부리, 그 오른쪽 맨 뒤에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 살곶이, 중앙에 제부도, 오른쪽에 도리도가 보인다.
우편물 보관함 옆에서 서남쪽으로 서해랑길 90코스 진행 방향을 바라보면, 중앙 오른쪽의 행낭곡마을 입구에 이찬자선비가 세워져 있고, 왼쪽에 대남초등학교 건물이 솟아 있다. 왼쪽의 돌아가는 해안에 서해랑길 90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서해랑길 안내도가 없어져서 우편물 보관함과 함께 서해랑길 90코스 탐방 출발을 기념한다.
오른쪽 비룰길 뒤에 대부남동 보건진료소 건물이 보인다. 서해랑길은 왼쪽 비룰방조제의 방조제길을 따라 이어간다.
서해랑길은 비룰방조제의 방조제길에서 대남로로 나가서 중앙의 대남로의 행낭곡마을 표석 앞으로 이어간다.
비룰방조제가 둥글게 돌아간다. 버스가 있는 곳이 비룰들이며, 그 앞 우편물 보관함에서 출발하여 방조제길을 따라왔다.
비룰방조제가 비룰들 앞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뒤에 89코스에서 탐방한 느릿부리(느리뿌리)가 바다로 돌출해 있다.
맨 오른쪽에 행낭곡마을 표석, 그 뒤에 이찬자선비, 그 왼쪽에 카페물, 그 뒤에 대남초등학교가 있다. 맨 왼쪽은 펜션들이 즐비한 느릿부리(느리뿌리), 중앙 맨 뒤에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의 살곶이, 중앙에 제부도가 있다.
대남로가 남북으로 달린다. 대남로 건너편에 행낭곡마을 표석, 그 뒤에 이찬자선비, 그 뒤에 카페물이 있다. 서해랑길은 대남로를건너서 행낭곡마을 표석 오른쪽의 흘곶길로 이어간다.
대남로의 방조제길 입구에 대부해솔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대부해솔길 4코스는 쪽박섬까지 서해랑길 90코스와 동행한다.
'섬마을선생님 해당화길' 1.8km 중 대남초등학교 진입부~노래비 설립지까지 0.4km의 길은 '그리움길'이라 명명되어 있다.
"대부도의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 시골 어촌마을 대남초등학교에 갓 부임한 서울 말씨를 쓰는 미남의 총각 선생님은 서울을 동경하는 어촌 아가씨들에겐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가슴 두근거리는 짝사랑의 대상이었다. 대남초등학교 개교 당시 잔칫집에 다녀온 저녁이면 총각 선생님들은 그리움을 달래려 별빛이 반짝이는 학교 앞 바닷가 모래 언덕에서 노래를 자주 불렀다고 한다."
왼쪽 대남로를 따라가는 길이 '섬마을선생님 해당화길' 중 '그리움길'이며, 서해랑길은 오른쪽 흘곶길을 따라간다. 행낭곡마을 표석 뒤에 대부도 이찬자선비가 있다. 자선비 입구의 시멘트 기둥에 옥로주전수관 방향 지시 표지판이 걸려 있다. 이곳에서 멀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된 전통민속주 유민자(82) 명인의 ‘옥로주(玉露酒)’ 전수관이 안산 대부도 언덕섬에 둥지를 틀고 체험장 운영에 들어간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지정 30년을 맞이한 옥로주(玉露酒)가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 1045-15(단원구 흘곶길 80)에 전수관을 신축한 후 이달 22일 본격 개관한다. 옥로주 전수관 체험장은 전승교육사 인정서(2021년)를 받은 유민자 명인의 아들 정재식(61)이 운영한다. 유민자 명인의 옥로주는 조선 순조 시절 충청남도 서산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서산 유씨 집안이 옥로주를 궁중에 진상했다는 것이 구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유민자 명인의 조부가 이후 전라북도 남원으로 이주해 옥로주를 빚다가 다시 경상남도 하동으로 이전해 화개장터에 옥로주를 내다 팔았다. 현재의 명인 유민자 선친이 1936년 하동읍 단포양조장에서 동을 사용한 동고리로 옥로주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애주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동고리를 이용 제조하는 옥로주는 해방 후 1947년 옥천양조장으로 명칭을 바꾸고 35도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당시 어려운 사회환경과 6.25 전쟁 등으로 자취를 감추게 됐다. 옥로주는 이후 1980년대 전통주 부활 바람이 불기까지 침묵에 잠겨 있다가 유민자 명인의 유양기 선친이 전수하면서 1993년 경기도 군포에서 부활했다. 경기도무형문화재로 선정된 유민자 명인의 손에 의해서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제12호 ‘군포당정옥로주’라는 명칭으로 1993년 10월 지정된 옥로주는 당초 기능보유자인 유양기의 큰딸 유민자가 전수받으면서 꽃을 피웠다. (이하 생략) <여종승 기자> 출처 : 안산뉴스 2023.06.21. (http://www.ansannews.co.kr)
조선시대 말을 돌보는 목부와 감독관들이 잠을 자던 행낭이 있었던 곳이라 행낭곡(行廊谷)이라는 설이 있다.
이찬?~?은 본관이 경주이고, 조선 말기부터 1920년대 초까지 생존했던 이 고장의 덕망 높은 재산가요 유지이다. 그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만 해도 대부남동 일원의 토지는 거의 그의 소유라 할 만큼 대지주였다. 그의 농토 대부분은 많은 소작인에 의해 경작되고 있었다. 그는 평소 마음이 소박하고 인정이 두터워 가난한 서민의 처지를 깊이 헤아렸으며 일부 땅은 무상으로 소작인에게 나누어 주고 빚과 소작료를 탕감해 주는 등 큰 덕량을 베풀었다. 이찬이 별세하자 은혜를 입은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르고 생전의 고마운 마음씨와 그 뜻을 기리기 위하여 자선비를 건립했다. 이 자선비는 2001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됐다
중추의관이공찬자선비(中樞議官李公粲慈善碑)라고 적혀 있는데, 찬(土+粲)은 한자가 잘못된 것인지 자전에 나와 있지 않다. 자선비의 석재(石材)는 화강암이며, 대석(臺石)은 시멘트조로 건립되었다. 규모는 높이 140cm, 폭 34.5cm, 두께 15cm라고 한다.
이찬(李찬粲)은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 안산 출신의 자선가로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한말에서 1920년대 초까지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 지역의 재산가로 이름을 떨쳤다. 이찬은 부농(富農)의 아들로 태어나 생존해 있을 당시만 해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 일원의 토지는 거의 그의 소유라 할 만큼 대지주였다. 대부분의 농토는 많은 소작인들에 의해 경작되었다. 이찬은 마음이 소박하고 인정이 두터워 스스로 가난한 민중의 처지를 깊이 헤아렸고, 땅 일부는 경작한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빚과 소작료를 탕감해 주는 등 덕을 베풀었다. 이찬이 세상을 떠나자 은혜를 입은 마을 사람들이 거향적(擧鄕的)으로 장례를 치르고 생전의 고마운 마음씨와 뜻을 기리기 위해 지금의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 이찬의 묘소에 자선비를 건립했다. 관리가 소홀해져 1980년 대부남동 산 85-17번지에 다시 세워졌다가, 2001년 6월 17일 대부도 시도 2호선 도로 공사로 대남초등학교 앞으로 이전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大正拾貳年癸亥二月 日 建(대정십이년계해이월 일 건). 대정 12년 계해년(癸亥年) 2월에 건립되었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1923년 2월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富農大阜 南里屹花(부농대부 남리흘화) 대부동의 부농 남리에 우뚝 꽃피다.
흘곶길에서 대남로로 나와 대남로 서쪽 보도를 따라간다. 이 길은 '섬마을선생님 해당화길' 중 '그리움길'로 명명된 길이다. 대남초등학교 담에는 학교 앞 갯벌이 '람사르 습지'로 인증되었고, 이 갯벌에 서식하는 생물을 알리는 전시물이 게시되어 있다.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인 대남초등학교는 1960년 6월 23일 대부국민학교 대남분교장으로 인가를 받았다. 1961년 4월 1일 6학급의 대남국민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1982년 대남국민학교 병설유치원을 개원하였으며, 1986년 풍도분교장이 신설되었다. 1990년 4월 10일 육도분교장이 폐교되었다. 1996년 3월 1일 대남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2009년 2월 18일 제46회 졸업식을 통해 16명이 졸업하여 총 2,17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비록 규모는 작고 교육 여건은 대도시에 비해 열악하지만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자연환경 속에서 순박하고 착한 학생들의 밝고 맑은 고운 심성을 온 누리에 펼칠 수 있도록 전 교직원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1)교가 : 황금산 뻗어 내린 대부의 남단/ 천만 년 역사 이을 청송에 쌓여/ 보고의 너른 바다 가슴에 안고/ 늠름하게 자라나는 대남 어린이. (2) 교목 : 소나무로 성실, 생명, 순결을 상징한다. 소나무와 같이 곧고 큰 거목으로 자라나는 것은 학생들이 세계적으로 큰 인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푸른 솔잎은 높은 기상과 절개를 품은 올바른 인재를 의미하고 있다. (3) 교화 : 국화로 불로장생을 상징한다. 국화는 사군자 중 가을을 대표하는 꽃으로, 끈기와 적응력이 탁월하여 고난과 인내를 극복하며 밝고 맑은 마음을 나타내는 꽃을 의미한다. 2016년 4월 1일 현재 특수학급, 순회학급 포함 총 11학급에 84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이 중 1학년은 1학급 6명[남 2, 여 4], 2학년은 1학급 11명[남 6, 여 5], 3학년은 1학급 9명[남 7, 여 2], 4학년은 1학급 8명[남 5, 여 3], 5학년은 1학급 11명[남 7, 여 4], 6학년은 1학급 13명[남 7, 여 6], 특수학급은 1학급 6명[남 5, 여 1], 순회학급은 4학급 20명[남 7, 여 13]이 재학하고 있다. 교직원은 교장 1명, 교감 1명, 교사 15명, 그리고 행정 담당 및 일반직 9명 등이 근무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대남초등학교 앞 건너편 느릿부리에서 고랫부리까지의 갯벌은 2017년 3월 연안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고, 2018년 10월 람사르 습지로 인증되었다. 갯벌에 염생식물인 붉은 빛 칠면초가 펼쳐져 있다.
건너편에 느릿부리(느리뿌리)가 바다로 돌출하고 해안에 펜션들이 즐비하다. 붉은 칠면초가 갯벌에 펼쳐지고 말뚝 위에는 갈매기들이 앉아 아침의 휴식을 즐기고 있다.
왼쪽에 느릿부리, 중앙에 누에섬, 오른쪽에 제부도, 오른쪽 건너편 흰 연기를 뿜는 곳은 당진시 송악읍 현대제철 공장이다.
서해랑길 탐방객들이 대남로 동쪽 갓길을 따라간다. 왼쪽에 도리도, 그 오른쪽 건너편에 당진시 석문국가산업단지가 보인다.
대남로의 '고랫부리 입구' 버스정류소 뒤쪽에 '섬마을선생님 노래비' 공원이 있고, 왼쪽 아랫동심길 입구에 서해랑길 안내도와 경기둘레길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서해랑길은 대남로에서 왼쪽 아랫동심길을 따라가며, 서해랑길 90코스와 경기둘레길 50코스는 쪽박섬까지 대부해솔길 4코스와 동행한다.
'섬마을선생님 노래비' 공원 앞에 서해랑길 89·90코스 안내도와 경기둘레길 스탬프함, 고랫부리갯벌습지보호구역 안내판, 대부해솔길 안내도 등이 설치되어 있다.
서해랑길 90코스는 거리 16km, 소요 시간 5시간 20분, 난도 보통이라고 적혀 있다.
서해랑길 90코스의 새로운 출발지에서 서해랑길 89·90코스 안내도와 함께 서해랑길 90코스 탐방을 기념한다.
서해랑길 89·90코스 안내도 옆에 대부해솔길 4코스 안내도와 노랑부리백로 방향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건너편 느릿부리에서 고랫부리까지의 갯벌은 람사르 습지로 인증되었다. 노랑부리백로 방향표지판에 신성철의 '노랑부리백로' 詩가 적혀 있다. "머리에 어사화 쓴 새 한 마리/ 갯벌에 내려 앉았다./ 고고한 선비의 정신으로/ 대부도 하늘을 나는 노랑부리백로"
오른쪽의 '고랫부리 입구' 버스정류소 왼쪽에 행낭곡마을 홍보게시판과 펜션과 카페 소개판이 세워져 있다. 행낭곡마을 홍보게시판 왼쪽 기둥에는 경기둘레길 50코스 안내판과 서해랑길 90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이 뒤쪽에 '섬마을선생님 노래비'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2020년 8월 20일에 건립된 '섬마을선생님 노래비' 정면에 섬마을 선생님 노랫말, 왼쪽에 '섬마을 선생님 노래 55년, 총각 선생님 오신지 60년' 제목 아래에 노래비 건립 협조자들이 적혀 있다.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철새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구름도 쫓겨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는가 총각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보는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 이경재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1965). 아래에는 서울중앙방송 섬마을선생님 라디오 연속극(1966), 김기덕 감독 섬마을선생 영화(1967)를 소개한다.
2010년 4월 6일 KBS 사극 '용의눈물' PD였던 김재형님이 고랫부리횟집에서 과거에 많았던 해당화를 학교에 심었다는 이야기를 교장에게 듣고 '섬마을 선생님' 노래 속의 총각 선생님은 대남학교 선생님이고 이 학교가 노래의 배경지라 하였다. 1960년대 초 서울중앙방송에 함께 근무하던 연출가 김재형은 작사자 이경재와 호형호제하던 사이로 마포나루에서 이구영 선장의 소금돛배를 타고 대부도 긴장불이 해안으로 온다. 흘곶과 학교주변 바닷가 모래언덕의 해당회 군락지에 꽃이 피고 철새도 많았다. 개교 당시 잔칫집에 다녀 온 저녁이면 서강훈 선생님은 동료 총각 선생님과 그리움을 달래려 별빛이 반짝이는 학교 앞 바닷가 모래언덕에서 노래를 자주 불렀다고 하였다. 대남학구 내에는 염전이 20개나 있었고 서울에서 온 마조금의 서강훈 총각 선생님과 수영목의 이춘자 섬색시, 각큰재와 멍골의 섬색시도 총각 선생님과 결혼을 했다.
'고랫부리 입구' 버스정류소 유리판 뒤쪽에 '시민과 함께, 자유로운 혁신 도시 안산' 주제 아래에 안산시 역사인물 1.성호 이익 2.단원 김홍도 3.최용신을 소개하고 있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1551~1763)은 조선 후기 실학자,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이후)는 조선시대 화가, 최용신(崔容信, 1905~1935)은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가이다.
1.이익은 1681년(숙종 7) 10월 18일 아버지 이하진의 유배지인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났다. 1682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선영이 있는 안산의 첨성리(瞻星里)[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로 돌아와 어머니 권씨 슬하에서 자라났다. 1706년 형 이잠이 왕세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 것으로 인해 장살(杖殺)되면서 과거에 응할 뜻을 버리고 평생을 첨성리에 칩거하였다. 집 인근에 성호(星湖)라는 호수가 있어서 그의 호도 여기에 연유되었고, 그 고장에 있던 그의 전장(田莊)도 성호장(星湖莊)이라 일컬어졌다. 이익은 여기에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토대로 생활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있다.
2.김홍도는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성장하여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인 강세황(姜世晃)이 안산에 거주할 때 그림 지도를 받았다. 안산에서 조선 후기 최대의 화가 김홍도가 성장하는 데에는 18세기 안산이 지녔던 독특한 문화적 힘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안산은 노론(老論)과의 당쟁을 피해 물러난 남인(南人), 소북(小北)계 문인, 학자들의 중요한 활동처였다. 실학사상의 대가 성호 이익(李瀷)[1681~1763], 문단의 거장인 이용휴(李用休)[1708~1782], 문인화가 강세황(姜世晃)[1713~1791]과 허필(許佖)[1709~1768], 강세황의 처남이자 안산 문화계의 구심점이 되었던 진주유씨 유경종(柳慶種)[1714~1784]과 그의 수많은 친구들이 당시 안산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3.최용신은 함경남도 원산 출신의 농촌계몽운동가이며 애국지사로서, 국권을 상실한 일제 치하에서 농촌 계몽과 문맹 퇴치를 위한 한글 강습과 더불어 농촌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 교육, 애국심과 자립정신을 키우는 의식계몽에 힘썼다. 최용신은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협성여자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 농촌과에 재학하면서 황에스더 교수의 지도로 농촌계몽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1930년 황해도 수안에서 동료 김노득과 함께 3개월 동안 실제적인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학업을 중단하고 농촌운동에 전념할 것을 결심한 뒤, YWCA 소속의 농촌지도교사로 경기도 화성군 샘골[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파견되어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심훈(沈熏)의 소설 「상록수」의 무대가 된 곳이 샘골이며, 여주인공 채영신(蔡永信)은 최용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최용신은 국권 상실기의 암울한 시대에 여성의 몸으로 농촌계몽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하여 순교자적인 활동을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대남로의 아랫동심길 입구 오른쪽에 서해랑길 안내도, 왼쪽에 고랫부리 입구 버스정류소와 '섬마을선생님 노래비'가 있다.
서해랑길은 아랫동심길을 따라 고랫부리 해안으로 이어간다. 왼쪽에 제부도, 중앙에 도리도, 그 왼쪽 건너편에 당진시 현대제철 공장에서 흰 연기를 내뿜고 있다. 그 왼쪽에 당진시 송악읍 아산국가산업단지와 심훈의 필경사를 가늠한다. 오른쪽 건너편은 당진시 석문국가산업단지이다.
해안 안쪽에 고래별펜션이 자리하고 있다.
해안에 정박해 있는 배들 뒤쪽 바다에 국화도가 가늠되며, 왼쪽 건너편에 당진시 석문국가산업단지가 가늠된다.
맨 왼쪽에 누에섬, 그 오른쪽에 제부도, 중앙 오른쪽에 도리도가 있다. 도리도 건너편 왼쪽은 현대제철소 당진공장, 오른쪽 건너편에 당진시 석문국가산업단지, 그 오른쪽 위에 장고항과 용무치항이 가늠된다.
아랫동심길에서 바다의 도리도와 오른쪽 뒤의 고래뿌리 선착장을 조망한다. 도리도 건너편의 왼쪽은 현대제철소 당진공장, 도리도 오른쪽 뒤에 석문방조제와 간척지, 그 오른쪽에 마섬포구, 장고항, 용무치항, 왜목마을, 그 앞의 국화도를 가늠한다.
아랫동심길을 따라 해안을 돌아간다. 해안에 해바다펜션과 햇살키즈풀빌라 등 펜션들이 즐비하다.
왼쪽 건너편 뒤 대부남동 보건진료소에서 출발하여 지금 아랫동심길 해안을 따라오고 있다. 건너편은 서해랑길 89코스 탐방로의 느릿부리 서쪽 해안이다.
대부도에서는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돌출된 곳을 뿌리라고 하는데 현재는 부리라고 이르는 듯. 왼쪽 앞에 느릿부리(느리뿌리), 그 오른쪽 뒤에 중부흥 반도, 그 오른쪽 뒤에 가운데햄섬과 큰햄섬이 보인다.
왼쪽 앞에 대부남동의 중부흥 반도, 그 오른쪽 뒤에 대부동동의 가운데햄섬과 큰햄섬, 중앙에 누에섬, 오른쪽에 제부도가 있다.
왼쪽에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의 누에섬, 중앙 왼쪽에 화성시 서신면의 제부도, 오른쪽에 서신면 백미리의 도리도가 있다. 도리도 왼쪽 건너편에 현대제철소 당진공장에서 흰 연기를 뿜고 있으며, 도리도 오른쪽에 석문방조제와 석문국가산업단지가 가늠된다.
바로 앞에는 습지보호지역 전망대, 그 왼쪽 뒤에 고래뿌리 선착장, 왼쪽 건너편은 당진시 석문국가산업단지, 그 오른쪽으로 마섬포구, 용무치항, 장고항, 왜목마을, 그 앞에 국화도가 가늠된다.
왼쪽에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의 중부흥 반도, 그 오른쪽 뒤에 단원구 대부동동의 가운데햄섬과 큰햄섬, 중앙에 단원구 선감동의 누에섬, 오른쪽에 화성시 서신면의 제부도가 있다. 대부해솔길 방향지시판에 적힌 박가을의 '해솔길' 詩를 읽어 본다. "단원 김홍도 붓끝이/ 은빛 대부도를/ 화폭에 담아 놓았다./ 솔향기 그윽한 해솔길/ 아, 내 어머니 품속 같다."
습지보호지역 전망대에서 고랫부리 습지와 주변을 둘러본다. 느릿부리와 고랫부리 사이의 습지를 고랫부리 습지라 이른다.
왼쪽에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동의 가운데햄섬과 큰햄섬, 중앙 왼쪽에 단원구 선감동의 누에섬, 그 오른쪽에 화성시 서신면의 제부도와 매바위가 있다. 건너편 맨 오른쪽은 당진시 송악읍 현대제철소 당진공장이다.
맨 왼쪽에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의 누에섬, 중앙 왼쪽에 화성시 서신면의 제부도, 그 오른쪽에 매바위, 오른쪽에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의 도리도, 그 오른쪽 건너편 뒤에 당진시 석문방조제와 석문국가산업단지, 도리도 왼쪽 건너편에 현대제철소 당진공장과 그 왼쪽에 당진시 아산국가산업단지가 펼쳐지며, 위쪽으로 아산만의 남쪽 끝에 삽교천방조제가 있을 것이다.
고래뿌리 습지에 붉은 칠면초들이 그득하고, 바다로 돌출한 고래뿌리에 고래뿌리 선착장이 있다. 맨 왼쪽 건너편에 당진시 석문국가산업단지, 그 오른쪽에 마섬포구와 장고항, 용무치항, 왜목마을, 그 앞에 국화도가 가늠된다. 서해랑길은 고래뿌리 선착장 이르기 전에 오른쪽으로 꺾어 왼쪽에서 두 번째 구릉을 넘어 해안으로 내려간다.
왼쪽 길은 고랫부리길, 오른쪽 길은 멍골길, 고랫부리길과 멍골길 사이의 들녘을 멍골들이라 이르는 듯. 서해랑길은 고랫부리길을 따라 멍골들을 오른쪽으로 돌아 중앙의 구릉지 아래로 이어간다.
전신주 왼쪽의 고랫부리길을 따라와서 전신주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와서 뒤돌아본다. 오른쪽 고랫부리길을 따라가면 고랫부리 선착장으로 이어진다. 서해랑길은 고랫부리 선착장으로 이어가지 않고 뒤돌아서서 언덕으로 올라간다.
멍골들을 오른쪽에 두고 고랫부리길을 따라 포도농장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간다.
오른쪽 구릉지 끝의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왼쪽의 멍골들을 돌아오고 있다. 오른쪽은 포도농장이다.
고랫부리길이 끝나는 언덕에서 학란길이 시작된다. 서해랑길은 언덕에서 왼쪽으로 꺾어 학란길을 따라간다. 언덕 오른쪽에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어 오른쪽으로 길을 잘못 들기가 쉽다.
언덕에 세워진 서해랑길 이정목의 방향 표시 날개가 잘못되어 있는 듯. 왼쪽 두 개의 날개는 반대 방향이어야 한다.
학란길을 따라 고개를 올라가다가 지나온 행낭곡마을을 내려본다. 멍골들 건너편 행낭곡마을에 펜션들이 즐비하다.
오른쪽 포도농장 아래의 고랫부리길을 따라 왼쪽 언덕으로 올라와 방향을 틀어 학란길을 따라 고개를 오르고 있다. 오른쪽 멍골들 건너편의 행낭곡마을에 펜션들이 즐비하다.
학란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고랫부리마을 입구로 이어간다.
학란길을 따라 고개를 넘으면 고랫부리마을 입구가 나온다.
고랫부리마을에 펜션들이 즐비하다. 중앙 아래에 고래뿌리선착장이 있고, 중앙 뒤에 제부도가 보인다.
고래뿌리선착장은 안산시 대부도의 서남쪽 끝단에 있는 선착장이다. 뾰족한 해변 모양이 고래의 입을 닮았다고 해서 고랫부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썰물 때 등대까지 가는 길이 드러나 걸어가거나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고, 바다로 이어진 선착장 길을 따라 산책할 수 있다. 또 개인적으로 낚시를 할 수도 있으며 가을철 망둥이 낚시로 유명하다. - 두루누비
서해랑길은 계속하여 학란길을 따라 직진한다. 언덕의 왼쪽 길은 강거래9길이며 건물은 대부정 펜션, 언덕의 오른쪽 길은 한무물길이며 그 아래가 한우물골이다.
대부정 펜션 입구에서 동쪽을 조망한다. 왼쪽 길은 강거래9길, 고랫부리마을에 여러 펜션들이 즐비하다. 왼쪽 건너편에 대부남동의 중부흥 반도, 중앙에 대부동동의 가운데햄섬과 큰햄섬, 전신주 오른쪽 뒤에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의 누에섬이 보인다.
대부정 펜션 입구의 학란길에 대부해솔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대남초교 2.6km, 메추리섬 2.5km, 쪽박섬 3km라고 적혀 있으며, 왼쪽 강거래9길을 따라 500m 지점에 고래뿌리선착장이 있다고 한다. 서해랑길은 학란길을 따라 고갯길을 넘어간다.
학란길 대부정 펜션 입구에서 고개를 넘으면 아래에 학란1길과 고래골마을이 있다. 바다에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의 도리도가 떠 있고, 그 뒤 건너편에 당진시 현대제철소 당진공장이 가늠된다.
서해랑길은 학란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장불길을 따라 내려간다.
장불길을 따라 고래숲 관광농원&캠핑장 앞을 지나간다. 장불길에는 여러 펜션들과 캠핑장이 있다.
장불길을 따라 해마루펜션을 지나 해바라기펜션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해안으로 나간다.
해바라기펜션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장불길을 따라 해안으로 나간다. 오른쪽에 은혜쉼터교회가 있다.
흘곶 해안에 경기둘레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람사르습지 1.6km, 메추리섬 1.5km, 해다온마을 4.3km를 알려준다.
흘곶 해안에서 고래뿌리를 조망한다. 왼쪽에 나래펜션&캠핑장이 있다. 오른쪽 건너편은 당진시 석문면 해안이다.
중앙의 섬은 화성시 우정읍 국화리 입파도, 그 오른쪽 뒤에 당진시 당진화력발전소, 그 오른쪽은 소난지도와 대난지도인 듯.
왼쪽에 화성시 우정읍의 입파도, 오른쪽에 안산시 단원구 풍도, 입파도 오른쪽 뒤는 당진화력발전소, 그 오른쪽은 소난지도와 대난지도, 그 오른쪽에 육도가 가늠된다.
중앙에 풍도, 그 왼쪽 뒤에 육도, 그 왼쪽은 대난지도, 맨 오른쪽에 메추리섬 막뿌리. 이 앞바다에서 청일전쟁이 시작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까지는 단풍나무 풍(楓)자를 써서 풍도(楓島)로 표기되었으나 1895년 8도제를 23부체제로 바꾸면서 풍도(豊島)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안산시 대부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24㎞ 떨어진 곳에 위치한 풍도는 면적은 1.84㎢, 해안선의 길이는 5.5㎞에 불과하지만, 섬의 최고봉인 후망산(候望山)은 약 176m 높이로 섬의 크기에 비해 비교적 높은 편에 속한다. 후망산의 동남쪽에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174m 높이의 제2봉이 능선상으로 이어져 있어 풍도의 근간을 형성하는 산줄기를 이룬다. 이 두 산이 섬의 남서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섬의 서쪽과 남쪽에는 경사가 급하고 파도의 침식에 의해 이루어진 해식애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섬 동쪽으로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지형이 나타난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해산물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풍도는 역사적으로도 청일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풍도해전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풍도의 왕신 독갑이」 등 역사적 유적과 설화들이 많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흘곶 해안길을 따라간다. 메추리섬이 바다에 길게 벋어 있고, 해안에 펜션들이 자리하고 있다.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은 본래 주봉인 황금산(黃金山)을 주축으로 61㎞의 넓은 해안선과 6개의 유인도 및 13개의 무인도로 형성된 도서 지역이었다. 대부도의 남서쪽 해안 끝에는 고래 모양과 같이 생긴 고래뿌리와 메추리뿌리가 뾰족하게 생겨 바다로 뻗어 나가 있다. 메추리섬은 이곳과 연결되어 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육지와 연결된다. 메추리섬은, 대부도 남쪽의 끝뿌리라고 하여 흘곶동이라고 불리는 마을 앞에 있는 섬으로서, 섬 형태가 부리가 뾰족한 메추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해랑길은 바로 앞 '여기바다' 펜션 앞 해변으로 이어간다. 왼쪽 맨 뒤에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화력발전소가 보인다.
'여기바다' 펜션 담벽에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이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붙어 있다.
1894년 7월 25일 풍도 앞바다에서 일본군 함대가 청군 함대를 공격하면서 청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서해랑길은 안산 대선사 대부도추모관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대선사 대부도추모관 앞쪽으로 이어간다.
서해랑길은 이정목에서 안산 대선사 대부도추모관 앞쪽으로 이어간다. 해안 안쪽에 흘곶동 마을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에 있는 흘곶동(訖串洞)은 대부도 남쪽의 끝 뿌리이므로 흘곶(訖串)이라고 한다.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긴 고래뿌리, 쪽박솔섬뿌리, 메추리섬뿌리, 서근여, 강거래뿌리 등이 바다로 뻗어 나가 있다. 1871년 제작된 대부도 지도에도 흘곶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매우 오래된 마을로 여겨진다. 흘곶동에는 주로 논과 밭이 많았고 굴 양식이 성행하였으나 지금은 주민 대부분이 포도 농사를 짓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이정목을 돌아나와서 바다를 뒤돌아본다. 입파도 오른쪽 뒤에 당진화력발전소, 그 오른쪽에 소난지도와 대난지도, 맨 오른쪽에 육도가 가늠된다.
해안에서 안산 대선사 대부도추모관을 왼쪽으로 돌아 긴장불길을 따라오고 있다. 밭에 보라색과 흰색의 도라지꽃들이 절정으로 피어 있고, 흘곶동 마을에 여러 펜션 신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긴장불길을 따라 불교 시설인 대선사 추모관 앞을 지나 흘곶갯벌체험장으로 이어간다.
흘곶유어장관리실과 흘곶갯벌체험장 매표소가 왼쪽에 있다. 서해랑길은 왼쪽 갯벌체험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오른쪽은 흘곶어촌체험마을, 서해랑길은 왼쪽 흘곶갯벌체험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메추리섬 0.4km, 쪽박섬 1.2km 지점이다.
흘곶 해안길을 따라오다가 오른쪽 안산 대선사 대부도 추모관 앞쪽으로 돌아서 흘곶어촌체험마을을 지나왔다.
대부도 흘곶 어촌체험 마을은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의 남쪽 끝에 자리한 마을이다. 해산물이 풍부하고 오묘한 맛이 다양하다고 하여 흘곶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곳에서 갯벌 체험, 맨손어업, 캠핑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흘곶 갯벌 체험장에서 채취한 바지락, 낙지 등을 옆에 있는 대부도 ‘오캠핑장’에서 요리해 먹을 수 있다. 매년 8월 하순부터 9월 초까지는 포도 농장에서 샤인머스크, 거봉, 베니, 캠벨 등을 수확하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 두루누비
흘곶 해안이 고래뿌리로 이어지고 있다. 오른쪽 화성시 서신면 도리도의 오른쪽 뒤에 현대제철소 당진공장이 보인다.
왼쪽에 고래뿌리, 그 오른쪽에 도리도, 맨 오른쪽에 입파도가 확인된다. 입파도오른쪽 뒤는 왜목마을과 당진화력발전소, 도리도 뒤 오른쪽으로 현대제철소 당진공장, 당진시 석문면 석문방조제, 석문국가산업단지가 가늠된다.
왼쪽에 입파도, 그 오른쪽 뒤에 당진화력발전소, 그 오른쪽 뒤에 서산의 최고봉 망일산이 우뚝하다. 그 오른쪽에 삼길산과 삼길포항, 그 오른쪽으로 소난지도와 대난지도, 그 오른쪽에 육도, 맨 오른쪽에 메추리섬 막뿌리가 보인다.
대남로가 흘곶 해안 제방길로 이어진다. 대남로를 따라 메추리섬 입구로 이어간다.
메추리섬은, 대부도 남쪽의 끝 뿌리라고 하여 흘곶동이라고 불리는 마을 앞에 있는 섬으로서 섬 형태가 부리가 뾰족한 메추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메추리섬 주변은 수산물 채취가 불법이며, 쓰레기 문제로 인해 노지 캠핑이나 차박, 낚시도 할 수 없고 갯벌 체험만 가능하다. 갯벌 체험은 흘곶 어촌마을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주말에는 트랙터로 먼 갯벌까지 데려다주며 화장실과 샤워장, 세족장을 이용할 수 있다. 메추리섬과 함께 갯벌과 바다 쪽으로 함께 보이는 다른 바위섬들을 바라보며 조용한 걷기 여행을 즐기고 시간이 되면 멋진 일몰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 두루누비
흘곶갯벌체험장에서 탐방객들은 없고 마을 주민들이 조개류를 채취하고 있다. 왼쪽 맨 뒤는 대난지도인 듯.
메추리섬은 큰말 앞에 있는 섬으로 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고 빠지면 큰말과 이어진다. 섬 모양이 메추리를 닮아서 메추리섬이다. 막뿌리는 메추리섬 끝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딴목섬은 좁은 목을 경계로 메추리섬과 붙어 있다. - 디지털안산문화대전
'섬마을선생님 노래비' 공원에서 헤어졌던 대남로와 재회하여 대남로를 따라 대부관광농원 오캠장 입구를 지나간다.
서해랑길은 오른쪽의 매점&휴게소 앞 이정목에서 대남로와 헤어져 오른쪽 제방길로 들어간다.
메추리섬 입구의 이정목에서 오른쪽 쪽박섬 방향의 제방길로 이어간다. 왼쪽 뒤에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영흥도의 영흥화력발전소가 보이고, 오른쪽에 영흥면 선재리 측도가 있다. 대남초교 4.8km, 쪽박섬 입구 0.8km 지점이다.
첫댓글 빗소리에 잠을 설쳐 일어나 이글을 읽으며 갑자기 돌아가신 시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요리와 집안일을 잘하셨던 분이 어느 날 뜬금없이 이손을 네게 주고가면 좋으련만..나도 격하게 동감하였는데 내가 그 심정이네 그 머릿속에 든 이 어머어마한 지식과 지치지 않는 탐구정신을 물려주면 좋으련만... 아프지 말고 화이팅하세요.
다녀가신 흔적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탐방길의 자취를 기록한 것이라
비탐방자가 읽기가 어려울텐데 읽어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흘러가는 상념이 너무 좁고 막혀 있습니다.
과정의 탐방에 주력합니다.
큰물에 피해 없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