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 핀 나라와 교토 사찰 탐방
수국의 계절이 왔다, 장마와 함께. 6월 중순에서 7월 초가 제 철이라는 수국은 장마와 맞물려 그 촉촉한 윤기를 더하는데, 답사를 겸한 우리는 역시 뽀송뽀송한 날이 다니기 좋다. 6월 13일 간사이 공항으로 날아간 우리는 마침 하늘이 도왔는지 아직 장마전선이 채 올라오지 않아서 그런지, 비로 인한 고생 없이 맘껏 나라와 교토를 누빌 수 있었다. 흔히 역사탐방으로 우리가 제일 많이 찾는 일본문화재의 보고인 나라와 교토를 수국과 함께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려본다.
<첫날>은 인천공항에서 간사이공항으로 날아서 철도로 교토까지, 거기서 다시 나라까지 가는 노정이었다. 꽤 긴 시간 걸려 킨테츠 나라역(近鉄奈良駅)에 도착하여 짐을 들고 숙소에 도착하니 이제 배가 고파진다. 나라역 근처의 몰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려니 벌써 마감이 된 가게가 많아 뜻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덴부라돈을 파는 가게가 아직 열려 있어 “일본은 역시 덴부라지”하며 모듬 튀김덮밥을 시켰는데, 엄청나게 큰 튀김들이 밥 위를 가득 메워 보기만 해도 포만감이 새길 정도였다. 첫 끼니치고는 행운이었다.
<둘째 날>은 나라의 호류지(法隆寺) 탐방으로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류지에는 해설 가이드인 자원봉사자들이 눈에 띄었는데(다른 문화유적지에도 일본인 자국인과 외국인을 위한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되어 있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대거 몰려다녀 국민 학교 시절 단체로 갔던 나의 경주 수학여행을 연상시켰다. 동원 가람⦁서원 가람⦁대보장원⦁백제관음당 등의 거대한 건축물과 오층탑 안에 내장된 부처님의 세계, 그리고 이 호류지를 창건한 쇼토쿠(聖德:574~622) 태자의 2살 때부터의 각가지 조상(彫像)들이 당시의 불교를 향한 인상적인 신앙심을 엿보게 했는데, 쇼토쿠 태자의 외척인 소가(蘇我)씨가 백제계 도래인이라는 역사를 안다면 호류지의 면모를 훨씬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쇼토쿠태자는 일본불교의 개조(開祖)로서 태자신앙을 낳은 장본인이기도 한데, 2살 때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나무불(南無佛)하고 염했더니 손바닥에서 불사리가 떨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호류지에서 버스로 조금 이동하면 야쿠시지(藥師寺)와 도쇼다이지(唐招提寺)가 나란히 하고 있다. 이 둘 또한 세계문화유산인데, 드넓은 부지에 평온하게 고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야쿠시지(藥師寺)에는 동탑⦁서탑⦁금당⦁동원당 등 여러 국보가 많은데. 좀 특이한 것은 엄숙한 분위기의 식당에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신 정토그림이 걸려있어 당시 많은 승려를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이 다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동원당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길고 높다란 아주 훌륭한 두 개의 의자였는데, 한 의자는 강사(講師)가 앉고 또 한 의자에는 독사(讀師)가 앉는 경론의 요의를 문답하는 논의대(論議臺)로, 당시 스님들의 학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곳은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진리를 탐구하여 인도로 떠난 현장스님의 진신 사리를 가람으로 만들어 모시고 있는 점이다. 현장(玄獎600?602?~664) 삼장스님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인도에 도착하는 뜻을 이루기 전까지는 중국(東)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나타낸 “부동(不東)”은 인기리에 판매되는 부적이었다.



야쿠시지에서 정원달린 단독주택들이 올망졸망 널어선 고즈넉한 예쁜 길을 걷다보면 도쇼다이지가 나오는데, 직접 만든 아기자기한 수제품을 파는 가게가 눈에 띄어 재물을 불러온다는 부엉이 인형을 하나 배낭에 매달고 드디어 도쇼다이지(唐招提寺)에 들어서려는데, 저기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일본 아줌마는 조금 전의 가게 아주머니! 내가 동전을 꺼낸 지갑에서 천 엔짜리 지폐 두 장이 떨어졌는데, 객은 모르고 가게를 나섰건만 그것을 내 것이라고 확신한 주인은 약 5~600m나 되는 거리를 저렇게 숨차게 뛰어와 내게 건네준다, 그것도 웃음을 띠고 인사를 건네며... 도쇼다이지는 당나라에서 온 간진(鑑眞688~763)을 위한 절로서 그 역사를 알고 나면 더 보는 재미가 있다. 실명까지 하면서 일본행을 시도한 지 6번째 만에 천신만고 끝에 일본으로 입국하게 되는 드라마틱한 실화는 많은 얘깃거리를 낳았는데,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1907~1991)의 『텐표의 기와(天平の瓦)』라는 소설로 탄생하기도 했다. 특히 당나라풍의 금당(金堂) 구조가 백미다.

그리고 비구니절로 알려진 홋케지(法華寺)로 달려갔는데, 쇼무텐노(聖武天皇701~756)의 황후인 코묘황후(光明701~760)가 세운 절로서 십일면관세음입상이 국보로 특이하다. 아담하게 여겨지는 본당에 수많은 불교의 보물들이 여인네 방의 기물처럼 아기자기 빼곡히 자리를 잡아 정신없이 보고 있는데, 저녁 예불을 올리려는 여승이 들어와 목탁을 들고 예불을 올린다. 여스님이 예불을 올리는 귀한 구경을 한 셈이다. 정원도 자랑거리로 내세우지만, 시간이 없는 분들은 굳이 들르지 않아도 무방할 듯하다. 마지막으로 에도시대의 건축물도 역사적 보존물로 그대로 남아있지만, 나라시대부터 전국(戰國)시대에 이르는 옛 모습도 지니고 있는 이마이쵸(今井町)를 둘러보았다. 이마이쵸는 북촌의 한옥마을처럼 실제 주민이 살고 있는 곳으로, 꽤 큰 규모의 마을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당시 자치권을 가진 상업도시로서 호상(豪商)이 거주한 주택과 종루가 있는 절인 칭념사(稱念寺)가 규모가 있었는데, 칭념사라는 사원을 중심으로 발달한 사원취락의 전형이라 한다. 그러나 그런 역사보다도 격자무늬의 목조건물이 여러 갈래의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죽 늘어서 있는데도 휴지 하나 재활용 쓰레기봉투 하나 보이지 않았던 것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숙박체험도 할 수 있고, 아기자기한 수제품 상가나 카페도 곳곳에 숨어 있어 재미를 더해준다.


오늘 하루 동안 본 아스카(飛鳥)-하쿠호(白鳳)- 텐표(天平)시대의 나라(奈良)와 에도시대의 옛 마을이 고향에 온 듯 편안하게 아른거리는 여운을 안고 킨테츠 나라역의 저녁을 거닐었다.
첫댓글 우리에게 많이 알려졌으나, 제대로 보지못했던 문화재를 다시 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휴대폰만 두드려도 알 수 있는 사찰 등에 대한 정보와 사진은 싣지않았습니다. 관심을 일으켜 한번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맨 아래 사진은 칭념사 문 앞에 적혀있던 구절이었는데, '밭이 있으면 밭 걱정, 집이 있으면 집 걱정'이라는 우리네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에 해당하는 문구라 하겠는데, 절집에 걸맞는 문구같았습니다.
여행기를 남겨주셔서 간접경험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불설무량수경에는
有田憂田、有宅憂宅(유전우전 유택우택: 밭 있으면 밭 걱정, 집 있으면 집 걱정)이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집 없어도 걱정이라는 부분, "無田亦憂欲有田、無宅亦憂欲有宅"(무전역우욕유전, 무택역우욕유택: 밭 없으면 밭 가지려고 걱정, 집 없으면 집 가지려고 걱정)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有田憂田、有宅憂宅」《佛說無量壽經》卷2(CBETA, T12, no. 360, p. 274c1)
「無田亦憂欲有田、無宅亦憂欲有宅」《佛說無量壽經》卷2(CBETA, T12, no. 360, p. 274c9-10)
그렇군요, 불설무량수경에 나오는 구절이었군요, 정토진종 사찰이니. 감사합니다.
좋은글과 사진,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