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세례 (1512)
티치아노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88-1576)는 피렌체와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끈 베네치아의 중요한 화가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대표적인 피렌체의 화가들이
원근법과 명암법을 중심으로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려는
이른바 조각적인 형태주의를 추구했다면,
화려한 빛으로 충만한 수상도시 베네치아의 예술가들은
화려하고 조화로운 색과 빛을 중심으로 회화적인 색채주의를 확립하였다.
이러한 베네치아 화풍의 정점에 있는 화가가 바로 티치아노이다.
티치아노는 밝고 풍부한 안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색조를 섞고 음영을 만드는 스푸마토를 달성했다.
그는 또한 빛과 어둠을 사용하여
대비와 깊이감을 높이는 환상을 만드는 명암법(chiaroscuro)을 사용했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티치아노의 1512년경 작품으로
현재 로마의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작품은 1531년 마르칸토니오 미키엘(Marcantonio Michiel)이
스페인 상인 조반니 람(Giovanni Ram)의 베네치아 집에 있었던 것을 언급했으며,
오른쪽 아래에 주문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마태오복음 3장 13-17절이 그 배경인데,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성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3-17)
<그리스도의 세례>는 수풀이 우거진 농가 풍경을 배경으로
주문자가 있는 곳에서 거행된다.
주제는 전통적인 것으로, 많은 화가가 접한 테마이지만
티치아노는 인물들을 조금 독특하게 배치하였다.
왼쪽 위에 있는 세례자 요한에서부터 대각선으로 전개되는 구조이다.
그리스도의 모습은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나타나고
주문자의 모습은 약간 위에서 보는 시점으로 나타나 장면의 역동성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벗어놓은 흰색 속옷과 붉은색 겉옷은 왼쪽으로 기울어지게 놓아
생동감 넘치는 색채를 만들어낸다.
인물들의 모습은 이상화하여 그리지 않았지만,
티치아노 양식의 가장 잘 알려진 특징 중 하나인 역동하는 인간성이 특징이다.
대각선을 따라 배열된 세 인물의 중앙에 그리스도는
요르단강에 서서 벌거벗은 몸과 흰 천을 허리에 두르고 있고,
왼쪽에 세례자 요한은 경건하고 겸손한 자세로 강둑 위에 서서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물을 붓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있는 자세이고
엉덩이를 보라색 망토로만 덮고 벌거벗은 몸이며,
그 속에 입은 낙타 털 옷을 살짝 보인다.
오른쪽 아래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그리스도의 세례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그의 머리와 수염은 희끗희끗한 거의 회색이며
그는 두 개의 결혼반지를 왼손의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다.
그는 작품의 주문자이자 소유자이다.
그는 15세기 말부터 베네치아에 살았던 스페인 상인으로 추정되는 조반니 람이다.
그의 검은 옷은 그리스도가 걸친 흰옷의 순결함과 대조된다.
그가 1511년 9월 20일에 작성한 유언장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온전하지만,
몸이 병든 스페인 상인은 이미 죽은 아내 이사벨라를 기억합니다.”라고 썼고,
베네치아의 무라노(Murano)섬의 산 피에트로 마르티레 수녀원에 있는
그녀 옆에 묻힐 준비를 한다.
이 작품의 주제 <그리스도의 세례>는 이러한 상황과 관련이 있다.
람의 새끼손가락에 있는 두 번째 결혼반지는
그의 사망한 부인의 것으로 그가 부인을 잃었음을 나타내고
요한 등 뒤에 있는 딱따구리는
영적 및 육체적 소생의 상징으로 질병 후의 육체적 회복을 나타낸다.
거의 확실하게 1510년 베네치아를 강타한 전염병으로
아내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늘에는 성령의 상징인 황금빛이 땅을 덮고 있고,
오른쪽에는 구름 속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네 명의 아기 천사가 있다.
조반니 람이 사망한 후 이 작품은 16세기 말까지 그의 가족 소유였다.
그러나 후에 이 작품은 아마도 판매되어 로마로 옮겨졌고,
1624년에 에밀리아 출신의 수집가인
카를로 에마누엘레 피오(Carlo Emanuele Pio) 추기경의 자산으로 등록되었다.
그의 상속인에게 상속되다가 1750년에 피오 컬렉션의 많은 작품과 함께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판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