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30-31절,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
본문은 사도 요한이 복음서를 끝마치면서 밝힌 기록목적(記錄目的)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마지막 부분에 놓여있는 기록목적을 맨 앞으로 가져와
우선적으로 상고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현대교회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성경을 기록한
목적대로 해석하여, 바르게 사용(使用) 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자는 뜻에서입니다. 이는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겸허하게 물어야 될 물음입니다.
요한복음은 도표(圖表)에
표시된 대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하고 기록(記錄)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2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두 주제를 증거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은 이 두 가지 기록목적에 의해서 해석이 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만일 기록한 목적(目的)대로 사용하지 아니할 때는,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
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눅 11:52) 하십니다. 무엇으로 막았는가? 설교를
통해서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었으나 메시아가 오시자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그렇게 한 원인은 지식의 열쇠를 가진 자(성경 해석자들)들이 성경을 곡해(曲解)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요한복음에만 국한된 기록목적은 아닙니다. 마태복음을
예로 들어보면 마태복음도 구도는 둘(두 주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 분기점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으신 16:15절입니다. 이
질문을 중심으로 전반부는 예수가 누구인가를 증거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가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기 위하여, 많은 기사와 이적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8:32절
이하에는 바다를 잔잔케 하신 기사가 있는데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은,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27) 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전반부의 초점은, 예수가 누군가를 증거하는데 맞춰져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그냥 예수라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라
칭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21),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오셔야만 했는가를 비로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였습니다. 안식(安息)하시던 하나님께서는, “내가---하리니”(창 3:15) 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성경은
기록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시작하신 일의 내용이 무엇인가? “여자의
후손을 보내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창 3:15), 즉 자기 아들을 통하여
이루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계시록 마지막에 이르러서,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 21:6) 하고 완성이 된다는 것이
신 구약성경의 구조(構造)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점들의 모임이 아니라 계획하시고 언약하신 바를 성취해나가시는 구속사(救贖史)라는 “선”(線)인 것입니다.
이점에서 우리의 시야를 구속사(救贖史)라는 넓은 지평으로 돌려 신 구약성경 전체의 기록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만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5:39), 구약성경의 기록목적도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기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舊約聖經)의 주제는 무엇인가?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여인의 후손”(창 3:15)으로
지칭된 메시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보내주시겠다는 것이 구약성경의 주제입니다.
그러면 신약성경(新約聖經)의 주제는 무엇인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 하고 시작이 됩니다. 즉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리스도가 예수로 오셨다, 그러므로 그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으라”, 이것이 신약성경의 대 주제입니다.
이점에서 유념해야할 점이 있는데 성경에는 신학(神學)적은 면과 교훈(敎訓)적인 면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인류가
풀어야할 문제에 대한 해답(解答), 즉 구원은 신학적인 면에 있다는 점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교훈은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훈은 해답, 즉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성경신학”, 즉
구속사(救贖史)라는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를 해석할 때에 “예수가 누구인가? 왜 오셔야만 했는가?” 하는 두 큰 주제에 입각해서 해석해야만 성경을
기록한 목적대로 사용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들어 교훈을 말하며, 윤리를 가르치고, 축복을 받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것들로 구원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형제여, 형제는 2천년 전 유대 땅에 나셨던 역사적인 인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를 믿음으로 나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음을 확신하십니까? 그리고 이 복음은 구약성경에서 언약하시고 신약성경에서 성취하여 주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임을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형제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현대교회는 제2의 종교개혁이 절실할 만큼 성경을
곡해하는 탁류 속에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지식의 열쇠를 위임 받은 말씀의 사역 자들은 진지하게, 나는 성경을 기록한 목적대로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자기 구미에 맞도록 해석하고 적용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심각하게 반성해 보아야만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성령께서 요한을 감동하셔서 복음서를 기록하게 하신 목적에 입각하여, 요한복음을 상고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누구라도 분명히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묵상해 봅시다
1.
구약성경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2.
신약성경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3.
요한복음을 기록한 두
가지 목적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