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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백석의 시--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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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은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방랑도 어쩔 수 없이 그리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늘 얽메이지 않는 자유를 원했다.
그 자유는 언제나 그 날 하루 한끼의 식사에 구속될 수 밖에 없었다.
방황이란 방랑이란 그저 한끼의 식사를 찾아헤메는 것,
어린 사춘기 시절을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늘 떠돌아야했던 나는
군대 제대하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 가을이 조금 남았을 때 군복을 벗었기에, 처음엔 그나마 막노동판을 떠돌면서
식사나 잠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이 되면서, 노동판도 문을 닫았다.
나는 그저 주린 배를 끌어안고... 거리를 헤메이는 것이 일과였다.
한끼의 식사, 하룻밤의 잠자리 구하기가 왜 그리도 힘들었었는지.....
전봇대나 담벼락에 붙어있는 구인광고를 찾아서 서울 시내 구석구석을 누볐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 날 오라 하는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스물넷의 싱싱한 젊음이.... 봉제공장 미싱 시다로 취업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물론 받아주지도 않겠지만....
아무리 많이 걸어도 다리는 아프지 않았다. 배도 더 이상 고프지도 않았다.
해가 기울어 갈 수록 걱정되는 것은 오늘밤의 잠자리였다.
물론 노숙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 통행금지가 시행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삼청교육대의 칼날이 퍼런 시절이었기에... 어떻게든 잠자리 해결은 해야했다.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필요하지도 않은 인간이.... 세상에 끼어들어서... 살아보겠다한다.
그 서러운 것이야 익숙할 대로 익숙했지만
이젠 너무 지쳐서 힘이 다 풀린다. 그저 주저 앉고만 싶다.
영등포역 앞을 지날 때였다.
헌혈버스가 보였다.
그 옆에서 지나가는 남정네 붙잡고 씨름하는 하얀 가운 입은 여자들을 보았다.
당기고 밀치고...
헌혈?
그래, 세상에 내 몸뚱이에서도 소용되는 것이 있을까?
필요한 것이 있다면....내 서슴없이 주리라.
쭈빗쭈빗 헌혈차로 다가섰다.
오히려 이상한 눈초리로 간호복의 여자가 쳐다본다.
“헌혈하러 왔어요.!”
내 몸에서 쏟아져 하얀 봉지에 가득 채워가는 핏물을 바라본다.
종일 굶은 몸에서.... 그래도 붉은 피는 가득히도 품어져 나온다.
몽땅 모조리 빼 가소서~!
덕분에, 빵 한조각을 베어 물었다.
또..또.... 세상이 내 몸에서 필요한 것은 없을까?
세상에서 소외된 설움이.... 그저 몸부림으로 나를 휘졌는다.
발길이 닿은 곳은
어떤 친구의 작업장...
나를 본 친구가 반색을 한다. (어인 일??)
청량리로 빨리 가보란다. 나를 찾는 친구가 있다고.....
그 때까지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나를 알고 있었나보다.
내 처지를 알기에,
일하는 곳에서 사람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 나를 찾았나보다.
저녁에 그 친구를 청량리 역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청량리 시장에 식품제조업... 종사자로 취업이 되었다.
친구가 환영파티도 해주었다. (그 때 까지 나는 서먹한 친구였고..미안했다.)
청량리 역 앞에 .. 맘모스라는 나이트...... 나이트클럽 구경도 생전 처음하게 되었다.
따뜻한 잠자리에서 등을 붙일 수 있었고,
더운 김이 솟는 아침밥도 먹을 수 있었다.
보조... 봉급을 받기로 취직 되었지만, 월급은 친구하고 똑 같이 나왔다.
사장이 기사 취급을 해 주었던 것이다. 물론 그만큼 열심히 했지만...
군대 전역하고... 거의 3개월만의 첫 취업이었다.
..
첫댓글
世人皆忘我 四海一身孤 豈唯世忘我 兄弟亦忘予
今日婦忘我 明日吾忘吾 却後天地內 了無親與疏
세상사람 모두가 나를 잊어버려 천지간에 이 한몸 고독하구나
어디 세상만이 나를 잊었겠는가 형제들마저 나를 잊었다네
이제 아내도 나를 잊었으니 내일이면 내가 나를 잊을 차례로다
그 뒤로는 하늘과 땅 사이 가까운 이도 먼 이도 다 사라지리니
전에는 실전 사주풀이에서 자주 뵈었는데.. 요즘은 여기저기서 자주 뵙네요..후행객님!!^^
@나무 이젠 좀 편케 살아볼려구여..
한 삼십년을...... 그 인연으로 식품제조업으로 살았네요.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면서, 새삼 그 시절이 떠오르네요.
취업 못해 난리인데,
사업체 던지는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부처님의 가피인지..... 뜻하지 않게.... 해결은 좋은 쪽으로.........
그래도 웃을 수 있어서 좋네요.
..
변화의 강을 건너시나 보네요
좋은 일 있기를 바랍니다
버려야 비로소 얻을수 있다는 말을
어디서 보긴 본것 같은데 기억이 .ㅎ.ㅎ.ㅎ.~
이리화님 좋은쪽으로 해결되시여 웃으실수 있으시다니 …쭈욱 행복하시길요…
예전의 힘든 이야기를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은 좋은시절이시라는 거죠??^^
축하드립니다!!^^
이리화님
일전에 들려주셨던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지금의 긴장된 마음과, 정리하는 마음, 그리고
또 새로 시작하려는 마음까지 모두 잘 아우러져
이리화님 소원하시는데로 이루어지길 마음 모읍니다
이리화님,
힘 내세요
고비 잘 이겨내실거예요 홧팅!
이리화님
역경일수록 기운 내시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시길 잘하셧네요.
다 이렇게 옛말하며 살 시기가 온답니다.^^*
역경은 청년에게 있어서 빛나는 기회이다. 젊은 시절 고생은 발전의 밑거름이다. - 에머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