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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키타현의 나마하게
이숙진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 전세기로 일본 아키타 공항을 향해 날아올랐다. 파란 하늘 솜사탕 구름 위를 둥둥 떠가다 두 시간 만에 만난 아키타 상공은 매우 거센 눈발이 휘날리고 있다.
“눈이 많이 쌓였고 눈발이 거세어서 기체가 흔들리니, 우리 비행기는 엔진을 끄고 다른 비행기가 밧줄을 묶어 서서히 앞으로 끌고 나가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벨트를 풀지 말고 조용히 앉아서 기다려 주십시오.”
승객들이 숨을 죽이고 40 여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안착하였다.
오늘 이 비행기를 타신 분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기장님이 아키타만 많이 다닌 노련한 분이어서 회항하지 않고 착륙할 수 있었다며, 길잡이가 긴장했던 가슴을 쓸어내린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 로 시작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이 생각날 만큼 완전 겨울 왕국이다. 착륙은 고생했지만, 동화 속에 들어온 듯 설렌다.
입국장을 나오자마자, 무서운 도깨비 둘과 아키타현의 관광사업 직원들이 쇼핑백 하나씩 안기며 “곤니치와 아리가또 고자 이마스”를 외친다.
짝꿍과 나는 도깨비의 정체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기념사진부터 찍어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안의 기강을 바로잡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여러 가지 전설이나 관습이 전해지고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산타가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준다는 당근 법을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샤머니즘이 무속신앙으로 일컬어지며 백성들의 정신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주었듯이, 일본에서도 샤머니즘으로 풍년을 기원, 가족의 안전, 질병의 치료를 도모한다.
아키타 오가 지역에는 도깨비와 같은 무서운 얼굴의 탈을 쓰고 짚으로 만든 의상을 입은 나마하게가 난폭하게 행동하며 각 가정을 방문한다.
나마하게라는 이름은 나모미오하구(버짐을 뜯어내다.) 라는 말이 변화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나모미라는 것은 겨울에 게으름을 피우며 불가에만 앉아 있으면 손발에 피는 버짐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버짐을 잡아 뜯는다는 비유로서 게으른 마음을 걷어내어 성실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나마하게‘이다.
섣달 그믐날의 저녁 나마하게는 산 위에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조사한 대장을 꺼내 각 집의 모습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공부나 심부름을 하지 않고 놀고만 있고,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쳐야 하는 며느리까지도 게으른 것을 확인하고 산으로 데려간다고 채찍 법을 쓴다.
일본 며느리들은 가라오케를 자주 가는지, 며느리가 가라오케만 가지 않았느냐고 닦달한다. 구체적이다. 현실적이다. 이러한 나마하게 행사를 오가신잔 전통 계승 관에서 행해지는 재현 내용은 압축되고 요약된다. 삶에 대한 긴장감을 잃지 않게 만들어주는 당근 법과 채찍 법에도 나름대로 철학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마하게는 신년을 축복하기 위해 방문하는 신이라고 일컬어지며, 이 행사는 일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나마하게 집결 방에는 천차만별, 오가 각지의 나마하게가 다 모여 있다. 한국의 하회탈이 생각나 내 얼굴도 하회탈을 닮아간다. 오가시내 각지에서 실제로 사용해온 150개의 다종다양한 나마하게 가면이 다 모여 있어서 그 박력이 가히 압권이다.
변신코너에서 나마하게 의상을 몸에 걸치고 기념촬영도 했다. 온천만 있는 시골이지만 관광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정책이 보인다.
우리가 가장 좋은 쌀을 아키바레라고 했는데, 바로 이 아키타 현에서 나는 쌀이라고 한다. 이 좋은 쌀로 빚은 술이 사케라고 숙소 냉장고에 한 병씩 넣어주는 친절도 베푼다. 이 친절이 바로 홍보효과가 아닐까 싶다. 좌우지간 맑디맑은 술을 맛보았으니 고마운 일이다.
지구촌 어디든 어떤 관습이나 전통이 샤머니즘으로 자리매김했을지라도 교육적 차원이다. 이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발전한 것이 유교의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삼강오륜이 아닐까 한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君爲臣綱), 어버이와 자식(父爲子綱), 남편과 아내(夫爲婦綱)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오륜은 부모는 자녀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며(父子有親), 임금과 신하의 도리는 의리에 있고(君臣有義), 남편과 아내는 분별 있게 각기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夫婦有別),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며(長幼有序), 친구 사이에는 신의를 지켜야 한다(朋友有信)는 내용이다.
자손들의 교육을 위한 전통방식을 꾸준히 이어오는 나마하게를 만나면서, 시공을 초월하여 교육적 차원으로는 당근이나 채찍이 공존해야 함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
작가 프로필
실버넷기자 역임. 글마루회장 역임.
동작문협 편집위원장.
저서: (수필집) 가난한 날의 초상. 해바라기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