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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명소탐방 (1)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
10:25 고려산 산행이 끝난후 고천리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스타렉스로 산행기점인 국화리로 이동한다. 고천리 마을회관부터 고비고개, 국화리에 이르는 도로옆과 주차장에는 수많은 산행버스와 승용차로 고려산 진달래 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첫번째 탐방장소인 고려궁으로 이동한다.
용흥궁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시킨 후 먼저 오전 11시 먼저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으로 향한다.
이곳 용흥궁 공원옆으로는 '강화도령의 첫사랑길' 이라는 이름을 붙인 둘레길이 있는데 11.7km거리로서 3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강화도령 원범과 양순의 이미지 인형이 세워진 옆에 포토존도 있어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념촬영을 하여도 좋게 되어 있었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으로 오르는 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입구 계단
성공회 강화성당은 고요한(Charl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 베드로와 바울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의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멸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사적 제424호로 관리되고 있으며, 총 보호면적은 6,452㎡이고, 성공회유지재단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1896년(고종33),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11월15일 강화에 한국 최초의 성당을 세운 것이다. 1910년대까지 강화지역 선교의 중심이 되었으며, 성공회 신학교인 성미가엘신학교가 이 곳에 설립된 이후 성공회 한국 선교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한국인으로는 성공회 첫 신부가 되는 김희중신부를 배출하였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본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인 성당내부
강화도령 첫사랑길이 시작하는 골목 옆으로 용흥궁의 대문인 후문이 나 있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탐방이 마치고 용흥궁(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41)으로 이동한다. 강화도령으로 알려진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龍興宮.시도유형문화재 제 20호)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들고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 등을 영상에 담았다. 강화도령이 궁으로 들어간 후 강화유수가 원범(강화도령:철종)이 살았던 초가를 기와집으로 개축하고 용흥궁이라는 현판을 걸었다고 한다.
강화도령
1844년(헌종 10) 형 화평군 이영의 옥사로 가족과 함께 교동도에 유배되었다가 곧 강화도로 옮겨져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용흥궁 자리의 초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당시 영조의 혈손으로는 헌종과 이원범 두삼뿐이었다. 1849년 6월 6일 헌종이 후사없이 죽자 순조비인 대왕대비 순원옹후(김조슨의 딸)의 명으로, 봉영의식을 행한뒤 6월 8일 덕완군에 봉해지고 이튼날인 6월 9일 창덕궁 희정당에서 관례를 행한 뒤 정조의 손자, 순조의 아들로서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정면 6칸의 8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사랑채를 배경으로 인증!!
안채의 모습
용흥궁내의 아름다운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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