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악인들이 참가해도 부정해지지 않는 성례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죄인들의 경우,
성례를 통하여 죄를 더 받게 되는 까닭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고 잘못된 주장을 한다.
그런 식의 논법이라면, 복음을 듣고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는 사람들도 많이므로,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기에 이는 참으로 가당치 않다. 이런 현상은 일반 공문서에서도 나타나니, 거기에 찍힌 것이 군주의 진짜 인장(at authenticating seal, 아우덴티콘)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그 공문서는 의미 없는가?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말씀과 성례를 통해서 그의 자비와 은혜의 약속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확실한 믿음으로 말씀과 성례를 받는 사람만 이 일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뜻을 전달하면서 말씀의 효력이 성례에 나타나는 것은 '말씀을 듣기 때문이 아니라 믿기 때문'(not because it is spoken, but because it is belived)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바울이 신자들에게 성례와 관련한 말을 할 때에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도 성례에 포함시킨다(갈3:27, 고전12:12-13). 그러므로 성례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한다. 성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는 인장과 같다. 성례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게에 확증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지탱하고 자라게 하며 강화하고 증진시킨다. 믿음을 오해하여 이 주제를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있는 체 하지 말고, 주님께 믿음을 더 구해야 할 것이다(눅17:5, 마9:24).
2. 성례를 통해서 어느 정도까지 미등미 견고하게 되는지 말할 수 있는가
사도행전 8:37의 (해당 난 아래의 주에 있는)'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그리스도를 완전히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를 진정과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성경에서는 무슨 일을 성의와 진심으로 하는 것을, "마음을 온전히 하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시편119:10), "내가 ...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시111:1, 138:1) 등등으로 표현하고, 반대로 거짓되고 부정직한 사람들을 보통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라고 책망한다(시 12:2). 우리의 믿음은 인생의 모든 시기를 통하여 항상 성장해서 마침내 성숙해야 한다(엡4:13).
어떤 이들은, 만일 성례가 믿음을 증진시킨다면 성령을 주신 것은 헛수고였을 것이니, 성령이야말로 믿음을 일으키고 유지하며 완성하는 힘이 있고 또 그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부언한다. 물론 믿음은 전적으로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고유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니, 성령의 조명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자비의 보고를 알게되고, 성령의 광명이 없으면 우리 마음의 눈이 어두워 아무것도 볼 수 없으며, 감각이 둔해서 영적인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더불어 알아야 할 것은 첫째, 주님께서는 우리를 말씀으로 가르치시며 지시하시고, 둘째, 말씀을 성례로 확인하시며, 끝으로, 우리의 지성을 성령의 빛으로 비추시며 우리의 마음을 열어서 말씀과 성례가 들어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3. 성례에 역사하는 성령
성례 자체에 어떤 비밀한 힘이 있어서 믿음을 증진하거나 강화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내적 지배자(the internal Master)이신 성령께서 오셔서 역사해 주셔야 한다. 그러나 성령과 성례를 구별해서 역사하는 힘은 전자에 있고 후자는 임무만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임무는 내용이 없고 빈약하게 되지만, 성령이 그 속에서 역사하면 힘을 나타내실 때에는 위대한 효력을 발휘한다.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성례는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지만, 성령의 가르침을 이미 받은 마음에서는 성례가 믿음을 강화하며 증진시킨다.
4. 사람이 설득될 때와 같은 과정
성령의 내적인 사역을 비유를 써서 설명해 보겠다. 어떤 일을 하도록 어떤 사람을 말로 설득할 때, 그 사람을 우리의 의견에 기울어지게 하며, 어느 정도 우리의 충고에 따르도록 만드려고 모든 논법들을 사용할지라도 그 사람 편에서 우리의 이론의 가치를 헤아릴 만한 예리한 판단력이 없거나 귀를 기울여 듣는 경향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리 애를 써도 소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좋은 특성이 모두 있을 때, 우리의 충고를 듣는 사람은 곧 순종하게 되며 비웃는 일이 없을 것인데,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서 이와 똑같은 일을 하신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례가 우리를 향한 하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우리의 눈앞에 제시할 때, 그것들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는데, 이는 성례를 쓰시는 빛들의 아버지께서(약1:17) 성령으로 행하시는 일이다.
5. 믿음 강화를 위한 말씀과 성례의 동등한 역사
황ㅍㅖ해지고 버려진 땅에 씨가 떨어지면 죽어 버리지만 잘 가꾼 땅에 심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완고한 사람들에게 떨어지면 모래 위에 떨어진 씨와 같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성령의 손으로 잘 가꾼 영혼 위에 떨어지면 결실이 많을 것이니, 씨에서 곡식이 나서 자라며 결실하는 것같이 씨와 말씀에 같은 생각이 적용된다면, 말씀에서 믿음이 생기고 또 그것이 자라며 완성된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마13:3-23, 눅 8:5-15).
바울은 이 두가지를 여러 구절에서 훌륭하게 설명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역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는지를 (고전2:4)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다시 생각하게 만들려고 자신의 사역이 성령으로 말미암는다고 자랑한다(고후3:6). 그는 다른 곳에서 사역자를 농부에 비교하는데, 농부들은 땅을 애써 가꾼 다음에는 더 할 일이 없으니(고전3:6-9), 밭을 갈고 씽르 뿌리고 물을 준다고 하더라도 심겨진 씨는 하늘의 복으로 말미암아 자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7)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일을 잘 구별해야 한다.
6.하나님의 도구로서만 가치가 있는 성례의 요소들
주님께서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창3:22) 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을 통해 회복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이는 '나의 약속의 상징에 집착해서 헛된 확신을 즐기지 못하도록 불멸에 대한 소망을 주는 도구를 빼앗으리라'는 의미이다.
같은 차원에서, 사도가 에베소 교회 신자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자"(엡2:12)였음을 기억라고 권하면서, 그들이 할례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말한것은(엡2:11), 환유적(metonymically)으로 설명한 것으로, 곧 약속의 증거표(the badge of promise)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약속 자체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성례의 한 가지 기능은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의 눈앞에 놓고 우리가 볼 수 있게 하는 것, 아니 우리에게 그의 약속의 보증이 되는 것(to be pledges of his promises)이다.
7. 사크라멘툼(sacranentum)
어떤 이들은 라틴어 단어'사크라멘툼'이 군인이 입대할 때에 사령관 앞에서 행하는 엄숙한 선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신병들이 선서로 사령관에 대한 충성심을 약속하며 군대 복무를 고백하는 것과도 같이, 우리는 우리의 표징으로 우리의 사령관이신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그의 군기 아래서 복무함을 증거한다는 것이다(증거 행위).
그런데 더 깊이 연구해 보면, '사크라멘툼'은 군인이 자기의 사령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행동'이었는데, 옛적 사람들은 사령관이 군인들을 자기 휘하에 받아들이는 행위로 바꾸어 사용했다. (맹세 행위)
중요한 것은, 옛적 사람들이 이것을 '표징'의 의미로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는 이 '사크라멘타'(sacramentum의 복수)에 따라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한다(고후 6:16, 겔37:27). 따라서 성례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도와야 하고,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고백을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