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소로스
ⓒ Getty Images/멀티비츠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헤지펀드가 유로화에 공격을 퍼붓고 있다(Hedge Fund Pounds Euro)."
2010년 2월 25일 「월스트리트저널」 1면에 섬뜩한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1930년~ )가 운영하는 펀드를 포함한 초대형 헤지펀드 관계자들이 2월 초 뉴욕 맨해튼에서 비밀회의를 가지고, 유로화 폭락에 베팅해 큰돈을 벌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남유럽 재정위기가 계속되면서 유로화는 폭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기사의 헤드라인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이 헤드라인을 통해 편집자가 노린 것은 자명했다. 독자들에게 '검은 수요일'을 연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영국 중앙은행을 굴복시킨 사나이
검은 수요일은 1990년 10월 유럽환율제도(ERM)에 가입했던 영국이 2년 뒤(1992년 9월 16일) 헤지펀드의 파운드화 매도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ERM에서 탈퇴한 '영국판 외환위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날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외환보유고를 대규모로 투입해 파운드화를 매수하고 기준금리도 하루 새 두 차례나 인상했다. 하지만 하루 동안 무려 100억 달러 이상의 매도 포지션을 취한 소로스의 공격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한 달 후,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파운드화 폭락으로 10억 달러를 번 사나이"로 소로스를 지목했고, 그는 "하루 만에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환투기꾼"이라는 악명을 얻게 되었다.
1990년 소로스는 ERM에 내재한 불합리를 꿰뚫어보고 외환보유고가 400억 달러 내외에 불과했던 영국을 공격했다. 소로스의 공격에 영국 파운드화는 속수무책으로 폭락했고, 그는 10억 달러를 벌었다.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후 각국에서 통화위기가 발발할 때마다 소로스는 배후로 지목되어 왔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마하티르(Mahathir bin Mohamad) 말레이시아 총리는 "소로스가 미얀마 군사정권의 아세안(ASEAN, 동남아국가연합) 가입을 허용한 데 불만을 품고 의도적으로 태국 바트화, 말레이시아 링기트화 등 아시아 통화를 공격했다"며 소로스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2010년 유로화 폭락 사태를 겪은 유럽 각국 수장들도 "투기세력에 맞서 유로화를 지키겠다"며 소로스 같은 헤지펀드 세력을 '악(惡)의 축'으로 묘사했다.
환투기꾼 VS. 자선사업가, 야누스의 얼굴
소로스는 한편에서는 악마로 불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천사의 얼굴을 한 세계적 자선사업가로 불리기도 한다. 「포브스」 억만장자 리스트에서 2010년 당시 재산은 140억 달러, 순위는 35위에 머물렀지만 그가 살아오면서 기부한 총 액수는 72억 달러로 당시 빌 게이츠(280억 달러)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투기만큼이나 공격적인 소로스의 자선사업은 일반적으로 자선단체들이 빈곤 퇴치나 환경 보호 등 '인류 공영'을 목표로 활동하는 것과 달리 강한 정치적 동기에서 진행된다. 이는 소로스의 파란만장한 유·청년기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결과다.
소로스는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4년 나치가 유대인 탄압을 시작하자 수용소행을 피하기 위해 공무원의 양자로 입적해, 혈통을 숨기기도 했다. 1947년 헝가리가 공산화되자 영국으로 떠난 그는 짐꾼, 웨이터 등으로 일하며 학비를 벌어 런던정경대학(LSE)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특히 철도 노동자로 일하다 다쳤을 때 사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자 병실에 누워 "나중에 성공하면 반드시 자선사업을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소로스는 재학 중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이란 저서로 유명한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가르침을 받고 큰 감명을 얻어, 이후 '열린 사회'라는 개념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된 타깃은 자신의 고향인 사회주의 체제 하의 동유럽이었다. 1969년 짐 로저스(Jim Rogers)와 함께 설립한 퀀텀펀드가 10년 간 연평균 35%의 전설적인 수익률을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두자, 그는 1979년 열린사회기금을 창설하고 1984년에는 헝가리에 소로스 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동유럽 각국에 설립된 소로스 재단의 지원을 통해 수많은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서구 자본주의 국가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 과정에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순조로운 체제전환을 주도하는 리더가 되었다.
소로스는 2003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낙선시키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돌며 강연을 하고 정치사회단체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뚜렷한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기부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04년 미국 대선'을 앞둔 2003년 11월, 소로스는 돌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을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이라도 내놓겠다"며 낙선운동에 뛰어들었다. 그가 이라크전을 강행하고 국제질서를 어지럽힌 부시 전 대통령을 '열린 사회의 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치사회단체에 수백만 달러씩 기부하고 '우리는 왜 부시의 재선을 막아야 하는가?'를 주제로 미국을 돌며 강연을 하기도 했다.
"시장은 합리적이지 않다"
소로스의 투자는 상처 난 곳을 후벼 파는 하이에나 같은 방식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시장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분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는 칼 포퍼의 열린 사회 개념에서 '재귀성 이론(The Theory of Reflexivity)'이란 투자 철학을 이끌어 냈다.
포퍼는 "인류사회는 인간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때에만 진보하며, 궁극적인 진리를 독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재귀성 이론은 시장이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주가 등이 실제 가치를 반영한다는 '합리 가설'을 전면 부인한다. 오히려 일반적으로 시장은 편견과 오류로 왜곡되어 있으며, 그러한 불균형은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투자자 역시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자기실현을 거듭해가며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주식 시장에서 주가가 상승하면 긍정적인 편견에 의해 상승 추세가 강화되고, 주가가 떨어지면 부정적 편견이 강해져 하락을 더 부채질하는 현상을 예로 들 수 있다. 시장에 이러한 불균형이 포착되면 적극 활용하는 게 그의 투자 기법이다.
이 같은 논리에 따르면 1992년의 검은 수요일도 사실 영국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 성립한다. 당시 독일은 통일 이후 구 동독에 대한 지원 때문에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2년간 열 차례나 올렸다. 마르크화 상승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반면 영국은 실업률 증가와 최악의 불경기를 맞아 파운드화 하락이 예상되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2년 전 보수당 정부가 사실상 고정환율제인 ERM에 가입했기 때문에 파운드화는 충분히 평가절하되지 않았다. 소로스는 ERM에 내재한 이 같은 불합리를 꿰뚫어보고 외환보유고가 400억 달러 내외에 불과했던 영국을 타깃으로 공격을 시작했던 것이다.
검은 수요일 이후 보수당 정부는 변동환율제를 도입해 환율을 시장에 맡긴 데 이어 고금리정책도 포기했다. 금리가 내려가고 파운드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비로소 영국 경제는 회복국면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1997년 들어선 노동당 정부는 중앙은행을 재무부에서 독립시켜 통화정책에 대한 개입을 차단했다. 영국 정부가 단일 통화인 유로화 채택을 거부한 것도 검은 수요일이 준 교훈 때문이다. 결국 검은 수요일은 영란은행에 치욕을 안기고 영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지만, 정부의 잘못된 정책 판단을 수정하고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투자 실패는 더 큰 성공으로 만회
소로스가 투자할 때마다 성공을 거뒀던 것은 아니었다. 대규모 손실을 본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외환·주식·채권 시장을 넘나들며 공격적이고 다양한 투자를 함으로써 더 큰 수익을 얻어 실패를 만회했다. 기회가 포착되면 엄청난 규모의 대출을 통해 공격적인 레버리지 투자를 감행했다.
소로스는 1994년 미국과 일본의 무역협상이 타결되면 엔화가 결국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엔화를 집중적으로 매도하는 투기에 나섰다. 그러나 엔화는 1995년 초 달러당 79엔이라는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았고, 그는 6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그럼에도 소로스의 펀드는 '턴 어라운드(실적 회복)' 기업에 대한 주식투자 덕에 그 해 39%라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1998년 8월에는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러시아 주식에 많이 투자했던 소로스는 20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손실을 입었다. 곧 이어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LTCM) 사태1) 가 터졌다. 그러나 이 해에도 소로스의 펀드는 17%의 수익률을 올렸다.
1999~2000년까지 이어진 닷컴 버블 당시에는 닷컴주를 공매도하다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이에 따라 은퇴설도 나돌았지만 재기했다. 2007~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가 금융 시장을 덮치자 공매도를 통해 대규모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조지 소로스와 워런 버핏은 둘 다 기업을 경영하지 않고 돈을 굴려 부자가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는 크게 다르다. 버핏이 '오마하의 현인'이라 칭송받으며 바람직한 투자자의 표본으로 인식되는 반면, 소로스는 시장을 교란시키고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투기꾼의 이미지가 강하다.
ⓒ 어바웃어북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소로스의 제자이자 소로스 펀드를 장기간 운용했던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는, 소로스가 손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거액의 손실에도 전혀 괴로워하지 않는다고 평한 적이 있다. '한 거래에서 실패하면 다른 거래에서 성공해 만회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아마도 한 국가를 향해서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할 정도로 무모함과 두둑한 배짱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자신감일 것이다.
'악덕 투기꾼'과 '세계적 자선사업가', '금융의 연금술사'와 '메시아적 진보철학자'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의 진짜 얼굴이 무엇이든 그의 다음 타깃이 한국만은 아니길 바란다.
조지 소로스의 슈퍼 리치 DNA! 강심장
헤지펀드는 태생적으로 고수익에 비례하는 고위험을 동반하는 금융상품이다. 하지만 소로스는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또 6억 달러, 2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에도 낙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배포 큰 배팅 뒤에는 시장에 내재한 불합리를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분석력이 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에서 10년 넘게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중 7년을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증권사를 비롯한 시중은행 등 금융업계를 출입하면서 보냈다. IT와 미디어 분야에도 ..펼쳐보기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국제부·경제부·산업부를 거치며 국내외 다양한 슈퍼 리치의 삶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경제부를 거쳐 사회부에서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세계 슈퍼 리치 | 최진주 외 | 어바웃어북
부자 피라미드의 상층부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0.00001%의 슈퍼 리치 40인의 삶과 성공 전략을 추적한다. 추진력, 배짱, 치밀함, 강박 등 40인의 슈퍼 리치..펼쳐보기
Insight - 더 멀리 더 깊이 내다본 자의 도발적 안목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 악해지지 않고도 억만장자가 되다잉바르 캄프라드 -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린고비리카싱 - 한 손에 『논어』를, 다른 한 손에 주판을 든 거상제프 베조스 - 전 세계 '지식의 강' 아마존닷컴카를 알브레히트 - 검약이 몸에 밴 독일인의 소비심리를 파고들다야나이 다다시 - 옷을 바꾸고, 의식을 바꾸고, 세계를 바꾼다워런 버핏 - 한 나라의 GDP보다 큰 자산을 운용하는 남자필 나이트 - 운동화에 인격을 불어넣은 마케팅 귀재
Challenge - 1%의 가능성으로 세상을 뒤집은 '반전 신화'아만시오 오르테가 - 옷 가게 점원 출신으로 패션의 패러다임을 바꾼리옌훙 - '검색 공룡' 구글을 밀어낸 중국 곰이건희 - 나를 키운 건 8할이 위기의식이다아짐 프렘지 - 스크루지의 외형을 한 산타클로스알리코 단고테 - '기회의 땅', 아프리카를 품다존 폴슨 - 금융위기가 낳은 슈퍼스타에이케 바티스타 - 부(富)를 캐는 야심만만한 광산업자마크 저커버그 - 열린 세상을 꿈꾸는 최연소 억만장자
Defense - '혁신'의 다른 이름수닐 미탈 - '속도'로 대기업을 이긴 인도 통신 재벌카를로스 슬림 - 멕시코가 배출한 세계 1위 부자페르디난드 피에히 - 폴크스바겐 VS. 포르셰, 애증관계의 구심점베르나르 아르노 - 명품 제국의 황제스테판 페르손 - '패션의 맥도날드' H&M 회장야마우치 히로시 - '재미'를 팔아 막대한 '재미'를 누린코크 형제 - 미국 보수진영의 숨은 실력자지나 라인하트 - 세계 최고 여성갑부가 된 '철의 여인'
Recovery - 아흔아홉 번의 실패를 디딤돌 삼아 쏘아올린 성공스티브 잡스 - 공산품을 작품의 경지에 올려놓은 '21세기 장인'크반트 가문 - 파산 위기의 BMW를 구한쭝칭허우 - 중국 '국민음료회사' 와하하 그룹 회장스탠리 호 - 마카오를 먹여 살린 '카지노 제왕'손정의 - '비전의 힘'을 믿는 승부사릴리안 베탕쿠르 - 프랑스 정계를 뒤흔든 '세기의 상속녀'알 왈리드 빈 탈랄 - 아라비아의 워런 버핏마이클 블룸버그 - 정치적 영향력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갑부
Survival - 더 큰 꿈을 꾸기 위한 초석로만 아브라모비치 - 정치 권력을 등에 업고 성장한 신흥부자락시미 미탈 - 전 세계 철강회사를 먹어치우는 '철강 공룡'칼 아이칸 - 기업사냥꾼 VS. 행동주의 투자자프랑수아 피노 - 명품과 미술품 시장의 식탐가블라디미르 리신 - 프롤레타리아의 신화를 쓴 철의 노동자암바니 형제 - 인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막장드라마 주인공빌 게이츠 - 독점자본가 VS. 나눔전도사조지 소로스 - 금융의 연금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