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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마 7:1-5절
제 목 :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일 시 : 2017. 9. 27.
마7:1-5/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이 말씀은 산상수훈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각자가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으시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먼저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2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동일한 비판)으로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동일한 헤아림)으로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헤아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비판하는 것의 부당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판하다란 크리노 라고 하는데 구별하다에서 유래, 정죄하다, 비난하다, 판결하다, 판단하다, 고소하다라는 뜻입니다. 비판하다란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판장이 판결을 내릴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헤아리다란 메트레오라고 하는데 재다, 측량하다, 측정하다라는 뜻이며, 헤아림이란 메트론이라고 하는데 도량형, 척도(미터), 분량, 한도라는 뜻입니다. 나의 잣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측정하고 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비판하고 정죄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허물을 덮어 주고 용서해주고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자격은 있어도 비판하고 정죄할 자격은 없습니다. 우리는 공의로운 재판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비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공의로우신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죄인들을 비판하고 정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하지 않을 뿐더러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는 재판권이 없습니다. 사랑에 빚진 자로서 이웃과 원수를 사랑해야 할 의무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원수까지라도 사랑해야 할 의무는 있지만 그들을 정죄하고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분수를 넘어서 하나님께서만 할 수 있는 비난과 정죄를 서슴없이 할 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래? 왜 저렇게 살아가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라고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어떤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는 순간 자신은 마치 완전하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한다는 것은 자신이 완전하다는 것을 근거에 두고 하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비판할 일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슨 말씀을 하실지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도토리 키재기 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토리들이 누가 큰지 서로 키를 제어 보아야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차이가 나겠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똑같은 도토리일 뿐입니다.
그리고 50보 100보라는 고사성언이 있습니다.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적이 쳐들어 오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도망을 갔는데 한 사람은 50보를 도망갔고, 다른 사람은 그보다 멀리 100보나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50보를 도망을 간 사람이 100보를 도망간 사람보다 너는 왜 그렇게 멀리 도망갔느냐? 라고 나무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똑같이 도망가 놓고 자기보다 더 멀리 도망간 사람을 나무라는 것입니다. 50보를 도망한 사람이나 100보를 도망간 사람이나 둘 다 똑같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보다 조금만 못해도 나무라고 책망하고 정죄하고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정죄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눅18:9-14/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감히 얼굴도 못 들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자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높이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고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하게 긍휼을 구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다른 사람의 눈의 티가 아니라 먼저 자신의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고 했습니다!
3-5절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실수를 할뿐 아니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술 더 떠서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빼려고 하는 누를 범합니다.
티는 카르포스라고 하는데 카르포(마르다, 수축하다, 줄다)에서 유래했으며, 마른 줄기 또는 잔가지, 짚, 왕겨, 여물을 의미합니다. 작은 티끌이라는 뜻입니다.
들보란 도코스라고 하는데 재목의 토막, 대들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옥을 지을 때 지붕에 사용하는 석 가래를 걸치기 위해서 가운데 기둥처럼 걸어 놓는 큰 통나무를 의미합니다. 티끌은 정말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대들보는 너무나 커서 쉽게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티와 들보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수가 무엇이냐 하면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너무나 작은 티는 쉽게 잘 보면서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를 자신이 고치겠다는 것입니다.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눈에는 상대방의 눈에 있는 티보다 훨씬 큰 들보가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보고는 그 사람을 고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날마다 그런 실수를 합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서 작은 허물이 보이거든 나에게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큰 허물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고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ㅇㅇ 성도의 허물이 보입니다. 왜 상대방의 허물이 보입니까? 상대방의 눈에 티가 보인다는 것은 내 눈에는 들보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큰 허물이 무엇인지 보여 주시고 깨닫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서 작은 허물이 보인다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1) 먼저 나에게는 저 사람보다 더 큰 허물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상대방에게서 작은 허물이 보일 때 이제는 상대방을 정죄하거나 고치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나에게는 저 사람보다 더 큰 허물이 있을 텐데 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서 자신의 부족함과 단점을 깨닫고 자신을 고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눈에 티를 보면서 자신의 눈에 들어 있는 큰 들보를 빼내는 복된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2) 둘째로 상대방의 눈에 티를 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뺀 사람입니다.
만약 내가 상대방의 눈에 티를 빼 줄 수 있다면 나의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낸 사람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나에게 붙여 준 영혼들이 나로 인하여 삶이 변화되고 새롭게 된다면 나의 눈에서 들보를 빼었다는 뜻입니다. 내가 먼저 새롭게 되지 않고는 상대방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붙여 준 영혼들이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말썽만 부린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즉 상대방의 눈에 있는 작은 티를 빼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 눈에 있는 들보를 아직 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말씀에 따르면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빼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빼 줄 수가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아직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빼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 눈에 있는 티를 빼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 내어야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빼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 내가 만나고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의 삶이 변화된다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눈에서 들보를 빼 낸 사람이라야 상대방의 눈에 있는 티를 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8:1-11/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돌로 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돌을 버리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작 돌로 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지만 예수님께서도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같은 내용을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눅6:39-42/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고 했습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람의 허물이 보이면 돌을 들어 치려고 하지 말고 내 안에 숨어 있는 허물을 보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서 허물이 보일 때 정죄하고 비판하려고 하지 말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온전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몸 속에 있는 쓴 뿌리가 뽑혀지고, 견고한 진이 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을 온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할레루야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