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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의 상 아래에서 베르그손 철학의 횡단
김진성 저/류지석 편 | 파이돈 | 2025년 10월 27일 P. 336.
벩송의 이해를 위한 우리나라의 기본서가 나왔다.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서양 철학사 수입에서 20세기에 프랑스철학 수용을 통한 사유의 한 계열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1980년대 초 우리의 한계와 현재 2020년대 코로나 이후 달라진 상황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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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 선배님의 이야기가 나오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류지석: 베르그손 "웃음(1900)"」(천사흘밤, 22.03.09)에 관한 글을 쓴 이래로, 솔직히 나의 골머리 앓는 이야기들을 쓰기 때문에, 잊고 살았다. 그렇다고 벩송이 말하듯이 기억은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시 표면 위로 오르지 않았을 뿐, 지속하며 흐르고 있다. 1980년 초반부터 2-3년간 선배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우은주가 물질과 기억(MM)을 읽고 있을 때는, 선배님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추억과 기억, 신체적인 것과 의식적인 것도 구별하지 못하고 데카르트의 이분법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1983년부터 일 것이다. 내가 창조적 진화를 읽을 때, 1장과 2장에서 생물학적 사실들에 대한 논의를 벩송을 통해서 또는 프랑스 철학사 속에서 이해하기보다, 생물학 또는 진화론을 통해서 거꾸로 읽어 들어갔기에 벩송의 진의를 몰랐다. 박홍규선생님의 원문 설명에는 끊임없이 공간과 시간의 대비로 되어 있었는데, 그 당시에 벩송의 본문에서 그런 해석이 나온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아마도 지금도 본문을 우주론과 우주발생론의 차이로서 설명한다고 해도, 분명해지기보다 혼란스러울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질문을 드리면, “자네, 첫 작품 시론을 잘 읽어보게” 또는 “수학사를 읽게”. 아마도 그 때 당시 전파과학사에서 나온 문고판으로 공간의 역사와 산술학(수?)의 약점이 있었는데, 재미있게 읽고 또 읽었고, 그리고 무한이야기 또는 수학사의 뒷이야기도 읽었었다. 박선생님은 87년엔가 모리스 클라인의 수학의 확실성(2010년에 재번역이 나옴) 번역이 나오자마자 읽어보라고 하셨는데, 이 책이 당시의 언어분석철학과 연결들을 볼 수 있었지만, 벩송의 사유에 접근 통로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곧바로 나온 이종권 번역 수리철학은 분석철학의 복잡한 이야기로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서울대 출판사의 수학사는 수식이 너무 많았다는 기억이 있을 뿐이고, 철학적 사유와 연관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덧붙일 흥미로운 것은 안재구 선생님의 수학문화사의 고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다른 수학책들은 수학에 관한 이야기 정도였다. 수학의 중요성은, 코로나 시절에, 벩송의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들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박선생은 플라톤에게 수학이 벩송에게 생물학이 철학의 토대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왜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박선생님의 매주 토요일 벩송 강독의 수업을 마치고 교문까지 걸어 나오면(일요일은 플라톤 강의), 거의 매번 김진성 선배는 박홍규선생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오는데, 아테네 학당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의 사유와 선배님의 생각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소위 말해서 끼어들 짬밥이 되지 않았던 나로서는 뒤에 따라갈 뿐인데, 거의 매번, 선생님과 헤어질 때쯤에는 선배님이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써주세요 라고 했고, 선생님은 김진성에게 자네가 쓰게, 그다음 번에도 자네가 쓰게 하셨다. 아마도 선생님은 플라톤의 화두에 빠져있었을 것이다. 선생님과 헤어지고 뒤풀이에서 윤구병은 또 다른 벩송을 해석하면, 이태수는 웃는 편이고, 김선배는 윤구병의 설명이 박선생님과 다른 점이 있는지를 탐문하곤 했었다. 하여튼 막걸리 마시면서 좋은 분위기인 것을 알겠는데,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한 분들과 사바세계의 디오게네스 같은 윤구병 사이의 이야기의 흐름은 석사과정에 있었던 나로서는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아니라, 혼돈의 세계에 들어갔던 것 같다. 김진성 선배님의 성대 석사과정 강의에 참석했을 때, 벩송의 원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박선생님이 무어라고 말씀하셨나고 나에게 설명해 보라고 하셨는데, 낸들 잘 이해하지 못한 이야기를 박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아마도 사키야무니의 설법처럼 잘 전달했더라면, 선배님이 ‘여시아문’이라 했을 것인데, 매번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선배님은 수강자들에게 다시 길게 설명했다. 이 차이는 선배님은 벩송 원문의 용어들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수강자들에게 이해를 돕도록 설명했었던 것 같다. 나로서는 그 때 원문을 잘 따라가야 하는데, 생물학에 관한 책과 우리나라에 소개된 생물학의 용어로 사고했으니 뭔가 톱니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선배님은 매 강의마다 한번쯤은 나에게 선생님은 이 문장을 어떻게 설명하시던가 라고 물어서, 나로서는 대답하긴 했지만, 선배님은 아마도 수강자들에게 달리 생각하는 방식을 가르치셨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선배님이 세상을 뜨고 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나서 한가지 생각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선배님의 동향 중에서 세상을 뜨기 전에 유마경을 읽는 교수 모임에 참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적해 보려고 했는데, 교수 사회의 이야기라, 떠돌이 강사로서 추적해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후배들은 윤구병과 이태수 사이의 차이를 잘 몰랐지만, 선배님은 명석한 논리의 이태수 선배에게 학문을 배우고, 세상사 관심에는 윤구병에 가깝게 간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윤구병에서 벩송의 무관심은 하나의 관심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관심일 것이다. 선배님의 무관심의 주제는 욕심이나 사심 없는 마음이 종교적인 것으로 보았으나, 당시에(박 선생님도) 기독교에서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이에 비해 윤구병은 (내가 지금 생각하기로) 벩송의 지속이 색즉시공의 공의 세계로 보았던 것이 아닐까 한다. 나에게 이런 생각의 변화들은 과거 1980년대 초반과 2026년 사이의 긴 빈 공간이 아니라, 우여곡절을 겪은 긴 지속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로서는 지금도, 박홍규 선생님은, 플라톤이 시간과 공간 양쪽을 다루었다고 하듯이, 양면성의 두 갈래인 윤구병과 이태수라는 출중한 두 제자를 가졌던 것 같다. 전자는 불교의 바탕위에 벩송 쪽이고, 후자는 논리학의 바탕위에 아리스토텔레스 쪽인 것 같다. 그런데 선배님이 학문을 계속하였다면, 윤구병의 사유에 가까이 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리고 아마도 선배님도 프랑스 철학에 대해서도 나이가 많아지면, 푸꼬보다 들뢰즈 쪽으로 기울어져 선문답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넋두리 같은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우리나라 21세기에 앵글로색슨 철학이 지배적인데 대해, 선배님은 프랑스 사유의 특성을 살리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26, 58W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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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뒷 표지에 짧은 글이 두 가지 소개되어있다. 그 중 하나는 <... 베르그손의 가장 훌륭한 연구가인 장켈레비치는 그의 철학의 의의를 다음과 같은 시적인 표현으로 집약한다 “이 아침의 환희, 이 저녁의 평화”> 이다. - 종교적 표현이지만, 삶이란 태어나면서 환희, 떠나면서 평화이리라. 유태계 프랑스 귀화인 장켈레비치는 1927년 벩송을 만난 이후로 계속해서 그와 편지를 교환했다. 그리고 쟝켈레비치는 셸링에 관한 박사학위를 하는 시기에(1932), 베르그송(1931)에 관한 단행본을 썼다. 이 단행본은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1932)과 사유와 운동자(1934)이 나오기 전이라, 나중에 마지막 장을 대폭 수정하고 또한 부록을 첨가하여 다시 출간 했다(수정증보 1959, 갈무리 출판사, 류종렬, 2018)).
“이 아침의 환희, 이 저녁의 평화”라는 표현은 장켈레비치가 유대인으로서 벩송과 동류의 사유로서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즉 생성과 변화의 관점에서 보았을 것이다. 한 평생이라는 삶의 과정은 누구나 환희에서 시작하여 평화로 마감하길 바라는 것이 화두일 것이다. 그럼에도 저 표현은 벩송이 제시한 삶의 과정에 대한 주제와 맞부딪히는 주제,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에 화답하는 선문답과 같은 것이다. 즉 어디서 왔거나 태어남에서 환희, 그리고 무엇으로 살았는가는 그 사람의 인격 또는 영혼의 주체가 각각이 고유함이 있다는 것이고, 그 고유함을 이루려는 노력에서 우주는 각각을 신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이라고(MR, 마지막 문장) 벩송은 낙관적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장켈레비치의 ‘저녁의 평화’ 즉 (종교성을 포함하여) 어디로 가든 평화가 가득하길 바랐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장켈레비치가 설명한 벩송이 벩송의 사상과 그의 내면을 잘 표현했다고 하지만, 아마도 심리학적이고 종교적 심성으로 보아, 벩송이 ‘말로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가 말하는 신비가라는 현자는 노력하는 삶의 과정을 지나 평화와 영원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리라.
쟝켈레비키가 벩송의 사상에서 유일신앙의 방식이 아닌 종교성과 성스러움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벩송은 인민들 사이의 공감을 통한 성스러움을 인간이 스스로 생성해 간다는 쪽이다. 불교에서 마치 불성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완성 또는 목표로 향한 노력에 중요한 것은 한편으로 이법의 추리도 필요하고,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감을 이루는 것이라 한다. 이런 공감의 성취는 음악에 비유되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이 음악과 자연(책력)의 조화는 플라톤의 조화중항에도 있지만, 공화의 의미에서도 백성들 사이의 상호이해와 공명의 길에도 있다. 그런데 장켈레비치는 저술에서 이런 공감과 조화(직관)에 대한 벩송 사유의 뿌리를 동구와 러시아 음악 전통과 연결시켰던 것은 생소하고 흥미로웠다. 벩송의 아버지가 폴란드 출신의 음악가이라는 점과, 벩송이 아버지의 오페라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우 높이 평가한 점에서도 공감의 연대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음악의 영향이 영혼에 관한 것만큼이나, 벩송은 지적 발전에서 당대의 수학의 역할도 잘 알았다. 말하자면 벩송의 공감의 직관은 수학에서 논리주의에 대립되는 직관주의 등장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벩송은 주지주의자들이 도덕과 인식을 같은 평면 위에 놓는데 비해, 도덕과 형이상학(자연의 배후학)을 같은 계열에 놓기를 좋아하는 듯하다. 벩송은 도덕의 배후를 자연이라고 보기 때문이고, 주지주의자들은 이법을 깨닫는 인간 오성(지성)이 도덕론의 체계를 세울 수 있다고 보는 것에서 온 것 같다. 아마도 “형이상학”이라 번역하는 “자연의 배후학(타 메타 타 퓌지카)”은 자연으로부터 문제인 것이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문제 삼은 것은 아닐 것 같다. 그 자연의 일부로서 영혼 또는 지혜에 대한 애착과 사랑, 그리고 자기도 모를 완성을 향한 욕망이 철학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이래로 벩송이 서양철학사 2500여년 동안 침묵해 왔던 영혼의 발생과 생장으로서 우주발생론을 체계화하려는 새로운 철학사적 인물일 것이다. 벩송의 이런 관점을 들추어낸 철학자는 우리나라의 박홍규(1919-1994)와 프랑스의 들뢰즈(1925-1995)일 것이다. 나에게 이런 설명이 과장이라고 하는데, 잘 들여다보면,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는 세계(또는 우주론)의 움직임이 먼저이고, 그리고 그 중에서 비례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부동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지주의자가 부동으로부터 운동을 설명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 움직이는 것이 지구이기도 하지만, 인간에게서는 평생 동안에 살아서 움직이는 영혼이다. 이런 영혼의 안녕과 평온을 생각한 이는 소크라테스와 싯달다이다.
다른 하나는 수학사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공간과 시간이라는 것을 다루는 방식에서, 비례중항과 조화중항에 대한 것이다. 박홍규가 말하듯이 플라톤은 두 중항을 함께 다루었다고 하고, 아리스토텔레스 공간(비례중항)을 토대로 삼았고, 벩송은 시간(조화중항)에서 출발했다고 하였다. 박홍규는 벩송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하면, 수학사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수없이 강조했다. 브룅슈비끄의 수학사를 읽을 때에도 이 강조가 무엇인지를 몰랐었다. ‘내 나이 일흔이 되어서’ 브룅슈비끄의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Les étapes de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1912)을 번역하면서 또 세심하게 읽으면서, 공간과 시간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왜 플라톤이 변증론자이며, 두 다른 계열을 통일하려고 했던가? 그렇지만 결국 통일을 이루지도 못했다. 이런 통일성, 보편성, 절대성을 이루려는 독단과 착각이 서양철학사의 두 줄기 중의 하나, 정지로부터 시작하는 철학적 사고이다.
정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고요하고 평온한 것이 아니다. 이 정지는 조그만 외적인 영향에도 변하기도 하고, 내적인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 끊임없는 움직임, 즉 매일 동일반복하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조그만 변화를 일으키며 회오리처럼 변화해 가는 과정이 평온과 평화의 과정을 이루는 이질반복일 수 있다. 즉 매일 동질적 반복 같지만, 그 반복을 리토르넬로처럼 하루하루 이어가면서 긴 과정 속에서 보아 이질적 반복이 진솔한 삶일 것이다. 이 동일반복이 곧 질적인 이질반복이라는 것의 깨달음이 벩송의 창조적 진화일 것이다. 그 진화가 평화와 평온일 것이다. (3:33, 59M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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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뒤 면 중에서 다른 하나는 <베르그손의 철학이 갖는 가장 중요한 철학사적 의의는 ‘영원의 상 아래서(sub specie aeternitatis)’ 세계를 바라보는 존재 우위의 형이상학에 반대해 ‘지속의 상 아래서(sub specie durationis)’ 생성과 변화를 세계의 근원적 실재로 파악하는 역동적 형이상학을 제시 한데 있다. - 저자 >이다.
선배님은 박선생님의 우주발생론 또는 자연론으로서 벩송을 설명하는 것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에 서구 철학의 수용에서 서울에서는 크리스트교와 심리학의 정신주의에 영향 하에 있었다. 이 영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라노이아 중심의 사고이다. 선배님도 1982년 프랑스 철학의 동향에 대한 소개에서,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자들로, <“푸꼬(1926-1984), 라깡(1901-1981), 데리다(1930-2004), 알튀세르(1918-1990)”>을 꼽았던 것도 서울의 분위기 탓일 것이지만, 생성론 또는 우주발생론에 좀 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당연히 들뢰즈(1925-1995)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아마도 선배님(1947-1984)이 선생님(1919-1991)과 더불어 더 오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면 우리나라 서양철학의 수용의 터전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 하면, 나로서는 벩송과 스피노자의 사이에 학문의 유비가 가깝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두 유대인은 자연(또는 우주)을 신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벩송은 생성론자로서 “우주가 신들을 만드는 기계”(MR, 마지막 문장)이라고 하였듯이, 스피노자의 자연 즉 신은 인간의 삶을 풀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벩송의 전 저작들 속에서 스피노자 부분들은 직관으로 하나(전체)에서 일관성 있게 펼쳐나가는 사유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런 일관성 또는 방향이 벩송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1996년인가 스피노자 전공자와 밤을 세워 이야기하고 난 뒤, 나는 거의 1년 동안 스피노자에 빠져 있었다. 그때 감각으로 스피노자(1975)(모로, 다른세상, 2008)의 책을 번역했었다. 그런데 긴 시간이 지난 후 코로나 기간에, 2017년부터 나온 벩송의 꼴레쥬드 프랑스의 강의록들을 읽으면서 놀랐고 달라졌다. 벩송은 강의록에서 공간론의 단위 설정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라고 명시하였다. 이 단위를 원인으로 삼으면 부동의 철학이 된다. 스피노자는 이 단위를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으나, 기하학의 방법에 따라 풀어내었다는 것이 생명론의 생성이 아니라, 연역적 추리의 풀어내기라는 것이다. 즉 스피노자는 수학적 연역과 사물(자연)의 [스콜라적인] 논리적 추리를 대등한 관계로 놓았다. 이로서 영원의 상하에서 세계의 펼침(생성이라기보다)을 제시한 것이다. 결국 스피노자는 벩송의 관점으로는 상층의 풀림과 퍼짐이지, 심층의 발생과 생장이 아닌 셈이다.
이쯤에서야 박선생님의 우주발생론과 우주론의 차이가 다시 생각이 났다. 박선생님은 수학사를 읽어야 서양철학이 보인다고 했는데, 왜 수학사를 잘 이해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나로서는 수학사를 여러 권 읽었지만, 철학사와 수학사 사이의 연관은 단지 이러할 뿐이었다. 고대철학은 산술학보다 기하학을 수용한 플라톤에 의해서, 그리고 근대철학은 데카르트의 분석 기하학이, 그리고 1800년 중반 이래로 여러 함수논리와 행렬이 철학에 영향을 미치면서 개연성이론이 전개되었다고 생각했고, 이런 개연성을 통합하여 하나의 원리 또는 공리로부터 통일성의 체계를 세우려다가 20세기 시작에서 파리의 수학자 대회 이래로, 수학사의 파라독사와 언어논리의 파라독사로서 통일성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여겼다. 그런데 수학사의 논리와 자연에 대한 이법의 논리는 전혀 다른 점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20세기 후기 구조주의 이래로 자연에 대한 사유의 전개에서 확장과 수렴의 이중성이 등장하였을 것이다.
선배님인 박선생님의 우주발생론의 시간론의 철학을 잘 이해하여 우리 터전에 펼쳤더라면, 어쩌면 경성-서울이라는 학문의 터전에 다른 방법들을 제시했을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박선생님의 설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에밀 브레이어의 철학사(1964)와 요즘 번역하고 있는 브룅슈비끄의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를 검토하면서, 박선생님의 철학사의 관점을 선배님이 잘 이어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박선생님이 김진성이 세상을 뜬 후, 프랑스 철학의 도입이 한 세대 늦어질 것이라고 한탄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말씀이 진실일 것이다. 물론 1995년 이정우가 푸꼬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2000년대 초 엉뚱하게도 문학 평론 쪽에서 들뢰즈가 수입되면서 프랑스 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선배님이 지금도 활동하신다면, 프랑스철학의 수용에 대한 갈래를 잘 정리할 뿐만아니라, 어쩌면 앵글로색슨철학이 경성-서울을 지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박홍규의 서양고대철학에서 프랑스철학의 중요 흐름을 잡아서 설명해 주었을 것이다.
앵글로색슨 철학처럼, 서양철학을 서양의 각국의 언어가 발달하는 근대에서부터 철학이 전부인 것처럼 선전되고 있는 것도 일제와 미제의 영향일 것이다. 이제 다른 이야기 하나 덧붙이자. 고대 지중해의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유가 르네상스 이래로 다시 시작하였을 때, 중요한 것은 각 나라의 (언어 문자화가 아니라) 입말의 발달로 인민의 의식이 성장하였고, 게다가 입말의 문자화로서 퍼져나가는 쿠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바탕(인프라)을 이루었다. 이로서 17세기에 자의식의 발현과 18세기 자연에 대한 연구가 표면화되었다. 그런데, 어쩌면 코로나 이후에 거의 3년동안 AI라는 소통의 방식이 입말보다 더 일반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누리소통에서 우리나라는 입말과 소통의 연결이 문자화의 일반화와 나란히 간다는 점이다. 자의식의 표면화 이래로 전지구적 확장의 길을 가는 것이 우리 입말과 누리소통의 이미지와 문자가 같이 가는 것이 아닌가한다.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철학을 다시 볼 필요 있다.
프랑스 역사에서 문자의 기록으로 기원전의 역사도 없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기를 그들의 철학의 시작은 8세기경이다. 그럼에도 재빨리 인민의 입말을 일반화하고 그리고 문자화하여 자연과 인간의 의식을 다루었다. 이로서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하였고,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수재와 천재는 철학과와 수학과를 가서, 세계 사상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누리소통(SNS)과 표면의 확장으로 인공지능(AI)의 역할을 통한, 현실의 공시태뿐만 아니라, 영토의 기나긴 발전과 변화에 대한 통시태의 흐름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인간의 통시태에서 한 세대의 리토르넬로처럼 보이는 이질반복을 거쳐 가야 한다. 아마도 이런 통시태의 흐름이 흥미로운 확장과 귀결을 보여줄 것이다. 지나가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점에서 프랑스사유와 우리사유 사이에서 상동구성과 상사조성의 소통과 공명이 많을 것이라 본다. 프랑스 철학이 이런 장점이 있다고 알고서 한 공부는 아니지만, 흥미로운 것만은 분명하다. 그 시작에 박홍규 선생님이, 그를 이어가려던 김진성 선배님이 있었던 것은 추억들로서만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5:41, 59NKB) (6:11. 59N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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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엮으며
1부 지속과 변화의 사유: 시론에서 두 원천까지
1. 진정한 자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2. 비합리주의와 새로운 실재론
3.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 지성과 도덕적 실천의 문제를 중심으로
2부 무관심과 삶에 대한 주의: 기억을 찾아가는 아리아드네의 실
1. 들어가는 말
2. 지속, 기억과 의식
3. 뇌, 삶에 대한 주의의 기관
4. 베르그손의 원뿔에 대하여
5. 의식의 여러 평면들
6. 꿈, 잘못된 식별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의 파노라마적 비전
3부 베르그손과 프랑스 철학
1. 베르그손의 무관심과 삶에 대한 주의
2. 베르그손 철학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프랑스 유심론과 습관의 문제
4. 낙관론, 비관론, 그리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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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엮으며 5
저자는 베르그손 철학을 분석하면서 잘 알려진 기존의 이원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 ‘무관심’과 ‘삶에 대한 주의’라는 두 개념의 역할을 부각했다. 바로 이점에서 해당 논문의 독창성과 철학적 깊이가 드러난다. (17)
김진성 선생님은 생전에 “언젠가 책을 쓰게 된다면 좋은 형이상학 교재를 한 권 남기고 싶다”라는 뜻을 여러차례 말씀하셨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형이상학’ 강의에서 프랑스의 낭만주의 시인 라마르틴(Lamartine, 1790-1869)의 시 「호수(Le Lac)」(1820)를 소개하시며, ‘시간’을 주제로 강의하였다고 한다. (22)
Ainsi,
toujours pousses vers de nouveaux rivages,
Dans la nuit eternelle emportes sans retour,
Ne pourrons-nous jamais sur l'ocean des ages
Jeter l'ancre un seul jour?
O lac ! l'annee a peine a fini sa carriere,
Et pres des flots cheris qu'elle devait revoir,
Regarde ! je viens seul
m'asseoir sur cette pierre
우리 단 하루만이라도 이 세월의 대양에
닻을 던질 수는 없을까?
" Aimons donc,
aimons donc ! de l'heure fugitive,
Hatons-nous, jouissons !
L'homme n'a point de port,
le temps n'a point de rive;
Il coule, et nous passons ! "
인간에겐 항구가 없고, 시간엔 기슭이 없어요: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지나가버려요! (23)
- [조주선사와 6조 혜능의 선문답 속에도, ‘거울의 받침대도 없고, 먼지 낄 거울도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벩송의 철학이 선문답과 같은 것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영혼은 먼지 끼는 거울도 아니고 받침(공간)이 있어야 하는 거울도 아니다. 그럼에도 고정된 정지도 아니고 끊임 없이 생성하는 변화의 과정(창조적 진화)이다. (58WMC)]
제1부 지속과 변화의 사유: 시론에서 두 원천까지 27.
1. 진정한 자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29.
2. 비합리주의와 새로운 실재론 60.
3.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 지성과 도덕적 실천의 문제를 중심으로 95.
예수를 포함한 기독교 신비가들의 종교 체험을 바탕으로 동적 도덕의 이념을 도출한 베르그손의 이론은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기독교 철학자인 통게덱(Tonquédec)은 베르그손이 기독교를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고찰함으로써 구세주로서의 예수의 의미와 종말론을 본질로 하는 기독교 사상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평가했으며,저명한 중세 철학자인 질송(Gilson)은 베르그손 철학의 기독교 접근은 완전히 실패라고 언명하고 있다. (86)
기독교 사상과 철학사이에 원리의 대립을 분명히 하는 브레이어(Bréhier)는 서양철학사 전체를 통해 이론상 순수히 철학적이며, 동시에 본성상 기독교적인 철학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마치 기독교 물리학이나 기독교 수학이 성립할 수 없듯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 철학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87)
베르그손 철학이 기독교에 접근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창조적 진화에서 어느 정도 예비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베르그손은 “우주가 지속한다.(l’univers dure)”(EC, 11)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우주 전체가 하나의 기능에 통일되어 있으며, 끊임없는 창조의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그에 의하면, 철학의 궁극 목적은 우주의 생성의 근원에 전인적으로 합일하는데 있다. 베르그손은 철학을 인간 의식이 그가 유래한 살아있는 원리(principe vivant)에 일치하는 것, 우주의 창조적 노력(effort créateur)과 만남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EC, 369). 그런데 기독교의 인격신, 그리고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의 종교체험은 이러한 베르그손의 형이상학과 통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88)
2부 무관심과 삶에 대한 주의: 기억을 찾아가는 아리아드네의 실 145
[김진성의 박사학위 논문 2장인데, 류지석의 번역이다.]
1. 들어가는 말
2. 지속, 기억과 의식
3. 뇌, 삶에 대한 주의의 기관
4. 베르그손의 원뿔에 대하여
5. 의식의 여러 평면들
6. 꿈, 잘못된 식별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의 파노라마적 비전
그래서 우리가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불러내려 할 때, “우리는 우선 과거 일반 속에, 그리고 나서 과거의 어떤 지역에 다시 위치하기 위해 현재에서 벗어나는 어떤 고유한(sui generis) 행위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MM, 148). 들뢰즈는 이 행위를 ”존재론에서의 도약(le saut dans l’ontologie)이라 명명했다.바로 이 도약이 이루어진 후에야, 기억은 잠재적 상태에서 현실적, 즉 심리적 상태로 전환된다. (178)
철학을 일종의 과학적 방향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한다. 삶에 대한 주의와 무관심, 기억일반을 설명하는 개념들은, 꿈, 잘못된 식별[거짓 재인식],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의 파로나마 영상(vision panoramique)이라는 특수한 문제들에 새로운 조명을 던진다. 이 세 주제는 베르그손의 기억 이론에서 주변적 위치를 차지하는 듯 보이지만, 삶에 대한 주의와 무관심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196) [내가 보기에 이 세 가지 중요한 사례들은 무의식이 없는 의식이 아니라, 내재하는 또는 내속하는 의식으로서 내부의식(in–conscient)이며, 실재성이다. 의식의 내재성이 기억의 총체이다.]
“만약 삶에 대한 주의가 충분히 강력하고, 실용적인 이해관계로부터 충분히 벗어나 있다면, 그것은 나누어지지 않은 현재 속에서 의식하는 개인의 과거 전체 역사를 포괄할 것이다. 이는 순간적인 것이나 동시적 부분들의 집합으로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현재하면서 또는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으로서의 과거이다. 이것은 가설이 아니다. ... 예외적인 경우에, 주의가 갑자기 삶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자 마법처럼 과거가 다시 현재가 된다. 갑작스러운 죽음의 위협이 불쑥 다가옿는 사람들 아시에서 ... 주의의 급격한 전환, 즉 지금까지 미래를 향해 있었고 행동의 필요에 몰두해 있던 의식의 방향이 갑자기 무관심해지는 것과 같은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이것만으로도 수많은 잊힌 세부사항들이 회상되고, 개인의 전체 역사가 움직이는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PM, 170-171) [「변화의 지각(La perception du changement, 1911)」(PM))(218)
3부 베르그손과 프랑스 철학 223
1. 베르그손의 무관심과 삶에 대한 주의 225-
2. 베르그손 철학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프랑스 유심론과 습관의 문제
4. 낙관론, 비관론, 그리고 신. 311 - [「낙관론과 비관론, 그리고 신」, 월간조선, 1982, 10.]
현대 프랑스 철학은 크게 베르그손의 생[생명]철학, 사르트르의 실존[현존]주의 시대, 그리고 그 이후 등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00년대를 전후한 제기에는 베르그손 이외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현대 프랑스 철학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관념론자 브렁슈빅(Brunschvicg, 1869-1944), 표상의 근원적 제 요인론(Essai sur les éléments principaux de la représentation, 1907)의 저자 아믈랭(Hamelin, 1856-1907), 기독교 철학자 블롱델(Blondel, 1861-1949)이 있다. 특히 이중에서 베르그송, 블롱델, 멘드비랑(Maine de Biran, 1766-1824)과 함께, 독일 철학의 헤겔, 후설, 하이데거의 3H에 대비해, 프랑스 유심론 전통의 3B로 통한다. 이차대전을 전후한 2기에는 사르트르 이외에 마르셀의 유신론적 실존주의,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 리쾨르의 의지의 철학, 무니에의 인격주의, 라벨의 존재론, 그리고 바슐라르의 상상력의 인식론 등이 있다. 1950년대 이후의 3기에는 무엇보다도 발생학적 인식론의 피아제, 구조주의의 레비-레비스트로스 기독교적 진화론의 테야르 드 샤르댕이 있으며, 이 밖에 푸꼬, 라깡, 데리다, 알튀세르 등이 인류학, 언어학 그리고 맑스 철학 등에서 새로운 모색의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 (311-312)
이 글에서는 이3기에서 각각 한 사람씩 뽑아, 베르그손, 사르트르, 그리고 테야르 드 샤르댕만을 고찰한다. (312)
[이 글이 월간조선에 실린 글이라 한다(1982). (80년 후반 귀국?) 귀국하여 얼마되지 않았을 시기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프랑스 철학이 제대로 소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여기서 브룅슈빜을 언급했던 것이 흥미롭다. 브룅슈비끄 1982년 당시에도 수학에 관한 이야기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 나도 1987년 모리스 클라인의 수학사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잘 못랐고, 프랑스에 가서야 끄세쥬 문고의 수학사(산술학사)를 흥미있게 읽고서야 브룅슈비끄의 이름을 들었다. / 나중에서야, 브룅슈비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수학철학의 제 단계들(1912)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박홍규선생님이 A와 B를 자르는 설명을 매우 많이 했었는데, 플라톤 속에 양의 분할이 아니라 질의 분할에 대해 설명을 고심했던 것으로, 이제야, 느낀다. 이런 분할 또는 자름의 도구는 무엇인가? 또는 도구가 있다면 무엇을 지칭하는가? 등이 선생님의 고민이었을 것이다. ]
[위 글에서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자들, “푸꼬(1926-1984), 라깡(1901-1981), 데리다(1930-2004), 알튀세르(1918-1990)”의 소개에서 들뢰즈(1925-1995)가 빠진 것이 흥미롭다. 아마도 1982년 당시에 후기 구조주의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고, 앵글로색슨의 지배와 연관 속에서 프랑스철학자들을 연결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지금도 프랑스 철학을 그대로 읽기보다 앵글로색슨에 윤색되어 읽고 있다. (59MMB)]
(9:20, 59NKB) (9:35, 59NKC)
# 참조: ----
제1부 「진정한 자유의 의미는 무엇인가」(29-59),
- 「비합리주의와 새로운 실재론」(60-94),
-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95-143)
제2부 「베르그손 철학에서 무관심과 삶에 대한 주의」 - 기억을 찾아가는 아리아드네의 실
학위논문 2장(류지석 번역) (147-221)
제3부
- 「베르그손의 무관심과 삶에 대한 주의」
- 「베르그손 철학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프랑스 유심론과 습관의 문제」
「낙관론, 비관론, 그리고 신」.
<만일 사람들이 이제 역사철학으로 되돌아온다면, 사람들은 꽁트의 의도에서 (그리고 그가 이에 대해 매우 확신하는 이유인데), 역사철학이 마치 세 상태의 법칙의 사회학에로 적용처럼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을 볼 것이다. 고대의 다신론으로 진행되었던, 유일신론의 중세는 신학적 믿음 위에 세워졌다. 이행의 시대에서 부정적 위기는 형이상학적 관념들 위에 세워졌다. 결국 결정적이고 미래의 인류애 상태는 실증주의 위에 세워졌다. 신학적 상태와 군사적 정치 사이에 친근성이 있다. 이 둘은 서로 서로 일종의 폭력에 의해, 그리고 일종의 상층에 의해 사회적 통일성을 확립했다. 노예제와 강요된 노동은 이런 상태에 연결되어 있다. 형이상학적 상태와 인민 주권과 인간의 권리들의 이론 사이에도 친근성이 있다. 인간들은 거기에서, 마치 이론들 사이에 동등한 통일성처럼, 형이상학적 힘들의 방식으로 추상적으로 고려되었다. 실증적 상태와 산업적이고 평화적인 발전 사이에 친근성이 있다. 꽁트는 1841년에 완전히 평화로운 시대의 마지막 도래를, 식민지 체제의 쇠퇴를, 내부의 무질서의 억압에 맞는 제한된 군대의 역할을 예견한다(강의, VI, 350). (774) 브레이어, 철학사III, 774. 6권 제15장 프랑스에서 사회철학(연속): 오귀스트 꽁트: 브레이어는 꽁트 전체 설명에서 전쟁이란 용어를 쓰지 않은 것 같다. 천야의 번역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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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1947-1984) 충남 아산, 용산중고, 서울대 철학과, 육사교관, 몽펠리에대학 박사. 1980년 3-8 독일에서 학술교류, 1981년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1974, 「베르그송과 프루스트」, 육사논문집, 12권, 1974, pp. 19-42.
1974 「Bergson에 있어서 무관심의 개념에 관한 고찰」, 철학연구, 철학연구회, 9권, 1974(11-12월호) pp. 113-128.
1980 박사논문. 몽펠리에 대학 “Désintéressement et attention à la vie dans la philosophie de Bergson” (1980년 5월)
「전체주의 비판」 포퍼 저서에 대한 비평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 in 서양철학을 움직인 100권의 책
1980 「베르그송에 있어서의 자유의 문제」 in 문제를 찾아서, 「베르그송의 자유론」, in 철학연구(1982), 이 책에서 개고된 글이 수록 - 「진정한 자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 「비합리주의와 새로운 실재론」
1980 본대학에서 한스 바그너(Hans Wgner)교수에게 제출한 “Bergson et Husserl”의 논문은 남아있지 못하다.
1981 「베르그손의 자유론」, 철학연구, 철학연구회, 17권 1981, pp 31-48.
1982 「베르그손과 비합리주의」, 철학, 한국철학회, 15권, 1982, pp. 131-153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의 습관에 관한 고찰」, 인문과학, 성균관대 인문학 연구소, 11권 1호, 1982, pp. 67-81.
1982 10 「낙관론과 비관론, 그리고 신」, 월간조선, 1982, 10.
1983 벩송의 웃음: 희극의 의미에 관한 시론 번역
1984 「베르그손에 있어서 닫힌사회와 열린사회 – 지성과 도덕적 실천의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와 인식, 민음사, 1984, pp. 161-209.
1984 「미셸 푸꼬: 현재 프랑스 지성의 별」(1984년 6월 서거에 대한 청탁의 글)
1985 베르그송 연구(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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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6 멘드비랑(Pierre Maine de Biran, Marie François Pierre Gontier de Biran, 1766-1824), 철학자, 프랑스 정신주의 선구자. 이데올로그 학회 철학(la philosophie de la société des idéologues).
1856 아믈랭(Octave Hamelin, 1856-1907), 프랑스 철학자, 네오헤겔주의자. Essai sur les éléments principaux de la représentation, 1907
1861 블롱델(Maurice Blondel, 1861-1949), 프랑스 철학자, 크리스트교 철학자.
1869 브륑슈비크(Léon Brunschvicg, 1869-1944),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 (Les étapes de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1912)
1898 포레스트(Aimé Forest, 1898-1983)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가, 그르노블대학과 몽펠리에 대학 교수, La structure métaphysique du concret selon Saint Thomas d'Aquin, Paris, Librairie Philosophique J. Vrin, 1956..
1902 라캉(Jacques Lacan, 1902-1981) 프랑스 정신의학자, 정신분석학자.
1905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 무신론적 실존주의, 프랑스의 작가, 철학자.
1908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와 쌍벽
1918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1925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프랑스 철학자. Le Bergsonisme, PUF, 1966,
1926 미셸 푸꼬(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 푸아티에 태생, 프랑스 철학자, 작가.
1960 류지석(柳智錫, 1960-), 성균관대, 프랑스 릴 대학에서 박사학위. 류지석 “베르그손 철학의 문헌학적 접근: 새 문헌의 발간과 그 의의”, 2006). / 웃음: 희극적인 것의 의미에 대하여 (Le Rire: Essai sur la signification du comique, 1900) (앙리 베르그손, 김진성, 류지석 역, 파이돈, 2022, P. 270.

첫댓글 내가 좋아하는 벩송 작품의 마지막 구절
"큰 수단을 사용하던 작은 수단을 사용하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인류는 그가 이루어 놓은 진보의 중압에 반 쯤 짓눌려 신음하고 있다.
인류는 자신의 미래가 자기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가 할 일은 스스로 계속해서 살아 남기를 원하는 지를 우선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 반항하는 지구에서 나마 단순히 살아남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신들을 만드는 기계로서 우주의 본질적 기능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경주할 것인지를,
인류는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MR, 마지막 문장이다.)
신들을 만드는 기능이 이루어지기를 노력하는 것,
진화의 과정이 어디까지 인지 모르지만,
각각이 자기 노력을 해서 보살이 될 수 있는 지를 시험해보는 것,
그렇게 우주와 또한 서로 서로 연대, 공감, 공명을 찾으면서 살아보는 것,
"인간은 어디서 왔으며, 인간은 무엇이며,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가 화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