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삼성증권 사보 10월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도전하는 사람에게 장애는 없다
세계 4대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한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 관장
“사막 마라톤을 하다보면 시시각각 포기하고 싶은 때가 많습니다. 그때 쩔렁쩔렁 방울을 울리며 뒤쫓아 오는 낙타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납니다.
낙타보다 늦으면 탈락이거든요. 낙타는 사막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에게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지요.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우리 삶에도 ‘낙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2005년 이집트 사하라사막 마라톤 250㎞ 완주, 2007년 중국 고비사막 마라톤 250㎞ 완주,
2008년 칠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250㎞ 완주, 2008년 남극마라톤 250㎞ 완주. ‘세계 4대 극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미국 대륙 도보 횡단, 캐나다 로키산맥 스큐아뮈쉬 치프봉 거벽 등반, 목포에서 임진각,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두 차례에 걸쳐 국토 도보종단. 이 남자의 삶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 관장(49). 그는 앞을 볼 수 없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장애’가 없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전북지역 최초로 시각장애인도서관 설립, 국내최초로 ‘말하는’ 보훈신문과 소리잡지 발간, 점자판 《전국 여행 가이드북》발행, 인터넷 음성도서관 개발 등 시각장애인들이 장애를 넘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동분서주해왔다.
그 결과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고, 환경재단이 선정하는 ‘세상을 밝게 만드는 100인’에 뽑히는가 하면 ‘자랑스러운 전북인 대상’ ‘전주시민장 공익장’ ‘한국장애인인권상’ 등을 받았다.
2006년부터 2010년 봄까지 전주시의회 의원을 지낸 그는 적극적인 의정 활동으로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지방의원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0 타클라마칸 사막 마라톤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그를 지난 9월 중순 전주에 있는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에서 만났다.
“사막마라톤을 시작하기 전, 주최 측이 전 세계 참가자들에게 저를 소개합니다. 장애인으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사람은 제가 세계 최초이니까요.
‘시각장애인도 완주하는데’라는 게 참가자들에게 자극이 되는지, 주최 측도 제가 참가하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입니다.”
2008년 그랜드슬램을 이룬 뒤에도 그는 2009년 나미브사막 마라톤, 2010년 타클라마칸사막 등 매년 사막에 도전하고 있다.
오염되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자연을 느낄 수 있어 그 매력에 빠지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사막. 그에게 사막마라톤은 어떤 의미일까?
“마라톤 코스를 짤 때 첫날을 제일 힘들게 만든다고 합니다. 포기할 사람은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거지요. 첫날과 둘째 날 고비를 이겨내고 나면 사흘째부터는 몸이 알아서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마라톤 코스는 오르막내리막이 연달아 나오는데, 그 중간 중간 체크 포인트가 있어요. 그곳에서 기록도 하고 물을 공급받는데, 잘 안 보이는 곳에 두어 바로 앞에 두고도 주저앉아 버리는 참가자가 있지요.
1박2일 동안 잠도 자지 못하고 100㎞를 계속 달려야 하는 코스도 있습니다.”
그는 사막마라톤을 하면서 우리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끝까지 달리기 위해서는 생존에 꼭 필요한 게 아니면 모조리 비워야한다는 것도 마라톤을 통해 배웠다.
그의 삶 역시 포기를 모르는 달리기와 같았다. 그가 시력을 잃은 것은 1982년, 군대에서 수류탄 폭발사고를 당하면서였다. 스물한 살에 그의 앞이 캄캄해졌다. 한동안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그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저 역시 장애인에 대해 그릇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 절망했던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이라면 스피커를 등에 메고 바구니를 든 채 동냥을 하는 모습만 떠올렸으니까요.
제가 2남3녀 중 장남인데, 화기애애하던 집에 냉기가 돌고 어머님이 부엌에 들어가 우시는 것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가까웠던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장애인 권익 높이려 전주시의회 의원에 도전
그에게 어느 날 ‘희망’이 찾아왔다. 라디오방송에서 ‘시각장애인도 대학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활을 결심하게된 것. 녹음도서나 점자책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은쟁반 위에 구슬 굴러가는 것 같은’ 목소리를 가진 아내에게 “처음 만난 순간 사랑을 느꼈습니다”라고 고백해 결혼에 골인했다.
아내는 그의 손을 잡고 어디든 갔고, 되든 안 되든 자신을 믿고 밀어준 ‘천사’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대학에 다시 들어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맹인복지협회 사무국장, 점자 주간지 기자로 활약했다. 전북시민운동연합 의정지기 단원, 전북환경운동연합 회원 등 시민운동에도 참여하면서 장애인과 사회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
전주시의회 의원이 된 것에 대해 “장애인 복지를 개선시켜달라고 힘 있는 사람 바짓가랑이 붙들고 애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도권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라고 말한다.
시의원으로 있는 동안 그는 자신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전주시 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 조례, 장애인체육 진흥 조례 제정 등 장애인관련 조례 5건 제정, 장애인체육시설 확충 및 체육예산 확대, 장애인 공동생활가정과 장애 어린이집 확대, 장애인 재활보장구 지원 확대 등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가 마라톤, 등반 등에 도전하게된 것은 1998년 안내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후부터. 안내견과 함께 한라산, 백두산 정상까지 오르고, 지리산 동계종주를 하고, 미 대륙을 도보횡단하고, 마라톤을 했다.
사막마라톤 때는 자원봉사자의 손을 잡고 달리는데, 아타카마 사막에서는 둘째 아들과 함께 달려 부자가 함께 완주하는 기록을 세웠다.
“아들도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 ‘아빠, 보따리 싸서 집으로 가자’고 했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며 달리다 보니 서로 안쓰러워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강해지더라고요. 마지막 고비인 ‘달의 계곡’에서는 강풍에 몸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어요. 배는 고픈데 주머니 속에 비스킷 하나가 달랑 남아있었습니다. ‘아빠 먹어’ ‘너 먹어’ 하면서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그 비스킷이 그만 바닥에 푹 떨어져버렸죠.”
처음 참가한 사하라사막 마라톤은 ‘마라톤 도중 사망해도 내 책임’이라는 각서까지 쓰면서 주최 측을 설득해 겨우 참가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정말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20㎞쯤 뛰었을까? ‘10분만 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졸음이 쏟아지더라고요. 바닥에 털썩 앉았더니 모래가 너무 뜨거워 엉덩이에 화상을 입을 것 같았어요. 배낭 위에 앉아 잠깐 눈을 붙였죠.
몸에서 수분이 줄어들어 그렇게 졸린 거라 하더라고요. 조금 더 심해지면 정말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고요.”
송 관장은 그러나 “극한의 고통을 이겨냈을 때의 그 희열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한다. 골인 지점을 통과할 때는 머리가 맑아지면서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진다고. 마라톤과 여행은 그의 삶에 있어서 에너지 충전소 같은 역할을 한다.
“여행을 가기 전 제가 갈 곳의 지리와 역사를 상세하게 공부합니다. 자연스레 제 머릿속에서 총천연색 영상 이미지가 생기는데, 직접 그곳에 가서 나무와 풀, 돌을 만지고 냄새 맡고, 새 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이를 더 뚜렷하게 느끼지요.
사막도 따갑게 느껴지는 모래바람, 분진 같은 바람, 아침 안개가 스며드는 느낌 등 다 달라요. 그런데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이곳이나 저곳이나 다를 게 뭐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그에게는 아직 도전해야할 목표와 꿈이 많다. 그 첫 번째는 장애인들이 책도 읽고, 맘껏 노래도 부르고 공연도 하고,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은 만드는 것. 자비로 전주시 원당동에 대지 1200평을 마련한 그는 그곳에 도서관, 쉼터, 카페를 만들 계획이다. “그곳에 와서 희망을 얻어가라는 뜻에서 ‘희망모을’이라고 이름도 지어놓았어요.”
두 번째 그의 꿈은 지구상 극지 세 곳을 모두 밟는 것. 남극은 이미 밟았으니, 북극과 에베레스트에 도전할 생각이다.
세 번째는 어디든 휠체어로 다닐 수 있게 세상의 장벽을 없애는 ‘평평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고령화로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지면 장애인이 아니라도 휠체어를 타는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날 것입니다. 이제는 집도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지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장애, 그리고 사회의 장애를 넘어 희망을 만드는 그의 도전은 계속해서 ‘진행 중’이다.
글 이선주 사진 장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