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4 부카레스트 루마니아의 수도 거리에 고풍스러운 옛 건물들 프랑스의 파리를 닮았다. 도로도 넓고 주차시설도 잘되있다, 아침에 차를 끌고 시내 중심가로 들어갔다. 시티센터에 볼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 주차하고 둘러보기로 했다.
중심가 뒷골목에 차들이 주차되어있고 빈자리가 보였다. 어떤 젊은 친구가 차를 빈자리에 대라고 막 손짓한다. 시키는 대로 그친구가 가르쳐 주는 대로 차를 주차시켰다. 그리고는 20레이를 내라고 한다. 1레이는 4.5유로 4유로를 내라는 것, 기분이 찜찜해서 영수증을 주면 주차비를 주겠다고 했다.
돈주기를 주저했드니 10레이로 깍아준다. 그러는 사이 50대쯤으로 보이는 다른 놈이 나타나서 노 프로블럼 이라고 하면서 주차비를 주라고 한다. 그렇다고 다른곳으로 차를 다시 옮기기도 귀찮고 해서 주차비 시세가 그런가 보다하고 돈을 줄려고 하는 데 잔돈이 없다. 할수없이 루마니아 돈50레이짜리를 주고 잔돈을 달라고 했다.
그 젊은 친구가 50레이짜리를 뺏듯이 가져가드니 잔돈이 없으니 바꿔오겠다고 하면서 어데론가 쫒아간다. 그리고는 나타나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고 찾아다녔지만 못찾았다. 나중에 나타난 50대도 사라졌다. 결국 시간도 없고 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50레이 11유로를 날렸다. 주차비를 비싸게 주고 부카레스트 시내 구경을 나섰다.
다음날인 6.25 브리쇼브 가는 길에 루마니아의 자랑인 아름다운 카알1세의 페레슈 성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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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쿠레슈티(루마니아어: Bucureşti, 문화어: 부꾸레슈띠)는 루마니아의 수도이다. 영어로는 부카레스트(영어: Bucharest)라고 한다. 인구는 2,272,163명(2011년)이다.
부쿠레슈티가 기록에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1459년이다. 1862년에 루마니아의 수도가 됐고, 동시에 예술, 미디어, 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중세 이래 왈라키아 공국의 수도가 되어오다가 1861년 왈라키아와 몰다비아의 합방으로 루마니아가 성립되자 그 수도가 되었다.
그 이후 부쿠레슈티는 급속도로 성장, 동쪽의 파리라는 별칭을 얻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한때 독일 제국군에 점령되어 수도를 이아시로 잠시 옮기는 일이 있었으나 곧 환도하였다.
2차 대전 중에는 연합군의 폭격을 받기도 하였고, 1945년 11월 8일 국왕의 날에 공산주의자들이 친왕당파의 집회를 진압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치하에서는 역사적 건물들이 많이 파괴되었고, 1977년 대지진으로 1,500명의 사망자가 났다.
2000년대 이후 루마니아의 경제 호황에 따라, 부쿠레슈티는 현대화되었으며 역사적 건축물들 또한 복원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전에는 경공업이 중심이었으나, 대전 후에 중공업 부문이 발전하였다. 기계제작·금속가공·차량·화학·섬유·피혁·인쇄 등의 큰 공장이 많다.
국내·국제 교통의 최대 중심지이며, 우크라이나·불가리아·헝가리·세르비아와 국제철도로 연결되고, 바냐사·오토페니의 두 공항을 통하여 국내·유럽의 주요도시와 항공로로 이어진다.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의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과학아카데미·각종 부속연구소, 700개에 가까운 공공도서관, 1864년에 창립된 부쿠레슈티대학을 비롯한 14개의 대학, 43개의 미술박물관, 3개의 교향악단 등이 있다. 신문·잡지의 발행과 도서출판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시내에는 공원과 녹지대가 많다.
인민궁전은 루마니아에서 가장 웅장하고 멋있는 건축물이다. 죽기전에 봐야 할 세계 건축에도 꼽혔으며 단일 건축물로는 미국의 펜타곤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건물이다. 이 건물을 보기 위해 루마니아에 오는 외국 관광객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루마니아 내에서도 지방에서 수도인 부카레스트로 오는 내국인 관광객도 있다.
화려한 약력과 주변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물로서 루마니아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허나 건물이 지어진 배경을 생각해보면 마냥 멋있어보이지만은 않을 것..
루마니아는 1920년대~1989년까지 오랜 공산국가였다. 그리고 1974년 공산당에서 높은 서열에 있든 차우셰스쿠가 루마니아의 대통령이된다.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조금 낙후된 현재 루마니아의 모습은 차우셰스쿠가 집권(약25년)하는 동안 비롯되었다고. 차우셰스쿠는 북한의 김일성과 친분을 유지했으며 김일성 독재체제를 모티브로삼아 나라를 다스리려했다. 그가 북한에 방문했을때 북한의 인민문화궁전을 본 뒤 감명을 받고는 루마니아에 돌아와서 이 인민궁전을 짓기로 결정했다.
(내부에는 3,200개의 방이 있으며, 3,500톤의 크리스탈과 90만 톤의 나무로 이루어졌다,)
작업은 1984년 시작되었으며 이 거대한 건물을 짓느라 부쿠레슈티의 역사적인 중심 지역 20퍼센트가 파괴되었고,
1984년에서 1989년에 걸친 루마니아 국민총생산의 30퍼센트가 여기에 소비되었다. 노동자들은 교대를 해 가며 하루 24시간 내내 애썼다. 그리고 건축 현장에는 항상 2만 명 이상의 일꾼이 상주했다. 비용이 아낌없이 사용됐고, 루마니아에서 생산된 자재만이 사용되었다.
1984년부터 1989년까지 건물의 약 80%가 완공되었지만 정작 이 건물을 짓도록 명령한 차우셰스쿠는 1989년에 민중들의 혁명으로 인해 공개처형 당한다.
그 후 이 건물을 어떻게 해야할까 수많은 논란이 있었고 결국 완공은 2005년이 되서야 가능했다.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 국영 철도 회사인 CFR(Căile Ferate Române)의 본사가 있는 도시이다. 루마니아의 주요 도시들 뿐만 아니라, 베오그라드, 키예프, 부다페스트, 비엔나, 이스탄불 등 유럽의 주요 도시들로 가는 노선도 있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로마 5현제 중 두 번째 황제로 서기 107년 로마의 경계로 여겼던 다뉴브 강을 건너 동쪽으로 전진해 현재 루마니아 지역인 다키아에 도시와 국가를 세웠다. 이 때문에 루마니아인들은 트라야누스 황제를 건국의 상징으로 여긴다.
루마니아는 다키아를 식민지로 삼은 로마인들의 후손이 주변의 슬라브 세계 속에서 그 언어와 독창적 문화양식을 유지해온 나라이다
루마니아라는 나라이름도 로마인의 나라라는 뜻이다.
루마니아 소도시 시나이아의 펠리쇼르 성. 펠레슈성 부근에 있는 19세기 귀족의 성이다.
펠레슈 성(루마니아어: Castelul Peleș)는 루마니아의 프라호바 주 시나이아에 위치한 성으로 카르파티아 산맥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펠레슈성은 유럽 최초로 완전히 전기에 의해 조명이 밝혀지는 성이었고, 최초로 중앙난방이 사용됐다.
성에 관광차온 가족일행이 알파벳이 인쇄된 셔츠로 이성을 지은 칼1세의 이름을 나타내고 있다.
성은 카르파치아 산맥 중앙에 위치하고있어 이곳에서 마주하는 경관이 아름답다...
동화에나 나올법한 모습을 갖고있는 이 성은 내부도 엄청나게 화려하다. 내부에는 160개가 넘는 방이 있다
성의 내부에는 중세의 각종 무기가 전시되어있다.
정교한 장식을 새긴 나무로 만든 건물 외관은 물론 건물 내부와 정원, 주변경관까지 모든 것이 아름답고 화려하다
네오르네상스 스타일의 성으로 트란실비니아와 왈라키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지점에 위치한다. 1873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914년에 완공됐다
다른작은 도시 브라쇼브, 브라쇼브의 중심가인 의회 광장(piata sfatului)
브라쇼브는 루마니아 속의 독일이라고 불리는 도시다.
왜냐하면 13세기에 독일의 이주민들에 의해서 건설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물들도 모두 독일의 건축양식을 띄고있다.
또한 브라쇼브는 휴양 도시로도 주목받고 있다.
뾰족한 지붕의 고딕양식 교회, 궁전을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널찍한 광장이 잘 어우러져 있다.
중세 건물들을 그대로를 간직하고있는 브라쇼브.
시내를 장식하고 있는 꽃장식도 아름답고
시내의 도로도 이쁘게 꾸며놨다.
도심 가운데 스파이툴루이 광장에 위치한 정교회는 은색 돔이 무척 인상적이다. 13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정교하고 고풍스러운 외관 덕분에 교회라기보다 궁전 혹은 호텔 같은 인상을 준다.
게다가 15세기 튀르크족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성벽이 지금도 도시 외곽을 둘러싸 중세시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위에서 바라다본 브라쇼브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