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이라지만 하늘이 낮게 깔렸음인지 가슴조차 우중충한 월요일이었다. 아침부터 공연한 짜증이 울컥울컥 목구멍까지 치받고 있던 의령경찰서 궁류지서. 순경 우범곤(禹範坤)은 오전 11시 반쯤 지서를 나왔다. 야간근무 교대를 하려면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우라질.
우범곤은 지서 정문에 내 걸린 나무간판을 곁눈질로 흘겨보며 자갈길에다 가래침을 내뱉었다.
어쩌다 이런 촌구석까지 쫓겨왔담.
18년 간 경찰관으로 재직하다 병사한 아버지의 유훈에 따라 전문대학을 다니다 경찰관이 되었고 다부진 몸통에 173cm의 키, 태권도와 합기도 유단자에다 해병대 출신의 민첩한 동작 등, 육체적으로 우수했던 그의 첫 발령지 부산 남부서 관할의 감만 파출소에서 일거에 서울시경의 특별경비단에 차출되었다. 이때만 해도 그는 탄탄대로를 달린다는 뿌듯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은 끝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조그만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경비단의 임무와 역할 때문인지 우범곤의 이런 성격은 가는 곳마다 조직의 단합을 해치는 부적격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방으로 좌천이 되었고 이렇게 궁벽한 곳까지 밀려왔다는 생각을 하면 늘 울화가 치밀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시골에서 근무를 시작했더라면 이런 열패감은 덜했을 것이다. 자연 그는 술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취하면 모든 것이 불만스러워 주위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곤 했다. 그런데 이런 우범곤의 주벽을 업무처리 능력으로 연결시켜 매사에 못마땅해 하던 지서장이나 차석이 꽤나 떠들고 다닌 모양이었다. 면내에서 행세께나 한다는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는 눈빛은 묘했다. 경멸스러움 같기도 했고 비웃음 같기도 했던 것이다.
이 때문인지 벌써 전입한지 5개월이 됐음에도 이곳은 도저히 정이 붙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 지방유지들은 지서 순경쯤은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 면장이나 간부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마을 이장이나 안면 있는 촌노들까지 지서에 들어오면 지서장이나 차석만 찾아 일을 보았고 말단 순경은 본 체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심호흡을 해봤지만 후텁지근한 공기는 좀체 답답함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우범곤은 매곡부락으로 이어지는 개울을 건너면서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아내 전말순(田末順)을 생각했다. 그래도 혼인신고는 했으니 마누라는 분명했지만 이 또한 아픈 생채기였다. 8년 간 대구 제일모직 여공으로 일하다가 돌아와 고향에 눌러앉아 있던 26살짜리 처녀를 꿰찬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들 전문대 등록금 대느라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집도 처분하여 셋방으로 나앉아 고생하고 있는 어머니와 동생을 생각하면 결혼하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우범곤에게 그런 속도 모르고 그녀는 기회 날 때마다 결혼식을 올리자고 졸라댔다.
집에 도착하여 아내가 차려주는 점심을 먹고 우범곤은 잠을 청했다. 해만 지면 적막강산이 되는 동네지만 가끔 술 취한 청년들이 벌려놓는 싸움판도 말려야 하고 상급관서의 상황점검 전화도 지체없이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몇 구획으로 나눠져 있는 관할구역 순찰도 돌아야 하므로 근무 중에는 잠을 잘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늘 수면부족으로 시달리게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자리에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주위가 환한 낮에 청하는 잠은 그저 정신을 안정시키고 눈 주위의 피로를 쫓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우범곤은 온 몸의 긴장을 풀면서 무의식의 세계로 몰입하였고 오래잖아 비몽사몽간에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뭔가 가슴 께에 갑작스런 충격이 있어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운동으로 단련된 방어감각이 극도로 예민해 있었던 것이다. 곁에서 아내가 멋쩍게 웃고 있었다. 정신이 멍했다.
“뭐꼬?”
우범곤은 사납게 아내를 노려보았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는데 이게 무슨 심술인가? 선잠에서 깨어나 순간적으로 일기 시작한 짜증은 걷잡을 수 없이 끓어올랐다. 그는 백치처럼 웃고 있는 아내를 힘껏 걷어차 버렸다.
잠든 남편의 가슴 께에 앉은 파리를 잡으려고 자신도 모르게 손이 갔다는 설명을 할 겨를도 없이 아내 전말순은 방 한 구석에 처박혔다가 부스스 일어났다. 그녀 역시 악에 북받쳤나보다.
“그 깐 일로 사람을 때리고 지랄이가.”
“뭐라꼬?”
그러잖아도 길다란 우범곤의 눈이 더욱 매섭게 찢어졌다.
“동네사람들 쑤군대는 소리도 안 들리나? 공무원이 결혼식도 안올리고 동거생활을 하니까 손가락질을 하는 거 아이가. 참말로 창피해서 못 살겠다.”
한 방 얻어맞은 전말순의 입에서 또 다시 예의 신세한탄이 쏟아져 나왔다.
“결혼비용도 마련하지 못하는 주제에 툭하면 사람을 때리고….”
그러다가 전말순은 아차 싶었다. 식도 올리지 않은 처가에 얹혀 살면서 열등감에 젖어 있는 남편이 딱해 보여 되도록 이 말은 삼갔던 터였다. 우범곤은 발작적으로 일어나 그녀의 전신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코피가 터지고 이리 나 뒹굴고, 저리 처박히며 전말순은 악을 바락바락 쓰며 울었다. 며칠 전에 부산에서 올라와 건넌방에 있던 우범곤의 동생 범호가 밖으로 나와 두 사람을 뜯어 말렸다. 그래 니가 와 있었지. 우범곤은 동생을 보면 늘 미안했다. 자신이 어머니의 가녀린 허리에 지탱하여 전문대학에 다니다 군에 입대했을 때 네 살 아래인 동생은 고등학교를 고학으로 겨우 마쳤다. 그러나 그런 동생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일단 열 받아 치솟고 있는 화를 삭이지는 못했다. 우범곤은 동생을 피해가며 또 아내를 차고 밟았다. 고함과 울음소리에 놀라 건넌 채에 사는 전경자 여인이 달려와 전말순을 부축하려한다.
“니는 뭐꼬.”
우범곤은 전경자씨의 뺨을 세차게 올려붙였다. 그녀의 남동생이 누나를 도우려고 달려나왔으나 우범곤의 무차별 폭행은 계속됐다.
“동네사람들아. 여기 큰 싸움 났다. 빨리 나와서 쌈 말리래이.”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렸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뭐 그 깐 일 갖고 그라노?”
“저런 사람하고 우찌 살끼고.”
마당에 들어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한 마디씩 내뱉었다.
씨발.
그는 욕설을 중얼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울긋불긋 지천으로 깔린 들판과 산자락의 철쭉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봄의 정경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아직 교대를 하려면 몇 시간이 남았으므로 딱히 갈 만한 곳도 없었던 우범곤은 지서 앞 가게에 가서 술판을 벌였다. 혼자서 술을 시작하기 멋쩍어 근무 중인 안승섭(安承燮) 순경에게 합석을 권해봤지만 거절했다. 그러고 보니 술만 한 잔 들어가면 주사를 부리는 우범곤의 술상대가 되어줄 만한 사람이 이 마을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이래저래 속이 상한 그는 소주 한 병을 금방 비워버렸다.
그래 꼭두리 말 마따나 난 여자를 거느릴 자격도 없는 놈이야.
조금씩 가라앉고 있던 울화가 울컥하고 다시 치밀어 올랐다. 사람들은 아내인 전말순을 꼭두리라고 불렀다. 우범곤은 비틀거리며 근무 중인 방위병 박상찬(朴相贊)을 데려와서 또 한 병의 소주를 비웠다.
“결혼식 올릴 주제도 못 되는 놈이 동거생활부터 한다고 동네 사람들이 나한테 손가락질을 한 대. 지서 순경이란 작자한테 말이다.”
좌천에 좌천을 거듭하여 이 궁벽한 산골동네로 흘러온 말단 순경이 결혼할 비용도 마련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처지가 새삼 서럽고 억울했다. 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정말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
이 지지리도 못난 인간. 쯧쯧쯧.
사람들의 혀 차는 소리가 귓가에 점점 크게 맴돌고 있었다. 그는 더욱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죽여 버릴끼다. 죄다.
그는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쩌면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이 궁류면 사람들 모두에 대한 분노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범곤은 정신을 곧추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까짓 술쯤은…. 주위에는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지서에는 여전히 이승섭 혼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 순경. 들어가라.”
우범곤은 자신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괜찮겠나?”
이승섭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우범곤을 쳐다보며 물었다. 함께 있자니 주사를 견디기가 성가실 것이고, 그렇다고 이렇게 술 취한 사람에게 지서를 맡기기도 성큼 내키지 않는 일일 터였다.
“내 반상회 참석하고 금방 올끼다. 우 순경. 거기서 한 숨 자래이.”
이승섭은 못내 불안한 표정으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지서를 나갔다.
“휴우.”
우범곤은 소파로 가서 벌렁 드러누우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은 숨이 막힐 듯 그의 전신을 눌렀고 가슴은 더욱 답답했다. 홧김에 먹은 술 때문인지 좀체 감정을 걷잡기가 어려웠다. 그때였다. 문이 왈칵 열리며 사내 하나가 뛰어 들었다.
“씨발. 경찰이면 다가. 와 사람을 때리노. 또 때리봐라.”
가만히 보니 아까 싸움 말리던 전경자씨의 동생이었다. 그는 머리를 우범곤의 가슴에다 디밀며 대들었다. 그 역시 주기가 있었다. 그러잖아도 울컥거리던 울화통이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것 같았다.
“그래. 아예 죽여줄게.”
우범곤은 그를 확 떼밀어놓고 지서 안 무기함으로 가서 칼빈소총 두 자루를 집어 들고 탄창을 꽂았다. 그리고 집히는 대로 실탄박스를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 기세에 놀라 청년은 혼비백산하며 달아나 버렸다. 우범곤은 비틀거리며 예비군 무기고로 다가갔다. 방위병 김해군(金海群)과 성석현(成石鉉)이 앞을 가로막았다.
“와그랍니꺼. 우 순경님예. 참으이소.”
“너거들은 직이고 싶지 않대이. 존 말할 때 비키라. 오늘 내한테 욕한 년 놈들 모조리 직이뿔끼다.”
그러면서 우범곤은 방위병들을 향해 실탄 2발을 발사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고 밖으로 몸을 피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열쇠로 무기고를 열어 수류탄 8발을 꺼내 호주머니에 넣었다. 지서로 돌아온 우범곤은 천장을 향해 공포 2발을 쏜 뒤 경비전화와 일반전화의 선을 모두 끊어 버렸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비웃는 마을사람들의 조소가 가득했으므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지서 밖으로 나오면서 우범곤은 사무실을 향해 수류탄 한발을 내던졌다. 지난 5개월 여, 수모와 한숨 속에서 보낸 직장을 향한 분풀이였다. 그러나 불발이었다. 다시 수류탄 한발을 더 꺼내 안전핀을 뽑은 뒤 저녁 내도록 술을 마시던 건너편 임정수씨 가게를 향해 내던졌다. 수류탄은 그 집 지붕에 맞고 때그르르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역시 불발이었다. 그때 마침 마을회관에서 반상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손진태(孫鎭泰 26세)씨가 지서 앞을 지나갔다. 우범곤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 칼빈의 방아쇠를 당겼다. 첫 번째 희생자인 그는 대구에서 표구사를 경영하는 사람으로 그 날 예비군 훈련 때문에 고향에 들렸다가 변을 당했다.
해병대에 근무할 때 우범곤은 특등사수였다. 현실이 아무리 불공평하고 불만스러워도 그는 사격할 때만은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고 과녁의 한 복판을 뚫은 탄착점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이곳에 와서도 그는 매일 공기총으로 사격연습을 하고 있었다. 무슨 총이든 손에 쥐면 세상을 다 손에 넣은 듯 기분이 고조되곤 하던 그는 몇 십 미터 떨어진 나무 위 참새도 쉽게 맞춰 떨어뜨렸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주사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은 그에게 「사격 하나는 끝내주는 경찰관」이란 별칭을 붙여주었다.
명중.
첫 번째 희생자가 쓰러지자 그는 대장정의 초입에서, 사선에서와 꼭 같은 희열을 맛보았다. 그래 총이나 실컷 쏴보자. 그렇게 작정한 우범곤은 지서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궁류우체국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체국 본관은 이미 문이 닫혔지만 별채로 된 교환실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거칠게 유리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교환양인 전은숙(田銀淑 23세)양과 박경숙(朴璟淑 19세)양이 야간근무를 하고 있었다. 경비전화나 행정전화를 제외한 일반전화의 모든 선은 이 교환기에 연결되어 24시간 가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범곤은 반자동으로 놓고 그녀들에게 드르륵 드르륵 총을 갈겼다. 전은숙양은 출입구 쪽 바닥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박경숙양은 교환대 의자에 앉은 채 벽에다 상체를 기대며 숨을 거뒀다. 우범곤은 교환대를 향해 실탄 여남은 발을 또 퍼부었다. 이때 본관 숙직실에 있던 집배원 전진석(田鎭碩 36세)씨가 총소리에 놀라 달려오다가 역시 명치에 총을 맞고 우체국 바닥에 쓰러졌다.
하루종일 후텁지근하더니 하늘은 마침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우범곤은 칠흑같은 어둠에 몸을 내맡기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 후련하다. 아직도 귓속을 간질이며 사람들의 쑤군댐은 계속됐지만 네 사람을 향해 총질을 해댄 뒷맛은 개운함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불꺼진 면사무소 앞을 지나 처가가 있는 매곡부락을 향해 걸었다. 그 부락은 한 가구를 빼면 모두 처가의 일가붙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곳이었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비아냥과 질책이 제일 심한 곳이었다. 그래서 처가와 뒷간은 멀수록 좋다고 하던가?
그는 처가로 들어가서 우선 아내를 찾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집 입구에서 어떤 여자가 살금살금 도둑고양이 형상을 하고 다가왔다. 아마 개울건너에서 났던 총소리 때문에 무슨 일이 났는가 확인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우범곤은 물체를 향해 총구를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여자가 쓰러졌다. 처가 입구의 전인배(田仁培)씨 부인인 강판임(姜判任 51세)씨였다. 총소리가 나도 전인배씨의 집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고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아내는 집에 없었다. 아내뿐만 아니라 집에는 입구에 매어놓은 누렁이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집을 나와 이장댁인 전용덕(田溶德)씨 집으로 갔다. 방안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그 집에는 그 집 막내딸인 미숙(美淑 8세)양만 자고 있었다. 그는 그 아이에게도 총격을 가했다. 그러나 미숙인 다리에 총상을 입었을 뿐 목숨을 잃지 않았다. 이장댁을 나온 우범곤은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는 한길을 따라 걷다보니 전용줄(田溶茁)씨 집이 보였다. 그곳에는 막 반상회를 끝낸 10여명의 부인들이 낮에 파리 한 마리 때문에 일어났던 그 사건을 화제로 하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범곤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느린 동작으로 전용줄씨 집으로 들어갔다.
“전양! 여기 전양있나?”
그는 마루로 올라서며 자신의 아내를 그렇게 불렀다. 문이 열리고 전용줄의 모친 최분이(崔粉伊 71세)씨 얼굴이 나타났다.
“씨발년들 모두 죽어봐라.”
자신에 대한 모든 소문은 이곳에서 만들어져 온 동네로 퍼진다고 생각하니 저녁 내내 끓어오르던 적개심이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그는 총부리를 방안으로 향해놓고 무차별 난사를 했다. 비명소리, 고함소리, 총소리에 뒤엉켜 방안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곳에서 전용줄씨의 모친 최분이씨, 사촌형수인 유순례(柳順禮 55세)씨, 우체국에서 사살 당한 집배원 전진석씨의 부인 백점악(白點岳 36세)씨, 이웃집 친척인 손정희(孫貞姬 50세)씨, 유백암(劉白岩 59세)씨가 숨졌다. 이때 함께 방안에 있었던 우범곤의 아내 전말순은 동맥이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으나 목숨을 건졌다. 우범곤은 이 집 마당에 또 한발의 수류탄을 까서 던졌지만 역시 불발이었다.
다시 한길로 나온 우범곤의 눈에 왼쪽 편으로 불빛이 들어왔다. 이 마을의 유일한 타성받이 이춘수(李春洙 50세)씨 집이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TV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우범곤은 목청을 돋우며 소리쳤다.
“아무도 없소?”
문이 열리고 중늙은이 한 명이 목을 빼며 밖을 내다봤다. 우범곤은 방안을 향해 실탄 4발을 쏟아 부었다. 중늙은이 이춘수씨가 쓰러지고 부인과 딸 상남(相南)양도 맞았으나 이 집은 가장만 목숨을 잃었다. 열대섯 쯤 됐나. 우범곤은 자신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의 숫자를 대충 세어보면서 그 집을 나왔다.
“나를 욕한 년 놈들. 날 똑 바로 쳐다보지 않던 것들은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 모조리 죽여버리겠어.”
우범곤은 새삼 전의를 불태웠다. 아직 멀었어. 그는 이번에는 동네유지들을 향해 적개심을 불태웠다. 오늘 낮에 지서장 허창순(許唱淳)과 차석 김진우(金鎭宇)을 부곡온천에 데리고 간 미성건설 현장감독인 김성남이나 장한수, 신태현 같은 마을 유지들도 모두 그랬다. 엄연히 담당 직원이 있음에도 동네유지라는 인간들은 지서에 들어와서도 눈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모조리 거드름을 피우며 지서장과 차석의 자리로 몰려가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 법적으로나 행정절차상 허용해서는 안될 일도 지서장은 쉽게 일을 풀어주었다. 그들의 눈에 순사는 개똥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범곤은 가래침을 캭하고 내뱉은 뒤 담배를 뽑아 물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지만 손아귀 속의 담배는 구수한 연기를 흩날리며 조금씩 타들어 가고 있었다.
시계는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매곡리를 싹쓸이한 우범곤은 어깨에 맨 칼빈총의 멜빵을 고쳐 매고 운계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곳은 면사무소와 지서가 있는 토곡리보다 상가(商街)가 많고 장도 크게 서기 때문에 인가도 많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가장 번화가인 삼거리 동네는 적막강산처럼 조용했다. 불과 몇 분전에 지서의 방위병들이 달려 뛰며 불을 끄도록 독려한 사실을 우범곤은 알 턱이 없었다. 시장통의 시멘트 길을 따라가면서 불빛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운계리의 첫 타깃은 시장통 입구에서 살고 있는 택시운전사 전용길(田溶吉 37세)씨였다. 그는 매곡리 전용줄씨의 친동생이었는데 우범곤이 나타나기 조금 전에 전용줄씨가 달려와 다짜고짜 아이 둘과 잠을 자고 있던 동생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잠결에 형의 손에 끌려 도망가면서 비로소 매곡리의 사고소식을 전해들은 전용길씨는 집안에 남아있는 아이들 생각 때문에 더 이상 달아나지 못하고 돌아오던 중에 바로 자신의 가게 앞에서 우범곤과 맞닥뜨린 것이다. 우범곤은 이 사람에게 실탄 세 발을 퍼부어 쓰러뜨렸다. 한 발은 허리를, 두 발은 가슴을 관통하여 그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전용길씨가 쓰러진 뒤 가게 안을 기웃거리다가 우범곤은 불이 환하게 켜진 건너편 미장원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미장원의 문을 드르륵 열면서 청년 한 명이 나왔다. 사람만 보면 즉각 발사하던 우범곤은 잠시 뜸을 들이며 그 청년이 가까이 오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우 순경님 아입니꺼?”
청년은 운계리에 사는 21살짜리 허해도 군이었다. 우범곤은 그의 정강이를 구둣발로 걷어찼다. 그런 뒤 쓰러지는 그에게 두 발을 쐈다. 그런데 실탄은 모두 그의 엉덩이에 맞아 즉사를 면했다. 허해도 군은 마을 이장 장장수(張長壽)씨와 함께 한달 반전에 백혈병으로 죽어 상심해 있는 이 미장원집 주인인 박명연(朴命蓮 32세)씨를 위로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앞집에서 유리창 깨어지는 소리가 나서 나왔다가 우범곤을 만난 것이었다.
총소리가 나자 방안에 있던 10여명의 위문객들은 깜짝 놀라 모두 창이나 현관을 통해 도망을 쳤는데 자리에 누워있던 박명연씨는 우범곤을 피하지 못하고 발과 복부, 팔 등 세 군데에 총상을 입고 죽었다. 그녀의 딸 넷 중 첫째인 영희는 정강이에, 둘째 현정인 엉덩이에 총을 맞았다. 셋째 정아와 막내 미아는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미장원을 나온 우범곤은 역시 불이 켜져 있는 철물점으로 다가갔다. 그는 그곳에서 철물점 안주인 박갑조(朴甲祚 43세)씨에게 총질을 해서 그의 14번째 희생자로 만들었다. 우범곤은 계속 불켜진 집만 찾아들었다. 바로 윗집은 철물점 주인 유동순씨의 동생인 유동근씨 집이었는데 문이 잠겨져 있었다.
“문열어. 경찰이다.”
우범곤은 대문을 흔들며 소리쳤다. TV를 보고 있었던 듯 이 집의 딸 유점순(柳點順 19세)양이 경찰이라는 말에 반가워하며 대문을 열었다. 그는 유 양의 가슴에다 총 한 방을 쏘았다. 유 양은 「아이구 엄마야」하며 쓰러져 버렸다. 역시 처녀는 죽는 모습도 예쁘다고 생각하며 우범곤은 안쪽을 살폈다. 그때 유 양 곁에서 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 이경연(李慶連 42세)씨가 딸의 비명소리에 놀라 잠이 깨어 밖으로 나왔다. 우범곤은 아직 잠에 취한 채 딸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그녀에게도 총알세례를 주었다. 자식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것도 지나치면 죄인 기라. 그냥 잠이나 자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우범곤의 귀에 어디선가 불을 끄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불을 꺼? 그래 불을 꺼라. 영원히 잠을 자게 해주겠다. 그는 싸늘하게 웃으며 탄창에 다시 실탄을 채워 넣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서 창을 통해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을 발견한 우범곤은 합판으로 만들어 단 부엌문을 두드리며 다시 소리쳤다.
“문열어. 경찰이다.”
집주인 진필리(陳畢利 58세)씨가 문을 열었다. 어리석은 중생들. 경찰이라면 껌뻑 죽어. 우범곤은 그녀의 왼쪽 배에다 총을 쏘았다. 그녀는 총을 맞은 부위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는 그 틀어막은 손위에다 또 한 발의 실탄을 쏘았다. 이때 방안에 있던 진씨의 딸이 뛰어 나와 어머니를 부축하려고 했다. 요것 봐라. 아까는 엄마가 딸을 거들더니 이젠 정 반대로네. 우범곤은 딸의 배와 손에 두 발을 쏘았다. 딸은 요행히 살았지만 진씨는 오래잖아 숨을 거두었다.
우범곤은 다시 불이 켜져있는 옆집, 궁류약방을 향해 걸어가서 약방 안에 있던 전달배(田達培 18세)군을 쏴 죽인 뒤 바깥의 소란을 확인하러 나온 그 건너편집 진일임(陳日任 48세)씨에게도 총알을 날렸다. 배에 두 발의 총을 맞은 진일임씨는 숨이 붙어있을 때까지 「사람 살려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아무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우범곤은 잠시 진저리를 치고 있는 진씨의 마지막 안간힘을 지켜보다가 몸을 돌려 막 걸음을 옮기려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군가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그 방향을 향해 두 발을 발사했다. 면사무소에서 숙직을 하고 있는 손태열(孫泰烈)씨의 부인인 김월순(金月順 28세)씨였다. 그녀는 귀에 익은 진씨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었다가 머리와 가슴에 실탄을 맞고 죽임을 당했다.
“아 참, 이 부근에 경숙의 집이 있었지.”
우범곤은 자신의 총에 세 번째 제물이 된 우체국 교환양 박경숙을 생각해냈다. 그가 전말순의 결혼독촉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무렵인 지난 식목일 연휴 때 벚꽃이 만발한 콧대더미라는 바위 부근에서 비로소 그녀의 존재를 발견하곤 아쉬움 속에서 새삼 욕심을 냈던 처녀였었다. 아직 19살 어린 나이이긴 했지만 이 동네에서 6대째 살고 있다는 그녀의 집안은 궁류면 전체에서도 가장 안정된 듯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범곤은 애증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왕 그녀가 가버린 마당에 이 기회에 그 집도 박살을 내어버리고 싶었다. 그녀의 집은 시장통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우범곤은 그 집 대문을 탕탕탕 두들겼다.
외진 곳에 위치하여 시장통의 광란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듯 그녀의 어머니 최정녀(崔貞女 40세)씨가 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던 우범곤은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최씨가 쓰러지자 안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남편 박인길(朴仁吉 42세)씨가 곡괭이를 집어들고 달려나왔다. 우범곤은 침착하게 그의 동작을 지켜보고 있다가 총을 발사했다. 실탄은 겨냥한대로 정확히 그의 손에 가서 맞았다. 박씨는 쥐고 있던 곡괭이를 떨어뜨리고 멈칫했다. 그는 천천히 총을 들고 다시 그의 머리를 향해 두 발 째 실탄을 날렸다. 박씨는 머리에 정통으로 맞고 맥없이 쓰러져 버렸다. 그러자 공부를 하고 있다가 총소리에 놀란 이 집의 막내인 박현숙(朴鉉淑 8세)양이 사랑채 방문을 열었다. 우범곤은 싱긋 웃으며 현숙양을 향해 또 한 발을, 놀라서 바깥쪽 문을 열고 달아나는 그의 언니 미해(美海 14세)양에게도 한 발을 날렸다. 자매는 맥없이 푹 꼬꾸라졌다. 우범곤은 신을 신은 채 방안을 뒤져 잠을 자고 있던 재철(在喆 12세)군 마저 목숨을 끊어 일가족을 몰살시킨 후 유유히 그 집을 빠져나왔다.
-건방지게 너희들만 좋은 집에서 오순도순 잘먹고 잘살모 돼나? 나같이 돈이 없어 결혼식도 몬 올리고 있는 불행한 청년도 있는데 말이다.
그는 실성한 듯 히죽히죽 웃으며 다시 삼거리로 돌아 나왔다. 목이 말랐다. 술이 깨고 있었다. 시계는 어느덧 11시가 지나고 있었다. 평촌으로 가려던 우범곤은 발길을 돌려 이리저리 상가를 기웃거리다가 불이 꺼진 신외도(申外道)씨 가게의 옆 창문을 두들겼다. 순찰 돌면서 가끔 술 한 잔씩 하며 제법 친하게 얼굴을 익혀놓은 집이었다. 조금 있으니 방안에서 신씨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에 누고?”
“궁류지서 우 순경임니더.”
“이 야밤에 우 순경이 우짠 일이고?”
“간첩이 나타났다고 해서 나왔는데 예. 목이 말라서 그랍니더. 사이다 한 병만 주이소.”
신씨 부인 손원점(孫元點 51세)씨는 경찰관이라는 말에 밀려오는 잠을 쫓으며 문을 열었다. 손씨는 사이다를 찾다가 없어서 냉장고에서 콜라를 한 병 꺼내 뚜껑을 따 가지고 컵에다 가득 따라 우범곤에게 내밀었다. 목이 갈라질 것 같았던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반잔을 마셨다. 그때 가게의 이웃집에 사는 김주동(金柱東 18세)군이 우범곤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가게로 왔다.
“참말로 우 순경 아저씨네.”
김 군은 의령종고 2학년 학생으로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한데도 공부를 잘했다. 1학년을 마치면서 학교장상과 함께 장학금 95,340원을 타서 난생 처음으로 새 교련복을 구입했다. 김 군은 어쩌면 열심히 공부해서 우 순경과 같은 멋진 경찰관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랬기에 그 늦은 밤에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달려나온 것이리라. 그러나 우범곤은 그 아이에게도 예외 없이 총질을 했다. 목을 관통 당한 김 군은 총을 맞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달아나다가 시멘트길에 쓰러져 숨을 거뒀다. 난생 처음 입어보는 새 교련복이 그의 수의가 된 셈이었다.
“이기 무슨 짓꼬?”
김 군이 총을 맞고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한 손원점씨는 격렬하게 우범곤을 나무랐다.
“무슨 짓 좋아하네.”
우범곤은 손원점씨의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손씨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문을 열어놓고 방안에 앉아 가게에서 일어난 일을 세세히 지켜보고 있던 손씨의 남편 신외도씨는 재빨리 전깃불을 껐지만 우범곤은 동작 빠르게 그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는 세 발을 맞았지만 죽지 않았다. 그러나 총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그의 두 딸 창순(昌順 13세)양과 수정(守貞 10세)양은 겨드랑이를 관통 당해 목숨을 잃었다.
몇 명이나 죽였나?
세기를 단념하고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기도 하고 낄낄낄 음산하게 웃기도 하며 우범곤은 봉황교를 건넜다. 다리 아래에는 평촌리에서 흘러온 유곡천이 흐르면서 제법 쏴아쏴아 소리를 내고 있었다. 11시 30분. 평촌리 쪽으로 막 방향을 틀었는데 그는 왼편에서 불빛 하나를 발견했다. 유동숙(柳東淑)씨 집이었다. 불빛은 건너 채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주인 있소?”
우범곤은 건너 채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역시 방에서 TV를 보고 있던 안주인 설순점(薛淳點 49세)씨가 바깥의 기척에 놀라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습관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설씨는 맥없이 마당에 쓰러져 버렸다. 이어서 이 집의 딸 유순자(柳順子 20세)양도 총을 맞고 마루 쪽으로 처박혔다. 그는 막내딸 성희 양에게도 한방을 날렸지만 성희 양은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술기운이 거의 빠져나갔음인지 우범곤은 자신이 점차 지쳐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더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광란이 어디까지 가서 멎을 것인지 자신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한 불안감을 짓누르기 위해서라도 빨리 다른 목표물을 찾아내야 했다. 어둠 속에서 두리번거리던 우범곤은 외딴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찾아내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그는 거침없이 마루로 올라서서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이곳은 평촌 이발소 주인인 곽기달(郭基達 43세)씨의 집이었다. 방안에는 모두 5명의 식구가 있었는데 곽씨와 아들 주일(周一 14세)군이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하고 있었고 부인과 다른 자녀 둘은 이미 잠에 취해 있었다. 우범곤은 그들을 향해 칼빈총을 난사했다. 곽씨는 아들 주일 군을 끌어안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지만 부인 박순득씨는 오른쪽 귀밑과 턱밑에 중상을, 딸 도희 양은 오른쪽 어깨에, 막내아들 정일 군은 오른쪽 턱에 총상을 입었다.
일가족을 향해 총을 난사하면서 다시 힘을 얻은 우범곤은 비가 쏟아져 점점 거세게 흐르고 있는 유곡천의 물소리를 벗삼아 저벅저벅 자갈길을 힘차게 걸었다. 그러나 그는 금방 자신의 신체에서 뭔가가 쉴새없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것은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알코올 부족.
소심한 그는 술의 힘을 빌어 평소 주저하던 일을 많이 해결하는 편이었다. 아직은 할 일이 많이 남았으나 우선 이 알코올부터 채우는 게 시급한 일이었다. 아까 신외도씨 가게에서 술이나 몇 병 가지고 오는 건데 참 잘못한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는 평촌리에 상가(喪家)가 있음을 퍼뜩 깨달았다. 어제 교대 무렵 평촌리 이장이 허 지서장에게 부고장을 갖다주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문두출씨가 결국 죽었구만.”
부고장을 펼치며 담담하게 말하던 지서장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래 문씨 상가야. 어쨌든 그 동네에 가면 상가는 먼저 눈에 띄겠지.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중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예동부락을 지나쳐 버렸다.
11시 50분. 우범곤은 마침내 평촌리로 들어섰다. 그는 오른손에 움켜쥐고 있던 칼빈총을 어깨에 걸어 매고 상가로 들어섰다. 그곳은 늦은 시간임에도 내일 발인준비에 상주들의 움직임이 바빴다.
“우 순경이 우짠 일이고?”
어디선가 굵직한 목소리가 그를 반겼다.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평소 동네유지라고 행세깨나 하던 한명규(韓明圭 53세)씨였다.
“비상이 걸려서예.”
우범곤은 무뚝뚝하게 대꾸를 한 뒤 안채로 갔다. 마루 끝에 소총을 세워놓고 상주를 찾았다. 날 때부터 벙어리인 상주 문천웅(文天雄)씨 대신에 큰사위인 이정오(李正五)씨가 그를 맞았다. 우범곤은 호주머니에서 돈 2천 원을 꺼내 조위금으로 내밀었다.
“빗 길에 멀리 걸어서 왔더니 발이 말이 아입니더. 이래 갖고 절은 우째 하겠심니꺼. 술이나 한 잔 얻어 묵고 갈랍니더.”
그러면서 그는 안채에서 물러나와 사랑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박종덕(朴鍾德 34세)씨와 한명규씨가 그에게 술을 권했다. 우범곤은 단숨에 두 사람이 권한 술잔을 들이켠 뒤 <좀 있으면 다 죽을 낀데 이 세상 마지막 고별주나 한 잔씩 하고 가거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위의 사람에게 일일이 잔을 권했다.
“그라고 본께네 총이 두 자루네.”
별채와 안채로 바쁘게 들락거리던 서진규(徐鎭圭)씨가 어느 틈에 사랑채를 기웃거리며 말을 붙였다.
“한 자루는 안 순경 낀데 어디 좀 둘렀다 온다 캐서 내가 가지고 왔심니더.”
우범곤은 별것을 다 간섭한다싶어 서진규씨를 흘낏 쳐다보며 대답했다.
“치아라. 야. 한 자루모 어떻고 두 자루모 어떤노. 실탄도 없는 총 어디다 써먹을라꼬 가지고 댕기나.”
한명규씨가 끼어 들며 핀잔을 줬다. 우범곤은 피씩 웃었다. 이 치가 정말 경찰을 우습게 보네. 그는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켠 뒤 슬며시 일어서서 총을 잡고 자물쇠를 풀어 합석을 했던 한명규씨와 박종덕씨에게 한 발씩 쏘았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우범곤은 신속한 몸짓으로 안채와 바깥채를 오가며 상주와 문상객을 향해 난사를 시작했다. 부엌 앞에서 고인의 부인인 조을순(趙乙順 56세)씨가, 안방과 윗방에서는 그녀의 언니인 조맹률(趙盟律 59세)씨와 조귀남(趙貴男)씨, 친척인 조용덕(趙容德 46세)씨, 큰 사위 이정오씨의 딸 유량(柳良 1세)양이, 마루에서는 사위 이판준(李判浚 50세)씨, 딸 문순이(文順伊 44세)씨가, 뜰에서는 서진규씨의 부인 박봉순(朴鳳順 41세), 그리고 허이중(許二仲 24세)씨가 각각 목숨을 잃었다. 고인의 손자나 문상객의 손녀인 아이들 4명도 이때 함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상가에서 모두 12명의 목숨을 빼앗은 우범곤은 재빨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때 상가에서 나는 총소리에 놀라 동네사람들이 달려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이 사람들을 향해서 다시 난사를 시작했다. 서형수(徐亨洙 28세), 성소남(成小南 51세), 최경조(崔敬祚 43세), 이타순(李他順 46세)씨가 영문도 모르고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했다.
1시 30분.
다시 술로 의식을 다독거린 우범곤은 얼근한 기분이 되어 마을 안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부염하게 누군가가 마주 걸어오고 있었다. 우범곤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그 사람이 다가올 때까지 노려보고 있었다.
“우 순경님.”
반갑게 소리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방위병 서정수(徐正洙 23세)였다.
“혼자 오셨십니꺼? 어디서 무장공비가 나왔심니꺼? 몇 명이나 된답니꺼?”
그는 우범곤이 대답할 여유도 주지 않고 계속 물어댔다.
“이리로 오이소.”
그는 서정수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서정수의 큰댁이었다. 그 집에는 그의 큰아버지 서인수(徐仁洙)씨, 큰어머니 전복순(田福順 63세)씨, 서재갑(徐在甲)씨, 서점도(徐點道)씨, 서점도씨의 부인 이순두(李順斗 46세)씨, 박금수(朴金洙)씨, 서종수(徐鍾洙)씨 등 7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무장공비가 출현했다는 말을 듣고 한결같이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이렇게 무장을 하고 나왔응께네 인자 아무 걱정 하지 마이소.”
우범곤은 7명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좁은 방으로 들어가 그들을 안심시키며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앉았다. 후텁지근한 방안공기 때문인지 금방 졸음이 몰려왔다. 우범곤은 방안과 바깥을 드나들며 깜박깜박 졸기도 하고 담배를 피워 물고 잠을 쫓기도 하면서 버틸 수 있는 시간까지 버티고 있었다.
한편, 우범곤이 밤 9시 30분부터 새벽 1시 30분까지 장장 4시간 동안 마을 주민 52명을 차례로 살해하고 있을 때 우리의 <민중의 지팡이>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밤 10시. 우범곤이 우체국 교환양을 살해하고 매곡부락을 향해 가고 있을 그 시점에 토곡리 마을회관에서 군청 민방위과장이 주고간 5천 원으로 주민들과 술을 마시고 있던 이출수(李出洙)씨는 부인 김정화씨로부터 사고소식을 들었다. 그는 곧 토곡리 이장 신태영(申泰榮)씨 집으로 달려가 자석식 전화기를 돌렸다. 그런데 교환양들이 사망할 당시 통화를 위해 꽂아놓았던 잭을 통해 이 전화가 의령전화국 교환으로 연결이 되었다. 이씨는 곧 의령경찰서를 불러 상황실에 이 사건을 신고했다. 10시 34분이었다.
밤 10시 50분 경.
시장통에 사는 청년 한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웃 면인 봉수(鳳樹)지서에 이 사실을 신고하기 위하여 봉수재 고개를 넘다가 온천장에서 목욕을 마친 뒤 쇼 관람을 하면서 얼근하게 한 잔씩 걸치고 돌아오는 지서장 허창순 경사 일행을 만났다. 장황하게 사건설명을 하는 청년에게 허 지서장은 전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청년은 하는 수없이 허 경사와 함께 궁류면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지서로 돌아온 허 경사는 이승섭 순경으로부터 상황설명을 들은 후 「내가 여기 있었으면 우 순경은 나를 제일 먼저 쐈을 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사태를 진압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범행현장과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피해 다니고 있었다.
밤 11시.
다음 날 오전 10시에 열릴 경상남도 경찰서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으로 간 의령경찰서장 최재윤(崔在潤)은 자택에서 의령경찰서 상황실로부터 이 사건의 보고를 받았다. 그는 전화를 받는 즉시 택시를 대절하여 사건현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최 서장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인 12시경, 의령경찰서 경무과장 신현기(申鉉基)는 시내에서 근무하던 전경대원 9명을 거느리고 현장에 출동했다. 그리고 40분 뒤인 12시 40분에 보안과장 김영석(金永錫)은 21명의 대원을 이끌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들은 사태를 진압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원들을 평촌으로 이어지는 운계리 신계부락 입구 다리 밑에 잠복을 시켜놓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최재윤 서장이 현장에 도착한 1시 30분이 지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주민들이 빨리 병력을 평촌으로 투입시킬 것을 강권하다시피 했다. 새벽 2시쯤, 평촌리에서 우범곤이 닥치는 대로 주민들을 사살하는 장면을 목격했던 김진환, 오수환씨가 도로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비가 내려 진창인 산을 넘어 지서로 달려와서 평촌리의 상황을 신고했다. 그리고 이 동네 기관의 간부들은 최 서장에게 현장으로 출동하자고 사정을 했지만 그는,
“밤이 어두워서 움직일 수도 없고 이런 상황에서 현장에 도착해봐야 모두 개죽음만 할 뿐이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만일 상황이 그토록 불투명하고 위험부담이 있었다면 경찰로서는 따로 해야할 일이 있었다. 각 마을로 연결된 비상사이렌을 울리든지, 마을 단위 연락수단인 스피커를 작동시킬 수도 있었고, 끊어진 전화선을 복구하여 위험에 노출된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킬 수도 있었다. 적어도 경무과장과 보안과장이 도착한 12시와 12시 40분 경에 그렇게만 했더라도 평촌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절반쯤은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범곤이 평촌리 문 상가(文喪家)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무렵이었으므로 더욱 그랬다. 그런데 이들의 비상관리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도대체 그들이 정말 국민생활의 안위와 평온을 위해서 존재하는 집단인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지형에 어두워서 작전을 펴기 어려웠다면 이 지역 지리에 밝은 예비군을 비상소집하여 신속한 진압작전을 펼 수도 있었다는 점과 함께 신속한 피해현황 파악이 늦어짐으로써 우범곤의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 부상자 구난에 만전을 기하지 못한 결과는 피해확산을 수수방관한 것과 다름없었다는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다.
아무튼 사태는 경남도경국장 유구환(柳九桓)이 새벽 2시 10분 현장에 도착하여 「투항하지 않으면 사살하라」는 지시가 있은 지 한 시간 후 마산경찰서 제1기동대, 진주경찰서 제2기동대가 도착하면서 비로소 피해현장에 경찰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우범곤이 코를 골며 자고 있을 무렵이었다.
새벽 3시 40분.
평촌리 문두출씨 상가 뒷 쪽인 서인수씨 집 안방에서 집단으로 엉켜 불안한 잠을 자고 있던 서점도씨와 서종수씨는 소변이 마려워서 엉금엉금 기어 화장실로 향하다가 자동차의 엔진소리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자동차다.”
하도 구석진 곳이어서 하루에 몇 차례 나다니는 버스 외에는 전혀 교통편이 없었던 평촌리 주민에게 자동차는 비행기만큼 귀하고 새로운 문명의 이기였다. 방안에서 이들의 외침을 들은 방위병 서정수는 마루에서 잠에 곯아떨어진 우범곤을 흔들어 깨웠다.
“우 순경님. 경찰이 왔십니더. 빨리 일어나이소.”
이 말에 벌떡 일어선 우범곤은 자지러지게 놀랐다. 서정수는 그가 심하게 떨고 있는 것을 알았다.
“와 그라십니꺼. 우 순경님.”
그러나 서정수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범곤은 잽싸게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어서 꽈광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폭음소리를 들으며 서정수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깊은 수면 에 빠져들었다. 계속 불발만 되던 우범곤의 수류탄이 마침내 그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 마을의 마지막 사망자는 전복순씨, 이순두씨, 방위병 서정수씨, 그리고 우범곤이었다.
(註: 사건 당시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39명의 부상자 중에서 6명이 추가로 사망함으로써 이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은 총 62명이 되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mj0426?Redirect=Log&logNo=12763490 ]
◎한적한 시골마을서 광란의 참극/한밤중 수류탄 던지며 미친듯이 총질/8시간동안 4개 마을 공포의 도가니/젖먹이노인 등 56명 사망 34명 다쳐...
평화로운 농촌마을에서 광란의 참극을 빚은 禹範坤(우범곤) 순경의 총기난동사건은 허술한 무기관리와 진압체계의 취약 등 경찰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1982년 4월 26일 오후 9시 30분쯤 경남 의령군 궁유면 지서에 근무하던 禹순경(당시 27세)이 술에 만취해 지서와 예비군무기고에서 수류탄 7발과 카빈소총 2정,실탄 1백80발을 들고 나와 주민들에게 무차별 난사했다.
禹순경은 우체국에서 일하던 전화교환원부터 살해해 외부와 통신을 두절시킨 뒤 미친듯이 전기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려 자그마치 56명이 숨졌고 3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성을 완전히 잃은 禹순경은 생후 1주일된 영아부터 70세가 넘은 할머니에게도 총질을 하며 무려 8시간 동안 토곡리 등 4개 마을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주민 신고로 1시간 20분 뒤 사건을 접수한 의령경찰서는 뒤늦게 사살명령을 내리고 기동대를 출동시켰지만 禹순경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끔찍한 살상을 저지른 禹순경은 자정이 지나자 정신이 드는듯 총기난사를 멈추고 27일 오전5시 30분쯤 평촌리 서인수씨의 외딴 농가에 몰래 들어가 서씨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수류탄 2발를 터뜨려 자폭했다.
경찰은 평소 술버릇이 고약했던 禹순경이 내연의 처 전말순씨(당시 25세)와 말다툼을 벌인 뒤 술취한 흥분상태에서 좌천에 대한 인사불만과 애정문제가 폭발하면서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경찰관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데 쓰라고 맡긴 총을 무고한 주민에게 마구 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사태수습에 나선 정부는 비상출동태세와 치안체계의 허점을 무마하기 위해 사건 당일 온천에 놀러가 자리를 비운 궁유지서장 등 4명을 구속시켰고 내무부장관도 사임했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경찰은 경찰관 임용자격기준 강화와 무기관리 개선 등 각종 대책을 내놓으며 봉사하는 경찰이 될 것을 다짐했다.
이 사건은 경찰의 총기사고늑장출동 등 당시 지적된 문제점이 16년이 지난 오늘 얼마나 달라졌는지 경찰의 거듭된 자기성찰을 일깨우는 사건이었다<尹翔煥 기자〉
◎현장 목격 金東基 궁유 면장/“눈앞에 총알 난무 죽기살기로 탈출”
『평화롭던 마을에 갑자기 총알과 수류탄이 난무하고 주민들이 비명 속에 죽어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82년 4월26일 밤 발생한 경남 의령군 궁유면 禹範坤(우범곤) 순경의 총기난사 사건을 목격했던 金東基(김동기·60·5급) 궁유면장은 그때 일은 두번 다시 생각하기 싫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시 궁유면 총무계장이던 金면장은 반상회를 마친 뒤 직원들과 궁유파출소 앞 구멍가게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느닷없이 禹순경이 총을 들고 다가와 「형님을 쏴죽이겠다」고 말해 장난으로 받아들였지요』
禹순경이 갑자기 수류탄을 가게지붕에 던지면서 행인에게 총을 난사하는 등 난동을 부리자 그제서야 장난이 아닌줄 알아채고 죽기살기로 탈출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禹순경은 면청사 주변 토곡석정매곡당동부락을 돌며 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뜨려 이들 마을은 일거에 온통 초상집으로 변해 매년 4월 26∼27일이면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느라 향냄새가 진동한다는 게 金면장의 설명이다.
金면장은 『주민들이 말조차 꺼내기 싫어하지만 사건 이후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경찰관의 어깨를 감싸안고 제사 음식을 파출소에 나눠주는 순박한 농촌 인심은 여전하다』고 소개했다.〈昌原=安元俊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