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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일 (토요일)
다녀온 곳 - 안동 봉정사와 하회마을
여러 군데 역사여행을 가다보니 사진을 많이 찍게된다.
안동 다녀온지 10여 일이 지났는데 지우지못한 사진들....
아까워서 못지운 사진들 ....
안동에 또 갈수 있겠지....
가을이 담긴 사진이 아까워 기록물을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내 보물창고에 보관하기로.....
'동행 카페'는 나의 보물창고다~ 나의 소중한 친구다~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 안동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다녀갔다는 가장 한국적인 곳
안동 봉정사와 하회마을 가는 날
우리 '1988'은 이른 새벽 부지런떨면서 한 곳에 모여 택시를 잡아타고 출발
여러 사람들이 배려해준 덕분에 앞자리에 앉아 편하게 달콤한 아침 잠을 취하면서 안동으로 향했다.
천등산봉정사 (天燈山鳳停寺)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고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 때 대망산 바위 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산 이름을 '천등산'이라 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불렀다고 한다.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렸는데 이 종이 봉황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황이 머물렀다고 하여 봉황새봉(鳳), 머무를정(停) 글자를 따서
'봉정사'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천등산 봉정사) 일주문에서 단체사진 한 컷~~~
봉정사 안내도
극락전 (極樂殿) (국보 제15호)과 3층 석탑 (고려시대 석탑)과의 만남!!!
극락전(極樂殿) - 아미타 부처님의 나라를 표현한 극락세계
이곳에는 고통이 없고, 즐거움만 있어 자유롭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곳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이번 한국사 1급 시험문제로도 출제되었다고 한다.
체험학습 다니면서 봐왔던 사찰 전각 중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다.
단순하면서 맞배지붕, 직사각형의 출입구 양쪽 옆으로 세로로선 나무새김(?)
기둥마다 공포가 하나씩인 주심포 양식의 목조건물!
고금당과 고려시대 삼층석탑의 만남
스님이 참선 수행하는 선방
대웅전 (大雄殿) (국보 제311호)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 법당
대웅전은 조선초에 지어진 다포식 건물이다.
봉정사 경내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스님들이 드실 찬거리가 보관되어 있는 곳
땅 속의 김치냉장고!!
영산암 가는 계단 오르는 길
봉정사 영산암 우화루 (雨花樓)
영화 '동승',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영산암 입구 우화루 라는 현판은 원래 극락전 앞에 있던 누각의 현판이었다고 한다,
우화루의 우화(雨花)는 석가모니께서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처음 설하셨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화루라는 현판을 달 수 있는 곳은 높은
경지의 고승이 기거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삼성각
영산암은 꼭 안아주고 싶은 곳이었다~
< 나는 이렇게 감정의 표정을 많이 담은 마당은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요사스럽거나 번잡스럽게 느껴지지 않으니 그것이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봉정사에서 기도처인 대웅전, 극락전의 앞마당은 정연한데 수도처인 영산암 앞마당은 일상의
편안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봉정사에 와서 우리는
서로 성격이 다른 세 개의 마당을 보았다. 대웅전 앞의 엄숙한 마당,
극락전 앞의 정겨운 마당, 영산암의 감정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
마당을 눈여거 볼 줄 알때 비로소 한옥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건축의 에쎈스는 마당에 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中' 에서
아담한 봉정사 구경하고 내려가는 길
'
우리네 아버지께서 자식 농사를 위해 짐을 실어날랐던 지게!
요즘 아이들은 알까? 할아버지 등 뒤에 떡! 버티고 있는 지게의 수명(壽命)은
안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지 않았을까.....?
요즘 시골 친정집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귀한 물건이다.
안동찜닭
세계유산 -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河回)
하회마을 하면 '하회탈'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회마을에 가장 먼저 들어와 살았던 김해 허씨(고려시대 중기)가 살았을 때에 마을에 재앙이 돌면서
우환이 계속된 때에 마을에 사는 허도령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14가지 탈을 쓰고 한 판 놀이를 하면
모두 물러갈 것이다. 단 100일 안에 만들어라, 아무도 안 보인데서 만들어야 한다. 만일 누군가
엿보게 된다면 부정이 타서 '너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꿈을 꾼 후 허도령은 탈을 제작하였는데 백일이 다 되어 오는 날
마을에서 허도령을 사모하는 처녀가 보고픈 마음에 탈 만드는 허도령의 모습을 엿보고만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허도령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허도령이 마지막으로 제작하던 탈은 이매탈로 턱이 없다.
턱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게 되어 미완성의 작품으로 전한다고 한다.
하회별신(河回別神) 굿탈놀이
800년을 이어온 신명 하화별신굿탈놀이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 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상민들에 의해서 연희 되어온 탈놀이 이다. 이 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하여
주기적으로 열렸던 별신굿이라는 마을 굿으로 계속 행해져오고 있다.
별신굿이란 '별나다', '특별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별난굿 또는 특별한 큰 굿을 의미한다.
각시탈 - 무동마당
각시광대가 무동을 타고 마을로 들어오는 것은 마을 수호신인 성황신을 마을로 맞이하는 것을
상징하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것이다.
주지탈 - 주지마당
암수 한 쌍의 주지가 삼베 포대기를 뒤집어쓰고 등장하여 서로 마주보며 춤을 추고
싸우면서 잡귀를 쫓아낸다고 한다. 이 싸움에서 암컷이 이기는 것은 다산(多産)과
풍농(豊農)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정탈 - 백정마당
백정이 도끼와 칼을 넣은 오장치를 들고 등장하여 춤을 춘다.
어슬렁거리며 등장한 소를 때려잡아 소의 배를 갈라 염통과 소불알을 떼어낸 후
구경꾼들에게 이것들을 사라고 희롱한다.
할미탈 - 할미마당
쪽박을 허리에 찬 할미가 등장하여 베를 짜며 시집간지 사흘만에 과부가 되어
겪는 고통과 삶의 애환을 절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부네탈과 중탈 - 파계승 마당
부네가 등장하여 고운 자태를 뽐내며 매혹적인 춤을 춘다. 흥에 겨워 춤을 추던 부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치마를 살짝 들고 소변을 본다. 지나가던 스님이 이 광경을 보고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 종교적인 계율의 굴레를 떨치고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 세속적인 삶을 즐기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스님들의 타락성을 풍자하고 있다.
초랭이와 이매탈
초랭이 - 언행이 가볍고 방정맞은 인물로 양반의 하인이다.
하회탈 중 마지막 탈인 이매탈은 전설의 내용처럼 미완성의 작품으로 턱이 없다.
선비의 하인역으로 코가 비뚤어지고 눈꼬리가 아래로 쳐져있다.
바보스러우면서도 순박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양반 선비마당
양반과 선비가 거들먹거리며 등장하여 춤을 추다가 서로 부네를 차지하기 위하여 다투게 된다.
서로가 자기의 지체가 높고, 학문이 깊다고 다투며, 백정이 양기에 좋다고 파는 소불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다툰다. 이러한 대립 구조를 통하여 지배층의 위선과 가식을 드러내고 있다.
하회마을 안내도
안동하회 마을은 원래 김해 허씨와 광주 안씨가 살았던 집성촌이었는데 조선초 인근 풍산 지역에서
고려시대 호족이라 할 수 있는 향리였던 풍산류씨가 들어와 600여 년간 살면서 풍산류씨의 집성촌이
형성된 곳이다.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돌아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물흐름이 태극형을 이루고
있어 최고의 명당 자리라고 한다.
하회마을 중앙에 위치한 삼신당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
삼신당 (參神堂) 신목 (보호수)
풍수지리상으로 마을의 혈(穴), 행주형(行舟形)인 하회마을의 돗대 역할을 하는 곳
삼신당은 하회마을에서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다. 안동 하회마을 입향조 류종혜가 심은 수령
600여년 된 느티나무가 꼿꼿하게 서서 하회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나무를 잘못 건드리면 동티(재앙)를 입는다'는 토속신앙이
마을에 전해오고 있다.
이 곳에서 소원을 빌어요~~~~
양진당 (養眞堂)
조선 명종 때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입암(立巖) 류중영과 그 맏아들 겸암 류운용이
살던집이다. 류중영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랑채 안팎에 걸린 입암고택(立巖古宅) 현판이 확~ 눈에 들어온다.
충효당 (忠孝堂)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가이다. (보물 414호)
서애 류성룡이 벼슬을 마치고 귀향한 후에 초가집에서 살다 돌아가신 후 손자와 제자들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 지었다고 한다. 현판 '충효당 忠孝堂' 글씨는 조선중기 유명한
허목미수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영국 여왕이 방문한 곳. 이 곳을 찾아 이 마루에 신발을 벗고 올라갔다고 한다.
신발을 안 신고 안채를 통과할 수 있는곳. 여왕은 안채에서 커피도 마시고
김치 담그는 모습도 지켜봤다고 한다.
허목미수 선생의 현판 글씨체 '충효당(忠孝堂)' 알아볼 수 있나요?
충효당 뒤뜰의 정경을 끄집어오는 그림액자처럼 보이는 문틀이 참 아름다웠다~~~
충효당 안채
담연재 (澹然齋)
서애 류성룡의 13대손인 탤런트 배우 류시원의 본가이다.
이 곳 류시원의 본가에서 영국여왕 방문당시(1999년) 73세 생일상을 받았고,
안동을 대표하는 하회탈춤을 관람하였다고 한다.
담장의 돌에 구멍을 내어 '담연재'라고 쓰여져 있는데 무슨 용도일까요?
편지를 주고받는 '우체통' 이랍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받았다는 생일상 차림
만송정, 부용대 가는 길
만송정 (萬松亭) 천연기념물 제473호
조선 선조 때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용이 강 건너편 바위절벽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완화하고 북쪽의 찬 기운을 막기 위해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었다고 하여
만송정이라고 한다.
부용대 (芙蓉臺)
부용대는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에 해당하며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한다.
처음에는 '하회 북쪽에 있는 언덕'이란 뜻에서 북애 (北厓)라고 불렸다고 한다.
아쉽게도 부용대 정상에 올라 안동 하회마을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지 못했다.
가을이 익어가는 안동 하회마을......
첫댓글 안동을 한바퀴 다시 둘러 봤습니다. 놓쳤던거 다시 새기면서요. 감사~~~~
고3.
고삼있는 가정은 가족 전체가 수험생이라는데. . 고생하셨네요. .
안동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고3 있는 수험생 집안 수능시험 끝나면서 허전합과 합께 비로소 고3이 있음을 실감합니다~~~
좋은 내용잘읽고갑니더~꼭가고싶은곳이네요
탈에대한내용들이 귀에쏙쏙 잼있었어용^^
하회별신굿 탈놀이 실제로 보면 더 재미 있어요~ 함께 보러가입시더~^^
@신사임당 월욜만쉬어서 내년에 월요 답사 계획잡히면 꼭갈려구요^^감사합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