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육사문학관 (李陸史文學館) ... !
도산서원 (陶山書院) 을 보고 길따라 산을 넘어와 퇴계종택에 들른 뒤 길따라 계속가면 이육사 문학관에 도착하게 된다. 이육사문학관은 주소 경북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525 (구주소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900) 에 있으며 문학관 뒤에는 6형제가 태어난 자란 "육우당" 을 만들어 놓았다.
퇴계 이황의 14대손인 이육사 (李陸史) 선생 ... ! 1904년 경북 안동 도산면 원천에서 태어난 이육사는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한학을 배우며 성장했으며, 친가와 외가에서 익힌 항일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자연스레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교함으로써 소극적 자세를 벗어나 실천적 행동을 바탕으로 한 무력운동으로 독립의지를 구체화시켰으며 일제의 강압적인 탄압과 숱한 옥고를 치르면서도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항일 저항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이육사는 목숨을 내건 실천적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한편 일제 암흑기의 극악한 여건 속에서도 빛나는 문학작품을 남겼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본명은 원록(源祿), 호는 육사(陸史) 또는 활(活)이라 했다. 대구 교남학교, 영천 백학학원, 일본대, 중국 중산대 등에서 수학했고, 1925년에는 의열단과 연계된 활동도 했다. 1927년 인동 장진홍 선생과 함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 들어갔고 그 이후 수시로 감옥을 오간 독립운동가이며 시인이다. 1932년 6월 초 중국 베이징에서 노신을 만나, 동양의 정세를 논 하기도 하였다. 이육사는 줄곧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3년 국내에서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되었고 다음해인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다.
이후 중외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첫 시 "말" 을 조선일보에 발표하였고 1931년에는 대구격문사건으로 다시 수감되었고 이듬해에 북경과 남경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의열단에서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를 1기로 졸업했다. 그 후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했는데 이 해 6월에 북경으로 압송되어 이듬해 1월 16일 마흔의 나이로 북경주재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다고 한다. 광복 이후 이육사는 그의 업적에 대한 대가로 1968년에 대통령표창, 1977년에 건국포장 애국장, 1983년에 문화훈장 등을 수여하기도 했다. 육사선생은 독립군으로서의 활동보다는 시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데 그의 시에서 강렬한 독립의 의지와 민족 혼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 이육사문학관 (李陸史文學館) ... !
이육사문학관 (李陸史文學館) 은 도산서원에서 차로 약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육사의 생애와 문학세계 그리고 그의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입구에 이육사선생의 흉상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의 흉상 뒤에는 병풍이 전시되어 있다. 이 병품은 시경에 나오는 빈풍 7월장을 쓴 12폭 병풍으로 육사 6형제의 어머니 허길의 수연날을 맞아 형제들이 뜻을 모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문학관 왼쪽 벽면에는 이육사의 시세계에 대한 설명과 그의 대표작인 <황혼>, <청포도>, <절정>, <광야> 와 각 작품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이육사의 시는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초기의 작품들은 그의 침울한 정신세계를 추상적 말들로 노래했으며 이에 해당하는 작품에는 <황혼>, <교목>, <호수> 등이 있다. 그리고 그의 시는 중기에 접어들면서 인간과 세계의 여러 현상에 관심의 손길을 뻗게 되는데 이에 해당하는 작품에는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해조사> 등이 있다. 일제 암흑기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육사의 시는 반제국주의적이면서 저항의 의지를 담고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작품이 <절정>, <광야>, <꽃> 등이다.
또 전시관 한쪽 벽면에는 이육사와 시대를 함께 했던 문학가인 "이상화", "이병각", "신석초", "윤동주" 에 대한 설명도 되어 있어서 이육사와 동시대를 살았던 문학가들과 그들의 작품에서 이육사가 살았던 시기의 시대상황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육사문학관 1층의 두번째 전시관은 독립운동가로서의 이육사의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
그의 유고시집인 "‘육사시집 (1946)" 은 그의 동생이자 문학평론가인 이원조에 의해 출간되었다. 이원조선생의 본관은 진성(眞城). 호는 여천(黎泉)·임목아(林木兒). 경상북도 안동 출생. 이황(李滉)의 13대 손인 가호(家鎬)의 4남이며 육사(陸史)의 동생이다. 광복후 이원록이 형인 육사의 유고시집을 발표하게 되는데 여기에 '광야'가 실렸다. 이육사의 6형제는 애국지사 이원기,원록(이육사),원일,원조,원창,원흥 등 6형제인데 그들이 태어나서 가옥 이름을 "육우당" 이라고 한다.
◎ 이육사의 시 (詩) ...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광야 ]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출처: 웹어스 (WebUs) 원문보기 글쓴이: 도시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