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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아홉째 날 (1/17 목요일 로부체→고락셉→칼라파타르→고락셉→로부체)
“웰컴 투 칼라파타르!”
오늘은 트레킹 9일째가 되는 날이다. 내발로 걸어서 오르는 내 인생 최고 높은 곳으로 오르는 그곳,
칼라파타르에 오르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 일정은 로부체(4,910미터)에서 고락셉(5,140미터)을 거쳐 칼라파타르(5,560미터)에 오른 후
다시 고락셉으로 내려와 로부체까지 돌아오는 일정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을 서둘러야 한다.
어제 밤에는 결전의 날을 하루 앞두고 기대감과 긴장 때문인지
온갖 생각들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 1시경 화장실에 갔다 와서 잠이 들었다.
트레킹을 시작한 이후 거의 한 번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해 이제 피곤함 때문이라도
숙면을 취할 만도 했지만 새벽 4시 바짝 긴장한 탓에 일찍 눈을 떴다.
사람의 몸은 신비스럽게도 결전의 날에는 아무리 피곤할지언정 알아서 기상을 시켜주는가 보다.
입안과 코가 헐고 온 몸이 찌뿌드드했지만 벌떡 일어난 것은
아마도 에베레스트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칼라파타르로 오르는 벅찬 날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밤새 침낭에 보관했던 헤드랜턴을 꺼내어 머리에 차고 밖으로 나오니
롯지 지붕 오른 쪽으로 달빛에 반사된 눕체가 보인다.
위용 있게 버티고 서있는 눕체의 모습을 보며 심호흡을 크게 하고 차가운 산소를 몸속에 집어넣었다.
상쾌한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지만 뇌와 머리가죽은 따로 분리되어있는 것처럼
머리가죽은 뻐근하기만 하다. 추위도 대단하여 콧물이 바로 어는 것 같았고,
발끝이 너무 시려 채 3분도 안되어 곧 방으로 들어왔다.
기능성 상의 한 벌을 더 끼어 입고 양말 한 켤레를 더 꺼내서 끼어 신었다.
몸은 둔했지만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3켤레의 양말을 끼워 신기는 처음이다.
세면을 하려고 침낭 속에 있던 물병을 꺼냈더니 너무 차가워서 얼굴 씻는 것은 생략하기로 하고
양치질만 간단히 하였다. 5시가 되기 전 대원들도 벌써 일어나기 시작한다.
훈련이나 야영 때처럼 기상 소리를 외치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대원들은 어제 밤 부모님의 영상편지를 보고난 후라 고무된 표정이 역역해 보였고
결전의 날을 맞이해서 그런지 표정들이 비장해 보인다.
짐 정리를 마친 대원들이 모두 다이닝 룸으로 모였다.
모두가 가톨릭스카우트 항건을 착용한 채로...
어제 저녁 미리 주문해 놓은 아침을 먹고 기도를 바친 후,
7시경 칼라파타르를 향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내가 선두에 서서 천천히 걸었다.
지루한 돌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아침 추위는 정말로 매서웠다.
양말을 세 켤레나 끼워 신었는데도 등산화를 뚫고 들어오는 냉기가 발가락을 마비시키고
두 겹의 장갑을 낀 손가락까지 고통을 준다.
한 걸음 뒤에서 걷고 있던 승하의 숨소리가 커졌다.
몹시 힘든 것 같아 파쌍에게 휴식을 청하고 잠시 쉬는데 승하가 귀가 아프다며 눈물을 흘린다.
얼굴이 발개지고 호흡이 거칠어 파쌍에게 상태를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마운틴 씨크라며 고개를 젓는다.
뒤에 계신 신부님께 승하상태를 보고했더니 바로 포터 한 명과 함께 로부체로 돌아가라고 지시하신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거기서 약 먹이고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잘 참고 왔는데 얼마나 아쉬웠을까? 조금만 가면 칼라파타르인데...
로부체 패스의 돌과 바위로 쌓여진 언덕 길, 뒤에는 푸모리 봉
오늘 우리가 걷는 로부체 패스는 크고 작은 자갈이 깔린 너덜 길로 걷는 것 자체가 무척 괴로운 길이다.
너덜 길을 별 진척 없이 지루하게 지나자
이번에는 크고 작은 바위덩어리가 쌓여서 만들어진 언덕이 계속 이어진다.
얼마 높지 않은 언덕이었지만 돌너덜은 한 발 옮기는 것도 고통, 숨 쉬는 것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언덕을 어렵게 넘으면 또 다른 언덕, 가도 가도 지겨운 언덕이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대원들 모두가 한마디 말도 없이 파쌍의 리드에 따라 매우 힘겹게 오른다.
나의 체력은 거의 소진되어 한발 한발 천천히 오르면서 힘들면 멈추고 양손은 스틱에 의지한 채
크게 심호흡을 자주 하곤 하였다.
뒤따라오던 대원들이 짜증낼 만한데 아무 말 없이 내 모습을 안쓰럽게 보는 것 같았다.
두통은 심해졌고 호흡은 거칠어 졌으며 다리는 계속 절룩거렸다.
발은 자꾸 헛디뎌져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로 최악의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
포기할까? 그래 고랍셉까지만 가고 칼라파타르는 나에겐 무리야.
신부님께 말씀드리고 하산하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을 것 같아.
문득 디보체에서 미사때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중간에 내려간 현실이와 현정이는 실패한 게 아니야.
실패는 욕심 때문에 가다가 병과 사고로 죽었을 때 실패지.
우리가 칼라파타르까지 오르는 것은 우리 원정대 목표 중
저 뒤에 있는 아홉 번째 쯤 되.
정말 중요한 것은 너희들이 이곳에서 정말 아무 존재도 아니구나를 깨닫는 거야.
공부 좀 잘한다고, 좋은 옷 입었다고. 좋은 집에서 산다고,
그리고 항상 원하는 것이면 부모가 다 해준다고...
그렇게 풍요롭게 사는 게 너희들 스스로 만든 건 아니잖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봐. 물 한 컵으로 아침에 세면을 모두 해결하는 사람들이야.
포터아저씨들이 너희들의 짐을 나르는 짐꾼 정도로 무시해선 안 돼.
이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정말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거만하지도 않으며
성실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어. 주어진 삶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냐고 치부하기엔
그들의 삶이 정말 가치 있어 보였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이런 삶을 보여 주고 싶었고,
그래서 이곳에 온 거야.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설산만 보지 말고
정말 순박한 이들의 삶을 보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길 바래.
그래서 너희들이 칼라파타르에 올랐다고 한국에 가서 자랑하는 건
부질없는 행동일 뿐이지."
처음 한국을 출발할 때 나의 목적지는 분명 칼라파타르였다.
신부님께선 정한 목적지였지만 한국에 있는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거기에 간다고
약간은 자랑삼아 이야기했기 때문에 무조건 올라야하는 곳이었고,
경쟁의 시대를 살아 온 나에게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낙오자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부님 말씀을 되새겨 보면서 낙오자란 생각은 떨쳐버리기로 했다.
여기서 멈춰 선다고 실패는 아니야.
이곳에서 가이드와 포터 그리고 수많은 고산족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을 통해
히말라야가 가진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많이 배웠잖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맑고 깨끗한 그들을 보면서
경쟁 속에 복잡하게 사는 나의 생활을 충분히 돌이켜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으면 됐지.
그 이상 바라는 것은 욕심일 뿐이야.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순응한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눈의 거처'란 뜻의 히말라야는 셀파족 등 고산족들에겐 단순한 산이 아니라
신이 머무는 성스러운 자리다. 그렇듯 신의 영역을 인간들이 원한다고 쉽게 받아주는 곳이 아니었다.
겸손하고 욕심을 버려야 영혼의 안식을 선물하는 히말라야! 그래, 신이 허락하는 곳까지만 가자.
모래밭이 펼쳐진 고락셉, 잠실운동장 4배 크기이다.
힘들게 너덜 언덕을 오르고 내려오고를 몇 번 반복했더니
마침내 로부체패스의 마지막 언덕(5,200미터)에 올라섰다.
저 밑에 하얀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오른 쪽으로 조그맣게 고락셉 롯지 몇 채가 보였다.
아, 이제 거의 다 왔구나. 발걸음이 빨라졌다.
고된 산행으로 절뚝이던 다리에 갑자기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도착시간 11시 30분, 예상시간 3시간이었지만 4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고락셉(5,140미터)에 도착하였다.
대원들은 모두 다 기진맥진하여 롯지로 들어가자마자 의자에 지친 몸을 던졌다.
모두 한동안 꿈쩍도 하지 않는다. 파쌍이 차를 주문 받을 때쯤 신부님께서 들어오셨다.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은 무리일거라 판단한 나는
신부님께 함께 식사하면서 하산결정을 보고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내게로 오시더니 뒤로 쓰러지듯이 앉으시며 말씀하신다.
"에몬대장님, 저는 도저히 못가겠어요.
대원들 인솔하고 에몬대장님이 칼라파타르까지 다녀오세요.
네, 제가요? 저는 오히려 신부님한테 부탁하려고 했는데...
전 오래 전에 한 번 다녀 온 곳이잖아요. 에몬대장님은 처음이구요.
저도 웬만하면 올라가서 대원들과 함께 장문례도 하고 싶지만
지금 상태로는 올라가다가 쓰러질 것 같네요.
그러니 전효진대장과 함께 대원들을 잘 인솔하고 다녀오세요.
그리고 칼라파타르에 올라갔다 내려와서 로부체까지 오는 건
지금 시간으로는 무리일 수 있어요.
잘 판단하셔서 고락셉에서 하루 밤을 잘 수 있는 계획도 세워 보세요.
대원들 침낭은 제가 로부체로 가서 포터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도록
조치할 테니깐요.
지금 판단하지 마시고 일단 칼라파타르에 올라갔다가 고락셉에 내려와서
대원들 상태 보고 결정하세요."
갑자기 머리가 더 아파왔다. 히말라야의 신이 나에게 더 올라와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것인가?
올라가고자 하는 욕구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바로 조금 전까지 마음속으로 하산을 결정한 마당에 다시 결정을 번복하려니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나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심한 두통과 절뚝거리는 다리가 문제였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같으면 아예 일찌감치 포기했을 텐데...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등정, 정신력으로 버티기에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신부님이 계속 강조하셨는데
무모한 도전을 과연 할 것인가? 올라가느냐 마느냐의 단순한 결정이었지만 그 순간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출발 전에 신부님과 칼라파타르에서 폼 나게 담배를 한 대 피우자고 약속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칼라파타르에 서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올라가는 것으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욕구가 되살아 난 것이다. 까짓 것 두통은 계속 있었던 거라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이고,
절뚝거리는 다리는 천천히 달래면서 걸으면 될 것이다.
오르다 정 못 올라갈 것 같으면 그때 내려오면 될 것 아닌가?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니 대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대원들의 상태를 보고 함께 오를 수 있는 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혜진이와 혜민이가 롯지에 들어올 때부터 무척 고통스러워 보여
우선 혜진이와 혜민이한테 올라갈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모두 고개를 젓는다.
둘 다 입술은 포도 빛으로 변해 있었다.
원수연대장은 심한 고소와 탈진상태를 보여 아예 하산하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투혼을 보인 것이다.
나머지 대원들은 지쳐있을 뿐 심한 고소증세를 보이거나 아픈 대원은 없어 보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롯지안에서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데 준서가 점심 먹은 게 체한 것 같다며
손가락을 따달라고 한다. 비비안나대장이 손가락을 따주었는데 바로 화장실로 뛰쳐나간다.
걱정이 되어 따라 나갔더니 화장실에서 토하려고 몸을 숙이고 있었다.
등을 두드리면서 제발 토하길 바랐지만 욱욱 소리만 낼 뿐 토하지는 않는다.
괜찮겠니? 물어 보았더니 가슴만 답답할 뿐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걱정이 두 배로 늘면서 준서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서글펐다.
힘내!
이제 우리 일행 20명중 13명만이 칼라파타르에 오를 것이다.
충분한 휴식시간은 아니었지만 더 지체하면 정해진 일정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 졌다.
오후 1시가 다 되서야 우린 트레킹의 마지막 목적지인 칼라파타르로 출발했다.
잠실운동장 4개 크기의 하얀 모래밭을 지나자 바로 가파른 언덕이다.
평지 길은 거의 없고 초입부터 칼라파타르 끝까지 30도 이상 오르막을 계속 올라야 한다.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숨이 차지 않도록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고 쉬고를 반복하면서 거의 바닥난 체력을 달랬다.
절뚝거리던 다리는 거짓말처럼 많이 좋아졌다.
어렵게 올라가는 과정에서도 좌우의 경치는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오른 쪽으로는 로체와 에베레스트가,
왼쪽으로는 푸모리가 손에 닿을 듯하고 뒤로는 아마다블람을 비롯한 여러 개의 설산고봉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그야말로 히말라야 대자연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는데
파쌍이 내게로 와서 이곳이 칼라파타르에서 본 경치와 똑같다고 알려준다.
그래! 여기가 칼라파타르에서 보는 경치와 똑같아? 예스, 쎄임 뷰.
그러면 저기까지 올라갈 필요 없잖아.
시간도 부족하니까 여기서 기념촬영하고 내려가면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다른 대장들과 협의하려고 전효진대장과 나정해대장을 불렀다.
전효진대장은 한마디로 ‘노우’였다.
지친 기색이 역역해 보였지만 끝까지 올라가야지 여기서 멈추는 건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허인정대장과 경우린대장에게도 똑같이 물어보았더니 “대장님, 끝까지 올라가죠.”한다.
모두 힘들어 하여 동의를 해줄 걸로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다.
함께 올라오던 나정해대장은 참을 수 없는 두통 때문에 고락셉으로 다시 내려갔다고 라무가 알려주었다.
이번 트레킹의 영상을 담당하던 나정해대장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우리의 모습을 촬영하느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체력을 보여주었다.
결국 고락셉롯지에서부터 두통으로 무척 고통스러워하더니
나정해대장에게도 심한 고소증세가 찾아간 모양이다.
라무의 표현을 빌자면 죽을 수도 있다며 내려가라고 했단다.
고소는 가끔 등반을 안내하는 셀파까지도 목숨을 앗아간다고 하니 무섭기는 무서운 증상이다.
이제 12명만이 남았다. 올라가다가 또 어느 누가 내려갈 지 아무도 모른다.
나정해대장과 이범석신부님
갑자기 눈발이 날리고 고봉 밑으로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심한 바람까지 더해 힘겹게 오르는 우리를 더욱 힘겹게 만든다.
조금 전까지 맑았던 그래서 에베레스트와 로체 그리고 푸모리가 선명하게 보였던 광경이
순식간에 구름과 안개에 가려졌다.
변화무쌍한 날씨려니 생각했지만 이번 구름은 주변을 온통 어둡게 만들어서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바람은 정말 쉬지 않고 불어대어 코로 들어오는 산소까지 날려 보내는 것 같아 숨쉬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생각지 못한 날씨의 변화로 나는 최악의 상태로 내달았다.
숨소리는 커지고 다리가 더 아파왔는데 마치 몸과 다리가 분리된 느낌이었다.
길을 리드하던 파쌍이 나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배낭을 달라고 한다. 정말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대원의 배낭을 메고 가던 파쌍에게 내 것까지 지우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위를 보니 칼라파타르가 100미터 남짓 남아있는 것 같아서 끝까지 내가 메고 가겠다고
마음에 없는 대답을 했다. 파쌍의 세심한 배려에 또 한 번 감사함을 느꼈다.
입에 거품 물고 있는 에몬대장
칼라파타르의 정상이 선명하게 보이면서 또 다시 돌너덜길이 나왔다. 이번엔 거친 돌들이다.
오르는 길도 가파른 경사 길이었는데 이제까지 내 기억에 제일 힘든 오르막길이었다.
마지막 온 힘을 다하여 올랐다. 세 걸음 걷고 쉬면서...
"웰컴 투 칼라파타르!"
파쌍이 배낭을 풀고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넨다.
고락셉에서 출발하여 약 2시간 30분 만에 대망의 칼라파타르(5,560미터)에 도착한 것이다.
2008년 1월 17일 오후 3시 20분. 오르지 못할 것 같았던 칼라파타르 정상에 선 순간,
나는 감격에 겨워 눈물이 하염없이 나오기 시작한다.
배낭에서 태극기와 가톨릭스카우트기 그리고 현수막을 꺼내면서 엉엉 울어버렸다.
몸은 지쳐있었으나 올라온 대원들과 힘차게 포옹을 하고 기쁨을 만끽하였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던가? 트레킹 9일 간의 모든 고생이 잊혀 질만큼 감격적인 순간에
우리 12명은 그곳에 서있었다. 기쁨에 겨워 사방을 몇 바퀴씩 돌아보았다.
하지만 구름과 안개 때문에 푸모리와 로체만 살짝 보일 뿐 에베레스트는 보이지 않았다.
에베레스트의 신이 우리를 허락하지 않아서 일까?
조금 서운했지만 나의 두 발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높이에 서있었기에 그것으로 충분했다.
역사적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신부님께서 꼭 해보고 싶었던 장문례 예식도 펼쳐졌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이곳 칼라파타르에 오신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고소증세와 피로로 몸은 괴로웠지만 장문례는 모두에게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3년전 칼라파타르에서 찍은 신부님의 모습, 빨간 화살표가 에베레스트, 노란색이 로체
장문례를 마치자마자 기쁨과 환희를 뒤로한 채 우리는 모두 하산을 시작했다.
시간은 3시 40분, 고락셉까지 1시간 내로 내려가야 하고 거기서 다시 로부체로 가려면 3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로부체 도착시간이 저녁 8시경이다. 또 마음이 급해졌다.
로부체로 오다가 길이 어두워져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고락셉에서 숙박을 검토해보라고 하신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났지만 신속히 고도를 내려야만
고소증세에서 해방될 수 있고, 하루빨리 나머지 일행과 만나고 싶었기 때문에
고락셉에서 숙박하는 건 생각하기 싫었다.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길 보다 3배는 빨랐다.
부상이 염려되어 다리에 제동을 자주 걸었더니 무릎에 통증이 더 심해진다.
하지만 마음은 무척 편했다. 4시 30분, 생각보다 빠르게 고락셉에 도착했고 따뜻한 차로 몸을 녹였다.
롯지 주인에게 우리의 다짐을 기록한 가톨릭스카우트旗를 벽면에 달고 싶다고 하였더니 오케이다.
내년에 다시 올 테니까 그때까지 달려있어야 한다고 부탁했더니
영원히 달려있을 거라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킨다.
라무와 함께 제일 좋은 자리인 다이닝 룸 중앙에 가톨릭스카우트旗를 달았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롯지이름 : Buddha Lodge)
고락셉 Buddha Lodge앞에서 신부님과 원수연대장, 그리고 혜진이와 혜민이
로부체로 돌아가기 전 신부님이 혜진이와 혜민이에게 하신 말씀
"위로 올라가는 친구들은 '아름다운 도전'을 하는 것이고
우린 올라가는 친구들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오후 5시가 다 되었다. 더 많은 휴식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 출발해도 로부체 도착 전에
어두운 길을 지나야 한다. 대원들에게 헤드랜턴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다음 로부체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전효진대장이 선두에 서고 내가 맨 뒤에 섰다.
언덕을 몇 번 오르락내리락 했더니 왼쪽 무릎에 심한 통증과 함께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
양손에 쥐고 있던 스틱에만 의지한 채 온 힘을 다해 걸었지만
대원들이 걷는 속도를 맞추어서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함께 걷던 라무가 배낭을 달라고 하여 염치없이 건넸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져 가고, 앞에 가는 대원들은 보이질 않는다.
이제 체력은 그야말로 완전히 바닥을 기었고 다리의 통증은 더욱 심해져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라무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앞으로 급히 뛰어갔다. 언덕을 넘어간 라무도 이젠 보이질 않는다.
이젠 나 혼자만 이곳에 남은 것이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오면서 정신도 몽롱해졌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앞서 가던 포터인 파쌍겔러가 언덕위에서 나에게 뛰어온다.
라무가 파쌍겔러에게 나를 부축하라고 지시한 모양이다.
샹보체에서 혜민을 업고 뛰어 내려갔던 파쌍겔러를 보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힘을 내서 일어서려니 무릎에 통증이 더욱 심해져 다시 주저앉고 만다.
그는 스틱을 달라고 하더니 나의 왼팔을 자기 목의 두르고 내 허리를 감싼 채 일어선다.
키는 150cm 밖에 안 되었지만 힘이 엄청 좋아서 나를 거뜬히 부축했다.
20분 정도 지나자 또 한 명의 포터가 달려온다. 슘바였다.
이젠 양쪽에서 나를 부축하였는데 그때부터 나는 내걸음이 아닌 포터의 도움으로 걷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그 순간 이들의 정성어린 도움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셀파 파쌍겔러와 슘바에게 감사의 표시로 고맙다는 말밖엔 할 수 없어 아쉬움이 많았다.
짐만 나르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는데
순박한 이들은 위험에 빠진 사람들까지 편안하게 해주었으며 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었다.
잠깐 휴식을 취할 때면 나의 다리를 열심히 주물러 주기도 하였다.
그 손길에서 푸근한 정이 배어 나왔으며 아픈 다리도 점차 회복되는 것 같았다.
왼쪽부터 파쌍겔러, 나, 파쌍, 전효진대장, 라무, 창안은 슘부
날은 이제 완전히 깜깜해졌다. 별빛이 우리가 걷는 너덜 길을 비추었지만 너무 희미하여
헤드랜턴이 없었다면 걷기가 정말 힘든 길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였던 길을 포터의 도움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결국 7시 30분이 되서야
로부체 마을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저 앞에서 랜턴 빛이 반짝인다.
라무가 마중 나와 있었다. 너무 반가워 대원들은 잘 도착했는지 물었더니 모두 안전하게 들어갔다고 한다.
여기서 20분 정도면 로부체 롯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하여 이제 내 힘으로 걷기 시작했다.
롯지에 들어갈 때 포터들의 어깨에 부축하고 들어가는 모습을 대원들에게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아서인지 그렇게 아팠던 다리가 회복된 것처럼
다시 힘이 솟아났다.
롯지로 들어서는 순간 신부님과 대원들 모두 나와서 장문례로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부님께서 두 팔을 벌리고 “정말 수고하셨어요.”하며 나를 포옹한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너무 힘들었다며 어린애처럼 하소연하며
신부님 품안에서 엉엉 울어버린 것이다.
신부님께서도 함께 올라가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육신은 피폐하였으나 로부체 롯지에 도착하니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신부님과 함께 담배를 피우며 한 이야기
"저요, 앞으로 3년 동안은 절대로 산 근처에도 가지 않을 거예요. ㅎㅎㅎ..."
You Raise Me Up - Westlife
첫댓글 대장님..내년에는 대원들과 함께 베이든 포우엘 피크 가셔야지요....^^V
ㅎㅎ 그럴까요? 신부님과 함께라면 ㅋㅋ
삶의 한 중간에 히말을 다녀온건 정말 잘한일...글구 베이든 포우엘...음...잘 다녀오삼..ㅋㅋㅋ전 롯지가 생기면 그때나...
극한 상황을 체험하고 나면 또다시 해보고 싶다는 중독성이 생긴다고 하더니 '우릴 죽일셈이냐고 '신부님께 따질려고 했던 마음은 어디로 갔을꼬...로부체에 도착하고 반쪽이 되신 신부님께서 안아 주셨을 때 너무 힘들었어요~~하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에몬대장님없이 제가 혼자 가야했다면 몇배로 더 힘들고 두려웠을 거예요
의여차 의여차 의여차 !!!!
대장님들 후기를 읽고 난 후 정말 목숨 걸고 갈 만큼 힘든 여정이었기에, 대원들과 함께한 그 많은 힘든 시간들 평생 못 잊을 것이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그들 인생에 크나 큰 도움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함께 흘러 나오는 유 레이즈 미 업 노래 오늘 따라 감동으로 밀려 옵니다. 에몬대장님이 준 그 악보 저 아직 보관중인데 이참에 노래를 확실히 배워야것네요 언젠가 노래방에서 함께 부를 날을 기다리며... 트레킹방 새로 꾸미신 분이 누군지 모르지만 저 트래킹방 없어진지 알고 무척 서운할뻔... 정리 잘 해 놓으셨네요. 아직 못 읽은 후기들과 사진 영상물 많은데 앞으로 1년 정도는 이 상태로 유지 해 놓으시길...
엄마랑 운동 많이하고 건강해지면 함께 가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