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왜이래
재방송 되고 있는 이 드라마(43)회를 얼마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달봉이가 두부 32판을 파는 과정에, 마지막 다섯판을 누나와 형이 한판씩 사주면서 「가족끼리 왜그래」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강은경 작가의 맵씨있는 글 솜씨에 TV 다시보기에서 1회부터 연속으로 며칠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53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요새 드라마라는 것은 시청률만 억지로 롤리기 위해 상상하기도 힘든 출생의 비밀과, 희한한 삼각관계 내용으로 방영해, 전혀 안 보았지만 이 드라마 만큼은 그런 사항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끼리 왜이래」는 일찍 상처하고 홀로 삼남매를 키워온 차순봉이 어느날 자식들에게 불효소송을 제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이 아버지가 도대체 왜 이러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시한부 판정을 받은 차순봉은 죽기 전 자식들과 조금이라도 더 살가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병은 숨긴 채 고육지책으로 전대미문의 불효소송을 제기한 것이지요.
자극적인 소재가 있어야 시청률이 담보되는 요즘 안방극장에서 보기 드문 선한 이야기로 사랑받아서 인지 시청률 43.1%로 막을 내리면서 주말극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또한 죽음과 이별의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끝까지 유쾌함을 유지하며 남녀노소가 함께 웃고 울며 볼 수 있는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딸아, 네가 누구의 아내이든 누구의 엄마가 돼든 너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거라, 이 애비의 소중한 딸이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드라마가 자식 세대의 감성을 자극한 것도 주효했지요. 일만 아는 큰딸 강심은 순봉에게 “우리도 밖에서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지 아세요? 매일 매일이 독립운동이고 전쟁이에요, 우리한테는”이라고 하소연합니다.
이기적인 면모를 보였던 아들 강재도 “나는 출세한 아버지도 없고 ‘빽’ 좋은 집안도 없으니까. 어떻게든 내 존재를 증명받기 위해 매순간 날 추스르고 채찍질해가면서 그렇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고요”라며 힘겨웠던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소원들은 온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고, 아이들과 하루에 한 번씩 전화 통화를 하고, 마흔이 가까워오는 강심의 짝을 찾아주고, 냉담한 강재 내외랑 3개월동안 함께 살고, 직장을 잡지 못한 달봉을 위해 매달 100만원씩 용돈을 받고, 가족 다 함께 고고장에 가보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가족노래자랑을 여는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추억을 곱씹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나도 눈물이 찔끔 나왔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을 위한 송가
최백호의 「길 위에서」 가사중 "아직 나에게 시간이 남았다면 이 밤 마지막 술잔에 시간을 채우리…." 라는 노래 때문에..
긴 꿈이었을까
저 아득한 세월이
거친 바람속을 참 오래도 걸었네
긴 꿈이었다면 덧없게도 잊힐까
대답없는 길을 나 외롭게 걸어왔네
푸른 잎들 돋고
새들 노래를 하던
뜰에 오색향기 어여쁜 시간은 지나고
고마웠어요
스쳐간 그 인연들
아름다웠던 추억에 웃으며 인사를 해야지
아직 나에게 시간이 남았다면
이 밤 외로운 술잔을 가득히 채우리
푸른 하늘 위로 웃음 날아오르고
꽃잎보다 붉던 내 젊은 시간은 지나고
기억할께요 다정한 그 얼굴들
나를 떠나는 시간과 조용히 악수를 해야지
떠나가야할 시간이 되었다면
이 밤 마지막 술잔에 입술을 맞추리
긴 꿈이었을까
어디만큼 왔는지
문을 열고 서니 찬 바람만 스쳐가네
바람만 스쳐.. 가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 "그래, 이게 사는 거지"에 나도 동의합니다.
드라마의 인기는 가족을 위해 묵묵하게 헌신해 온 이 시대 아버지들의 내면을 담담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지금의 아버지 세대는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부정적으로 평가받거나, 직장이나 집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된 경우가 많았다”며 “드라마가 현실에서 소외된 아버지들의 상실감을 달래줬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냥 너희들과 이렇게 오늘을 살고 싶구나.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지 그건 그냥 내일한테 맡겨두고, 이렇게 너희들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으면서 그렇게 오늘을 살고 싶구나. 그러면 안 되겠니?”
“일찍 해가 들면 그만큼 그늘도 빨리 지는 거고.... 빨리 잘 된다고 그 인생이 끝까지 좋으리란 법도 없다.”
“사랑은..... 사랑이라 말하지 않으면 사랑인줄 모른단다.”
이따금씩 나오는 노래가사도 마음에 듭니다.
내가 말했잖아 기쁠땐 웃어버리라고
복사꽃 두 뺨이 활짝 필때까지
내가 말했잖아 슬플땐 울어버리라고
슬픔이 넘칠땐 차라리 웃어버려
소녀야 왜 또 이밤 이다지도 행복할까
아이야 왜 또 이밤 이다지도 서글플까
내가 말했잖아 기쁠땐 웃어버리라고
복사꽃 두 뺨이 활짝 필때까지
내가 말했잖아 슬플땐 슬플땐 울어버리라고
슬픔이 넘칠땐 차라리 웃어버려
소녀야 왜 또 이밤 이다지도 행복할까
아이야 왜 또 이밤 이다지도 서글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