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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일이란? 등산은 산행들머리에서 출발하여 정상을 향해 수직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트레일은 수평으로 이동하며 능선이나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트레일을 굳이 우리말로 말하자면 ‘산언저리 산행’이라고 할만합니다. 우리나라 등산 인구의 70% 이상은 ‘웰빙’을 목적으로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알피니즘이나 호연지기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등산로가 정상을 향하기 때문에 오로지 기를 쓰고 정상을 오를 뿐입니다. 등산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하게 훼손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트레일은 코스 개발을 위해 새로운 길을 뚫거나 확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나 있지만 연결되지 않은 토막 난 산길들을 수평으로 잇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만약 수직 등산에 익숙해져 있는 웰빙 등산객을 트레일로 유도하게 된다면 등산객이 분산됩니다. 그렇게 되면 산림생태계 훼손이 최소화되므로, 등산로 보호는 물론이요 더욱 쾌적한 등산과 삼림욕 기회가 많아져서 삶의 질 향상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입니다. 트레일은 영국에서 1965년에 ‘국립 트레일 제도’가 만들어지며 탄생했습니다. 그 결과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에는 15개 트레일 4,000km의 생태탐방로가 만들어져 연간 1,2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최근에 트레일 운동이 조용한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트레일 운동의 원조는 조필대 교수가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경남 가야산 해인사까지 종주하고 이 기록을 1975년도에 한 월간지에 기고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후 1970년대 말부터 시작하였던 태백산맥 종주등반이 백두대간 종주등반과 9정맥 종주로 발전이 되면서 차츰 종주산행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산줄기 종주는 트레일과는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트레일이 산책로로 진행하는 것이라면 종주산행은 등산로로 진행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트레일은 접근이 용이한 코스와 안내판이 설치되어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 트레일은 관광의 새로운 트렌드 KTC는 우리나라 최초의 트레일 전문클럽입니다. 2002년에 창립되어 황지 100km, 울릉도 라운드 80km, 국토종단 트레일(설악동 캠프장부터 정선 구절리)을 개척했고, 최근에 ‘북한산 라운드 트레일 70km'을 30개월에 걸쳐 개척하였습니다. 북한산 라운드 트레일은 의정부시 안골에서 시작하여 북한산 국립공원의 2~3부 능선을 따라 망월사 ․ 회룡사 ․ 다락원 캠프장 ․ 우이동 ․ 화계사 ․ 정릉 ․ 홍지문 ․ 진관사 ․ 밤골 ․ 송추를 일주하는 환상의 코스입니다. 코스의 상당 구간이 유서 깊은 사찰과 약수터, 국립공원 지킴터를 통과합니다. 여기에 울창한 숲길과 아담한 오솔길로 이어지므로 역사와 문화, 웰빙과 자연이 조화되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산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북한산 라운드 트레일을 성공한 KTC는 수락산과 불암산 트레일까지 완성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체험관광 상품으로 손색없는 명품 코스가 완성되는 셈입니다. 지리산 800리 둘레길, 제주 올레길 12개 코스, 강화섬 둘레길, 원효 트레일 사업 등이 추진되면서 트레일이란 용어가 그리 낯설지 않은 시절이 돌아왔습니다. 코스마다 그 성격과 추진 주체, 목적 등은 다르지만 ‘자연 속에서 잃었던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트레일의 기본 성격은 같습니다. 트레일을 좀더 세분해 보자면 ①원점회귀 라운드 트레일 ②시작과 끝이 다르고 산줄기 능선과 봉우리를 연결하는 종주등반 ③비포장도로와 마을길을 연결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둘레길 또는 올레길 ④2~3부 산 사면의 고개를 넘고 마을을 가로질러 다시 고개를 넘는 언저리 산행 등으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 북한산 라운드 트레일 코스 제1구간 정릉 탐방안내소-1km-신성천 샘터-0.4km-형제봉 지능선-0.2km-북악천 샘터-0.5km -왕명사-0.1km-무덤1기-1.2km-여사 일주문-0.6km-하늘마루정자-1.2km-팔각정 휴게소-2.7km -창의문-1.4km-인왕산 주능선-2.2km-홍지문 제2구간 홍지문-2.8km-탕춘대공원지킴이-1.0km-향림당-0.6km-북악천 샘터-0.8km-석산정 약수터-0.8km -기자촌 공원지킴터-1.8km-진관사 일주문-0.8km-삼천사 입구-1.2km -수방사 정문-1.5km-백화사-0.8km-북한산성초교 제3구간 도봉분소 탐방지원센터-1.5km-무수골마을-4.3km-우이분소-1.3km -세이천-1.9km-수유분소-1.9km-냉골 지킴터(영락기도원 입구)-1.1km-화계사-1.2km -공초선생 묘-0.2km-칼바위지킴터-1.5km-북한산사무소 제3구간에서 제1구간 사이의 제4구간, 제5구간 트레일 코스 자료는 아직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1 도봉산 매표소-정릉매표소 무수골 자연마을 주말농장 지나 우이동으로 3구간 걷기는 도봉산 ‘포돌이광장’에서 시작한다. 주말을 맞은 들머리 도봉분소 탐방지원센터 앞은 산불조심 캠페인과 등산인구 수 집계로 더욱 북적거린다. ‘산행’보다는 ‘걷기’에 좋은 길인 능원사, 도봉사 방향으로 간다. 트레일은 보문능선이 시작되는 약수터 조금 못 미쳐 간이화장실 왼쪽으로 나 있다. 무수골 쪽이다. 어지간한 등산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길이다. 남양홍씨 묘를 지나 평지나 다름없는 길을 10분쯤 가니 포장로가 나온다. 개발제한구역인 무수골 자연마을이다. 이 마을은 주말농장으로 꽤 알려진데다, 도심에서 멀지 않고 농장 규모도 커 자연의 정취를 느끼며 농작물을 가꾸고 수확하려는 가족들이 주말이면 많이 찾는다. 무수천을 따라 단층 가옥들이 띄엄띄엄 이어지는가 싶더니 능혜사를 지나 오른쪽으로 세일교를 건넌다. 곧장 가면 자현암, 다리 건너자마자 성신여대 체육시설 부지 앞에서 왼쪽 길로 접어든다. 산자락 곳곳에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갈림길이다 싶으면 낮은 곳으로 잡는다. 10여분 뒤 첫 이정표를 만난다. “원통사 2.9km 세일교 0.34km 힐사이드 0.9km” 지능선을 따라 원통사 쪽으로 간다. 조금 높이를 더하자 오른쪽 자현암에서 나는 염불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땀을 식히고 있다. 도봉초등학생들이 ‘놀토’에 현장체험 학습을 온 것. 열 명이 넘는 트레일 대원이 산기슭 언저리를 맴돌며 지나는 게 이상한지 물끄러미 쳐다보는 애들도 있다. 인수봉과 선인봉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산불감시소를 지나 방학능선에 올라서 우이동 쪽으로 내려선다. 제주고씨 묘와 철탑이 있는 무안박씨 묘를 지나니 양봉을 하는 곳이 나오는데 우이동 ‘먹거리촌’ 안쪽의 나대지다. 낮은 산자락 양지바른 곳이라 봉분을 쉽게 볼 수 있다. 길은 우이치안센터를 지나 편의점을 끼고 오른쪽 우이동계곡으로 이어진다. 우이분소가 나오며 아스팔트 도로를 잠시 걷는다. 이렇게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을 등산객들이 같이 이용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세 차례 확포장되면서 지금처럼 넓어졌는데,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원래의 길을 열어주든지 아니면 차량통행을 제한하든지 대책이 필요하겠다. 국립공원으로 들어서는 길이 차와 사람이 뒤섞여선 안되는 거다. 독립유공자 묘역 지나 공초 묘소로 300미터를 올라 이르니 우이분소 왼쪽 철책으로 ‘대동문 2.9km’라고 적힌 이정표와 문이 나 있다. 가파른 오름길이다. 짧지만 트레일 전 구간을 통틀어 가장 가파른 구간이다. 5분쯤 치고 오른 후 숨을 고른다. 목이 마른 터에 곧 옹달샘이 나온다. 그런데 식수로 적합하다고 써놓은 ‘쯩’을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지나쳐 800미터 거리에 세이천(洗耳泉) 물을 먹는다. 옹달샘 유래가 재미있다. 허유(許由)가 영천(潁川)의 개울에서 귀를 씻고 있는데, 물을 먹이러 소를 몰고 오던 소부(巢父))가 그 까닭을 물은 즉 요 임금으로부터 왕의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소리를 듣고 귀를 씻는 중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소부가 제 소에게 귀 씻은 더러운 물을 먹일 수 없다며 상류로 소를 몰고 올라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요순시대에도 정치는 부패했나보다. 이 고사를 인용, ‘몹쓸 말, 못 들을 말을 들었을 때 귀를 닦아 새롭게 정진하자’는 뜻을 담아 ‘세이천 조기회’에서 이름을 지었다는 거다. 그런데 물맛이 좀 찝찝하다. 전화를 걸어 강북구청 공원녹지과 수질관리팀에 확인해 보니 ‘식수 부적합’ 판정을 내린다. 분기별로 관내 약수터 10곳을 검사하는데 음용수로는 대부분 부적합 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것. 내친 김에 정릉까지 이어지는 길에 있는 샘들의 상태도 물었다. “영락기도원 앞 팔각정에 있는 지하수를 빼놓고는 모두 먹는 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샘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수유리로 향한다. 4·19 국립묘지 인근 보광사를 왼쪽에 끼고 철책을 따르니 독립유공자 묘역이 나온다. 김도연, 서상일, 신숙, 김창숙 선생 등 수유지구에 열네 분의 독립유공자 묘소가 산재해 있다. 수유공원 지킴터에는 묘역순환로가 그려진 묘소 종합안내판도 있다, 지난해 말 국가보훈처가 진입로 환경정비 사업을 하며 설치한 것이다. 수유분소가 있는 대동교를 지나고 음식점 뒤편을 돌아 아카데미 탐방지원센터에 닿는다. 등산로를 따라 350m쯤 가면 오래된 아카데미 산장이 있고 맞은편 오솔길로 접어든다. 왼쪽으로 잠시 철책이 이어지다 헤어지고 5분 남짓 가니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는다. 영락기도원 부지다. 기도원 앞으로 곧바로 갈수 있는 길이 코앞에 보이지만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사실 3구간 중에서도 이 구간의 길을 개척하는 게 제일 힘이 들었습니다. 1~2시간짜리 길을 연결하는데 종일 몇 번을 답사했는지 모릅니다.” 차준근 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20분 넘게 걸려 냉골 지킴터가 있는 기도원 입구에 도착한다. 포장길을 따라 300m쯤 내려가니 주차장이 있는 팔각정이고 “먹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지하수가 반긴다. 기도원 정수시설을 거친 물이라고 한다. 20도를 훌쩍 넘긴 낮 기온에 다들 목이 타던 차다. 화계사로 향한다. 팔각정 맞은편으로 접어들어 300m쯤 가니 용봉배드민턴장이 나오고 곧 왼쪽으로 직각으로 꺾이며 농구대가 있는 운동장에 내려선다. 동국대학교에 재학 중인 비구스님들의 기숙사 "백상원"이다. 낡고 오래됐다. 화계사 입구 공원 지킴터에서 삼성암 쪽으로 향한다. 오른쪽 계곡을 따라 10분쯤 오르니 관음보살마애불과 샘터다. 기도터로 손색이 없으나 ‘무속행위금지’라고 한다. 다시 200m쯤 올라서니 삼성암 입구. 시멘트 길을 따라 250m터쯤 내려서니 백암배드민턴장이 있는 빨래골지킴터다. 칼바위능선으로 향한다. 궁중 무수리들이 빨래터로 이용했다는 개울을 따라 100m쯤 가면 공초(空超) 오상순의 묘소가 있다. ‘박통’시절 받았다는 천여 평 묘역에 세워진 커다란 정사각형 시비가 눈에 든다. “흐름 위에/보금자리 친/오 흐름 위에/보금자리 친/나의 혼….” 대표작 "방랑의 마음" 도입부를 비면에 새겼다. 뒷면의 짤막한 글은 담박한 글씨와 잘 어울려 마른 풀냄새가 난다. “1894년 4월 9일 서울에서 태어나다. 1963년 6월 3일 돌아가다. 폐허지 동인으로 신문학운동에 선구가 되다. 평생을 독신으로 표랑하며 살다. 몹시 담배를 사랑하다. 유시집 한 권이 남다.’ 그의 일대기이다. 상석 왼쪽에 그럴싸한 돌 가운데를 오목하게 파서 재떨이를 만들어놓았다. 죽은 후까지도 줄창 담배 대접을 받고 있다. 공초의 묘를 뒤로 하고 등산로로 되돌아와 200m를 더 올라가니 칼바위 지킴터다. 능선 양쪽으로 ‘보국문 2.8km 솔샘터널 1.0km’ 거리이다. 트레일은 지킴터에서 30m터 위로 올라가 서남쪽 능선을 따른다. 그리고 30분 뒤 정릉탐방지원센터 위 북한산사무소로 내려선다. (출처 월간 “사람과 산”) 2 정릉매표소-북악산 팔각정-인왕산-홍지문 번잡한 도시를 떠나고 싶다. 그래서 산을 찾는다. 산에서는 물씬 풍기는 싱그러운 초록색의 상큼함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이 산이지, 주말에 등산객들로 붐비는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에 가서보면 명동이나 강남역 사거리 못지않은 인파로 북적인다. 그들은 하나같이 오로지 산 정상만을 향해 오르는 사람들 뿐이다. 누가 혹시 추월이라도 할라치면 속도를 내 따라잡으며 지지 않으려고 한다. 모두들 울긋불긋 비슷한 옷차림, 비슷한 코스로 향하는 사람들의 넘쳐나는 발자국과 시끌벅적한 소리… 아니 소음… 과연 이런 곳을 산이라 할 수 있는가? 이런 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을 산행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헉헉대며 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서는 사방팔방으로 펼쳐지는 연봉과 산자락을 음미할 틈도 없이 도시락부터 깐다. 그리고는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을 만끽한 뒤 곧바로 몇 천 미터나 되는 고산준봉이라도 정복한양 호기로운 마음으로 서둘러 하산한다. 이런 등산이라면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의 일상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산에 들어와서만큼은 속된 마음 잠깐 물려두고 자연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이런 산행 스타일을 과감하게 버리고 북한산을 새롭게 바라보며 걷기 위해 산언저리를 따라가는 산행에 나선다. “절대로 산 정상에는 오르지 않으리라”가 산행의 핵심이다. 즉 2~3부 능선을 타고 옆으로 걷는다. 수직의 산행 대신 수평의 걷기를 실천하는 산행 방식인 거다. 이것이 바로 요즈음 새로운 걷기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트레일’이다. 이런 ‘언저리 산행’을 구상하고 몇 년간의 답사를 통해 코스를 완성한 사람들이 TC(Korea Trail Club) 멤버들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한 분은 코오롱등산학교 독도법 강사로 수고하고 있는 우정산악회 박승기 씨다. 그는 1968년부터 인수봉 등반, 77년 도봉산 오봉 우정길 개척, 80년 76일간의 백두대간 종주, 86년 K2 원정대원, 87년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상한 열정의 산악인이다. 박승기 씨는 오랫동안 시행착오와 답사를 통해 “북한산 라운드 트레일” 코스를 완성했다. 새로 길을 낸 것은 아니다. 현재 나 있는 산길을 활용해 코스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북한산은 거미줄처럼 교차하는 산길이 워낙 많아 독도 전문가인 그도 몇 번이고 잘못된 길을 갔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해야 했다. 도봉매표소-정릉매표소 구간에 이어 2구간은 들머리는 정릉동 탐방안내소이다, 북한산으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옆길로 샌다. 대성문이나 보국문으로 향하는 오름길을 버리고 북악터널 쪽으로 방향을 튼다. 단조로운 풍경을 천천히 밟으며 20분, 신성천 샘터에 도착한다. 수질검사를 통과했다는 안내문은 있으나 어쩐지 도심과 가까운 샘이라서 믿음이 가지 않는다. 간신히 목만 축인다. 신성천 샘터에는 벤치가 놓여 있다. 이 벤치에서 잠시 쉰다. 산길은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지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정도는 아니다. 산책과 산행의 중간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길이다. 등산지도에도 없는 갈림길이 계속 나타나 걸음을 머뭇거리게 하기 때문이다. 북한산 이웃 주민이 아니고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2부능선 높이의 산 언저리 길을 따라가는 거다. KTC 김현대 회원이 갈림길마다 표지기를 매단다. 라운드 트레일 후등 산행자들의 길찾기를 돕기 위해서다. 북한산 라운드 트레일 개척자 박승기 씨는 세 번째 산행이다. 그는 주요 기점을 GPS로 기록하며 트레일 코스 마무리 작업을 한다. 오르막이 이어진다 싶더니 형제봉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 위다. 주말이어서 능선에는 제법 많은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는다. 능선을 버리고 다시 옆으로 내려서자 그 많던 등산객들은 간 곳 없고 산길은 호젓한 길로 바뀐다. 한참을 나아간다. 연세 지긋한 등산객 두 분이 맞은편에서 온다. 이웃 주민인듯 복장이 가볍다. “산에 가려면 이 길로 가면 안 돼”하며 능선 위쪽으로 길을 일러 준다. 그분들이 북한산 라운드 트레일을 알 리 없다. 북악천 샘터를 지나자 저만치 서광사가 보인다. 갈림길에서 절 방향으로 가는가 싶더니 옆으로 난 산길로 빠진다. 이런 소로는 등산지도에 일일이 표시하기도 어렵다. 2부 능선 산길이다 보니 막상 길을 잃어도 위험할 건 없다. 그러나 표지기나 이정표가 있어야 초행자들은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겠다. 새로운 산행문화 보급을 위해 관리공단과 구청의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왕녕사에서 다시 왼쪽 산길로 든다.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이 길을 찾기 위해 KTC 멤버들은 3시간을 헤맸다고 한다. 그런 알바 경험이 있어서인지 대원들은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30분 산행, 10분 휴식, 혹은 터 좋은 곳마다 쉬어갈 정도로 여유가 있다. 라운드 트레일을 개척한 대원들답게 성향 또한 느릿하게 구불구불 휘어지는 길을 닮았다. 다시 일주문 앞, 여래사다. 주차장부터 법당까지 시멘트로 중수하여 스님들이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을 듯하다. 뒤편에는 납골당도 널찍하게 만들었다. 국립공원 밖이므로 가능했을 것이다. 구청에서 깔끔하게 정비한 계단 길을 잠깐 오르니 ‘하늘마루정자’ 체육시설이 있는 공원이다. 국립공원을 벗어나 북악산 쪽으로 접어든 것이다. 이제 등산복보다는 츄리닝 차림의 사람들이 더 많다. 라운드 트레일 대원들은 아스팔트 도로 옆 보행자 길을 따른다. 신수 좋은 팔각정이 솟은 전망대, 북악산 팔각정 휴게소다. 비봉능선을 조망하기 좋은 명당이지만 구름이 산자락을 백지로 만들었다. 휴게소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고 편하게 길을 나선다. 날씨 덕에 조망이 좋지 않아 일행들과 제법 긴 대화를 나눈다. 같은 길을 걸으며 나누는 대화는 사람 사이를 담백하게 이어주는 자연스런 힘이 있다. 언저리 산행은 이렇듯 부담이 없어 등산초보자나 노약자, 어린이를 동반하기 좋은 거다. 창의문으로 내려서는 북악산 길이다. 도로 옆으로 보행자 길이 나 있다. 지루할 정도로 편하다. KTC 대원들은 언저리 산행 외에 암 · 빙벽도 틈날 때마다 타는 젊은이들이다. 등반에 비해 스릴이 너무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원 최오순씨는 “스릴이 왜 없어요? 언제든지 길을 잘못들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스릴 있는데요?” 하며 길찾기가 가장 큰 관건이라 한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창의문(彰義門) 앞에 선다. 4대문 사이에 둔 4소문 중 하나인 북소문이다. 2007년에 개방된 북악산 성곽 길을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창의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도 꽤 많다. 횡단보도를 건너 정맥 종주하듯 다시 산으로 향한다. 탕춘대 성벽을 따른다. 탕춘대성(蕩春臺城)은 1715년(숙종 41년)에 쌓았으나 전쟁에는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종이호랑이 같은 성이다. 지금은 성곽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그러니 산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이렇듯 언저리 산행은 서울이 지닌 역사의 언저리도 거슬러 오른다. 인왕산 줄기를 묵직하게 버티고 선 탕춘대성, 그 무게만큼이나 발걸음이 무겁다. 평소 같으면 여느 산 오름길과 별 차이 없겠지만 아침부터 쭉 널널하게 걷다 이제야 가파른 오름길을 만났으니 숨이 제법 차오른다. 땀 흘려 올라선 능선엔 시원한 마당바위가 기다린다. 인왕산은 높이가 낮고 사면으로 이어진 길이 없어 능선으로 길을 잡은 것이다. 덕택에 이곳에서 꼭지 메인사진 쯤을 건질 수 있을 듯하다. 정릉을 출발해 남쪽으로 이어서 북악산, 거기서 서쪽으로 가 만난 인왕산에서 다시 북쪽으로 향한다. 서대문구와 종로구 일대의 부연 풍경을 훑어보며 내려서니 세검정 로타리 근처다. 횡단보도를 건너 1구간 종착지인 홍지문 앞에 선다. 1921년에 허물어진 것을 1977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
첫댓글 고시 공부 수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