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온몸이 저릿저릿하도록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소설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 전에 느낄 수 없었던 야릇한 힘의 팽창이었고, 이상하게도 전신에서 진초록빛의 파릇파릇한 신명이 돋아 올랐다.
그동안 쓰지 못하고 덮어두었던 것들을 다 쓰자, 무슨 방법이든지 총동원해서 다 써내고 말자...
나는 온통 소설에 몰입했고, 꿈에서도 소설을 썼다. - 조정래 >
그리하여 완성 된 태백산맥. 이 작품으로 작가는 무수한 협박과 고초를 감내하며 역경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장장 16500매에 이르는 원고지는 3학년 딸아이 키를 훨씬 넘어서는 높이였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벌교라는 무대를 통해 극대화 되었고 인간의 삶이 잔인할 정도로 묘사되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선택적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를 따라 벌교기행을 다녀왔다.
장맛비가 시작 된다는 보도에 다소 주춤거리는 마음을 털고 버스에 올랐다.
함평고등학교에 계시는 장용준 선생님의 세심하고 담백한 벌교와 태백산맥의 설명을 듣고 1시간 반 쯤 달렸을까.
벌교는 조선시대에는 없던 고장이었다. 일본인들에 의해 구성, 개발된 읍이었기에 벌교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건물 몇은 일본 식
건축을 하고 있었다. 수탈의 목적으로 조성된 읍이어서 순천과 여수, 목포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반으로 줄일 수 있었던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라고 한다. 태백산맥의 시대적 배경이 1948년 여순 반란 사건에서 6.25에 이르는 시기이기에 벌교는 해방이후 이념 갈등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배경이 된 듯하다.
비에 흠뻑 젖은 벌교 읍은 작고 소란스럽지 않다. 엄마 따라 기행 나온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가 작게 파장을 일어 깨울뿐이다.
처음 도착한 곳은 '태백산맥 문학관'이었다.
김성준 문화해설사님이 고운 자태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태백산맥 문학관은 벌교읍내 북쪽 지대에 건축되었다. 건축가 김원선생님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북쪽을 향하게 지었다고 한다. 소설'태백산맥' 이라는 제목은 벌교를 무대로 했지만 우리의 등줄기와도 같은 산맥인 태백산맥으로 남과 북이 하나되는 마음을 상징화한 것이 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