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품 패트병이 희망의 바람개비로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절기 곡우가 어제 지나 봄을 서둘러 마감하려하지만 이제부터 봄은 한창이다.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하는 봄, 사월의 창변에서 모든 것들을 내다볼 때 절망보다 희망이 앞선다.
내리쬐는 봄볕부터 웅크린 동절기의 찌꺼기들을 청산해 준다.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같은 돌림병도 끝이 보여 거리두기가 완전 폐지되니 한결 희망차다. 봄철에 씨나락들도 팔 벌린 어머니 품속 같은 대지에 안기기에 바쁘다. 들판마다 농사가 한창이다.
찬란한 봄, 희망을 돌리는 어르신이 계시다.
억센 막걸리 패트병으로 날개를 만들고 락스칠을 해서 바람개비를 만들어 동네마다 희망을 꽂아주는 어르신이 계시다. 거두리 노인회장 이호권 자연촌장님은 오늘도 바람개비로 분주하시다.
개나리를 닮은 노란색, 진달래꽃을 닮은 주황색 빨간색철쭉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후평동, 옥골 막국수, 정족리 양지편 그리고 점순이가 새참을 이고와서 데릴사위 남편을 다그치는 김유정 봄봄의 새고개 버스정류장에 삼삼오오 바람개비가 봄바람을 맞아 오늘도 쉬지않고 돌아가고 있다.
아무리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분명 새벽이 온다고 했다. 코로나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연일 희뿌연 소식들이 안개처럼 내려도 어르신이 만들어 세운 바람개비는 희망을 춘천에 몰고 올 것이다.
어제도 실레 뒷마을 새고개를 다녀왔다. 산봉우리들이 낮은 고개에서 만나 이룬 새(사이 間)고개로 실레 학교를 넘나들던 새고개는 오늘도 평화롭게 점순이가 화전밭을 일구는 봄봄으로 유명하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미니버스 또한 봄봄이다. 새고개 정자가 있고 버스가 돌아 나오는 정류장에 폐품으로 만든 바람개비를 꽂아놓았다. 마침 당도한 버스기사님도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바람개비는 바람을 기다린다. 폐품으로 만든 튼튼하게 만든 바람개비 다섯 개가 돌기 시작한 새고개 마을이다. 살다보면 바람개비처럼 목을 길게 빼고 뒷꿈치를 한껏 들어 누군가를 기다린 적은 필경 다 있으리라.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종말의 그날까지 기다림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저마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개인적으로 저마다 다르겠지만 건강이나 가족 행복, 취업, 부, 명예 등의 염원에서부터 전쟁이 없는 평화를 기다리고 죽음에 저승에 천국을 기다리겠지. 물론 바람도 폭풍이나 뇌우나 회오리바람이 아니다. 강이 풀리면 불어오는 봄바람을 기다린다. 연분홍 치맛자락을 입고 설레이며 님을 기다리는 봄처녀의 마음처럼 바람개비가 돈다.
거두리 농공단지 아래 자연촌은 이호권 어르신의 창작교실이다. 목공예로 무한한 창작에 오늘도 봄날을 불태우신다. 새로운 무엇을 만드신다. 톱으로 자르고 오리고 칠한다. 거친 목판을 매끄럽게 사포질하고 윤기를 내시는 목공예 거장-. 두꺼운 패트병들을 모아 희망찬 바람개비를 만드시고 강철사는 옷걸이로 -.나는 바람개비 전도사로 우리 춘천의 곳곳에 희망을 돌게 할 것이다.
우리 아파트 길목에 세웠다. 보는 이들의 표정이 맑고 아름답다. 두더지가 농사를 방해한다고 밭둑에 바람개비를 세운다고 특별 주문한 분도 있다. 고향 정족리에도 달려가 꽂았더니 조카며느리가 바람의 길목으로 세우며 좋아한다.
아무리 국내외 정세가 무겁고 험난해도 우리에게는 희망이란 마음에 바람개비를 돌릴 것이다. 즐겁다. 문화의 도시 춘천에서 페트병을 이용한 희망의 바람개비 전도사로 오늘도 분주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