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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천중학교20회 원문보기 글쓴이: 유지(有志)
오래된 엽서이야기 <30> 조선시대 전통 복장 1
송광호 칼럼 <30> 조선시대 전통 복장 1 |
조선시대 전통 복장 1
이번 칼럼부터 조선시대 복식(服飾-옷과 장신구 등)과 관련한 일반주민과 관(官), 궁중 복식 등에 속하는
북한자료내용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자료는 지난1962년 북한유명화가였던 故 리팔찬(충남 공주출생으로 월북 후 북한의 손꼽히는
동양-조선화-전문화가로 활동함.)이 그린 우리나라 복식자료로서 남북한자료를 비교,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북한자료는 남북분단의 단절로 서적 류 등 인쇄매체는 쉽게 수집하거나 접하기조차 어렵습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출판된 북한서적에선 정치성이 배제된 자료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때문에 60년대 초반 이전 북한서적 등 자료에서 보다 순수한 우리 역사적 내용 등이 많이 발견되고,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80년대 말부터 북한취재를 여러 차례이상 한적 있는 필자는 그 방문기회를 활용해 북한예술, 역사, 문학 등 각 부문에 대한 자료수집에 심혈을 기울여왔습니다. 이산가족을 통한 간접접촉이나 심지어 북한안내원으로부터도 조선어사전류를 비롯해 각종 자료들을 입수해 왔습니다.
또 전문 학자는 아니지만 이러한 자료들이 남북한의 다른 점에 대해서 비교, 조사도 해봤습니다.
이런 자료들 중 하나가 이번에 연재하려는 ‘이조복식도감’이라는 제목의 우리 전통복장과 장신구들입니다.
1962년 조선 문학 예술총동맹출판사에서 이팔찬 그림으로 발간된 93쪽에 달하는 분량의 도감(圖鑑)입니다.
(용지크기는 A4용지 2배보다 조금 작습니다.)
특히 이 책자는 북한 언론기관 등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사용되는 소중한 자료라고 들었습니다. 이 책자내용들 중 우리가 대부분 상식적이고 대중적으로 알고 있는 일부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미 거의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겠으나 조선시대의 우리 전통 옷, 장신구 등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을
새삼 되돌아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한번 기억을 새롭게 해 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참고로 이 책에서 나오는 용어는 남북한 공히 사용되는 단어임을 알립니다.
1. 도포(道袍) :사전엔 통상예복으로 입던 남자 겉옷으로 설명돼 있으며, 임진왜란 후 문관의 평상시 웃옷으로 벼슬하지 않은 선비들의 예복이었다. 실로된 띠를 띠며 집에 있을 때는 관을 썼고 밖에 나들이 할 때는 갓을 썼다.
2. 심의(深衣) : 높은 선비(학자)들이 입던 웃옷을 말한다. 흰 베로 두루마기 모양 만들며 소매를 넓게 하고 검은 비단으로 가를 둘렀음. 큰 띠를 띠고 복건을 썼다.
3. 중치막 : 지난날 벼슬하지 않은 선비가 입던 웃옷 한 가지. 길이가 길고 소매가 넓으며 앞은 두 자락, 뒤는 한 자락이며, 옆은 무가 없이 터져있음. 큰 창옷 이라고도 하는데 선비와 상민이 입던 웃옷이었다. 선비는 푸른 빛, 상민은 흰색으로 신분을 구별하였다.
4. 두루마기 : 우리나라 고유의 웃옷으로 주로 외출할 때 입는다. 옷자락이 무릎아래까지 내려온다. 웃옷 밑에 받쳐 입는 옷이나 천민은 도포나 중치막을 법으로서 입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우루마기를 웃옷으로 입었다. 후에 도포와 중치막이 없어지면서 두루마기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웃옷으로 입었다. 남자들의 대표적인 웃옷이다.
5. 창(氅)옷 : 소창(小氅)옷의 준말로 중치막 밑에 입던 웃옷의 하나로 두루마기와 같되 소매가 좁고 무가 없음. 그러나 중치막을 입지 못하는 상민과 천민들은 이 창옷을 웃옷으로 입었다.
6. 도롱이 : 짚, 싸리껍질, 띠 따위를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재래식 우장(雨裝). 농군이나 어부가 두르는 우비일종으로서 녹사의라고도 한다.
7. 상복(喪服) : 상중(喪中)에 입는 예복으로 성긴 베로 지은 바느질을 곱게 하지 않았음. 굵은 베로 만들었으며 치마를 두르고 제복을 입은 위에 머리엔 두건과 굴건을 쓰고 수질을 얹은 다음 상장을 짚는다. 부상(父喪)에는 제복단을 하지 않으며 죽장을 짚는다. 중단은 제복아래 입는 옷으로 외출할 때엔 중단만 입고 방립을 썼다.
8. 승려(僧侶)모 :
* 굴갓- 승려 갓으로 노감투로서 받쳐 쓴다.
* 고깔- 헝겊을 접어서 세모지게 만든 것으로 승려들이 썼다.
* 대삿갓- 가늘게 쪼갠 대가지로 엮은 것이다.
* 송낙- 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것이다.
9. 망건, 관, 건 등 :
* 망건- 상투를 틀 때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오지 않도록 머리에 두르는 그물모양의 물건. 말총으로 만들었으며 고급품은 곱고 윤이 흐르게 만들었다.
* 관(冠) - 관은 신분과 격식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으며 문관과 선비들이 집에 있을 때 쓰는 데 정자관(程子冠)이 가장 널리 쓰였다.
정자관이란 선비들이 평상시에 쓰던 말총으로 만든 관으로 위는 터지고 세 봉우리가 지게 두층, 세층으로 되었다. 상투관은 머리털이 적은 노인이 상투에 쓰는 관이다.
* 감투- 탕건(宕巾)이라고도 하며 말총(말갈기나 꼬리털)으로 떴다. 관인들은 망건위에 이를 쓰고 정식 관이나 갓을 썼다. 탕건은 예전 벼슬아치가 갓 아래에 받쳐 쓰던 관으로 앞은 낮고 뒤는 높게 말총으로 만들었다.
* 건(巾) - 헝겊 따위로 만든 쓰개의 총칭. 쓰개란 머리에 쓰는 물건을 일컫는다.
10. 갓, 패랭이 등 :
* 갓- 예전 어른이 된 남자가 머리에 쓰던 말총으로 만든 의관(衣冠). 가는 댓개비로 만들어 검은 옷 칠을 하고 광택을 낸다. 천민을 제외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쓰개였다.
* 갓모- 갓모는 궂은 날 우비로 갓 위에 씌우는 유지로 만든 모자다.
* 패랭이- 가는 댓개비로 만든 갓 모양의 쓰개인데, 신분이 낮은 천민과 상제가 썼다. 역졸은 검은색을 쓰고 보부상은 갓 끈을 꿰어 단 꼭대기에 목화송이를 얹어 썼다.
* 초립(草笠)-왕골이나 누른 풀로 엮어 만든 갓인데 관례한(어른이 되는)소년이나 별감(관청에 딸린 하인) 등이 썼다.
11. 먹장삼, 가사
* 먹장삼(長衫) - 검은 물을 들인 장삼. 검은 비단이나 베로 짓는다.
* 가사(袈裟)- 어깨에 메는(왼쪽어깨에서 오른 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법의(法衣)로 종파에 따라 그 빛깔과 형식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음. 즉 먹장삼을 입고 가사를 메는 차림은 승려의 정장이다.
조선시대 전통 복장 2
지난 칼럼 소개했던 조선시대 남성복장 뒤를 이어 여성복장에 대해 살펴봅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이 전통 복식(服飾)내용은 60년대 초 북한자료도감(圖鑑)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이 복식(服飾)자료내용을 그린 미술가는 당시 북에서 손꼽히던 조선화가인 故 리팔찬(충남 공주출생)씨입니다.
제 칼럼에서 북한자료내용이 많은 것은 일반이 접하기 어려운 비정치성의 북한자료를 선보이고, 힘들게 수집한 자료내용들을 남한자료와 비교분석할 수 있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조선복식은 중국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때 의복이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복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양반과 서민들 신분차이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한복은 옷감과 관련이 깊습니다. 이춘섭 한복연구가의 글에는 조선복장은 보통 비단, 명주, 무명, 삼베 등이 있으나 한복의 전통옷감은 금(錦), 사(紗), 라(羅)로 구분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금(錦)은 공단(貢緞/두껍고 무늬가 없는 비단), 양단(洋緞/은실이나 색실로 여러 가지 무늬를 놓고 겹으로 두껍게 짠 고급 비단.), 모본단(模本緞), 능라단 등이 있으며,
*사(紗)로는 갑사(甲紗/품질이 좋은 얇고 가벼운 비단종류.), 숙고사 등이 있고, *라(羅)는 항라(亢羅/명주, 모시, 무명실 등으로 짠 피륙의 하나로 구멍이 숭숭 뚫어져 있어 여름옷으로 적합함.)등이 있다고 했습니다.
무명삼베는 지금은 값이 비싸졌지만 예전엔 무척 흔했고 금, 사, 라의 양반층 고급옷감에 비해 상민들 옷감으로 사용됐습니다. 그런 이유로 정통한복의 전통옷감이 고급옷감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것입니다.
이번 칼럼에선 장신구 부분설명은 생략했습니다. 비녀종류, 노리개, 주머니, 반지(가락지), 장도, 각종 단추 등 여러 종류 중 생소한 여러 이름들을 피해서, 일반적으로 우리 눈에 익숙한 복장을 중심으로 명기했습니다.
또 필자가 옷 전문용어를 몰라 한글사전에 설명된 명칭과 북한 책자용어를 함께 사용했습니다. 다음 칼럼엔 궁중예복과 양반들이 입던 옷 등을 소개할 계획입니다.
1. 삼회장(三回裝) : 여자 저고리 중 깃, 겨드랑이, 소맷부리(끝동)에 대는 회장을 말한다. 저고리 색깔 과 다른 빛깔을 냈으며 고름도 같은 자주 색깔을 댔다.
2. 배자(褙子) : 마고자(저고리에 덧입는 방한복의 하나로 깃과 고름이 없고 앞을 여미지 않음. 대개 비단으로 만들어 호박 등의 단추를 닮.)모양으로 되고 소매가 없는 덧저고리. 여자들의 털옷 일종이다. 팔소매가 없으며 맵시가 있어 젊은 여자들이 즐겨 입는다고 소개돼 있다.
3. 여자 평상복(한복) : 평상시 부녀자들은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다. 저고리 깃과 끝동에만 다른 빛깔을 댄 것을 반회장이라고 했다. 삼회장이나 반회장은 다 젊은 부녀(婦女)가 입으며 나이 많은 부녀들은 저고리 끝동과 고름만 다른 빛깔로 한다.
치마는 폭이 넓고 긴 것을 숭상하고, 일할 때는 휩싸 걷어서 치마끈에 꽂거나 중둥끈에 둘러매기도 하고 행주치마를 입었다. 머리를 얹는 것은 17세기 초엽이전에는 보편적이었으나 그 후에는 향촌에서만 오래도록 계속했다.
4, 여자 신발 : 여자 가죽신은 신의 코와 모양이 남자 것과 다르고 빛깔과 무늬가 더욱 화려하다. 당혜(唐鞋)는 화려한 신발 중의 하나로서 비단 울을 하기도 한다. -당혜 란 가죽신의 하나로 울이 깊고 코가 작으며 앞코와 뒤에 넝쿨풀 무늬(당초문)를 새겼음. - 짚신이나 나막신은 모양이 더욱 아름다우며 모양과 조각 등에 의해 구별된다.
5. 토수(토시/투수)와 버선 : 토수와 버선은 신분에 관계없이 남녀노소가 함께 사용했다. 팔뚝에 끼어 추위를 막는 제구로 한 끝은 좁고 다른 한 끝은 넓게 만들어졌다. 토수는 팔목을 드러나지 않게 끼는 것으로 계절에 따라 봄, 가을에는 겹 토수, 누비토수를 꼈고, 겨울에는 솜 토수, 털 토수를 꼈다.
버선은 속버선과 겉버선이 있다. 속버선은 겹으로 짓고 겉버선은 솜을 두어 짓는다. 여자버선은 볼이 좁기 때문에 신은 모양이 외씨 같다고 표현한다. 젖먹이나 어린아이들에겐 오목다리를 신기는데 보통 누벼짓는다. 타래버선이라고도 하며 돌 전후의 어린이가 신는 누비버선의 한가지로 양 볼에 수를 놓고 코에 색실로 술을 달았다.
6. 머리 수건 : 향촌(시골마을)여자들은 머리 수건을 썼다. 그림들은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지방여자들의 머리 수건이다.
7. 난모 : 그림과 같이 여자난모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남바위(추울 때 머리에 쓰는 방한구 하나로, 앞은 이마를 덮고 뒤는 목과 등을 내리 덮었다.)와 조바위(여자 방한모의 하나)와 아얌(겨울에 부녀자들이 나들이 할 때 춥지 않도록 머리에 쓰는 물건으로 머리만을 가리고 털을 넓게 붙여 뒤에 댕기를 늘이었다.)이 있다. 풍차(風遮)는 남자가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해 볼을 가리고 머리에 쓰는 두건의 한가지다.
8. 장옷(장의/長衣) : 여자가 나들이 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서부터 길게 내리쓰던 옷. 이는 15세기 중엽부터 여자들이 밖에 나갈 때 사용했다. 소매 끝에 한삼을 대고 자주고름을 단 두루마기다. 서민부녀들이 썼다.
9. 쓸치마 : 여자들이 바깥에 나갈 때 머리와 얼굴을 가리는데 가장 간편한 도구로서 치마를 썼다.
10. 너울 : 15세기부터 여자들이 외출할 때 머리에서부터 어깨까지 내려쓰는 폐면구이다. 흔히 사(紗/얇고 가벼운 비단의 하나로 여름옷감으로 많이 쓰였다.)로써 만들었다. 두꺼운 비단으로 만들 때는 눈 닿는 데만 사(紗)를 댔다. 흑색은 높은 신분을, 청색은 낮은 신분을 표시했다.
11. 어린이 색동옷 : 여자애는 조바위를 쓰고 당혜를 신었다. 남자애는 복건을 쓰고 전복을 입는다. 신은 태사(太史)혜/신을 신었다. 태사신이란 남자 신으로 울을 헝겊이나 가죽으로 하고, 코와 뒤에 선문(線紋)을 새겼다.
12. 아동복 : 머리가 땋을 만큼 길지 못했을 때는 도투락댕기를 드렸다. 도투락댕기란 어린 계집아이가 드리는 자주 빛 댕기를 말한다. 어린 아이들은 돌띠 저고리를 입는다.
13. 색동돌띠두루마기 : 아이들이 입는 두루마기는 색동을 달고 무를 다른 빛깔을 대고 고름도 다른 빛깔로 길게 하여 돌려 맨다. 바둑판 머리를 땋는 아이는 굴레를 쓴다.
조선시대 전통 복장 3
잊혀져가는 우리 복식(服飾)내용을 3번째로 선보입니다. 이 조선시대자료를 수집해 북한에서 그림으로 책자를 펴낸 인물은 충남 공주출생인 북한화가 고(故)리팔찬(이조복식도감/조선 문학 예술총동맹출판사 발행/1962년)으로 다음번엔 궁중에서 입던 예복 등을 소개하겠습니다.
북한자료는 옛 자료발굴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남한자료와 비교하는 차원에서 다루었습니다. 이 조선시대 복식은 전문용어로 인해 어르신네들도 모르는 글귀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필자를 포함해 일반인인 장년이나 청소년 등에게는 더욱 생소한 단어이며, 용어풀이가 힘든 경우가 있겠음을 양해바랍니다.
* 전복 : 이조초기 문무관의 편복(便服/ 평상시 입는 옷)이었으나 1894년(고종 31년/갑오경장-개혁)때 광수의(廣袖衣/폭이 넓은 소매)를 폐지하면서부터 관리들의 통상 예복으로 되었습니다. 두루마기위에 전복을 껴입고 실띠를 띠었습니다.
* 갑옷 1,2,3,4 : 조그만 쇠 패쪽에 수은을 입힌 다음 가죽 끈으로 엮어서 만든 갑옷을 수은갑이라 합니다. 수은 대신 옷 칠을 한 것을 유엽갑이라고 합니다. 쇠 패쪽을 단 모양이 용의 비늘과 같은 것을 용린갑이라고 합니다.
두정갑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푸른 면포를 거죽에 하고 쇠 비늘 엮은 것을 안에 댄 다음 쇠 광두정을 겉에서 들이박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붉은 비단을 거죽으로 하고 연록비를 안에 댄 다음 황동 광두정을 겉으로부터 박은 것입니다.
두두미갑은 비단에 연록비 안을 받치고 백은 광두정과 황동 광두정을 섞어가며 박았는데 푸른 것과 붉은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투구는 쇠로 만드는데 투구전이 있는 것을 첨주라 하고, 첨이 없는 것을 원주라고 합니다.
* 관복(官服): 관리의 제복. 관디 즉 단령(團領/조선시기 관원이 입던 깃을 둥글게 만든 옷)을 입고, 흉배(胸背/ 문무관이 입는 관복의 가슴과 등에 붙이던 학이나 호랑이를 수놓은 표장)를 붙이고 각 띠 즉 품대를 띠고 사모를 쓰고 목화를 신으며 손에는 홀을 듭니다. 관디는 겉깃이 둥글고 무는 터졌는데 앞 무 머리가 넓어서 뒷무를 덮습니다. 옷감과 빛깔은 직품에 따라 다르며 흉배는 문부 직품을 표시하며 띠도 역시 직품을 표시합니다.
사모는 1∼3품은 협각사모(挾角紗帽), 4∼9품은 단각사모(單角紗帽)를 썼습니다.
* 무관 융복(戎服): 철릭(옛 무관 공복의 하나)을 입고, 전대를 띠고 주립(朱笠/붉은 칠을 한 갓)을 쓰고 수혜자를 신는 차림을 융복이라고 한다. 철릭은 허리아래를 넓게 하여 잣 주름을 잡아 단 것이 특색입니다. 무관의 편복이자 예복이지만 전시와 왕의 출행에 배종할 때는 문관도 입었습니다. 15세기 이전에는 일반이 입는 평상시 의복이었다고 합니다.
* 무관군복: 무관 최고의 복색입니다. 왕의 출행 시에는 대신 이하 문관들도 이 복색을 하고 따랐습니다. 동다리 위에 전복을 껴입고 전대(纏帶)를 띠고 환도(還刀)를 차고 등채를 들며 산수털벙거지를 쓰고 수혜자(水鞋子)를 신었습니다.
* 조복(朝服): 관리들이 조하 때 입는 예복입니다. 청삼에 홍상(紅裳/붉은 치마-붉은 바탕에 검은 선을 둘렀음)을 두르고 홍삼을 덧입고 앞에는 폐슬, 뒤에는 환수, 옆에는 패옥(佩玉)을 늘이고 품대를 띠며 금관을 씁니다. 금관의 량 수 등은 직품에 따라 다릅니다. 신은 목화(木靴)를 신었습니다. 조복에 쓰는 금관은 당초문양과 목잠(木箴)이라는 비녀가 도금되어 있어 여기서 금관조복(金冠朝服)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 더그레/호의(號衣)/군복: 군인들이 입던 군복인바 각기 빛을 달리해 소속 영문(營門/병영)을 표시하였으므로 호의라고도 부릅니다.
* 작의: 작의는 검은 바탕에 흰 실로 바둑판모양의 줄을 놓은 더그레입니다. 나장-금부나장(禁府羅將/ 군아사령의 하나)이 착용하던 웃옷입니다.
* 사모(紗帽),복두(幞頭): 관원들이 관복을 입을 때 쓰던 검은 색의 가벼운 비단으로 된 것(사모)을 지칭합니다. 사모는 직품에 따라 겹뿔, 홀뿔의 구별이 있었으며, 사모 뒤에는 좌우로 뻗어 나온 잠자리 날개 같은 뿔(사모뿔)을 말합니다. 지금은 흔히 구식 혼례식 때 신랑이 씁니다. 복두(幞頭)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썼는데, 주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홍패(紅牌)를 받을 때 썼습니다.
* 전립(戰笠)과 옥로(玉鷺)증자: 전립은 병자호란이후 무관이 쓰던 벙거지를 말합니다. 붉은 털로 둘레에 끈을 꼬아 두르고 상모, 옥로 등을 달아 장식했습니다. 털을 이겨서 만든 모자로 군복차림에 썼으며, 공작 깃 상모를 달고 패영(貝纓/산호, 호박, 수정 등을 꿰어 만든 갓끈)을 달았습니다.
옥로는 관찰사, 절도사, 외국에 가는 고관이나 사신들이 갓 꼭대기에 옥으로 해오라기 모양을 만들어 달든 장신구인데 이것을 옥로증자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입(笠)에는 평량자(平凉子)형의 평량자(패랭이) ·초립(草笠) ·흑립 ·옥로립(玉鷺笠) ·전립(氈笠, 戰笠) ·백립과 방립형의 방갓 ·삿갓 등이 있었습니다.
*금관(錦冠), 제관: 금관은 조복을 입을 때 씁니다. 품계에 따라 양의 수가 다릅니다. 5량은 일품관이 쓰며, 제관은 제복을 입을 때 쓰는 것으로 그 제도가 금관과 같습니다. 다만 현란한 금장식이 없을 뿐입니다.
조선시대 전통 복장 4
궁중 복식 (남성)
조선시대 왕실을 비롯해 관리들이 입는 전통복식내용입니다.
옛 복식은 한문으로 표기된 전문용어가 많아 이해가 쉽지 않지만 옛 우리 선조들(남성)이 입던 옷의 모습을 일부 소개합니다. 지난1962년 조선문학 예술총동맹출판사가 발행한 ‘리조복식도감’에서 뽑은 내용으로 남북한 자료를 비교, 분석할 수 있겠습니다.
* 면복(冕服): 임금이 가장 정중한 예식과 큰 명절에 입는 대례복입니다. 보통 제왕의 정복으로 말하며 면류관(冕旒冠)과 곤룡포를 입습니다. 어깨에는 용을, 등에는 산을, 양 소매에는 화(火), 화충(華蟲), 종이(宗彛) 각3개씩 그렸습니다. 면복을 특징지어주는 것은 면류관의 면류와 곤복의 장문입니다. 장문가운데 일, 월, 성신(星辰)은 황제만이 표시할 수 있다고 합니다. 황제는 12장복, 조선국왕은 9장복, 왕세자는 7장복, 왕세손은 5장복 입니다.
* 곤룡포(袞龍袍): 임금이 정무를 볼 때 입는 정복(正服)을 말합니다. 준말로 용포, 또는 곤복이라고도 합니다. 두루마기와 같은 웃옷입니다. 노란색, 또는 붉은 색 비단으로 지었고 황색 단(緞)이나 사(紗)에 붉은 색 안을 넣었으며, 가슴, 등, 양어깨에는 보(補)라고 금실로 수놓은 오조룡(五爪龍)을 붙였습니다.
* 익선관(翼善冠)과 원유관(遠遊冠): 익선관은 임금이 평상시 정무를 볼 때 쓰던 관입니다. 이때 곤룡포를 입습니다. 원유관(遠遊冠)은 임금이 신하로부터 조현을 받을 때 쓰던 관으로 이때는 중국황제처럼 강사포(絳紗袍)를 입습니다.
* 홍라(紅羅)착수의: 무대복식의 하나로 무향산에 입습니다. 남끝동을 달았는데 깃과 동에 화문을 금박하였습니다. 깃은 단령(깃을 둥글게 판 것)이고 뒤 무는 터져서 세 자락으로 되었는데 안에는 엷은 남색 비단을 대었습니다. 밑에는 흰 치마에 검은 선을 둘러 입고 그 위에 녹색비단으로 지은 쾌자를 입습니다. 목에는 금가자를 붙이고 손목에 녹색비단 한삼을 매며 머리에는 야광모를 쓰고 허리에 학정야대를 띠며 릉파리를 신습니다.
* 남철릭: 조선시대 무신이 입던 공복으로 상하가 연결되게 남사로 지었습니다. 콩래 소매에는 잔주름을 잡아 만들었는데 두리 소매이고 고름을 달았습니다. 선유악과 고구려에 사용했으며 특히 선유악에는 진홍관대를 띠며 사동개, 화동개, 환도(還刀) 등을 허리의 뒤와 옆에 차고 등편을 짚습니다. 머리에는 붉은 대갓에 공작 깃 또는 호수를 꽂아 쓰고 수혜자(水鞋子)를 신습니다. 당상관(堂上官)은 남색을, 당하관(堂下官)은 홍색을 입었습니다.
* 초록 석죽화 전복: 무대복식의 하나인데 무동복에 속하는 것으로 공악무에 사용합니다. 초록바탕에 석죽화(石竹花)의 무늬를 놓은 소매가 좁은 옷입니다. 허리에는 청금 수띠를 앞으로 매여 끈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 위에 학정띠를 띱니다. 머리엔 고운계 또는 주취금관을 썼습니다.
* 비란삼: 비란삼(붉은 명주로 만든 란삼)은 속악차비공인과 순, 탁, 요, 핵, 응, 아, 상, 독 및 정절을 잡는 공인들이 입었고, 조주란삼(검은 명주로 만든 란삼)은 아악의 문무 무공인과 둑기 잡는 공인이 입었다고 합니다.
* 홍주의(紅紬衣): 무대복식 중 악공들의 웃옷으로 화화복두(花火幞頭) 또는 국화복두를 쓸 때 착용합니다. 악공의 복식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악공은 홍주의, 녹라포에 남색바탕에 검은 선을 두른 중단을 입으며, 오정대와 금등야대를 띠고 흑피화 또는 오화, 흑화를 신습니다.
* 녹단령: 무대복식의 하나로 가자(노래 부르는 사람)가 입는 웃옷입니다. 수박색바탕의 단령(團領/조선시기 모든 관원이 착용한 일상복)으로 흰 한삼(汗衫)을 붙입니다. 머리에는 자주색 두건을 쓰고 허리에 자주광대를 띠며 흑화를 신습니다.
* 화접포(花蝶袍): 무대복식의 하나로 박접에 사용하던 웃옷입니다. 그 형태는 홍주의, 홍라포, 화금포, 록초삼 등과 비슷합니다. 초록바탕에 나비 무늬를 그렸고 깃은 직령(깃이 곧게 된 것)이며, 무는 뒤와 옆이 터지고 앞자락은 두 폭으로 되어 있는 것과 통폭으로 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흰 바탕에 검은 선을 두른 중단 위에 검은 바탕에 남선을 두른 치마를 두르고 그 위에 입습니다. 주전대(珠鈿帶)를 띠고 무리(無우履)를 신습니다.
* 립: 무대복식에 속하는데 관, 모와 같이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해당 무에 해당 립, 관, 모들을 구별하여 사용해 왔습니다. 투구는 베를 배접하여 만들었는데 겉은 흑단으로 싸고 안은 홍초로써 댑니다. 정수리에는 금증자를 달고 또 홍상모를 답니다. 모자 좌우에 금운월을 붙였으며 채양 안은 홍단을 대고 자주 끈을 단 것으로 정대업에 사용하였습니다. 검기전립은 전립의 모자가 깔대기처럼 뾰족하고 금속증자로서 장식하였습니다.
주립은 무동이 쓰는 것으로 주칠한 갓에 증자를 달고 양옆에는 공작의 깃을 세우고 갓모자 네모에 호수를 꽂으며 밀화로 패영을 길게 만들어 늘어 뜨립니다. 금화칠립은 무동(舞童)들이 쓰는 것으로 칠립에 꽃을 곱게 만들어 꽂았습니다. 무대복식에 속하는 관, 립, 모들은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특징입니다.
* 복두(幞頭)와 당건(唐巾): 조선초기에는 공복(公服)에 복두를 신들과 악공들이 착용하였으나, 차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진사에 급제한 사람이나 악공들만이 착용하였습니다. 그 제도는 종이를 배접하여 만드는데 안에는 가는 베를 바르고 검은 칠을 하며, 양쪽에는 뿔이 있고 모자 앞뒤와 양쪽 뿔에 채색으로 꽃을 그리기도 합니다.
당건(唐巾)은 전악(典樂/ 궁중음악) 또는 협시(挾侍/)들이 쓰는 것으로 양쪽 뿔이 아래로 처집니다. 조선 중기 사대부(士大夫)들이 평상시 쓰던 모자입니다.
조선시대 전통 복장 5
궁중 복식 (여성)
조선시대 전통복식 마지막(5)편을 소개합니다.
먼저 복식(服飾-옷과 장신구 등)부문 자료에 대한 생소한 전문용어를 필자자신이 소화치 못해 그대로 전하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이 조선시대 전통복식은 우리나라의 귀중한 자료지만, 전문 내용이 길어 많은 부분을 줄였습니다. 특히 복식 장신구 액세서리 부분은 거의 생략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 자료는 지난 1962년 북한에서 출판된 자료(리조 복식도감)로 현재에도 옛 복장에 관심 있는 학계 등 연구기관에서 잘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복장을 섬세히 그린 북한작가는 충남 공주출신의 고(故)리팔찬 유명화가입니다.
* 적의(翟衣): 붉은 비단에 청색 꿩을 수놓은 왕비예복입니다.
* 활옷 : 공주, 옹주의 대례복(大禮服). 혼례 때 신부의 예복이었습니다. 원삼과 비슷하나 앞뒤와 두 소매에 수(가슴, 등, 소매끝 부분에 모란꽃 수.)를 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 원삼 (圓衫) : 후궁 나인들의 예복이요, 혼례 때 신부들의 예복이었습니다. 앞 두 자락은 짧고 뒷자락은 깁니다. 즉 부녀 예복의 하나로 흔히 비단이나 명주로 지으며 연둣빛 길에 자주 깃과 색동소매를 달고 옆을 텄습니다. 낭자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앞머리 양옆으로 떨잠을 꽂으며 안자비녀에 드림댕기를 들였습니다.
* 궁녀대수 : 궁중복식에 속하는 것으로 궁녀들의 예복으로 소매가 긴 원삼을 말합니다. 삼색동을 달고 금화수대를 뒤로 띠며 어여머리(부인들이 예장할 때 머리에 얹던 큰 머리)를 합니다.
* 족두리 : 예복을 입을 때 여자들이 쓰는 관(冠). 첩지를 쓰고 첩지개 고리에 걸어서 씁니다. 칠보 족두리(새 색씨가 쓰는 족두리로 금박을 박고 각종 패물로 꽃모양을 만들어 꾸밈), 화관, 운관 등이 있습니다.
* 사창(紗窓)원삼 : 사창(깁으로 바른 창/깁이란 명주실로 조금 거칠게 짠 비단)으로 입는 웃옷으로 형태는 일반 원삼과 같습니다. 아랫도리는 남색치마 또는 홍색치마를 두르고 청금 수대를 뒤로 맵니다. 허리에 칠보 패를 차고 화관을 쓰며 원앙혜를 신습니다.
* 황초삼 : 무대복식으로 웃옷입니다. 준앵전, 몽금척, 장생보연지무, 포구락, 무고, 향발, 연화무에 사용하였습니다. 소매가 짧고 앞과 뒤가 터져 네 자락으로 되고 앞섶은 밀화단추로 걸게 되었으며 오색 한삼(汗衫)을 달았습니다. 입 복식을 사용할 때에는 남치마를 입고 그 위에 붉은 비단치마를 두릅니다. 허리에는 수대를 띠고 화관을 씁니다.
* 단의 : 무대복식의 하나로 동기(童妓)의 웃옷입니다. 녹색 비단 또는 검은 엷은 비단으로서 짓는데 백초 또는 남초를 받칩니다. 소매 끝에는 오색 한삼을 걸었고, 금화라대를 뒤로 맵니다. 붉은 비단치마를 입고 자주 헝겊 여덟 가닥에 금화문을 박은 유소를 드리우고 머리에는 합립을 씁니다.
* 쾌자(快子) : 무동(舞童)들이 검기(劍技)무를 출 때 초록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자주바탕의 사로 만든 쾌자를 입습니다. 남색 전대(纏帶)를 띠고, 전립(戰笠)을 썼습니다. 근래에는 명절이나 돌날에 복건(幞巾)과 함께 어린아이에게 입힙니다.
* 여혜(女鞋) : 무대복식에 속하는 여혜(女鞋)인데 종류가 다양합니다. 가기(歌妓)와 무기(舞妓)들이 신습니다. 백피혜는 흰 가죽으로 지었는데 끈을 단 것으로 처용무에 사용하였고, 오비리는 검은 가죽으로 신울을 하고 청서피로 창을 대였으며, 신코가 날이 서게 지은 것으로 고구려 연화무에 사용하였습니다.
무 우리는 홍전으로 신 울을하고 꽃무늬를 수 놓았으며 신코에 운문을 놓은 다음 상모를 달아 아름답게 장식하고 신끈을 단 것인데 망선문에 사용하였습니다. 비두리는 녹전으로 신 울을 대고 수를 놓았으며 신코와 신뒤에 운문을 놓고 신코에는 붉은 상모를 달아 화려하게 장식하고 끈을 단 것으로 무 우리와 같이 망선문에 사용하였습니다. 흑피혜는 검은 가죽으로 만든 것인데 신코에 붉은 선 무늬를 놓았습니다.
첫댓글 옛날엔 양반과 일반인의 의상 차이가 완전히 구분 되어 있군요..
머리에 쓰는 남바위 조바위.. 전통 혼례복 등 의상의 종류도 많고 머리에 쓰는 모자 종류도 왜그리 많은지..
지금도 간혹 조선시대의 의상을 입고 전통 혼례를 하는 모습을 보곤 하죠?
아름다운 멋이 있길래..........
조선시대 의상 수업 잘 받고 갑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셔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