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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서재 창가에 앉아 문을 열었다. 훅 안기는 공기가 서늘하다. 어느덧 가을이 깊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잠든 밤, 건넛마을 불 꺼진 아파트가 마법의 성 같다. 길가의 가로등은 졸고 있는데, 개발(開發)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산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단독주택 골목의 가로등은 유난히 빛난다. 차량이 뜸한 큰길엔 점멸등이 깜박이고 있다.
어릴 때 고향은 등잔불이나 호롱불이 깜깜한 밤을 밝혔다. 하늘에 별이 총총히 뜨는 여름밤이면 반딧불이가 요정처럼 날아다니고 별똥별이 질세라 불꽃놀이를 펼쳤다. 그런데 별내의 밤은 하늘의 별들이 몽땅 땅에 내려앉은 것 같다. 나는 고층 아파트에서 땅에 떨어진 별들을 내려다보며 허공을 맴도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공원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고향에서 본 별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갑다.
남양주시 별내동은 시골과 도시가 공존하는 곳이다. 봄에는 앞산에서 뻐꾸기가 구성지게 울더니 장마철 여름밤엔 공원과 아직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빈터에서 슐레겔청개구리(숲이나 나무에서 사는 개구리)가 짝을 찾느라고 밤새도록 목청을 돋우며 노래를 불러 향수에 젖게 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귀뚜라미와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현악기를 연주하듯이 고운 성음으로 적막을 깨고 있어 창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곤 한다. 휘황찬란한 도회지보다 정서적이고 낭만이 흐른다. 오는 겨울밤은 또 어떠할까. 개울 건너 야산이 길게 누워있으니 겨울 숲에서 들려오는 부엉이 소리가 내 어릴 적 고향 뒷산으로 데려다주길 기대해 본다.
깊은 별내의 밤! 깨어있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광경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 곁에 있어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행복도 마음에 두지 않으면 손에 쥐여줘도 모르리라. 온 밤을 고독을 씹으며 괴로워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수심에 젖어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밤을 즐기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랴. 주변을 돌아보면 뜻밖에도 아름다움이 곁에 있음을 새삼 느낀다.
언젠가는 낙엽처럼 가벼워져 땅에 눕고 말면 영혼은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할 인생. 순리대로 살 일이다. 삶의 연륜이 어깨를 누르고 세월의 물결이 얼굴에 깊이 드리웠어도 노욕을 버리며 정신세계만큼은 별이 빛나는 밤에 별님, 달님과 속삭이는 풋풋한 소녀이고 싶다.
첫댓글 . 항상 봐도 웃음 잃지 않는 초록바다님~~ 오랜만에 방문하셨네요 좋은 글 읽으며 저 또한 공감을 해본답니다 종종 놀러 오세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늦었지만 아드님 결혼 축하드려요. 행복한 나날 되십시오. 별내에 한 번 놀러오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