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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학창시절에 우연히 읽다 감명받은 글인데...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이 카페에도 글 올려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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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바보 만들기』를 읽고
조영은
고려대 심리학과 4년. 올해 여름 코스모스 졸업을 앞두고 있다. rorn0601@hanmail.net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올라간 모 대기업의 최종 임원 면접에서 나는 11조의 3번이었다. 앞서 배운 대로 네 명이 줄을 지어 들어가 차려, 경례 구호에 맞춰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으니 무서운 표정의 아저씨들 세 분이 줄지어 앉은 우리 네 명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예리해 보이는 눈으로 최종 면접에 올라온 구직자들을 아래위로 훑어본 아저씨들은 우리들의 자료를 뒤적이며 읽어보고 있었다. 어느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은 뭐고 4년 동안의 대학 성적은 어떠하며 자격증과 상장은 무엇이 있는지, 토플과 토익 점수는 몇 점인지, 제2외국어는 무엇을 할 줄 아는지,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 구성원 전원의 출신 학교, 직업과 직장까지 쓰여 있는, ‘공식화된 문서’와 함께 나는 그 자리에서 값이 매겨지고 있었다. 1번 소는 100만원, 2번 소는 120만원, 3번 소인 나는 얼마였을까? 긴장감에 침을 꼴깍거리는 소리까지 들리던 그 곳에서, 문서를 뒤적이던 아저씨들 중 한 분이 침묵을 깨고 먼저 질문을 시작했다.
“1번, 자네는 ‘기업’이 무언지 말해 보게.”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서 영리를 추구하며, 획득된 이익으로 기업의 지속적 생산을 유지하는 경제활동의 주체입니다.”
“흠, 그래…”
딱딱하던 아저씨 표정이 아주 잠깐 부드러워졌다. 잠시의 주저도 없이 ‘정답’을 읊어 내려간 1번은 아마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했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잠시, 2번을 향해 질문을 하려 얼굴을 들었을 땐 다시 무서운 표정이 되어 있었다. 너 어디 이런 표정에도 주눅 들지 않는가 보자는 듯한 얼굴로 아저씬 물었다.
“2번, 자네는 정직한가?”
“네. 저는 제 자신이 매우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헉!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저렇게 자신 있게 자기가 정직하다고 말할 수 있다니. 자기 확신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드디어 ‘기업의 정의’와 같이 달달 외워 대답하는 것 말고 드디어 ‘인성’에 관한 질문을 하는가 보다 하고 잔뜩 졸아 있던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기업의 정의나 목적 따위, 경영학 개론 시간에 배웠던 것 같긴 하지만 질문이 끝나자마자 자동으로 읊어 내릴 수 있을 만치 면접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다음 질문이 이어지려 하자 그 틈을 놓치지 않은 2번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네, 어린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갖고 싶던 물건이 있어서 저도 몰래 훔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돈도 없는 제가 비싼 장난감을 갖고 있으니 어디서 난 것이냐고 추궁하셨죠. 저는 그 때 거짓말을 했다가 어머니한테 엄청나게 맞았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슬프게 한 것이 너무 괴로워서 몹시 후회했고 그 이후 저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 그렇단 말이지”
대단하군. 환멸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저 거짓말. 나도 저런 류의 대답을 해야 하는 건가.
“그런데, 자네는 신문방송학과인데 왜 기자가 되려고 안 하고 회사에 들어오려고 하나?”
“네, 저는 한 때 기자의 꿈을 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작년에 MBC 방송국의 최종 면접까지 갔었습니다. 그렇지만 ‘기자’ 란 직업은 저한테는 참 맞지 않는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활도 매우 불규칙해지고 자기 개발을 위한 시간도 갖기 어렵고……”
2번은 기자란 직업이 왜 자기한테 맞지 않는지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기자는 야인기질이 있는 이들이나 하는 것’이라 자기한테는 맞지 않는다며 멋지게 끝을 맺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황당한 표정을 참지 못한 채 순간적으로 얼굴도 몸도, 손가락까지 굳어 버려서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우스운 모습 있지 않은가(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저 사람은 임원 면접실에 들어오기 바로 30분 전 대기실에서 우리들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었다.
“다른 금융 회사에 붙긴 했지만, 이번에 기자 시험도 치렀습니다. 일단 이 회사 붙으면 기업 연수 들어갔다가, 기사 필기시험 붙었다는 연락이 오면 연수 도중에 나올 겁니다. 저는 기자가 될 거거든요.”
아까 ‘기자’라는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 같던 그 야심찬 젊은이가 바로 저 사람인가. 그리고 바로 조금 전에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한 사람이. 결코 닮고 싶지 않은 저 치졸한 야망…. ‘치졸’하다면 단지 나의 주관적 의견일 뿐, 대단히 합리적인, 효율성과 효과성을 추구하는 사람이겠지. 이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성공을 향해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도록 길러진 우리 시대의 ‘엘리트’.
질문한 임원 아저씨는 아까 1번의 답변 때보다는 못했지만 그나마 조금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어지는 말의 내용은 부드럽진 않았지만.
“흠, 그게 바로 ‘신포도’의 합리화라는 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가 XX그룹의 기업생활에 더 맞는 이유는 …”
아, 더 이상 듣기가 괴로웠다. 내 얼굴은 벌개졌고 다음 질문에 답변해야 할 사람이 3번인 나라는 사실은 내 생각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 사람이 답변을 마치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나에겐 어떤 질문이 올까, 어떻게 나를 멋지게 포장해서 내보일까, 기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이런 따위 생각이 아니라 내가 과연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엄숙한 표정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 가 아니라 일방적인 질문에 ‘멋들어진 대답’을 하기를 원하며 앉아 있는 이 우등소 대회의 심사위원들 앞에, 나는 왜 이 기만적 ‘엘리트’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것인가… 나는 ‘면접 질문 대비용 자동응답기’가 아닌데…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두세 가지 질문에 나라는 상품을 잘 ‘포장’해서 매력적으로 팔아야 하는 이 자리에서 나는 그들에게 그리 구미가 당기는 물건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회사 말 잘 듣고 회사에 많은 돈을 ‘벌어다 줄’ 훌륭한 상품 말이다.
“자 그럼, 3번 음… 자네는 기업의 정의와 목적에 대해…”
이미 임원 아저씨들의 목소리는 내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1번’처럼 기업의 목적에 대해 준비된 교과서처럼 자동으로 읊어 내리지도, ‘2번’처럼 멋들어지게 꾸며낸 자기 확신을 보여주지도 못했기에 임원 아저씨들의 인상은 내 차례에서 더욱더 험악해지기만 했다. 누가 봐도 명문대 출신에 토익 고득점자만 득실거리는 그 곳에서 나는 ‘너 정도의 상품 가치, 아니 그 이상의 상품가치를 가진 물건은 기업가인 우리들 입장에선 발로 채일 듯 많으니 우리들에게 팔리고 싶으면 더 많은 경쟁력으로 무장하고 오라’는 메시지를 접수했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스쳐가며 ‘나는 참으로 쓸모없구나’ 하는 느낌에 절망했다.
내 인생 최악의 면접이었다고 할 만한 면접을 마치고 나서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동안 ‘나’ 라는 인간으로서 가져온 고유성, 개별성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그깟 우스운 문서들 속에서 ‘나’는 사라지고 대신에 레벨이 붙는다. ‘XX대학 XX학과’ '토플 XXX점' 'XXX우수상’ ‘XX대학을 나온 XXX의 자녀’
비참함에 몸이 절은 채 이 날의 기억을 새기겠노라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꺼내 내 얼굴을 찍었는데 지금 봐도 그 얼굴이 고통의 눈물에 퉁퉁 부은 것이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다른 사람 같이 안쓰럽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 때 찍은 사진속의 내가 힘없이 축 처져 보이는 까닭은 그때의 내가 ‘우리 회사에서 너 정도는 필요 없다’라는 임원 아저씨들의 주문에 걸려 들어 그들의 눈에 비친 내가 무엇이 부족했을까를 점검하며 나를 질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문대 졸업장에 4.0이 넘는 성적, 고득점의 토플 점수, 이제 뭐가 더 있어야 되지? 그들 눈에 부족한 게 뭐였을까? 다른 후보들처럼 제2외국어를 못해서? 실업고를 졸업해서? 영어회화가 유창하지 못해서? 기업의 목적을 멋들어지게 말 못해서? 후보들 중 나만 여자였기 때문에? 컴퓨터 자격증을 따야 하나? 내 마음은 실컷 두들겨 맞아서 멍이 든 채로, 그렇지만 이런 일로 좌절하면 더 매력 없는 구직자가 되는 것이라며 더욱 더 자책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막지 못한 채 나는 점점 더 내 자신이 못나고 한심한 것만 같아서 기막힌 부끄러움에 어디든 숨어버리고 싶었다.
마음이 만들어낸 껍데기 속에 숨은 채로, 가끔 밖을 내다보다가 다시 숨고 다시 내다보고…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밤이면 취직할 곳을 알아보며 졸업 후 주어지는 내 삶의 자유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바보 만들기’를 읽게 되었다. 통쾌한 깨달음에 잊고 있던 자기사랑을 되찾는 기쁨이 넘쳐 반나절도 안 되어 읽어치운 이 책은 내 삶에 갑자기 등장했고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혜성처럼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왔는가. 그 동안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왔는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선배들처럼 ‘뽀대’나는 대기업에 취직해야만 한다는 불안감이 강박관념처럼 다가왔다. 그래, 다들 그러는 것처럼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돈 벌어서 언제쯤 집을 사고 결혼을 하고… 나라는 인간이 원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 목적을 잃은 채 관심도 없는 직장에 이력서를 써내며 내 마음은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다. 나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돈’많이 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학교라는 공장이 끊임없는 속도로 찍어내는, 문서 속에 박제된 불쌍한 그들, ‘문서 인간’중 하나였던 것이다. 거대 세력이 만들어내는 미신 속에서 허우적대며 실체도 모를 존재에게 ‘복종’하도록 대량생산된… 자기의 꿈까지 그 ‘거대 세력’을 위해 갖다 바치도록 프로그래밍된…
‘밟고 올라서’
‘이겨라’
‘더 빨리’
‘더 많이’
‘남들보다 더’
‘무서운 국제 경쟁의 시대를 이기자’
‘무장해라’
……
그런데 잠깐,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 책은 인형놀이판의 인형이 되어 춤추던 우리들에게 잠시 멈춰 생각해보라고 제안한다. 저자는 문제의 근원을 우리가 받은 ‘교육’에서 되짚어 보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같은 길을 들이밀지는 말자고 말한다.
그렇다. 확실히 스물다섯이 되도록 내 자신이 쓸모없다는 자괴감에 빠져서 ‘행복하게 살기’에 대해 잊은 내게 ‘바보 만들기’ 이 책이 제시하는 물음은 잠자고 있던 내 마음의 아이를 들쑤셨다. 누군가 두드리는 이 장단에 이유를 묻는 것도 잊은 채 바보 같이 장단 맞추기를 계속하는 건 이제 그만 해도 된다는 저자의 외침. 알고 보면 당신들의 현재도, 미래도, 그리고 아이들이 좀더 행복할 수 있는 현재와 미래까지 당신들의 주도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는 기분 좋은 깨달음.
어린 시절에는 꿈이 있지 않았던가. 좋은 직장, 높은 연봉, 높은 성과물, 재테크, 30대에 10억 부자 되기, 서울대 입학, 이런 것 말고 무언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점점 더 희미해져서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꿈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는 어른들이 나서서 이 시대의 현실이 얼마나 각박한지 아이들에게 알려주며 제도권 교육을 ‘잘’ 받아서 돈 잘 버는 ‘성공’한 이가 되도록 끊임없이 등을 쳐대며 밀어내고 있다. ‘공교육 붕괴’ 소리가 나온 지 한참이 된 지금, 학교에 다녀본 이들이라면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무엇을 배웠던가. 재미있는 공부? 고3의 끈끈한 우정? 친구들과의 추억? 드디어 졸업했다는 안도감에 기억의 앨범 한편에 멋들어지게 장식해놓은 그런 것 말고, 저 한 구석으로 밀어 넣고 숨겨버린 기억들을 뒤적여서 꺼내보란 말이다.
이유를 묻는 버릇 없애기, 명령에 복종하기, ‘정답’이 있다는 것, 그것도 오직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것 배우기, 종소리 울리면 자리에 앉기, 수업 시간엔 하고 싶은 말 참기, 화장실 가고 싶어도 참기, 때리면 가만히 맞기, 억지로 일기 쓰기, 윗사람 눈치 보기, 한 줄로 서기, 시험 성적을 위해 벼락치기하기, 인간은 성적에 따라 등급 매겨진다는 것 사실 알기… 다 나열할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옆의 아이 밟고 올라서기.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
어떤 이들은 말한다. 학교도 적응 못하면 사회에 어떻게 적응 하냐고. 그렇다. 학교는 철저하게 잘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에게 불행해지는 방법을.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 불행한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게끔 하는 방법을. 우리 아이들이 입시 경쟁으로 고통스러운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행복해지는가? 그 터널을 겨우 빠져나와도, 이 사회는 영원한 경쟁사회이며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기에 끊임없이 남을 밟고 위로 올라서야 좀 ‘살만해진다’는 압력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위에 도대체 뭐가 있는데?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교수님 눈치 잘 보고 출석 잘해 성적 관리하고 철저하게 영어공부하고 제2 외국어에 각종 자격증으로 무장해 돈 잘버는 ‘능력’ 있는 이가 되라는 메시지는 우리 아이들을 멍들게 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이다 영어다, 한자다, 입시미술이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가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언제 배운단 말인가. ‘공부는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가 가르쳐 준단 말인가. 이제 곧 대학을 졸업할 나는 때로 대학교육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수 없이 하긴 했지만 어찌 어찌 참고 지나온 듯 하다. 대학시절의 성실성을 증명해준다고 하는 성적이야 진짜 공부보다는 교수님 눈에 드는 요령과 시험 기간의 벼락치기만 잘 하면 그다지 문제 없는 것이었기에. 그런데, 모두들 말하는 대로 좋다는 대학 들어가니까 행복했던가? 어학 공부에, 각종 스터디에… ‘취업’이라는 앞에 보이는 길은 얼마나 나를 강한 압력으로 짓눌렀던가. 겨우 그 시기들을 숨가쁘게 지나온 것 같은데, 좋다는 회사 다니는 사람 말을 들어봐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단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승진에 승진, ‘임원’까지 되어서 돈 많이 버는 아저씨들 표정은 왜 그리도 굳어 있고 어두워 보이는지. 나도 그 길을 따라서 ‘성공에 성공’을 한다손 치더라도,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게 있다. 나는 과연 ‘언제’ 행복해질까?
나는 인생이 보드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들 손에 자기 정체성이 든 카드를 손에 쥐고 인생게임을 즐긴다. 이 게임은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부루마블처럼 ‘돈’이란 카드를 많이 얻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행복’ 이란 카드 찾기, 그 누군가 만들어 준대로 숨가쁘게 미칠 듯이 뛰어만 가서 제일 빨리 도달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길가에 핀 들꽃 향기도 맡고, 나비도 보고, 흙도 만져보며 자신이 어떤 길을 걸을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기 길 찾기’란 즐거운 게임….
‘바보 만들기’를 읽고 원인은 모르지만 무엇인가에 대한 결핍 때문에 죽어가고 있던 나는 머릿속이 한동안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내 삶이 참 무엇에 쫓기듯 각박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정작 내가 놓고 있던 내 삶에 대한, 내 마음에 관심들… 나란 아이도 행복해져야 하는데. 내 동생도, 그리고 앞으로 있을 나의 아이, 그리고 내 친구의 아이, 우리 모두의 아이들도 행복하게 자라야 할 텐데….
저자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아름다운 문체 속에 숨어있는 예리한 관찰력과 문제의식, 그리고 교사로서 겪은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는 다소 심각한 주제를 가진 듯 보이는 이 책을 단숨에 읽게 했다. 이야기책을 읽듯이 즐거웠지만 감동적이었다. 상장을 받기 위해 억지로 독후감을 쓰는 게 아니라 그저 좋아서 스스로 독후감을 쓰고 싶어지게 하는 교육, 그런 교육을 받았더라면… 그저 내겐 지나가 버린 시절의 소망이지만 앞으로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희망을 가져봐도 될까. 그래도 이런 책을 쓰고 만드는 어른들이 있으니까.
출처 - http://www.mindle.org/bbs/view.php?id=published&no=14 [조영은 님]
첫댓글 이 대단한 경험글에 왜 댓글이 없는걸까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 조영은 님의 경험담에서 나오는 대기업 임원들의 험상굳은 표정들처럼
사회에 잘 적응하고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인간미를 잃어가는 경향이 더 큰것같습니다. (모두가 그렇다는건 아니고..)
사회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만든것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