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포로 로마노(Foro Romano)
포로 로마노는 베네치아 광장과 콜로세움 사이에 있다. Foro 라는
말은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Forum의 어원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포로 로마노는 ‘로마인의 광장'쯤이 되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공화제 최고 정치기관이었던 원로원, 키케로가 연설했다는 로스트리
등이 포로 로마노 안에 있다. 고대 로마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는 로마제국 2500년 역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뿐만 아니라
로마 주변의 많은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포로 로마노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초석을
이곳에 세웠다. 화폐를 발행하고 합의에 따른 정치제도와 도량형 등 많은 부분이 이곳에서 정해졌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는 로마의 초창기에는
6개의 언덕으로 둘러싸인 습지대로 그 주변은 묘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언덕으로부터 연결하기 쉽다는 이유로 시가 들어서게 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되었다. 특히
575년 5대 왕인 타르쿠니우스가 배수로를 만들어 이 분지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이후에는 집회의 장소가 되었고 무수의 포럼이나 신전, 기념비 등의 건축물이
지어졌다. 이후 주변에 시저의 포로와 아드리아누스의 포로, 투라야누스의
포로 등이 만들어져 로마는 발전했지만 콘스탄티 노푸루의 천도 이후 마을의 중심은 산 피에트로 사원과 가까운 북서부에 완전히 옮겨갔다.
남겨진 옛 건축의 잔존물은 주위 언덕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토사나 반입된 쓰레기에 파묻혀 완전히 쇠퇴해서 채석장이 되었고 황소의 들로
불리는 칸피두리오 언덕도 산양의 언덕으로 불릴 만큼 황폐해지며 로마 제국의 영화도 쇠퇴해져 버렸다. 1803년
나폴레옹의 로마 점령 때 동행한 고고학자 칼로페어가 처음으로 발굴에 착수해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다.
San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