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덟 번째 이야기>
찬란한 불꽃놀이 사진
- T 셔터에 대하여-
한 동안 뜸했던 종 구가 사진 집 몇 권을 들고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 듯 접어놓았던 책갈피를 펼쳐 보이며 진한 충청도 사투리로,
" 이런 사진은 워 치게 찍어야 된 대 유 ?" 하였다.
어떤 것은 남산 타워를 배경으로 찬란하게 명멸하는 폭죽놀이를 찍은 것이 있는가 하면, 밤 하늘에 동심원(同心圓)을 그리고 있는 별들의 궤적(軌跡)을 찍은 것, 어두운 밤하늘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듯한 번개 치는 사진, 도시의 건물 사이로 무수히 지나가는 자동차의 물결을 밤 중 에 찍은 것들이었다.
" 그거야 뭐 간단하지, T셔터를 쓰면 되지"
" 'T 셔터' 라 구 유 ? 그게 뭐래 유?"
" 아직도 'T 셔터'를 모른다?"
" 원제 가르쳐 주 셨 남 유"
종 구가 부끄러운 듯 뒤통수를 긁적거리므로 필자는,
" 그랬나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보지"라고 얼버무렸다. 왜냐하면 사진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무안을 주면, 그것은 곧바로 사기를 꺾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취미로 사진을 시작한 사람들 중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시작한 세월이 제법 흘렀음에도, 'T셔터'의 쓰임새를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사정이므로, 불꽃놀이 사진이라던가, 번개 치는 사진은 전문가나 찍을 수 있는 특수사진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이러한 색다른 사진도, 독자들이 조금만 호기심을 갖고 시도해 본다면 어렵지 않게 찍을 수 있는 것들이다.
여러분의 카메라를 다시 살펴보면, 셔터 스피드를 정하는 '다이얼'에 아라비아 숫자 외에 X, B, 그리고 T라는 영문자가 보일 것이다. 이를 복습한다는 의미에서 다시 알아두자.
◆ 영문 약자의 의미 ◆
X : 크세논(Xenon)의 머릿글자로, 전기플래시, 소위 스트로보를 터트릴 때 사용한다.
B : 전구라는 뜻인 발부(bulb)의 머릿글자로, 'B'셔터라 부르며, 손가락으로 셔터를
누르고 있는 동안에는 열려있고, 그것에 손을 떼는 순간 닫히게 되는, '셔터'이다.
원래는 '플래시 발부'를 사용하기 위해서 설치한 '셔터'이지만, 이 '셔터'에
'케이블 셔터'(cable shutter), 또는 '와이어 릴리즈'( wire release)라 부르는
액세서리(accessory)를 사용해서 'T셔터'처럼 장시간 노출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T셔터'가 별도로 없는 카메라의 경우 이 'B셔터'를 응용한다.
T : 시간, 즉, '타임'의 머릿글자로, 셔터를 누른 순간, 셔터가 열린 후, 어떠한 조치를
취해 주지 않는 한, 한없이 열려 있는 셔터이다. 그러하므로, T 셔터는 장시간
노출을 줘야 할 경우에 사용되고, 우리는 이 'T 셔터'를 응용하여 소위 특수촬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에 설명하는 사진들은 모두 이 T셔터를 활용한 것이니, 여러분도 그 요령을 터득해서 한 번 시도해 보라. 그리고 사진을 제법 찍을 줄 안다고 목에 힘을 주며 으스대는 주위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찍은 사진을 보여줘 보라. 필경 그들은 여러분의 솜씨가 한 수위라고 생각하며 기가 팍 죽을 테니까.
♧ 폭죽놀이
① 먼저 카메라를 삼각대(三脚臺-tripod)에 단단히 고정시킨 뒤, 파인더를 통해 어느 정도의 범위로 찍을 것인가, 또 주위의 어떤 풍경을 곁들일 것인가 구상해 둔다. 그 이유는 어두운 밤에 찍는 것이므로, 촬영 중에 카메라를 함부로 옮기기 어렵고, 불꽃놀이 의 시간이 '어어'하는 의외로 짧은 사이에 끝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② 다음으로 셔터를 T 에 놓고 조리개는 대개 필름의 감도가 100이라면, f 8, ∼f 11정도로 놓는다. 물론 이 조리개 값이란 어림수이지 정확한 노출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 장의 필름에 몇 번의 폭죽을 담느냐, 또 폭죽의 색깔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밝기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조리개 값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다소 노출이 많거나 적다고 해도 대세에 지장이 없다는 말이다.
기왕지사 불꽃놀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머리를 식힐 겸, 잠시 그것이 어떻게 오색 찬란하게 빛을 내는가 알아보자. 폭죽은 보통 흑색화약에 마그네슘, 리튬, 구리, 나트륨 등의 물질을 섞어 폭발시키고 이때 그 물질들은 각각 독특한 불꽃반응을 나타낸다.
이를테면, 구리 가루는 타면서 남청색으로 빛나고, 리튬은 진홍색, 마그네슘은 매우 밝은 흰색, 나트륨은 노란색으로 빛난다. 올해도 8.15일 광복절이 되면, 예외 없이 삼산 타워 근처에서 불꽃잔치는 벌어지리라.
③ 그때, 대충 촬영준비를 끝내고 폭죽이 터지기를 설레 이며 기다리다, 예정시간 보다 늦어지므로, 잠깐 한눈 파는 사이, 혜성과 같은 꼬리를 흔들면서 밤하늘에 솟구쳐 올라간 폭죽이, 한 순간, 마치 활짝 핀 꽃처럼 오색찬란한 섬광을 흩뿌린다. 그리고 이어서 가슴까지 울렁거리게 하는 굉음을 토해 낸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순간에 느닷없이 화장실에 가고싶은 생리현상이 일어나는 수가 있다. 왜냐하면 폭죽이 터지기를 조바심 치며 기다린 끝이기 때문이리라.
이건 속된말로 시집가는 날 등창 난다는 꼴이 되므로, 미리미리 해결 해 둬야한다는 말이다.
④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지르며 흥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사람까지 덩달아 흥분한다면 어찌 사진을 찍을 수 있으랴.
카메라맨은,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필자는 가끔 농구경기장에 취재를 나온 사진기자가 아슬아슬한 게임에 흥분한 나머지, 사진 찍는 일을 잊어버리고,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고 있는, 웃지 못 할 광경을 보았다.
이제 조용히 ' T '셔터를 누르자, 그리고 폭죽이 꽃처럼 활짝 퍼지는 순간, 렌즈 앞을 가리워 주라.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렌즈를 가린다고 카메라를 건드리게 되면 카메라의 위치가 변경되어 여러분이 구상했던 이미지를 망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A4 용지 크기의 두꺼운 종이에 검은 색을 칠해, 렌즈 가리개를 만들어 준비하고 있다가 폭죽이 활짝 터지는 찰나, 렌즈의 앞을, 슬쩍 슬쩍 가려 주면, 만사 OK이다.
만일 렌즈 앞을 가려주지 않는다면, 폭죽이 폭발하는 순간부터, 끝나는 시점까지 계속 찍히는 상태가 되므로, 불꽃의 모양이 길게 궤적(軌跡)을 이루어 흐르게 되므로, 맥빠진 사진이 되고 만다. 이런 식으로 폭죽이 예닐곱 번, 또는 십 수 번 터진 뒤, 'T'셔터를 풀어라. 그리고 다음 필름에 찍기 위해 필름감개를 돌린 뒤 다시 'T'셔터에 맞추고 먼저와 같은 방법으로 찍어간다.
아마도 필자가 설명한 대로 만 따랐다면, 사진이 나온 뒤 여러분은 환호성을 지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리라.
" 선생님 제 카메라는 'T'셔터가 없어요"
" 아따 그 사람 아까 말했잖아"
" 아차. 'B'셔터에 놓고 '케이블 셔터'를 쓴다고 요"
" 그럼. 셔터 버튼의 나사 홈에 그걸 돌려 꽂으면 된다니까"
" 인제 알 것 구 먼 유"
♧ 번개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 난데없이 미 당 서 정주선생의 시를 읊조리냐구? 아 글쎄 무덥고 지리한 여름날 밤 소나기와 함께 치는 천둥번개야말로 가슴 속 깊숙한 곳까지 후련하게 해 주는 게 아닌가. 어찌 비발디의 사계(四季)나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속의 천둥소리 정도가 진짜 뇌성벽력(雷聲霹靂)과 비교 될 수 있단 말인가....
" 워 치기 그 빠른 번개를 찍는 대 유 "
" 빠른 것은 느린 것으로 잡는단 말 못 들어 봤 남"
" 알 것 슈. 아무리 날랜 새도 그물에 걸린단 말씀 이 지 유"
" 옳거니. 이걸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한다지"
종 구는 골똘해 있을 때 시나브로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 누가 맞장구를 쳐줄라치면, 이건 숫제 서산 아저씨다. 그 억양과 음색이 더욱 진한 고향 냄새를 풍긴다.
하여간 이 번개 사진도 'T'셔터로 찍는다. 여러분이 전망이 탁 트인 집안에 있다면 점잖게 앉아서 한 방울의 비를 맞을 염려도, 벼락을 맞을 위험도 없이 조물주가 연주하는 웅장한 교향곡과 함께, 현란하게 그리는 추상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뿐인가 그 아름답고 황홀한 장면을 한 장의 사진에 기록할 수 있는 행운까지, 덤으로 얻을 것인데, 문제는 번개가 어디서부터 치게 될지 종잡을 수 없어 찍을 범위를 잡기가 난감해 진다는 것이다. 허지만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저녁 노을 이 붉으면 다음날 날씨가 궂을 것이며,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것쯤은 우리 선조 들이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인 것처럼, 번개를 숨긴 먹구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가 . 즉 바람의 방향을 알아차린다면, 번개의 진행방향을 미리 가늠하기란, 누워서 떡 먹기가 아닌가. 또 이 번개를 필름 속에 고스란히 붙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촬영의 방법은 불꽃놀이 사진을 찍는 것과 거의 같지만, 한 가지 다른 것은 렌즈 앞을 가려 주는 따위는 절대 불가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번개가 어느 찰 라에 작렬할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설령 안다 해도 너무 짧은 순간이기에, 셔터를 눌러봤자, 이미 때는 늦으리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번개를 몇 번이나 한 필름에 담을 것인가 궁리한 뒤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단지 그 수를 헤아리며, 가만히 앉아 파 천 무(破 天 舞)를 감상하면 된다.
만약 낮에 번개를 찍는다면 하늘이 아무리 컴컴해도 밤처럼 어둡지 않으므로, 이미 설명한 N D 필터를 렌즈 앞에 반듯이 끼워야 한다.
♧ 별의 궤적(軌跡)
별들의 합창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찍어 본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참으로 근사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별들은 아무리 밝고 큰 망원렌즈를 끼웠다 하더라도 해와 달을 비롯한 몇 개의 행성이 아닌 바에는, 한 개의 점으로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밤하늘의 별을 찍는다는 것은 별 볼일 없는 일처럼 느껴지기 쉽다. 허지만 별의 궤적을 찍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북극성(polestar)을 중심 축으로 무수한 별들이 동심원(同心圓)을 그리며 도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튼튼한 삼각대위에 카메라를 고정시킨 뒤, 북극성을 찾아 파인더의 중심에 놓아야한다.
" 북극성이 어디에 있는 데요?"
" 아니, 자네 군에서 독도법(讀圖法) 안 배웠나?"
" 저야 귀신 잡는 공익 아닌 교"
" 나 원. 귀신 잡는 해병 소리는 들었다만..."
북극성을 잘 찾지 못하겠거든, 먼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찾아야한다. 우선 해가 뜬다고 생각되는 동쪽 방향에 여러분의 어깨가 있도록 하면, 왼편 어깨는 자연 해가 지는 방향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서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왼쪽 어깨 위쪽 하늘에, 일곱 개의 밝은 별이 손잡이가 달린 국자처럼 보일 것이다. 이 별이 바로 북두칠성이다.
이제 국물을 퍼 올리는 쪽이라고 연상되는 두 별 사이의 거리를 1로 생각하고, 이보다 4배쯤 되는 허공에 가상의 연장선을 그려보면 그곳에 북극성이 있을 것이다.
" 아무래도 몬 찾 겠 는 기라. "
" 그렇다고 포기 할 라 꼬 "
" 할 수 없다 아닌 교"
" 사나이 칼을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찔러야지"
북극성의 방향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으니, 여러분은 지상의 어떤 풍경, 예를 들면 산의 실루엣,
도회의 건물, 또는 나무가 있는 풍경을 곁들여 별 사진을 찍어 보라.
아마 여러분이 산의 실루엣을 넣고 찍은, 밤하늘의 풍경에 수많은 별들이, 빗금을 그려 놓은 것처럼 줄줄이 찍혀 있음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를 것이다.
또 한 시간동안 노출을 주었을 때와 두 시간 주었을 때, 그 궤적의 길이가 꼭 두 배가됨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한 시간 노출을 준 것이 원을 1/24로 나눈 만큼의 길이, 즉 15。가 됨을 깨닫고 신비한 기분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 자동차의 궤적
- 빛의 실타래-
국보 제1호인 숭례문과 함께 그 주위의 화려한 불빛이 실타래 늘어놓듯 줄줄이 찍혀있는 아름다운 사진을 처음 대하는 왕 초보 사진가 라면 어떻게 찍으면, 저렇게 나올까 궁금해서 고개를 갸웃갸웃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별 비밀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T'셔터를 완전히 이해했으므로, 적당한 위치에서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T'셔터를 걸어 놓은 뒤 , 꼬리를 물고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때 조리개를 얼마에 놓아야 하는지, 셔터는 몇 초로 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해 보라. 다시 말해서 시행착오(試行錯誤)를 해 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반듯이 메모 해 두었다가 어떤 것이 가장 맘에 들게 나왔는지 비교해 보고, 다음 기회에 활용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