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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도 소요산 [逍遙山] 높이 : 559m
특징, 볼거리 서화담 양봉래와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소요산은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특이하다. 하백운대(440m), 중백운대(510m), 상백운대(559m), 나한대(571m), 의상대(587m), 공주봉(526m)의 여섯 봉우리가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주봉은 상백운대(559m)이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여름의 녹음과 폭포, 계곡, 가을 단풍 또한 유별나서 옛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진다. 인적 뜸한 겨울 정취도 낭만이 그윽하다. 뾰족뾰족한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봉우리를 이루어 놓아 만물상을 연상케 한다. 자재암이 있는 백운대를 오르는 계곡은 암봉과 바위능선 사이로 골짜기가 협곡을 이루고 있으며 청량폭포, 원효폭포 등의 명소가 산재하여 있다. 수도권에 있어 거리도 가깝고 교통편도 좋다.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과 눈썰매장, 수영장등이 있어 수도권지역의 일일관광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산자락의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도를 깨친 곳.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심산유곡인 이 곳을 찾아와 수행하다가 절을 지었다. 수행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 하여 자재암이라 했다. 자재암 주변엔 아담한 물줄기의 폭포가 널려 있다.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주변엔 여름철마다 피서객들로 북적댄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신비롭다. 관리사무소 : (031)860-2065, 입장료(2003년 5월현재) : 일반 2천원(학생 1,200원, 어린이 650원), 주차료 : 2천원(소형). 볼거리자재암, 화암사,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인기명산 [48위]엣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리어 오던 소요산은 소요산 역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고 수도권에서 가까워 여름이나 봄나들이 코스로 인기 있다. 가을단풍 또한 볼만하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규모는 작으나 상백운대, 하백운대, 중백운대 등 경관이 아름답고, 등산인의 선호도가 높아 '8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점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원효폭포, 청량폭포, 선녀탕절벽과 가을철 단풍이 유명하며, 신라 무열왕 1년(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자재암이 있다 자재암 코스가 대표적이고 주차장 입구 왼쪽 산림욕장입구에서 시작하는 팔각정 코스가 있다. 경기 동두천시 상봉암동 140-8 (선우면옥) 일주문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한다. 주차장을 지나서 포장된 도로로 약 2km를 걸어서 매표소를 지나야 이 일주문에 도착 할 수 있다. 일주문을 지나서 좌측편 사람들이 있는곳을 보면 물을 받을 수 있는곳이다. 이곳에서 물을 채워서 등산 준비를 하면 된다. 자재암에 오르기 전에 이렇게 원호대대를 올랐다. 원효대 : 이곳은 원효 스님이 정진중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머물려 좌정하고 수도하던 장소로 원효대로 불리운 곳이다. 자재암(自在庵) 영원사(靈源寺)경기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654년(무열왕 1)에 원효가 창건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654년(무열왕 1)원효(元曉)가 창건하여 자재암이라고 하였으며, 974년(광종 25)각규(覺圭)가 태상왕의 명으로 중창하였다. 1153년(의종 7) 화재로 소실된 것을 각령(覺玲)이 대웅전과 요사채만을 복구하여 폐사와 다름없이 명맥만 이어 오다가, 1872년(고종 9)원공(元空)과 제암(濟庵)이 중창하여 영원사(靈源寺)라고 하였다. 그때의 당우로는 영산전(靈山殿)·만월보전(滿月寶殿)·독성각(獨聖閣)·산신각(山神閣)·별원(別院) 등이 있었다고 한다. 1907년 화재로 인하여 만월보전을 제외한 모든 당우가 소실되자 1909년 성파(性坡)와 제암이 절을 중창하고 다시 자재암이라 하였다. 이때에는 전각(殿閣)뿐 아니라 약사여래상과 지장보살상·관음보살상 등의 불상과 함께 이 절의 유래와 깊은 관련이 있는 원효·의상(義湘)·윤필(尹弼) 등의 화상(畵像)을 그려서 봉안하였다.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으나, 1961년진정(眞靜)이 대웅전을, 1968년성각(性覺)이 요사채를, 1977년법조(法照)가 삼성각(三聖閣)을 각각 지어 현재의 당우를 완성하였다. 자재암에는 여러 전설적 설화가 전한다. 『조선지지(朝鮮地誌)』에는 이곳에 요석궁(瑤石宮)의 옛터가 있다고 하였다. 요석궁은 원효가 요석공주(瑤石公主)와 관계를 가졌던 곳이며, 나중에 원효가 이곳에서 설총(薛聰)을 길렀다고 한다. 자재암이라는 사명(寺名)을 갖게 된 것은, 원효가 요석공주와 관계를 가진 뒤 관음보살이 변신한 아리따운 여인의 유혹을 설법을 통해서 물리친 후, 다음날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고 무애자재인(無碍自在人)을 상징하며 자재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절 근처에는 조선태조가 즐겨 찾았던 백운대(白雲臺)와 폐정(廢井)이 있고, 백운대 밑에 있는 폭포는 원효가 노닐던 곳이라고 하여 원효대(元曉臺)라고 하는데, 옛날 이곳에는 소요사(逍遙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제암과 원공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우연히 만나서 절을 중창했다는 영험담도 전해지고 있다. 자재암에서 등산로 계단을 오르기전에 나한전이 있으며 우측으로 원효샘이 있다. 이곳에서도 물을 받을 수 있다. 원효샘 동양삼국 불교계의 거인인 원효 스님은 차의 달인으로도 차인들사이에 널리 알려진 고승이다. 스님은 전국 곳곳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절을 창건하였는데 원효 스님이 자리를 잡은 저러터엔 필연적으로 약수가 나오며 찻물로 으뜸인 석간수가 솟아 올랐다고 한다. 그 중 1천3백여 년 전 수행하셨던 소요산 자재암의 원효샘 석간수는 찻물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수로 이름 나 있다. 신라 고려 때는 물론 조선 중기까지도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특히 고려시대 시인인 백운 이규보는 이 물맛을 젖처럼 맛있는 차가운 물이라고 감탄하는 등 원효샘은 전국에서 유명한 차 문화 유적지가 되었다. 나한전 좌측으로 등산로가 있으며 이렇게 계단으로 이루어 져있다. 아래 이정표를 보면 하 백운대까지 약 0.65km인데 전부다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오르는길이 평탄하지만 않다. 또한 계단의 간격이 높아서 여성분들은 더 힘들것 같다. 오르는 길이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도 있다. 하 배운대를 오르는길에 바라본 소요산 정상 모습이다. 좌측으로는 나한대 우측이 소요산(의상대) 이다. 하백운대 소요산 백운대 능선의 제일 아래 봉우리로 이 위로 중백운대와 상백운대를 거쳐 의상대 공주봉으로 이어지는 말굽모양의 등산로가 이어진다. 소요산은 일찍이 절묘한 산세 수려한 계곡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단풍으로 작은 금강산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양사헌. 이율곡. 성혼. 허목등 당대의 문인. 학자. 시인들이 이 산을 찾으며 그 절경을 노래하였다. 이산에 머물며 수행하던 매월당 김시습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길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한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 중백운대 소요산 일주문 외편 백운대 등산로의 상백운대. 중백운대. 하백운대의 중간 봉우리로 푸른 산과 뿕은 단풍 그리고 힌 구름이 어우러지는 명승이기에 이를 중백운대라 이른다. 고려말 고승이자 해동불교의 법조인 태고 보우선사는 백운암의 노래라는 시에서 이곳의 절경을 다음과 같이 노래 하였다. 소요산 위의 흰구름은 떠오른 달과 함께 노닌다. 맑은 바람 불어오니 상쾌하여라. 기묘한 경치 더욱 좋구나. 상백운대 소요산 일주문에 오르는 왼편 등산로를 배운대라 부르며 이를 다시 그 위치에 따라 하백운대.중백운대. 상백운대로 나눈다. 산세의 웅장함과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단풍과 청량한 하늘 전체에 유유히 흐르는 흰구름이 어우러져 문자 그대로 작은 금강산이라고 부르는 이곳을 상백운대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왕자의 난으로 실갈한 이후 이곳 소요산 아래 행궁을 짓고 머물며 불교 수행에 힘썼는데 그는 자주 이곳 백운대에 올라 경치를 즐기며 동시에 자신의 회한을 달랬다고 한다. 그가 백운대에 올라 지은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해진다. 넝쿨을 휘어잡으며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흰 구름 가운데 암자 하나 놓였네 내 나라 산천이 눈 아래 펼쳐지고 땅 강남조차 보일듯하여 상백운데에서 의상대로 가는길목에서 바라본 조망이다. 칼바위. 칼바위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뾰족하게 생기기, 크고 작은 편마암들의 바위라는 의미로, 상백운대에서 시작하여 선녀탕 입구 하산로까지 약 500m 가량 연속으로 이어진 조금은 긴장되는 구간이다. 수려한 소요산의 절경을 한층 더 뽐내주는 칼바위는 그 기세나 산세가 웅장하고 노송과 함께 절경을 이루며 뒷편으로 소요산지맥과 국사봉. 왕방상. 해룡산. 칠봉산이 연결되어 마치 용의 등처럼 동두천의 동북쪽을 휘감고 있다. 소요산 나한대 나한대는 소요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571m)로 오른편에는 의상대와 공주봉이 위치해 있고. 왼편에는 선녀탕 하산로 칼바위와 상백운대가 위치해 있다. 나한이란 의미는 불교를 수행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를 이르는 명칭으로 신라시대 원효에 의해 청건되고, 고려초에 나옹등 여러 고승들이 수행하던 장소이고, 특히 조선 태조가 이절에 머물며 절의 면모를 일신한 이후 자재암이 크게 번성하자 절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 봉우리들을 불교와 관련된 명칭으로 부르는 중에 이곳을 나한대라 부르게 되었다. 소요산 (의상대) 동두천의 명산인 소요산의 주봉으로 해발은 587m이다. 마차산을 바라보았을 때 앞으로는 동두천시의 상.하봉암동이 바라보이며 그 건너편으로 파주의 감악산이 보인다. 뒷편으로는 소요산지맥과 국사봉. 왕방산. 해룡산. 칠봉산이 마치 용의 등처럼 휘감아져 보인다. 이름의 유래는 조선 태조가 소요산에 머물며 자재암을 크게 일으킨후 자재암을 둘러싼 소요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불교와 관련된 이름으로 불렸는데. 자재암을 창건한 원효의 수행 등반자인 의상을 기려 소요산의 최고봉을 의상대라 부르게 되었다. 공주봉 소요산 일주문에 들어서 우측능선으로 오르면 첫번째 만나는 봉우리로 해발은 526m 이다. 이 공주봉은 자재암을 둘러싸고 말발굽 모양으로 펼쳐지는 등산로의 우측 첫 봉우리가 되며 이 공주봉을 지나면 소요산의 최고봉인 의상대와 만나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소요산에 자재암을 창건하고 수행하던 원효스님을 찾아온 요석 공주가 산아래 머물면서 그 남편을 사모했다고 하는데. 이 공주봉의 이름은 요석 공주의 남편을 향한 애끓는 사모를 기려 붙여진 명칭이다. 공주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구 절터가 남아있어 이들의 고귀한 사랑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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