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6월 20일에 7월부터 사적 모임 인원을 늘리고 다중 이용시설 영업을 풀어주는 등 코로나 19거리 두기 조치를 하겠다
고 발표했습니다.코로나 위험이 줄었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코로나도 끝나가는구나 생각했습니다.마침 아들이 주말을 이용해서
동해안을 여행하자는 제의를 수락하게 된 이유입니다.
아들이 작년에 6인승차량으로 바꾸면서 가족여행을 계획했지만 코로나 펜데믹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전 10시에 리조트가 있는 평창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일행은 6명입니다.
우리 내외와 아들내외,손자,손녀가 모처럼 함께하는 여행이니 마다할 일이 아니지요.
비를 품은 흐린 날씨였지만 여행길은 즐겁고 좋아서 어린 아이처럼 가슴이 뛰었습니다.
중앙 고속도로를 달리다 영동고속도로가 막힌다고 해서 원주 영월 제천을 가는 31번 국도를 타고 12시 10분경에 평창군 봉평
면에 들어섰습니다.
우선 점심을 먹기로하고 유명한 맛집의 하나인 ‘풀내음’식당 에 들어갔습니다. 주차장앞에 작은 물래방아가 돌고 구 가옥을 약
간 손질하여 시골 풀내음이 풍길 것 같은 식당앞에는 많은 차량이 주차해있고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가득했습니다.
소정의 열 감식등 방역조치를 한 후에 번호를 타고 기다리며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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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서야 겨우 자리를 잡고 이 집의 주 메뉴인 ‘.메밀모듬’과 막국수를 시켰습니다. 식사 때가 지나서인지 더
욱 맛있게들 먹었습니다. 메밀전과 전병 그리고 감자떡은 이집의 일품요리였습니다.
식후에 봉평면 대기로에 있는 HW리조트로 향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모든 시설이 잘 지어져서 엣날 왔을 때보다
새롭게 단장 된 모습이 이국적이었습니다.
대관령의 깨끗한 자연과 활기차고 건강한 에너지가 공존한다는 케치플레이 처럼 최상의 시설로 보였습니다. 대체로 젊을 가족
들과 함께 여행온 사람들로 크고 넒은 주차장이 꽉차고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은 아이들의 환한 웃음이 행복으로 가득했습니
다
푸론트에서 첵크인을 하고 우리는 다음 나의 추억의 여행지안 강릉을 향해 출발 했습니다.
강릉은 1978년도에 내가 2년동안 근무했던 곳이라 감회가 남다른 곳입니다.
아들 내외가 내 추억을 소환해주려는 갸륵한 뜻일 것입니다. 예전의 대관령 열두고갯길을 추억합니다. 월요일 출근을 위해 대
전 집에서 저녁에 출발하면 세시간 반 이상을 가면서 책을 읽기도하고, 생각에 몰두하기도 하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가다가 대
관령고개에 내려가면서 찌익 찌익 찌이익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었음을 고백합니
다. 꼭 여우가 저승에서 나를 불르는 듯한 가위누름이 있었던 것을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굽이 굽이 고
갯길을 7곱개의 터널로 평지길로 만들어 놓은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대관령 고개 휴계소에서 어묵을 사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강릉도 천지개벽을 한 것 같았습니다. 이것도 동계올림픽을 위해 서울에서 KTX 고속철이 생겨 두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서울강릉간 고속버스도 4시간 반 소요되던 것을 3시간 반 정도로 단축하였으니 서울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올 수 밖에
없겠지요.
내가 근무했던 때 노암동 직장은 외진 곳에 있었는데 새롭게 건물도 지었고 그 앞에도 민가가 많아졌습니다. 건물 뒷편에 야산
이 있고 앞에는 아름다운 노송 10여 그루가 마치 분재처럼 자태를 뽐냈었는데 그것도 없어졌습니다.
직장에서 10여분 걸어서 내가 새벽기도를 다니던 교회는 찾지 못했습니다.
침례교 C 목사님과의 인연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부흥사로 나갈 때 나에게 아침제단을 맡기시기도 하시고,대전에서 부흥회
를 하실 때는 꼭 연락하시어 호명하시며 대표기도를 시키곤 하시던 목사님과의 인연,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추억이 돼버렸습
니다.
대전 집에 내려가지 못하는 휴일에는 유명한 두타산 무릉계곡에 매혹되어 오대산 월정사까지 등산했던 일. 설악산 근처 점봉
산 1400여 고지까지 올라갔다가 저녁이 되어 휴대전등불에 의지하여 어렵게 내려와 동료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추억들, 주문
진과 속초의 한적한 어촌에서 보내던 시절의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자주 다녔던 경포해수욕장의 달라진 모습은 쌍전벽해같다는 생각입니다. 경포호의 쌍둥이호텔의 위용은 그림같습니다. 비 내
리는 해변에서 추억의 사진 촬영, 수많은 인파들과 함께 추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경포호를 둘러보고 강릉 안목해변 커피거
리로 갔습니다. 인파가 대단했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노인입니다. 커피향은 좋아하지만 비싼 커피는 거부합니다. 일회용 믹
스커피에 길둘여진 시골 촌노인입니다. 이런 나 때문에 며느리는 카페에 들리지 못했습니다.
어촌에 왔으니 회를 먹자고 안목항 회센터에 갔는데 마침 휴무라 강능 중앙시장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지하 회 코너에서 회를
떠서 파는 집이 많았습니다. 여기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또한 중앙시장의 닭강정도 유명해서 십여 집이 늘어섰는데
집집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며느리가 두 맛집의 닭강정을 사서 비내리는 저녁 어둠이 깔리는 숙소로
돌아오니 주차하기가 불편할 정도로 관광객이 만원입니다.
차분히 앉아서 가져온 회와 닭강정을 펴놓고 담소하며 먹었습니다. 나는 역시 눈으로 냄새로만 먹었습니다.
손녀가 오빠에게 무용체조를 가르쳐서 손자가 따라하며 웃고 박수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신권사도 모처럼 크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빗소리를 듣는 숙소의 밤은 추억을 소환하는 꿈을 꾸며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틋날 아침을 간단하게 마치고 이효석문학관을 관람하러 나섰습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렴’의이야기가 그림과 사진 영상으로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일생을 길 위에서 살아가는 장돌
뱅이의 삶과 애환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애정을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 소설은 토속적인 어휘 구사와 서정적이고도
낭만적인 묘사로 한국 근대 단편 소설의 백미(白眉)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달밤의 산길을 배경으
로 설정하여, 부자(父子) 상봉의 이야기를 한 폭의 수채화 속에 구현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한 소설가의 영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은 향기의 나라 허브농원 (1993년개원) 을 찾았습니다. 봉평면 흥정계곡은 간밤에 온 비로 억수로 불어나 계곡물의 우렁
찬 물소리내며 흘렀습니다. 각종 허브꽃들냄새를 맡으며 걸어서 가족이 함께 걷는 추억만들기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점심은 유명한 숨두부집을 찾으려 했지만 단체손님 때문에 일반 손님을 받을 수 없다해서 식객 허영만이 다녀가며 소개했다던
현대 막국수에서 메밀전과 막국수를 먹었습니다.
돌아올 때는 여주 이천을 거쳐서 중앙고속도를 달려 막히는 찻길이지만 고속버스 차로로 잘 올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인파와
외형상의 풍요가 넘쳐났던 여로였습니다.
집에오니 정부가 7월부터 5인 모임 제한을 푼다고 발표한 것이 6월 27일이었는데 그때부터 확진자가 급증하더니 지난 9일 수
도권에선 저녁 6시 이후 3인도 만나면 안 된다는 극단적인 조치가 발표됐습니다. 방역 고삐를 풀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신호를
보낸 지 열흘 남짓 만에 정반대 방향으로 급회전을 한 셈입니다. 수도권은 비 대면 예배만 가능하답니다.또 교회의 예배입니다.
외국여행으로 몰려나가던 국민들이 지방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잘사는 국민들의 욕구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막기에는 너무나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개발도상국 가운데 선진국으로 격상된 유일한 국가라고 평가했습니다(유엔무역개발
회의·UNCTAD 7월 2일 결의).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을 이룬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된것입니다.이러한 때에 경제적인 풍요
와 코로나 바이러스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202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