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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3.오후2:17 金. 맑음
뉴욕, 뉴욕.
쉑쉑버거 Shake Shack Burger.
빗방울이 간헐적으로는 떨어지고 있었지만 이런 정도라면 구태여 우산을 쓰지 않더라도 돌아다닐만하다고 생각을 했다. 뉴욕의 하늘은 회색 구름들이 모였다 흩어지면서 방황하는 청춘처럼 이리저리 함부로 싸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타임스스퀘어와 그 주변을 함부로 싸돌아다녀보았다. 그래봐야 타임스스퀘어는 작은 공간이었다. 타임스스퀘어Times Square는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는 유명한 상업적 교차로로, 웨스트42 St와 웨스트47 St가 합쳐져서 만난 7th Ave와 브로드웨이가 교차하는 일대를 말한다. 19세기 말에는 말 거래업자, 마구간馬廐間, 마차馬車 등이 붐비던 곳인데, 1899년 오스카 헤머슈타인이 이곳에 최초로 극장을 세우면서 브로드웨이 공연문화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가 한 100여 년 전만하더라도 수많은 마구간과 말들이 날뛰던 곳이라는 이야기기인데 가만, 여기에서 마구간馬廐間의 구廐라는 한자가 참 재미있다. 웬만해서는 보기 힘든 글자인데 구廐란 1.마구간, 2.마소가 모이는 곳, 3.벼슬 이름, 4.말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벼슬, 5.모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구비廐肥라고 하면 외양간에서 쳐낸 쇠두엄을 말한다. 타임스스퀘어에서 사시사철四時四철, 천지사방天地四方, 불철주야不撤晝夜, 콧구멍을 자극하며 풀풀 피어오르던 구비냄새는 다 어디로 날아갔을까, 설마 뉴요커들이 서로 시새워하며 얼굴을 들이대고 몽땅 들여 마셔버리지는 않았겠지?
타임스스퀘어에서 다시 그랜드센트럴 역으로 되 집어 가다보니 치폴레가 보였다. 당신은 벌써 잊어먹었겠지만 맛난 부리또를 만들어주던 그 멕시칸 그릴 치폴레말이다. 이번에는 스테이크 부리또를 두 개 시켜서 카운터에 아내와 나란히 앉아서 먹었다. 그때 시간이 1:43 PM이었으니 점심시간으로는 조금 늦은 시각이었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시키고 있었는데, 탁자가 있는 곳은 벌써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서 카드결제를 마친 뒤 부리또를 담은 하얀 바구니를 들고 기다란 카운터 가운데쯤에 앉았다. 스테이크 부리또가 $8.96이면 우리나라 돈으로는 9,000원이 넘는 돈이지만 뉴욕에서는 보통 한 끼 식사비용의 절반정도에 해당하는 저렴한 금액이었다. 거기에다가 음료가 $1.84이고, Tax가 $1.75이었으니 총 $21.5이었다. 부리또는 양이 많은데다가 맛과 향도 우리 입맛에 맛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좋아할 듯한데 쌀밥 속에 실란트로가 약간 섞여 있어서 나처럼 실란트로 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환영이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 맛을 즐기는 데 아주 약간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실란토르는 우리에게는 고수라는 이름으로 익숙해져있는 향채香菜이다. 고수는 주로 절에서 많이 키웠기 때문에 고수의 맛을 알아야 스님 노릇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고수는 빈대 냄새가 난다고해서 빈대풀이라고도 칭했으며 정확하게 말한다면 실란트로Cilantro는 고수풀의 잎이고, 고수의 영어 이름은 Coriander이다.
Coriander는 빈대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코리스Koris와 좋은 향기가 나는 식물 이름인 아니스Anise를 합친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서양인들도 이 풀에서 빈대 냄새를 맡고 있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가 있다. 빈대 냄새야 동서양이 다를 리 없을 테니까. 그런데 빈대가 뭔지는 알고들 계시는지는 모르겠다. 이나 벼룩 등과 함께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흡혈성 기생충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질이 나쁘고 독한 놈이 빈대인데, 몸 빛깔은 대개 갈색이다. 그러나 피를 빨아먹은 후에는 몸통이 부풀어 오르고 몸 빛깔은 붉은 색이 된다. 그리고 노릿하고 진한 악취를 풍기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빈대 냄새이다. 옛날에 영암 참빗이 유명했던 까닭은 대나무를 깎아 만든 빗살이 어찌나 촘촘한지 영암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두피 마사지 효과가 있을뿐더러 머리칼 속에 숨어있는 머릿니뿐 만아니라 서캐까지 몽땅 제거할 수 있어서 일반인들의 호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참, 이런 단어는 벌써 다 잊으셨겠지만 이의 알을 서캐라고 한다. 고수는 세계의 거의 모든 민족들이 먹는다. 본래 지중해지역이 원산지인데, 유럽, 아시아, 중동, 미대륙 따질 것 없이 고수를 즐겨 먹는다. 특히 날씨가 더운 지방에서는 거의 모든 음식에 고수가 들어간다. 고수는 세균을 막는 성분이 들어있어서 음식을 쉬 상하지 않게 하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흔히 먹는다는 말이 있다.
둥글납작하게 구운 밀떡인 또띠야에 토핑을 하듯 이것저것을 올려놓고 김밥처럼 둘둘 말아 싸준 부리또를 은박지를 벗겨내고 한 입 먹었다. 있는 듯 마는 듯한 실란트로 향이 입 안에 번져왔다. 볶은 현미밥과 갈색 콩과 소고기를 꼭꼭 씹어 먹었다. 그 사이사이에 샐러드나 브로콜리가 아삭거리며 씹혀졌다. 그렇게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옆으로 지나다녔다. 나도 식사를 하다 음료를 보충하려고 한 번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스토랑이나 그릴에서와는 달리 사람들이 복닥거리는 여기에서는 누군가 혼자 식사를 하고 있어도 외롭거나 쓸쓸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학생이나 여행자, 또는 길을 지나가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갑자기 식사를 하러 들어온 사람이겠지.하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우리 옆에서 혼자 보울에 담긴 부리또로 식사를 하는 남자도 아주 천천히 음식을 들었다. 오늘따라 입맛이 없는 것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원래 식습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올 무렵 그 남자도 절반가량이나 남은 음식을 갈색 봉지에 싸서 들고 치폴레를 나서는 것 같았다. 밖에는 잠시 멈추는 듯했던 비가 또 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랜드센트럴 역까지는 3,4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이라 역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좀 이른 듯했으나 아파트 주위에서 시간을 보낼 양으로 지하철을 타고 96 St역으로 돌아왔다. 식품점인 Key Food에 들러 철수세미와 빵을 산 뒤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아파트에 들렀다가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1st Ave 옆으로 흐르는 East River를 구경하러 나갔다. 한 시간가량 강가로 나있는 산책로를 따라가며 산책을 즐겼는데, 조깅을 하고 있는 미국인들이 제법 많았다. 저만큼 걸어갔던 길을 돌아올 무렵에는 꿈틀거리는 잉어 비늘 같은 강 물결 위로 붉은 노을이 작은 불꽃처럼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고 노을이 짙어지는 만큼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졌다. 이제 우리 주위를 달려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뜸해지자 우리도 아파트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아파트로 들어오는 길에 또 미국 복권을 몇 장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미국 복권 말이지요, 자꾸만 사는 이유가 뭐시냐, 그게 잭팟을 터트릴 것 같아서 사는 거요, 아니면 그냥 호기심에 사는 거요? 머시여, 아니 당신님께서는 성경도 읽어보지 않았나요?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하는 말씀 혹시 모르시오? 다른 미국사람들은 왜 달러를 내고 복권을 사는 줄 모르겠지만 나야 꿈이 있어서 달러를 내가며 복권을 산다니까요, 꿈이 있어서요. 어젯밤에도 꿈을 꾸었거든요. 福짓는 꿈을요. 암만!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고 옛 어른들께서 말씀하셨는데, 가만 생각하면 그 말씀이 맞는 말씀이더구만요. 농사를 지어서 가을걷이를 하는 것처럼 복福이란 땀과 정성으로 스스로 일궈 지어놓은 복밭福田에 열리는 곡식이라고 했거든요. 그러니 복福은 받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란 말이지요. 나요? 꿈이 있어서 달러를 내가며 복권을 산단 말이지요, 꿈이 있으니까요.
주말인 금요일이라 조금 바빴다면서 저녁7시가 넘어서 딸아이가 돌아왔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까하는 등 이야기를 하다가 딸아이가 말을 했다. “아빠 지난 여름에는 어쩐지 모르고 지나갔는데 올해는 에어컨을 한 대 놓아야겠어요. 여기서는 이사를 갈 때 에어컨을 가져가기 때문에 에어컨이 없거든요.” ‘엉! 지난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 여름 한철을 지냈다고?’ 그러고 보니 지난 여름에 집을 구하고 난 뒤 에어컨을 설치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오늘 저녁식사 하러 가는 길에 에어컨도 알아보고 오자꾸나.” 오늘 저녁식사로는 뉴욕에 오면 누구나 한 번쯤 맛을 보고 간다는 쉑쉑버거를 먹기로 했다. 그럼, 뉴욕에 왔으니 다른 건 몰라도 피자와 햄버거만큼은 신물이 나도록 먹어봐야지, 암만!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더니 비가 또 내리고 있었다. 맨해튼의 어퍼이스트사이드Upper East Side 쉑쉑버거 매장은 86 St역 부근의 3rd Ave와 렉싱턴 Ave 사이의 버거킹Burger King매장 옆에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남태평양 최대 격전지로 유명했던 이오지마硫黃島에서 전투 중인 미 해병에게 종군기자가 물어보았다. “고향에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죠?” 그러자 그 해병이 말했다. “고향집 식탁에 앉아 엄마가 만들어준 애플파이에 우유를 한 잔 마시고 싶군요.” 그로부터 60여년이 흐른 뒤 이라크 전에 참전 중인 미 해병에게 종군기자가 우연히도 똑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 해병이 말했다. “인앤아웃 버거In- N-Out Burger에 콜라를 한 잔 마시고 싶네요.” 이오지마의 해병이 엄마의 손맛과 고향 냄새가 풀풀 풍기는 우유를 생각했다면 이라크 전의 해병은 친구들과 어울려서 자주 먹어보았던 광장시장의 마약김밥을 떠올렸던 것이다. 6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가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맛을 떠올리는 데도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 셈이다. 그러고 보니 이라크 참전 해병은 아마 서부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인앤아웃 버거는 LA가 속한 캘리포니아 주州를 비롯한 서부 몇몇 주州 외에는 매장이 없으니까. 그런데 서부의 인앤아웃 버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룬다는 햄버거가 동부에만 있는 바로 쉑쉑버거이다. 1층 매장 전면 이마에 붙여놓은 상호를 보니까 쉑쉑버거란 'Shake Shack Burger'였다. 세이크 쉑 버거를 발음하기 재미있게 쉑쉑버거로 부르고들 있었다. 여기에서 Shack이나 Pizza Hut에서 Hut은 오두막을 뜻하는데, 미국사람들의 정서 속에도 산기슭이나 들판 한쪽에 서있는 오두막집은 편안함과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층으로 들어가면 비스듬한 철계단을 따라 지하1층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매장은 그곳에 있었다. 그때가 금요일 저녁7:20경이어서 그랬던지 저 아래 주문대로부터 1층 철계단까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매장 옆으로는 매장만한 넓이의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더 있었는데, 지붕을 함석 같은 패널로 대충 가려놓고 있어서 식사 중에 보니까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여기저기로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고객들이 수시로 들고나는 매장 안쪽으로 탁자가 하나 비어서 그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옆으로 나있는 커다란 창밖으로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 보였는데, 널찍한 장소에 식탁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모양새가 창고처럼 보였지만 왠지 그 분위기가 미국의 실용주의Pragmatism를 보는 듯해서 격식보다는 생활의 실용성이나 유용성을 중시하는 검소한 미국식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가 카운터에서 주문한 음식을 가져오는 동안의 한 이십여 분가량을 made in 미제의 소리와 냄새와 풍경들을 물끄러미 듣고, 맡고, 쳐다보았다. 같은 종류의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라 할지라도 외양外樣은 비슷하지만 유럽이나 동양의 그것과는 무언가 다른 그런 분위기가 매장 안을 흘러 다니고 있었다. 주위에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인 듯한 학생들이 서너 명씩 들어와 햄버거를 시켜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했다. 식사 도중에 비가 또 한 차례 쏟아져서 창밖의 창고 같은 공간에는 허술한 지붕 때문인지 빗방울이 이곳저곳에 떨어져 내렸지만 막상 미국인들은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연현상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호의적이라고 할까 관용적이라고 혹은 둔감하다고 해야 할까, 거리에서 비가 쏟아지고 있을 때에도 웬만하면 비를 맞고 걸어 다니는 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딸아이가 쟁반에 음식을 가득 담아 식탁으로 돌아왔다. ShackBurger (2 @$4.75) $9.50, Dbl ShackBurger $7.35, fresh cheese fries $3.85, fresh french fries $2.85, Vanilla Shake(2 @$5.00) $10.00, Black & White Shake $5.00, $2 NoKidHungry Donation $2.00, Shake Sale Coupon $-5.00, Subtotal $35.55, Tax $2.98, To Stay Total $38.53 등이 계산서에 찍힌 내용이었다. 이런 사소한 항목들을, 내가 괜히 심심해서 계산서 내용을 하나하나 여기에 옮겨놓은 것이 아니다. 상처 나고 주름진 사람 얼굴처럼 조그맣게 찍혀있는 계산서 항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계산서 주인의 생각이나 생활스타일을 어느 정도는 짐작가게 하는 무엇인가가 들어있었다. 쉑쉑버거 2개, 더블 쉑쉑버거 1개, 치즈 프라이 1개, 프렌치프라이 1개, 바닐라 세이크 2개, 흑백 세이크 1개, 노키드헝그리 재단에 기부 2달러, 세일쿠폰 -$5달러짜리 한 장 사용 등이 명료하게 쓰여 있었다. 쉑쉑버거 2개는 엄마와 딸아이를 위해서, 더블 쉑쉑버거 1개는 먹성 좋은 아빠를 위해서. 엄마 아빠에게 익숙한 프렌치프라이 1개와 이곳만의 메뉴인 치즈 프라이 1개, 엄마 아빠가 주문한 바닐라 세이크 2개와 딸아이가 즐겨먹는 흑백 세이크 1개, 그리고 노키드헝그리재단에 2달러 기부는 딸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겠고, 5달러짜리 할인 쿠폰 사용은 예전에도 딸아이가 쉑쉑버거 매장에 왔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작고 하찮은 것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때로는 더 큰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큰 것들을 조근조근 살펴 가다보면 작고 구체적인 것들이 그 안에 빼꼭히 들어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상對象을 향해 현미경을 들이대든 망원경을 치켜 올리든 다양한 관점의 사고와 판단은 문화를 이해하고 폭넓은 생각과 무한한 자유를 향유享有할 수 있는 바탕이자 아름다운 삶의 기법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뉴욕에 가면 꼭 먹어봐야하는 소문난 추천 맛이고, 수많은 마니아들을 달고 다닌다는 쉑쉑버거를 한 입 먹어보았다. 아무리 유명하다해도 햄버거는 햄버거이고 아무리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웰빙 푸드래도 햄버거는 햄버거이니까 역시 두 손으로 들고 먹었다. 햄버거 빵 사이에는 두툼한 패티와 노란 치즈, 슬라이스 토마토, 그리고 상추가 들어있었다. 냉동이 아닌 냉장인 패티는 부드러웠고, 치즈는 맥도날드 치즈버거보다 잘 녹아 있었다. 햄버거빵의 고소함과 패티의 육즙 맛이 녹아있는 치즈와 잘 어울렸다. 팍팍하지도 않고 느끼하지도 않았다. 사이사이 먹는 밀크 세이크와도 궁합이 잘 맞아 목넘김도 부드러웠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감동의 맛이라든가 중독성이 있는 마약 같은 경험은 아니었다. 이런 정도의 햄버거라면 햄버거 천국인 뉴욕 레스토랑에서 드물지 않게 먹을 수 있는 햄버거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일요일에 점심으로 한 번 더 쉑쉑버거를 먹어보았지만 첫날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좋거나 괜찮은 음식이었다. 집 부근에 매장이 있다면 이따금 가서 먹어는 보겠지만 열대과일인 두리안을 먹었을 때 느꼈던 것처럼 흡인력이 있는 음식은 글쎄, 아직은 아니었다. 바닐라 세이크도 내가 먹어보았던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치즈 프라이나 프렌치 프라이도 보통이었다. 아무튼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까지 쳐다보면서 쉑쉑버거를 맛나게 먹었다. 딸아이는 나에게 음식을 너무 빨리 먹는다고 지적을 해주었다. 그것은 문화의 차이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내 식습관을 말해주려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사실 햄버거나 짜장면은 빨리 먹는 재미에 먹는 음식이기도 하거든요. 딸아~ 미안하다!
식사를 마치고 쉑쉑버거 매장을 나서는데 매장 입구에 책상을 놓고 그 위에 쿠키 박스를 쌓아두고서 뭔가 행사를 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뒷벽에는 자그마한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아마 어느 초등학교의 스카우트 행사를 위해 경비를 조달하기 위한 쿠키 바자회가 열리고 있는 듯했다. 책상위에 가지런히 쌓아둔 쿠키상자를 만지작거리던 남자아이를 매몰차게 혼내고 있던 여자아이가 딸아이가 그쪽으로 다가가자 미소를 쌩긋 띠면서 눈을 맞추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쯤 돼 보이는 금발에 파란 눈의 여자아이가 야무지고 영악해 보인다고 느껴졌다. 그게 무어냐고 묻자 딸아이는 해마다 5월에만 먹을 수 있는 스카우트 쿠키라면서 5달러를 내고 쿠키 두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그 여자아이가 딸아이에게 “땡큐, 맴.”하면서 고개를 까딱했다. 이다음에 자란 후에도 앞뒤가 분명하고 이해에 밝은 숙녀가 될 것 같은 야무진 여자아이였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가전제품 대리점에 들려 에어컨을 알아보고 나서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파트에 돌아와서는 TV를 켜고 스포츠채널에 맞추어 놓은 뒤에 뉴욕 메츠 야구경기를 시청하면서 딸아이가 사온 쿠키 한 통을 다먹어버렸다. 연거푸 내린 비 때문인지 방안의 공기가 시원했다. 구태여 창문을 열어놓지 않더라도 선선하고 쾌적했다. 내일은 토요일이니 딸아이와 함께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쇼핑도 하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구경을 가자고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아내에게 살짝 물어보았다. “여보, 저녁식사로 먹었던 쉑쉑버거 어땠어요?” 그러자 아내가 얼굴에 크림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바르면서 말했다. “나는 엊그제 수요일 센트럴파크랑 시내를 한바탕 걷고 나서 몹시 시장할 때 느지막한 점심으로 먹었던 맥도날드 치즈버거가 더 맛있었던 것 같아요.” “호오, 그래요? 참 개성이 있는 입맛이구려. 그건 그렇지, 뭐니뭐니 해도 시장할 때 먹은 음식 맛이 최고긴 하지요.” 사람은 꿈을 가지려면 꿈을 꾸어야한다. 그래서 무슨 꿈인가를 열심히 꾸면서 다음날 아침까지 잠을 잘 잤다.
(- 쉑쉑버거 Shake Shack Burg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