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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2주기_생명을 죽이는 자들의 말로
사무엘상 22:16-19
16. 그러나 왕은 "아히멜렉, 너와 네 일가는 몰살이다." 하고 선언하였다.
17. 왕은 둘러선 호위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썩 나서서 이 야훼의 사제들을 죽여라. 다윗과 손을 잡고 그가 도망해 다니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귀띔해 주지 않은 놈들이다." 왕의 부하들이 야훼의 사제들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자
18. 왕은 도엑에게 "네가 나서서 이 사제들을 쳐 죽여라." 하고 명하였다. 에돔 사람 도엑은 선뜻 나서서 그 사제들을 쳐 죽였다. 그 날 에봇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그의 손에 죽은 사람은 팔십오 명이나 되었다.
19. 그는 그 사제들이 살던 놉의 성민들도 칼로 쳐죽였다. 남자, 여자, 아이들, 젖먹이, 소, 나귀, 양까지 모두 칼로 쳐죽였다.
지난 10월 29일(화)은 이태원 참사 2주기였습니다. 2년 전 코로나19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3년 만에 재개된 핼러윈 축제에서 벌어진 황당한 사고였습니다. 당시 이태원에는 핼러윈 인파가 10만 명 이상 몰려들었고, 해밀톤 호텔 앞 좁은 골목길 경사로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159명의 꽃다운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병원에 실려간 부상자도 344명이 발생했죠. 사망자 중에는 이란(5명) 러시아 중국(각 4명) 등 해외 14개국 국민들도 포함되었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선진국 대열 들어선 나라의 수도인 서울에서 발생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밀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히, 미리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죠.
이 참사의 원인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인파가 몰릴 것이 이미 예고된 상황이었음에도 정부와 용산 구청, 서울 경찰청이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용산경찰서는 10월 26일에 지구대와 파출소의 순찰 인력을 증원하는 계획과 경찰 기동대 200여 명을 지원받아 배치할 계획을 세웠답니다. 이를 위해 이태원관광특구상인연합회와 이태원역장 등과 함께 간담회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책은 서울경찰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사고 당일 경찰 기동대는 시위현장과 용산 대통령실에 배치되었고, 참사 현장에는 배당되지 않았습니다. 이날 용산 대통령실과 서초동 사저와 한남동 사저에는 기동대와 경찰들 수천명이 배치되었습니다. 현장에 일부 경찰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외친 ‘마약과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마약 단속반이 있었을 뿐입니다.
참사 전 4시간 전부터 119로 다급한 전화가 수십 통 걸려 왔지만, 서울경찰창청과 서울시 그리고 용산구청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시민들이 나서 쓰러진 사람들에게 인공호흡 등 구하려고 애를썼죠. 하지만 무고한 시민 159명이 죽는 동안 나라는 없었으며 정부도 없었습니다.
사고 발생 후에도 정부는 책임회피에 급급하였고 그 누구도 참사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합동 분향소 이름을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 대신 ‘사망자 분향소’라고 명명했고, 희생자의 영정도, 사망자 이름이 쓰인 신주도 못 놓게 했습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검은 리본에 ‘근조’라는 글씨도 못 넣게 했으며, 유족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도 방해했죠.
참사 당일 네덜란드에 출장 중이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유족들이 서울시청 앞에 마련한 분향소가 불법이라며 수천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잔인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 정부 누구 하나도 진정한 사과와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었고, 처벌받은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대통령도 진정한 사과 한번 안 했고, 행안부 장관 서울 경찰청장, 서울시장, 용산 구청장 등도 모두 빠져나갔죠.
지난 10월 26일(토) 오후 6시 34분, 2년 전 참사 시간에 맞춰 서울광장에서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시민추모대회가 “열렸습니다. 진실을 향한 걸음,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란 이름으로 말이죠.
이날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주영 님의 아버지)은 “지난 2년의 삶은 지금껏 겪은 그 어떤 고통보다 훨씬 더 크고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었습니다. 10월이 되면 언제라도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착각 속에 그리움만 더 깊게 가슴을 파고듭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재난 참사로 고통받는 이들이 없도록 한 걸음 나아가는 주춧돌이 되고자 한다”며 각계에 당부의 말을 남겼죠.
정치권에는 국가적 재난 참사가 정쟁의 도구로 소모되어서는 결코 안 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을 진지하게 이행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종교계에는 지금껏 걸어온 길보다 진상규명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더 멀고 험하다고 하는데, 그럴 때 재난 참사 피해자들 곁에서 의지할 등불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에는 이제 막 걸음을 뗀 진상조사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감시자이자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10·29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위원회는 국민들의 열화가 같은 요구에 밀려 만든 사회적 합의 기구입니다.
2년 전 10월 29일 밤의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왜 희생자와 피해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들이 행해졌는지,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이러한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우리들이 제기할 수 있는 모든 의문과 요청에 답을 할 수 있는 활동이 되도록 관심과 참여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의 질투와 분노로 인한 다윗의 고난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고난은 다윗에게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고 도와주던 사람들에게까지 미쳤죠. 가드에서 도망친 다윗이 아둘람 굴에 피신하자 갈 곳 없는 사백 명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왔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데리고 다시 모압으로 피신하였다가 선지자의 말을 쫓아 유다 땅으로 돌아왔죠.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은 자신에게 숙적 다윗의 행적을 고하지 않았다고 신하들을 질책합니다(삼상 22:1-10절).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쫓던 중 놉에서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을 보살펴 주었다는 도엑의 밀고를 받고 벌어진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엑은 사울의 목자장으로 제사를 드리기 위해 놉의 대제사장 아히멜렉의 집에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블레셋에서 돌아온 다윗이 아히멜렉 대사장을 찾아왔고 아히멜렉은 야훼의 뜻대로 다윗에게 먹을 것을 주고 골리앗의 칼을 내어주었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던 사울 왕은 전국에 다윗의 행적을 고발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출세만 추구하던 도엑은 이를 기회로 삼아 사울에게 밀고를 한 것이죠.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빵과 칼을 주었다는 말을 도엑에게 들은 사울은 곧바로 아히멜렉과 놉의 사제들을 모두 소환합니다. 사울이 아히멜렉에게 어찌하여 다윗과 공모하여 자기를 대적하려 했느냐고 추궁합니다. 하지만 아히멜렉은 다윗처럼 충성된 자가 또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며, 자기는 이 일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울의 재판은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밀고자 도엑의 말에만 의존하여 재판을 합니다. 사울은 대제사장뿐만 아니라 그 모든 일가 사제와 가축들까지 모조리 죽이도록 판결했죠. 이렇게 사울은 이스라엘의 공의를 세워야 할 왕이었지만, 오히려 앞장서서 이스라엘의 법질서를 어지럽히고 무너뜨리는 불의를 자행하였습니다.
사울의 명령에 호위병들은 주저했습니다. 하느님의 제사장에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이죠. 사울은 도엑에게 사제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고, 출세에 눈이 먼 도엑이 85명이나 되는 사제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제들이 살던 성읍 놉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진멸(헤렘)합니다. 즉 남자, 여자, 아이들, 젖먹이, 소, 나귀, 양까지 모두 칼로 쳐죽인 것이죠(17-19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에 따라 왕으로 세워진 사울은 처음의 성품을 잃어버리고 권력에 취해 하느님께 불순종합니다. 그런 사울을 하느님은 가만둘 수 없어 버리기로 결심합니다. 마지막 사사 사무엘은 사울 대신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삼죠.
하느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은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에 떨니다. 그런 그에게 다윗이 수금 타는 자로 들어가 위안을 주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다윗은 거인 골리앗 장군에 대적하여 돌팔매로 그를 쓰러뜨려 백성들의 지지와 인기를 한 몸에 받습니다. 다윗의 인기가 높아갈수록 사울은 질투와 분노에 휩싸이게 되죠. 그는 끝내 자신을 위해 전공을 세우고, 사위까지 된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칼날을 피해 이스라엘 지경을 떠나 떠돌이 신세가 됩니다. 다윗은 광야와 각종 은신처에서 생활하며, 여러 차례 사울을 죽일수 있었지만, 하느님이 기름 부은 자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신심을 지켰습니다.
결국,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전사하게 되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통합 왕국의 지도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드러난 사울과 도엑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지 사무엘은 하느님의 명에 따라 사울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택한 이유 3가지가 사무엘상 9장에 나와 있습니다.
첫째, 사울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울로 하여금 지파의 도움을 의지하지 않고 겸손히 하느님만 의지할 수 있도록 하려는 깊은 뜻이 있는 선택입니다. 하지만 이후 사울은 이 뜻을 저버리고 주변에 유능한 사람을 모아 블레셋과의 싸움에 승리하려 들죠(삼상 14:52). 하느님 대시 인간을 의지하려다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둘째, 사울이 유력한 집안의 아들이며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 중 하나가 외모입니다. 여기서 외모란 보이는 겉모습만이 아니라 돈, 학벌, 집안 등이 포함된 개념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사람들은 혹하게 되고 빠지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이 외모가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사울이 효자라는 것입니다. 아주 긍정적인 모습입니다. 사울은 부모님 말씀에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 부모님의 염려를 없애 드리려고 했습니다(삼상 9:5). 하지만 여기까지가 끝입니다. 부모에 대한 사랑이 백성에게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권력이 강해지면서 사울은 점점 교만해지고 악한 왕이 되어 버리죠.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은 자기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하느님의 제사장조차도 두려움 없이 잔혹하게 살해하는 악인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사울은 정적으로 생각하는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백성들을 협박하고 때로는 회유하죠. 신하들을 이끌고 기브아에 간 사울은 베냐민 지파 앞에서 손에 창을 들고 연설합니다. "이 베냐민 녀석들아, 내 말을 들어봐라. 네놈들이 이새의 아들한테 밭이나 포도원이라도 받을 성싶으냐, 아니면 그가 너희들을 천인대장이나 백인대장이라도 시켜줄 듯싶으냐? 모두들 한통속이 되어 나를 뒤엎기라도 할 작정이냐? 너희 중엔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놈과 결탁한 것을 알고도 나를 위해서 귀띔해 주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내 아들놈이 내 신하를 충동하여 지금 반기를 들고 잠복하고 있는데도 귀띔해 주는 놈이 하나도 없다(삼상 22:7-8)"고 말이죠
권력을 잡아 그 권력으로 협박하고 회유하고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권력자 밑에는 반드시 그에 빌붙어 아부하고 충성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출세와 부귀영화를 위해 물, 불 가리지 않고 온갖 악행을 수행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밀고자이며 무도한 살인자인 간신배 도엑과 같은 자들이죠.
하지만 무도한 세상이라고 도엑과 같은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히멜렉과 같은 하느님의 제사장도 있습니다. 비록 아히멜렉의 일족들과 성읍의 모든 생명이 사울과 도엑의 칼날에 이슬이 되었지만 그는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사울왕과 대립관계에 있고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사울에게 끌려가 심문받을 때 비로소 그 일을 알았지만 그는 끝까지 다윗을 변호하죠. ‘ 다윗은 왕의 신하 중 가장 충실한 신하이다. 다윗은 왕의 사위이고 경호대장이며 왕실에서 존귀한 자다(삼상 22:14)’라고 말입니다.
지난달 28일 ‘여론조사 꽃’에 이어 ‘한국갤럽’(29-31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이 19%로 떨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긍정 평가 19%, 부정 평가 72%는 갤럽 에서 조사한 이후 최저치였습니다.
더 충격적인 여론조사도 있습니다. 문화일보가 창간 33주년을 맞아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27∼28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17%에 불과했습니다. 부정 평가는 무려 78%에 달했죠. 이번 조사는 31일 윤 대통령과 명태균 씨 통화 내용이 공개되기 전에 한 것이어서 하락 세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경제와 외교 그리고 김건희 의혹까지 제대로 돌아가는 것 없는 지금 윤정권은 한반도의 긴장 고조와 전쟁으로 그 타개책을 삼은 것 같습니다. 무인기 평양 상공 침투가 국지전 도발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국정원을 동원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드높이고 있습니다. 확인되지도 않은 북한군 파병을 보수 신문을 동원해 기정사실화하고 살상무기 지원과 국정원 심문 요원을 파견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당 국회의원과 청와대 안보실장이 우크라이나를 통해 북한군을 폭격하자는 문자를 버젓이 주고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미국과 나토도 외면하는 전쟁에 불나비처럼 뛰어들어 얻을 것은 우리 군대의 희생, 국제외교와 경제의 파탄뿐입니다.
더군다나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에 남북한 모두 대리전의 당사자가 되어 더 큰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비싼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좁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이는 곧 3차 대전, 핵전쟁으로 커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 한반도는 흔적없이 날라 갈 수도 있습니다.
한순간 잘못 뽑은 사울과 같은 대통령 때문에 진실이 외면당하고, 자기 출세를 위해 불의한 정권에 충성하는 도액과 같은 자들에 의해 나라가 결단 나지 않게 우리도 나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최근 비상시국회의가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를 2년 단축하는 개헌에 나서자고 긴급제안을 했습니다. 무능과 폭정으로 점철된 현 정권을 조기 종식 시키기 위해서는 임기 단축 개헌이 가장 실효적인 방안이라는 것입니다.
탄핵은 여권의 필사적인 방해와 지루한 법리 논쟁, 헌법재판소의 보수화 등으로 난항이 예상되지만, 임기 단축 개헌은 다양한 정치세력 연대로 신속히 추진할 수 있으며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국회의결과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되기 때문에 국민주권을 확고히 세울 수 있다는 점도 강조되었습니다. 이들은 임기 단축과 더불어 5.18정신 수록,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를 담고, 그 밖에 ‘87년 헌법 체제의 극복’은 차기 정권에서 추진하도록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제안이라면 국민의힘 이탈표가 자연스레 합류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권력에 대한 일개인의 욕심과 일탈이 백성들을 괴롭히고 결국은 자신들에게 비참한 최후로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준엄한 섭리며, 우리 인류사를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섭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이 정권과 그에 기생하는 악의 무리들은 하루 속히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길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은 아히멜렉의 일가 사제들과 놉의 죄 없는 백성들을 진멸하였지만 자신의 욕심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블레셋과의 길보아 싸움에서 전사하고 말죠. 그 전쟁에서 세 아들도 함께 죽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사울과 세 아들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박혀 수치를 당했습니다(삼상 31장).
이런 비참한 일이 이 땅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국민들이 위대성이 다시 한번 솟구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