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에서 생굴 한 접시와 싱글몰트를 더블로 주문해서, 껍데기 속에 든 생굴에 싱글몰트를 쪼르륵 끼얹어서는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정말이지 환상적인 맛이다. 갯내가 물씬 풍기는 굴맛과 아일레이 위스키의 그 개성 있는 바다 안개처럼 아련하고 독특한 맛이 입안에서 녹아날 듯 어우러진다.’- 무라카미 하루키 ‘위스키 성지 여행’ 중
‘1Q84’ ‘상실의 시대’ 등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단한 위스키 매니아다. 하루키가 비틀스와 재즈, 달리기에 심취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위스키 매니아였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며 ‘위스키 성지여행’이라는 책을 낼 정도로 위스키를 사랑했다. 그중에서도 하루키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좋아했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싱글몰트 위스키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는 전년 동기에 비해 8% 정도 상승세를 기록했다. 2009년 상반기에는 2만2602상자(한 상자는 700mL 12병으로 8.4L)가 팔렸는데, 2010년 상반기에는 2만4371상자가 판매돼 전년보다 1769상자가 증가했다. 이와 같은 상승세는 지난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2009년 전체로는 4만7208상자가 판매돼 2008년 4만332상자에 비해 약 17% 성장했다.
여행사에 근무하는 김진오(44)씨는 “업무상 해외에 자주 다녀 싱글몰트 위스키의 위상과 진가를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 “한국 시장에서도 인기를 얻을 날이 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싱글몰트 위스키에 비해 블렌디드 위스키인 스카치 위스키의 성장은 미미한 편이다. 올 상반기 스카치 위스키는 총 125만2000상자가 팔려 전년 동기(123만5000상자) 대비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9년에는 255만8803상자가 판매돼 2008년 283만5119상자에 비해 약 10% 감소하기까지 했다.
위스키는 맥아 및 기타 곡류를 발효시킨 1차주를 다시 증류하여 만든다. 증류 후에는 오크통에 넣어 일정 기간 숙성시킨다. 곡물은 대표적인 보리 외에 호밀, 밀, 옥수수를 사용한다. 원료 기준으로는 ‘몰트 위스키’ ‘그레인 위스키’ ‘블렌디드 위스키’ 등으로 분류된다.
몰트 위스키는 보리에 싹을 낸 맥아를 이탄(석탄의 일종)으로 건조해 그 당액을 발효시키고 증류한 후 오크통 속에서 숙성시킨 위스키다. 그중에서도 싱글몰트 위스키는 단 한 곳의 증류소에서 생산되는 몰트만을 가지고 생산하는 위스키를 가리킨다. 그레인 위스키는 호밀, 귀리, 밀, 옥수수 등의 곡물에 맥아를 15~20% 정도 혼합하고 당화 발효하여 증류한 위스키다. 몰트 위스키와 블렌딩하여 블렌디드 위스키를 생산할 목적으로 만든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혼합한 것이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100% 몰트를 사용하기에 생산량이 제한적이고 오랜 기간에 걸친 숙성을 필요로 한다. 이에 반해 블렌디드 위스키는 25~30%의 몰트 위스키와 대량 생산이 가능한 70~75%의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서 생산하므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 위스키의 대중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
전세계적으로 위스키는 5대 생산지역으로 구분된다.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는 ‘스카치 위스키’, 아일랜드에서 생산되는 ‘아이리시 위스키’, 캐나다에서 호밀을 원료로 생산되는 ‘아메리칸 위스키’, 일본의 ‘재패니스 위스키’로 나뉜다. 위스키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스카치 위스키는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를 말한다.
2009년 국내 싱글몰트 위스키 시장의 1위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의 ‘글렌피딕’으로 53%를 차지했고, 2위는 맥시엄코리아의 ‘맥캘란’으로 38%를 차지했다. ‘글렌피딕’은 골짜기를 뜻하는 ‘글렌’과 사슴을 뜻하는 ‘피딕’의 합성어이다. 1887년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에 위치한 글렌피딕 증류소에서 탄생했다. 이곳의 청정수인 ‘로비듀’와 최고급 맥아가 결합돼 풍부하고 개성 있는 맛과 향을 낸다. 글렌피딕은 현재 전세계 200여개국에서 사랑 받는 싱글몰트 위스키로 자리잡았다.
▲ 싱글몰트 위스키 소비층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최근 3년 새 판매량 상승세… 소비층 연령대도 낮아져
글렌피딕 스코틀랜드 본사인 윌리엄그랜트앤선즈는 한국의 싱글몰트 위스키 수요가 꾸준히 증가함에 따라 500mL 위스키에 익숙한 한국인들만을 위해 15년산과 18년산 500mL 사이즈를 최근 출시했다.
국내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맥캘란’은 1824년 설립됐고, 1841년 첫 제품을 출시했다.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오크통이야말로 위스키의 맛, 향, 색상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데, 맥캘란에서는 100% 셰리 오크통을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 북부의 참나무 숲에서 가장 좋은 나무만을 엄선한 후 셰리 와인(발효가 끝난 일반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하여 알코올 도수를 높인 스페인 와인)의 본고장인 헤레스로 보내 숙련된 장인들의 손으로 위스키를 담을 오크통을 만드는 것이다. 완성된 오크통이 최소 3년 동안 셰리 와인을 머금어야 비로소 맥캘란 위스키가 담길 준비가 된다. 오크통에 잘 스며든 셰리 와인은 숙성 과정에서 보다 깊은 맛과 향을 더해 맥캘란 위스키만의 독특함과 풍부함을 선사하게 되는 것이다. 또 100% 정통 수제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도 국내에서 맛볼 수 있다. 이는 몰트 위스키 개발과 생산에 평생을 바쳐온 수석 몰트 마스터 ‘데이비드 스튜어트’의 열정이 만들어낸 수퍼 프리미엄 등급의 싱글몰트 위스키이다. 보리 재배에서 병입까지의 제작 전 과정이 100여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 수작업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라프로익’은 영국 왕실인증서를 받은 술이다. 1994년 찰스 영국 왕세자가 스코틀랜드에 있는 라프로익 증류소를 방문했는데, 특유의 맛과 향에 심취해 그날 바로 공식 왕실인증서를 수여했다고 한다. 라프로익은 1815년 알렉스와 도날드 존스턴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밖에도 스코틀랜드의 최북단인 오크니섬에 위치한 하이랜드 파크 증류소에서 1798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하이랜드 파크’, 스코틀랜드 북부 글렌리벳 지역에서 1824년부터 생산된 ‘더 글렌리벳’, 1843년부터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기 시작했고 켈트어로 ‘고요한 골짜기’라는 뜻을 지닌 ‘글렌모렌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의 입맛에 맞췄다는 ‘싱글톤’ 등을 국내에서 맛볼 수 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국내 싱글몰트 위스키 시장의 큰 변화 중 하나는 소비층의 연령대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홍승훈(34)씨는 “마실수록 강한 향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면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지 않고 원액을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또 자영업자 김도완(30)씨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부드러운 목넘김 때문에 글렌피딕을 즐겨 마시게 되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