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19세기 "소치 허련"이 그린 "추경산수도(秋景山水圖)". 발문의 내용은 "붉고 푸른 산수간에 초가삼간 지으니, 올해엔 반년 동안 한가로이 살리라. 문전에 떨어지는 단풍잎에 서리 아침 기다리며, 서남의 일각을 유유히 바라본다". 허련의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소치(小痴) · 노치(老痴) · 석치(石痴)등 이며, 소치(小癡)는 "작은 바보(원나라 화가 "황공망"의 호인 대치(大癡)를 본뜬 것이다)"라는 뜻으로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지어주었으며 김정희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조희룡(趙熙龍) · 전기(田琦) 등과 함께 추사 김정희 일파(金正喜一派)에 속한다. 초년에는 해남 윤선도(尹善道)고택에서 공재 윤두서(尹斗緖)의 작품(윤두서의 자화상이 유명함)을 통하여 전통 화풍을 익혔다. 그 뒤 대흥사 초의(草衣)선사의 소개로 1839년 상경하여 추사 김정희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서화를 수업하였다. 1856년에는 진도에 귀향하여 화실인 운림산방(雲林山房)을 마련하고 제작 활동에 몰두하였다. 스승 김정희는 “압록강 동쪽으로 소치를 따를 만한 화가가 없다.”든지, “소치 그림이 내 것보다 낫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토착화된 화풍은 아들 형(灐)에게 전수되고, 손자 건(楗), 방계인 허백련(許百鍊) 등으로 계승되어 현대 호남 화단의 주축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