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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 날자 인천/ 백운산에서 원곡 최제형 1. 전철 2009년 1월 4일 기축년 새해 첫 일요일의 새벽 공기는 차다. 08시에 부평역 집합인데도 잠을 설치다 06시에 일어나 뉴스를 보고 세면을 했다. 한참 잠에 떨어져 있는 집사람이 깰까 조심하며 여기저기 뒤져 귤과 사과와 과자를 배낭에 담았다. 이렇게 나 편한 방식으로 간식을 꾸리는 순간엔 늘 맛있는 먹거리를 정성껏 준비해 오는 인산회원들께 미안하기만 하다. 해는 아직도 동녘에 떠오르지 않아 아파트를 나서는 발치가 어둡다. 아파트 뒤쪽의 만수산이 시커멓게 다가섬이 섬찍하다. 동암역으로 가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서너 사람 깊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겁도 없이 운전수 옆 출입문 앞 자리에 앉았다. 평소에도 의아해하던 ‘왜 오르내리기 불편하고 위험하기도 한 이 앞자리가 노약자석 일까?’ 하는 의문이 다시 든다. 남동소방서를 지나 간석4거리로 향하는 차 안에서 ‘혹시 서동익 회장님이 타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에 차창 밖을 내다보니, 어머 이게 웬일이여? 두 부부께서 함께 오르는 것이 아닌가? ‘우와! 정초부터 대박이다! 나 금년에 운수대통할 것이여!’ 쾌재를 부르며 덩달아 놀라는 두 분을 반갑게 맞았다. 동암역에 내려 1호선 전철로 부평역에 도착하여 우유 한통을 마시며 사탕 한 봉지를 샀다. 잠시 후 관담 양승근씨와 근무조 까지 바꾸고 참석했다는 조성범 산행부장이 도착했다. 어디선가 전화가 울리더니 박홍식님이 계단을 바삐 올라왔다, 추워서 지하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다. 초면이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잠시 후 일행이 건너편을 손짓하며 소리 질렀다. 플랫폼을 잘못 나온 온새 임동숙님이 황당해 하고 있다. 날이 차다. 일부는 지하로 내려가고 잠시 서성이노라니 바이올렛 김문호씨가 공부를 가르치는 중학생 1명을 대동하고 올라온다. 오늘 등산대원 9명이 다 모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아침에 구입한 사탕 두어 알씩을 나누어 드렸다. 부지런히 인천지하철 승강장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추운 계절에 인천지하철을 타고 갈 목적지라면 굳이 서울행 부평역에서 만나 이동할 필요 없이 그냥 인천지하철 부평역 승강장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면 번거롭지도 않고 시간도 절약되고 춥지도 않아 좋을 것 같다. 일요일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경전철인 인천지하철은 승객도 한산하고 깨끗하고 소음도 적어 대화 나누며 가기에 제격이다. 종점인 계양역에 내려 서울-인천공항행 전철로 갈아타며 ‘나는 작년에 팔공산 다녀온 게 전부였다’고 이야기하니, 올해 또 못나올지 모르니 부득이 산행기를 맡아야 한다고 밀어 붙인다. 공항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잠시 인천공항과, 영종, 청라 송도신도시를 입안했던 30대 인천시의 젊은 기술직국장의 개인 작품집 『지도를 바꾼 남자』의 내용을 떠올렸다. 정치, 경제, 입지, 지역이기주의 등으로 절대 불가했던 공항과 신도시를 만들면서 고행과 좌절과 눈물, 그래도 설득을 거듭해 마침내 이룬 인천공항과 신도시와 연륙교가 완공단계에 이르렀음에 감사하는 내용과 당초의 의도에 비해 그 용도가 많이 변경된 아쉬움 등을 피력한 책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자기부상열차를 인천공항행으로 선정코자 입안했는데, 업체와 정치꾼과 장기비전에 문외한인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비협조로 이루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다. 돈은 더 들이면서도 10분이면 용산에서부터 도착할 인천공항을 50여 분 소요하게 만들었음과 오히려 중국의 푸동공항은 그 입안을 참고해 현재 세계최초의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공항에 가고 있음을 아쉬워해했다.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이라 했던가? 60년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세계 최빈국에서 당당히 중진국 대열에 올려놓은 박정희 대통령의 통찰력과 의지가 고속도로와 댐과 포항제철과 자동차, 조선업 등으로 우리 국토를 개조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음을 토론하였다. 당연히 쿠데타와 독재와 유신헌법제정과 같은 과실을 포함해도 차후 대통령들에 비해 월등한 통치성적표였다.
2. 백운산 인천공항 못 미쳐 운서역에 내렸다. 아직은 난장판인 도로공사장을 한참 걸어 인천 영재들의 요람인 과학고등학교 저만치에서 좌측으로 낮은 산허리를 돌았다. 가늘지만 꼿꼿한 솔밭 아래 노란 솔잎들이 융단처럼 깔려있다. 눈이 내렸던 산야라 공기는 맑고 청정해 소나무 산림욕을 거저하고 있다. 운북동 쪽으로 고속도로 옆길을 돌아 굽이굽이 산길을 오른다. 백운산은 저 멀리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하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간벌하는 나무숲에 널찍한 사각정이 있어 바튼 숨을 쉬어가기로 했다. 얼른 배낭의 귤을 꺼내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온새님이 찹살도너스 5개를 내놓기에 염치불구하고 냅다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나 말고도 아침을 굶고 온 이들이 몇 명은 더 있는 것 같다. 두어 굽이 더 돌아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인다. 공항과 고속도로 바다가 환히 보이는 첫 능선 산언덕이 봉수대 터이다. 조선말 쇄국정책을 고집한 대원군의 아집이 한강으로 오르는 길목을 지키기 위해 곳곳에 봉수대와 포대를 설치했으니 군사적으로 요충지인 영종도 백운산에 봉수대가 빠질 수 없음은 당연하다. 특이한 것은 평소 감시할 군대를 주둔시키기 어려워 인근 용궁사의 스님들에게 망을 보도록 위임 했음이다. 널찍한 헬기장에 측량점을 알리기 위해 공 들여 만든 지적표시가 있는데 누군가 일부러 훼손시킨 모습이 역력하다. ‘왜 우리는 이런 공공시설물 조차 온전히 보존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탄하며 255미터 백운산 정상의 육각정에 올랐다. 머리 위로 하늘이 가득하다. 발아래 바다를 메워 만든 공항에 무시로 비행기가 오르내린다. 탯줄 같은 한줄기 공항행 고속도로가 전철 선로를 대동하고 서울에서 인천을 거쳐 영종대교를 건너 공항 안으로 빨려들고 있다. 거울처럼 눈부신 서해의 바다위로 반달 모양의 인천대교 연륙교가 이제 막 전 구간 상판을 연결하고 한줄기 햇살이 되어 꿈의 도시가 될 송도로 달려가고 있다. 바야흐로 인천의 시대다. 역사 이래 서울의 변두리 도시로 치부되어 온갖 설움과 구박을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공해 공단과 쓰레기 투기장으로 전락됐던 인천이 드디어 기지개를 켜고, 과감히 중앙정부에 맞서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의 안위와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떨쳐 일어나고 있다. 영종공항과 인천항만과 송도, 청라 신도시와 바다를 가로지르는 세계 6위의 연륙교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가는 곳곳에 중장비소리 드높고 한번 해보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지고 있다. 갖은 시기와 질투와 비협조와 반대와 박해를 무릅쓰고 스스로 떨쳐 일어나 2009년의 세계도시축전을 개최하고 2014 아시안게임을 유치해 명실 공히 명품도시 인천이 될 것을 세계만방에 천명하고 있다. 육각정자 아래 양지쪽 평상에 가져온 음식들을 모두 꺼내 놓았다. 형산 서동익 회장님 사모님이 밤새 준비했다는 돼지고기 삶은 편육과 양주 한병, 관담 양승근님의 약밥, 찌르레기 박홍식 님의 사과와 매실주, 조성범 님이 준비한 막걸리, 온새 임동숙님의 빵과 과자, 바이올렛 김문호님의 귤, 그리고 나의 두개 남은 사과까지 올리고 나니 제법 그럴듯한 상이 차려졌다. 새해 첫 산행이니만치 경건한 마음으로 둘러섰다. 서동익 회장님의 주제로 약식 시산제를 지내고 고시래를 한 후 음복을 하며 올 한 해 전 회원 건강하고 좋은 산행할 수 있기를 기원하였다.
3. 용궁사 잠시 후 모두 얼굴이 도화색이 되어 하산을 시작하였다. 봉수대 길 옆에 용궁사로 내려가는 긴 능선이 있다. 갈참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바윗길을 천천히 내려오다 중간에 마련된 체육공원에서 간단히 몸을 풀다가 용궁사의 인경소리를 따라 하산하였다. 용궁사는 천년고찰이라 하나 그 규모가 작고 오래 된 건물은 불에 타 최근에 다시 지은 것이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속이 썩어 들어가는 육중한 느티나무 두 그루만이 절의 지난 흔적을 웅변하고 있다. 역사와 기록에 미치지 못하는 정경이 못내 아쉽다. 더불어 본당 뒤쪽 가장 높은 곳에 새로 세운 미륵불은 절의 규모나 산세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크고 밝아 자꾸만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집 안에 항아리 하나 들여놔도 뒤란과 장독대를 살펴보고 준비하는 법인데 무조건 큰 것만 지향하는 습성이 가장 검소해야 할 산사에 까지 찾아들었단 말인가? 벌써 두시가 넘었다. 한 잔씩 했다하나 배꼽시계는 식사 때가 되었음을 재촉한다. 서둘러 구읍나루로 길을 나선다. 걷고 또 걷고- 뱃터 까지의 길이 이리 멀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산행길이 너무나 좋고 노인 등산팀에게는 제격이라고 칭송하는 서회장과 함께 걸으며 ‘버스를 기다릴 걸’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뱃터는 온통 공사판이다. 수산물시장은 물론이고, 주변의 그럴듯하던 상가들마저 모두 헐려 을씨년스럽다. 서부영화에서 폐허가 된 황량한 소도시를 쌍권총 찬 건맨처럼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가 공사판 끝에 남은 외로운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은 만원이다. 그럴 것이- 우리처럼 폐허가 된 것을 모르고 온 외지인들이 배를 타고 건너왔다가 황당해 하며 남은 두 집 중 하나를 찾아 들었을 테니까- 서둘러 해물탕에 양주를 비우고 월미도로 가는 용주해운 여객선을 탔다. 물고기잡기를 포기한 인천의 갈매기들이 승객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좆아 곡예비행을 하고 있다.
4. 찌르레기 5시 경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 내려 해단을 했다. 서동익 회장님 부부와 함께 만수동으로 가는 15번 버스를 탔다. 임동숙 님과 함께 박홍식 님이 급히 달려와 합석한다. 박홍식 님은 아이디가 찌르레기라 했던가? 연배도 나보다 위 이고 글공부도 무척 오래하셨다 하니 아호는 물론이고, 원하기만 하면 주변의 누군가 그럴 듯한 한자풍의 호도 지어줌직한데, 하필이면 인가 근처의 나무 위에서 찌르륵찌르륵 노래하는 찌르레기 새로 정했을까? 외진 곳에서 홀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집이 제물포역 뒤라 했다. 도원역을 지나 수봉공원 입구에서 갑자기 일행들을 모두 내리라고 설쳤다. 영문도 모르는 나에게 서동익 회장님께서 잠시 내리자 했다. 오랜 문우로 허물이 없고 집이 인근에 있으니 산에서 마신 포도주 딱 한 잔씩만 들고 가자했다. 못 이기는 척 흐느적이며 철로를 넘어 제물포역 뒤쪽 도로를 따라 2층집으로 들어섰다. 계단 위 베란다는 화분들로 가득하다. 조그만 온실도 화초로 꽉 찼다. 취미가 꽃나무 가꾸기이니 난을 가꾸는 나와 잘 어울릴 거라고 서 회장이 귀띔하신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온통 책으로 가득하다. 방도 거실도 주방도 책과 음악 테잎 뿐이다. 소설과 시 습작을 오래하셨는데, 유명 등단지에 서동익 회장님과 함께 냈다가 아깝게 차점을 받기도 했단다. 신춘문예 외에 추천등단은 하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글공부하였다 하며 포도주를 담그며 지은 시 한 편을 내 보인다. (원문이 없어 올리지 못함) 찌르레기님이 어디엔가 전화하더니 부인께서 황급히 뛰어올라 오신다. 서 회장님 사모님과도 허물없이 두 집을 오고 갈 정도로 잘 아시는 사이란다. 빈대떡과 김치 등 간소한 주안상이 차려지는 동안 박홍식님이 밖에 나가 포도주를 퍼 온다. 먹고 마시고 나서 되었다 해도 더 마셔야 한단다. 오늘 나와 초면이지만 어딘가 맘에 드는 구석이 있단다. 약속이 있는 부인이 서둘러 나가시고도 한동안 그렇게 술을 마시다가 9시 경, 일행이 떨쳐 일어나자 소주병에 담근 술 한 병씩을 억지로 품에 넣어준다. 집에 가지고 가서 하루 한 잔씩 꼭 마시고 자야 몸에 좋단다. 술을 잘 못해서 술대접이 서투른 나로서는 참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체험을 했다. 캄캄한 밤 집으로 향하는 내 가슴에 찌르레기- 그의 낯설지 않은 체향이 서서히 맴돈다.
* 저의 취향대로 썼음을 양해 바라며, 사진은 이미 관담이 올린 산행앨범을 참고 바랍니다. (원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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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제형 관장님, 위 산행기에서 거론되는 <박홍석> 선생님을 <박홍식> 선생님으로 바로 잡아 드립니다. 그리고 세세하게 묘사한 영종도 백운산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분명 몇 년 후면 이 산행기가 영종도의 2009년 1월 4일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좋은 역사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수고했습니다.
네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마치 인천역사 공부를 하는듯 가슴이 많이 찔려왔습니다. 아는바가 전혀 없었으니......근데요. 마지막줄 끝에서 세째줄 잘못 쓰신것 같아요. "술을 잘 못해서 술대접이 서투른 나로서는 참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체험을 했다" 부분이 잘 이해가 안가네요.. 그런분 아닌데.. 쩝...
네- 저도 아주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집까지 모시고 가서 즐기며 대접한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박선생이 대단하단 뜻으로 쓴 것 입니다. ㅎㅎ
어쩌다 뒤늦게 읽었습니다. 백운산 산행기를 그 어느 누가 이토록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단숨에 읽었지요. 맛난 글귀 또한 읽는 눈을겁게 했고 마음을 겁게 해 주신 것 아닌가 생각 됩니다. 새해 첫 산행, 백운산을 추억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원곡 최선생님, 감사합니다. 거의 한 달이 다된 지금에야 읽었습니다. 다른분들의 산행기와 달리 1절부터 4절까지 나누어 써 주시니 한계가 더욱 선명합니다. 다음부터는 써 주신 노고에 보답하는 뜻에서도 바보 바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신 것만도 감사 드립니다.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