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임대인의 끝없는 ‘갑질’ / 淸草 문용대(수필가)
절도범이 된 민씨 이야기 ⑤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갑질’논란이 뜨겁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통칭하는 개념,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제멋대로 구는 짓 등으로 사전에 적혀 있다.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도 있다. 임대인은 임대사업자이고 세입자는 고객이다. 그러나 건물을 가진 임대인은 세입자의 우위에 있으니 ‘갑’이 맞다. 약자인 세입자는 ‘을’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좋은 일도 아닌, 절도범이 된 민영환씨(가명, 69세) 이야기를 네 번째 글로 끝내려 했다. 민씨에게처럼 끝없이 갑질하는 임대인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세입자에게 참고가 됐으면 싶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1. 건물주가 민씨를 절도범으로 고소했지만, 대법원에서 ‘기각’
민씨는 2016년 11월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자기 소유의 집을 전세 놓고, 비교적 싼 광진구 중곡동 석수연씨(가명, 80세)의 열다섯 세대 다가구주택 4층을 세 들어 입주했다.
집주인 석씨는, 영감 유품을 훔쳐갔다며 세입자 민씨를 2017년 11월 경찰에 고소했다. 금(金)도 아닌 돌로 깎아 만든 두꺼비모양이다. 경찰서와 지방검찰청 그리고 고등검찰청, 고등법원에 ‘고소’와 ‘항고’, ‘재정신청’을 거듭했지만 ‘혐의 없음’, ‘기각’결정이 됐다.
민씨는 연락처를 저장해두었던 직전 거주자 전영희씨(가명)에게 돌 두꺼비 사진을 찍어 보내고 문자를 주고받는 중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했다.
“사진의 돌 두꺼비는 내가 살던 때 있던 것이 맞다.”
“그렇게 귀중하면 건물주 집에 갖다 놓지, 왜 세입자 사는 곳에 굴러다니게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여름에 문 닫히지 않게 받침대로 썼다.”
그렇다면, 종전 거주자 전씨와 타툴 일이지, 민씨와는 무관한 일 아니냐고 해도 석씨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전세보증금을 덜 주기 위해 억지 주장을 펴는데 이미 이사 간 전씨와는 돈 계산할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민씨에게 “훔쳐 간 돌 두꺼비 안 갖다 놓으면 전세보증금에서 5천만 원을 까겠다.”고 본심을 드러냈고 부동산중개업소에 가서도 공공연히 그리 말했다.
석씨는 전씨에게 “민씨 편이 되면 위증죄로 구속되고 벌금형에 쳐하게 된다.”고 수차례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협박했다.
석씨는 대법원에 ‘재항고’까지 했지만, 대법관 4명 전원일치의견으로 최종 ‘기각’을 결정했다. 그러나 석씨는 “허위진술결과로 불기소처분을 받았으므로 인정할 수 없다. 목숨 걸고 끝까지 할 것이다(보증금 못 주겠다)”고 한다.
2. 또 민씨를 모욕, 협박, 재물손괴로 고소하더니, 폭행혐의로 고소
석씨는 또다시 민씨를 ‘모욕’, ‘협박’, ‘재물손괴’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에서는 모두 ‘각하’ 처분했다. 이번에는 옷깃한번 스친 일이 없는 민씨와 그의 아내를 ‘폭행’혐의로 고소했다. 지난주 사건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에 갔다. 이곳에는 ‘절도’혐의 조사를 받고 이번이 두 번째다.
민씨가 검찰청에 가던 날은 봄비가 내렸고, 법원 가던 날은 가을비가 내리더니, 경찰서에 간 그날은 눈이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로 전국에 한파가 불어 닥쳐 하루 종일 매섭게 추웠다. 처음 경찰서, 검찰청, 법원 이런 곳에 갈 적에는 긴장되고 쑥스럽고 조금은 창피하기도 했다. 일 년을 드나들다 보니 이제 이력이 나서 고소인에 대한 분노 말고는 시간 허비하는 것이 힘들다. 담당형사와 민씨 부부는 묻고 답하기를 반복했다. 형사는 그것을 입력하고 출력해 장마다 지문을 찍게 했고, 마지막 유리판 지문대조기에 확인지문을 찍기까지 무려 네 시간을 보내야했다.
3. ‘주택임차권등기명령신청’과 ‘임차보증금반환소송’
건물주 석씨는 대법원 ‘기각’결정도 인정할 수 없다며, 이사를 가야하는 민씨에게 “훔쳐간 돌 두꺼비 갖다 놓기 전에는 보증금 받을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민씨는 고소 고발을 해보거나 당해보지 않았다. 증인으로 서보거나 심지어 방청석에 가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요즘 공부를 많이 한다. 변호사를 만나 임차권등기명령신청과 임차보증금반환소송에 대해 상담한 결과 칠백만원을 요구하면서 먼저 삼백만원을 입금하란다. 소송에 이겨도 비용 일부는 못 받을 수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그 일부가 몇 백만 원이 될지 모를 일이다.
어차피 자료 챙기는 일은 민씨 자신 몫이라 공부삼아 직접 부딪혀 보기로 했다. 계약만기 3개월에서 1개월 전에 갱신의사가 없음을 통보하면 되는 것이지만, 민씨는 4개월 이전부터 계약기간만료통보(임차보증금반환청구) 내용증명우편물을 네 차례나 보냈다. 통보서에 배달증명까지 붙여 건물관할지방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했다. 이를 받아들인 법원은 이틀 만에 결정하고 그 결정문을 민씨와 석씨에게 보냈다. 석씨는 이런 일을 수차례 저질러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고의로 우편물 수령을 거부하는 듯 ‘폐문부재’로 되돌아온단다. 송달이 되면 법원에서 등기소에 등기명령을 하고, 등기가 되면 이사를 가도 임차보증금 우선변제권을 유지할 수 있다.
민씨는 또 건물관할지방법원에 임차보증금반환 소장(訴狀)을 제출했다. 끈질긴 법정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사건번호가 매겨지자말자 ‘준비서면’을 냈다. 거기에는 다섯 개의 큰제목과 스물두 개의 작은 제목이나 항목에 내용을 적고, 열 종류의 첨부물을 붙였다.
피고 석씨가 소장 부본을 받으면 이의(異議)를 재기할 것이다. 그걸 보고 응하는 것이 순서이겠지만, ‘돌 두꺼비 훔쳐갔다’, ‘포도나무를 독살했다’, ‘(18년이 된)보일러를 고장냈다’, ‘옥상 배수구를 틀어막아 물이 안 내려가게 했다’ 등을 주장할 것이 뻔하다.
피고 석씨는 되돌려주지 않은 보증금에 대하여 계약만기 다음날부터 소장 부본 받을 때까지는 연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15%의 지연손해금을 물어야한다. 소송비용도 물론 부담해야한다.
민씨는 임차기간이 지나도 보증금을 받지 못한 체 그가 이사가야할 자기 집 세입자에게는 보증금을 챙겨 줘야했다. 민씨의 경우 9.13부동산대책 발표 후 대출길이 꽉 막혔다. 친구들 도움과 은행 신용대출, 보험대출, 심지어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중간정산까지 해서 돈을 긁어모아 보증금을 챙겨줘야만 했다. 민씨가 이사 갈 자기 집은 2주 째 비어있다.
4. 석씨는 세입자를 상습적으로 괴롭혀
석씨 집 건물등기부등본에는 임차권등기명령 두 차례, 세입자로부터 가압류결정 네 차례가 등재돼 있다. 그것만 봐도 세입자들이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을지 짐작이 간다. 또 거주중인 세입자를 쫓아낸 경우다. 민씨가 1년여 사는 동안 아래층 301호세입자가 세 번이나 바뀌기에 이를 이상히 여겨 석씨에게 물어보았더니, “신발장을 훔쳐가서 쫓아냈다”고 했다. 2층 세입자도 말다툼 끝에 쫓겨난 것으로 안다. 그들도 민씨처럼 누명을 썼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뿐만 아니다. 지하층 2호에 살던 세입자 권씨도 지난해 11월까지 6년을 살았는데 남은 2백만 원을 주기는커녕 문짝이 어떻고 하며 5백만 원을 더 내놓으라고 해 소송중이란다. 소송사례가 또 있다.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또 다른 세입자 홍 순택씨(가명)에게 불을 냈다면서 3백만 원을 요구하며 보증금을 주지 않아 소송 끝에 받아 냈다고 한다. 관계자는 “담배도 안 피우는 사람더러 불을 냈다고 했다. 그 노인네는 소송 안하면 절대 돈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석씨한테 당해 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살던 사람 중 싸우지 않고 나간 사람이 없다. 할매가 젊은 여자들한테도 이년저년 욕을 듣고 싸웠다.”
5. 겪었던 일을 울며 말하는 벽지가게 주인 신씨
지난 주말 가까운 중곡동 시장 어느 벽지가게에 들렸다. 도배이야기를 마치고 보증금 못 받은 이야기를 하게 됐다. 50대 초반의 여성 신씨는 20년도 더 지난 일을 말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야기인즉슨, 신혼 때 월세 집에 살다가 이사 가기 전날 집주인에게 돈 계산을 하자고 했더니, 이사 당일에 하자더란다. 이삿짐을 싣고 떠나야할 시간에, 그간 현금으로 준 월세는 받은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더란다. 월세를 계좌이체 한 것은 근거가 있지만 현금으로 줄 때마다 영수증을 받아두지 않았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성격이 와일드한 남편에게 말했다가는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하고 혼자 울면서 친정어머니께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끝내 3백여만 원을 떼이고 말았단다. 얼마나 힘들고 억울했으면 20년도 더 지난 그때 일로 그리 눈물을 쏟을까싶다.
6. 세입자가 참고할 점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서로 믿고 살아야겠지만, 만약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민씨는 집 계약하기 전 그 집 주인에 대해 주변 수퍼, 미장원, 이발소, 세탁소 등에서 알아보고 구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주택의 경우 사용할 범위를 계약할 때 명확히 할 필요가 있고, 건물 상태를 꼼꼼히 살펴 요구할 것이 있으면 계약서에 쓰는 것이 좋다. 또 원상복구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미심쩍은 곳의 사진을 찍어 두어야 나중에 덤터기를 쓰지 않을 것이며, 사소한 다툼이라도 훗날을 위해 녹음을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월세나 수도요금은 계좌이체하거나, 현금으로 줄 때는 귀찮아도 영수증을 꼭 받아 두어야 하며, 수도료는 전체 고지서를 확인하거나, 고객번호를 알아내 전체 부과액을 알면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전에 살던 사람의 연락처를 꼭 알고 있는 게 좋다. 민씨가 그러지 않았다면, 돌 두꺼비 절도범이 되어 감옥에 갔을지도 모른다.
첫댓글 민씨의 '어느 임대인의 끝없는 갑질'(절도범이 된 민씨 이야기)을 MBC-TV '실화 탐사대'에서 방영할 예정이라 합니다.
'실화 탐사대'는 mc 겸 코미디언 신동엽씨 등이 매주 수요일 밤 8시 55분부터 25분 씩 50분 간 두 편을 진행합니다.
민씨집 이야기는 제22회차로 3월 6일 밤 8시 55분 방영될 예정입니다.
더 이상 고통받는 임차인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osKM7Wvna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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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a6iTklC1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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