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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평은 그 간극이 크다.
혹자는 좋은 영화였다고도 하고, 혹자는 3류 쓰레기 영화라고도 한다.
나쁘게 평하는 이유 몇 가지가 있다.
1. 옛날 고전영화 <타워링, 1977, 감독 존 길러민, 주연 스티브 맥퀸·폴 뉴먼>의 아류다.
2. 불륜(송윤아 랑)하다가 조강치처를 버리고 그 여자랑 결혼한 넘이 남주인공(설경구)이라 볼 가치가 없다.
3.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에 무슨 볼만한 가치가 있느냐?
등이다.
들여다 보면 다 영화 외적인 요소를 가지고 영화를 평한 내용들로, 그닥 설득력이 없다.
영화가 B급이라고 한다면 그런 평들은 C급이다.
뭐,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이 영화,
'한국영화'치고 'CG가 대단하다는 것'과 '재난영화를 그럴듯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뿐,
B급 영화가 맞다.
그러나, B급 영화라고 다 헛간에 처박을 일은 아니다.
특히, <화려한 휴가, 2007>를 만든 김지훈 감독이 손을 댓다면 말이다.
이 영화에도 숨겨 놓은(숨겼다고 별로 숨어 있지도 않지만) 메시지를 끄집어 내 보는 재미가 쬐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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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크리스마스 전날.
여의도 초고층 쌍둥이 타워, 한강이 보인다는 리버뷰와 도시가 보인다는 시티뷰.
대한민국의 1%중에서 다시 1%만 입주한다는 108층 초호화주상복합건물.
눈이 오지 않을 거라는 일기예보 속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가 타워 안에서 분주히 준비된다.
소위, 가진 자들의 파티.
영화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그 가진 자들은,
그 타워에서 보이는, 경제 기적의 한강 속에서 기어나온 천민자본주의 졸부들이다.
앞서 [영화] <색, 계> 평에서 언급했던, 김어준이 분류한 右형질의 인간들 중 극우형질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나 먹을 거 먼저 확보하고, 나와 내 가족들 안전부터 챙기고,
그게 충족되고 난 뒤에도 잉여재물을 쌓고 또 쌓되,
무한경쟁을 당연시 여기고, 그 경쟁에서 언제나 인격이나 도덕이나 염치보다는 힘과 기회와 권리를 앞세우며,
자신들이 확보한 재물을 지키는 위계와 법질서를 타인의 인권이나 생존권보다도 중요시하는 인간 유형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여덟부류의 인간군을 캐릭터화 했다.
1. 타워를 건설·운영하는 부동산 재벌 회장 - 최상위 부자 경제인들
2. 아파트에 거주하는 국회의원 부부 - 정치가들
3. 그 국회의원 부부 및 VVIP들을 무조건 최우선으로 구조하려는 치안국장 - 정부관료들
4. 아파트에 입주한 벼락부자 장로와 그를 심방한 교인들 - 종교인지도자들
5. 부자라서 최고급아파트에 입주했지만 염치를 알고 소박한 노신사 - 양식있는 부자, 강남좌파?
6. 빌딩관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소방관들 - 중산층과 서민의 보통사람들
7. 천대받는 가난한 청소 아줌마 - 하층민들
8. 그리고 소방대장 - 사회의 의인·열사들
1~4는 부정적인 인간군이고(이 영화는 내러티브 속에서 이들을 희화화 시킨다),
5~7은 평범한 인간군이고(이들의 사랑과 눈물이 영화의 바탕이다),
8은 사회 전체의 안녕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킬 수 있는 의로운 인간형이다(영화의 감동과 메시지다).
그리고 감독은 이 캐릭터들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1.
차인표가 연기한 이 캐릭터는 시종 위압적이고 명령조다. 우리사회 성공한 우형질의 인간형들이 주로 그렇듯이 자기에게 유리할 때에는 '법대로'를 들이대지만, 그 법이나 규칙이 자기목적달성이나 자기이익을 방해하면 간단없이 어긴다. 눈 없는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 자신의 역작인 초호와 타워의 첫 파티, 그 파티에 눈을 뿌리기 위해 인공제설기를 소방헬기에 달아 띄우려하는데, 기상청의 돌풍경고로 헬기사용이 불투명해지자 그는 최종결정권자인 소방청장을 연결하고 명령조로 허락을 받아낸다. 화마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고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기를 사적인 빌딩의 파티에 동원한 것도 불법이요, 소방청장이 민간인인 기업회장의 명령을 받는 것은 더 불법이고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검찰총장이, 심지어 최고통지권자조차 돈권력자 재벌총수의 하수인이 되는 그런 일이... 그리고 그들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거짓말하고 그 거짓말은 언론과 사법부를 통해 진실이 되어 어리석은 대중을 지배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돈과 거짓말이다.
2.
감독은 정치인과 함께 정치인의 마누라를 더 희화화 시킨다. 자식이 없는 지 외국에 보냈는 지, 그녀는 애완견을 끔찍히도 자식으로 여긴다(자식처럼이 아니다). 그 개가 그 호화 타워 공공장소에 똥을 싸질러도 그녀는 치우지 않는다. 자기 자식의 똥인데도 말이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그걸 지적하자 그녀는 전혀 창피해 하지도 반성하지도 않으면서 되려, 아주머니의 일자리 목줄을 죄고 협박한다. '박봉이라도 받으려면 지적질 하지말고 니가 치워라'다.(그 개는 나중에 정치인 부부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보다 먼저 구조되는 특권층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은 권력은 가졌으나 사회적 공공의식조차 없는 안하무인, 공공의 적이다. 아니 아무데나 똥을 싸지르고 돌아다니면서 치울 줄도 모르는, 한마디로 그들 자체가 우리사회의 거대한 똥(불쉿, Bull Shit)이다.
3.
지금은 없는, 과거 내무부 장관이 있던 시절에 존재하던 '치안국장'. 그가 불타는 타워의 소화와 구조를 총지휘한다. 그의 궁극적 목적과 관심은 정치·재계의 VVIP들을 구조하는 것. 사실 나머지에는 목적도 관심이 없다. 안성기가 분한 소방서장은 그 국장의 지휘에 침묵할 뿐이다.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언론권력이든,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적극적이든 침묵으로든 개처럼 충성하고 출세와 승진만을 노리는 기회주의자들, 우리사회 관료들의 단면이다. 그의 부당한 명령에 소방대장(설경구 분)은 그에게 마지막으로 무전기에다 대고 이렇게 말한다. "끊어, 이 개새끼야!"
그리하여, 그는 개를 자식으로 여기는 정치인 부부와 함께, 사람이 아닌 개종자가 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특권을 위해서만 성실한 정치인들,
그들을 숙주로 하여 그들에게 기생충처럼 붙어 출세를 지향하는 자들은 개다.
4.
초호화 주상복합아파트에 입주한 장로가 로또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설정은 좀 그렇다. 설정에 설득력이 없거니와 현 로또 당첨금으로는 그런 아파트에 입주할 수도 없다. 또한 최상류층 아파트에 이사한 장로의 입주를 축하하는 입주심방예배 때에, 목사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은 더 어설프다. 아뭏튼 영화는 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물질적 호화로움으로 치장한 아파트를 '천국'이라고 말하게 함으로써 진리와 내세를 추구해야할 종교인들을 비웃는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아파트가 화마에 휩싸이자 '지옥'이라고 말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즉물적이고 단순함을 더 비웃는다.
그 종교가 무엇이든 한국의 종교인들은 돈과 물질에 천착한다, 고 감독은 조롱하는 듯 하다.
5.
젊잖은 부자 노신사는 특이한 점이 없다. 부자였음에도 그냥 보통사람들과 함께 갇혔고 특별한 구조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그냥 양식있는 부자도 있다는 양념으로 끼워 넣어진 캐릭터인 듯 싶다.
6.
내러티브의 중심인물들이지만 메시지의 중심인물들은 아니다. 이들의 일상의 수고가 타워를 지탱해 나가는 기반이겠지만 그렇다고 핵심은 아니다. 한 국가를 지탱하는 기반이 대중이면서도 핵심은 아니듯이 말이다.
7.
아들 등록금이 모자라 석달치나 가불한 채, 삼디 노동을 하는 가운데, 가진 자들에게 멸시 받으면서 하루하루 연명해 가는 캐릭터. 그녀의 아들도 보통 젊은이들처럼,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밤을 보낸다.
8.
사회안녕과 시민구조를 위해 크리스마스 휴가까지 반납한 채, 불길로 뛰어드는 의인 캐릭터다. 뛰어난 판단력과 과감한 행동, 모두를 위해 자기 생명마저 바칠 수 있는, 사회가 지탱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인간형이다. 이 주인공을 어설프게 죽여서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사회의 위기 때마다 이런 인간형들이 희생을 해줌으로써 우리사회가 지탱해 온 것이 현실이라서 어느 정도 공감은 가는 결말이다.
영화의 무대, 108층 초호화 빌딩의 외형은 높고 거대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 특히 노블리스인 지도층과 상류층의 格은 왜소하고 남루하다.
우리사회의 모습처럼, 짓기는 잘 하지만, 항상 곳곳이 부실하고 위태롭다.
그 모순을 이 영화는 재난의 시발점에서 드러낸다.
소방 헬기는 불을 끄라고 있는 공공재이다.
불 끄라고 있는 그 공공의 소방헬기가 특권층의 사적인 욕망의 도구로 사용될 때,
도리어 불을 일으키고 재난을 야기시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아니 베트남처럼 한 사회가 붕괴될 수도 있다.
우리사회에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런 부조리를 안고 있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면서 기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챙기는 지도층이,
입만 열면 안보를 외치면서도 자신과 자식들은 군영에 가서 수고하지 않는 지도층이,
입만 열면 법치질서를 외치지만 정작 자신들은 치외법권의 특권을 누리는 지도층이
득시글 대기 때문이다.
이런 부조리한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한 대사가 가장 맘에 든다.
"끊어, 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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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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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나라 궁민들은 그 개새끼(또는 년)들을 언제 끊을 건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