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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이 넘는 성벽을 적무강은 한달음에 뛰어넘었다. 주위에서는
아직도 화염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도처에는 타다 남은 수많은 시신
들이 뒤엉켜 있어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인세에 지옥이 존재한다
면 이와 같은 모습이리라.
성벽을 넘자 수많은 무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아는
정도련의 인물들과는 다른 복장을 한 무인들. 적무강은 그들이 십자
성의 무인들임을 알아봤다.
적무강은 처지멸절진이 발동한 후 초토화된 뒤쪽 성벽을 통해 정
도련으로 들어갔다. 그렇기에 십자성의 무인들을 만날 틈이 없었다.
하지만 소택으로 향하자면 반드시 이들을 지나야 했다.
"정도련의 생존자다."
"아직도 떨거지가 남아 있었나?"
몇몇 십자성의 무인들이 적무강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소리쳤다.
그들은 적무강이 천지멸절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기에 겁 없이 몇몇 십자성의 무인들이 적무강을 향해 다가오며
소리쳤다.
"무기를 버리고 무릎 꿇어."
"정도련의 개새끼, 어서 무기를 버리지 못해?"
이미 검을 빼 든 그의 모습에 적무강은 잠시 고개를 흔들더니 대
지를 박찼다. 지금은 이들을 상대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의 마
음속엔 오직 서문아뿐이었다.
팍!
적무강이 자신에게 다가오던 무인들의 머리를 밟고 더욱 높게 뛰
어올랐다.
"저놈 잡아라!"
"정도련의 쥐새끼다!"
등 뒤에서 십자성 무인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적무강은 무
시했다. 그는 무인들의 머리를 밟으며 십자성의 군진을 빠르게 통과
했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적무강이 지나간 뒤에야 자신의 머리를 밟은
것을 깨달았고, 몇몇 무인들은 미리 무기를 휘둘렀으나 소용없었다.
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적무강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저자는?"
문수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심코 지나갔지만 그녀만큼은 한눈에 적무강
을 알아봤다. 어찌 못 알아보겠는가? 난생처음 그녀에게 패배를 가
르치고 그 때문에 치욕적인 근신 처분까지 받았었는데, 그를 못 알
아본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엇다.
뿌드득!
그녀의 이빨 가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려 퍼졌다.
"청안!"
"옛!"
문수영이 부르는 소리에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청안이 조
용히 나타났다.
"지금 서천의 전력 중 얼마나 이곳에 와 있지?"
"이번 정도련 암살 건으로 인해서 팔 할이 태호에 집결했습니다."
"서천을 가동해."
"옛?"
그녀의 말에 청안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서문아가
서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자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천왕성과의 분쟁을 어떤 식으로든 해
결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천왕성주와 동급이라는 이야기. 그렇다
면 무상이나 성주 직속의 혈전대 정도나 돼야 저자를 막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섣불리 건드는 것이 더욱 위험합니다. 차라리 무상께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호호!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면 승부를 고집하는 무림인들끼리의
대결에나 통용되는 이야기다. 암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서천은 그녀가 심혈을 기울여 조련한 조직으로 전원이 암살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더구나 그 암살자라는 자들은 일반인의 신경으로
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혹독한 수련을 한자들이었다.
문수영은 그들이 겪은 수련 과정이 예전 대공자를 비롯한 웅풍대
의 대원들이 경험한 사사지옥관보다 더욱 무섭다고 자부했다. 더구
나 그들은 정면 대결을 고집하는 무인이 아니라 은밀한 암습으로 목
숨을 빼앗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무려 이백 명이 넘는다면 해
볼 만한 승부였다.
"호호~! 더구나 그들이 할 일은 적무강의 발길만 잠시 늦추면 되
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면 무상이 서문아 그 계집을 갈가
리 찢어 죽일 테고, 저자는 절망하겠지. 그렇다면 무상이 저자를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호호호!"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문수영이 교소를 터트
렸다.
적무강에 대한 그녀의 원한은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제까
지 실패라곤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그녀의 일생에 단 하나의 오점을
남긴 사내. 그렇기에 적무강에 대한 그녀의 증오는 결코 사그라질
줄 몰랐다.
"지금 서천을 움직이겠습니다."
청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녀의 명령을 따랐다. 어차피
그 역시 적무강을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늦게 도착했기에
전쟁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참전한다면 정
말 큰일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저자와 우리는 공존할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어떤 피해가
나더라도 그를 반드시 죽이도록!"
"알겠습니다."
"서 천주에게 그의 목을 나에게 바치라고 전해라. 임무에 실패하
면 돌아올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
"존명!"
청안이 허깨비처럼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적무강, 너한테는 도마라는 명호도 과분하다. 반드시 서문아와
같이 지옥으로 보내 주마."
그녀의 중얼거림이 스산하게 울려 퍼졌다.
적무강은 경공을 극성으로 전개했다.
십자성의 무상이라면 그 역시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십자성주 마
영백을 대신해 무력을 행사하는 자라고. 그렇다면 그의 무공이 마영
백에는 못 미치더라도 근접한 수준은 될 것이다.
'조금만 더 버텨라. 곧 갈 테니!'
그가 이를 악물었다.
워낙 많은 무인이 있었기에 적무강은 문수영을 발견하지 못했다.
만약 발견했다면 그냥 두지 않았겠지만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 사
이에서 문수영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무강은 십자성의 무인들이 몰려 있는 곳을 무사히 통과했다. 다
행히 그를 붙잡을 만큼 강력한 무공을 소유한 자가 없었기에 시간을
단축할 수가 있었다.
'소택으로 가기 위한 최단거리는 바로 이곳 태호를 지나는 것. 이
곳을 가로지른다면 반나절 이상을 단축할 수 있다.'
적무강은 눈앞에 태호가 나타나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호숫가에
세워져 있는 배로 뛰어들었다.
"이보슈! 왜 남의 배에 뛰어...."
휙!
적무강은 옆에 있던 배 주인에게 은 두 냥을 던져 주었다. 이어 그
는 배 주인의 얼굴도 돌아보지 않고 배를 몰고 태호로 향했다.
그가 노를 한 번씩 저을 때마다 배가 오 장여씩 쭉쭉 앞으로 나갔
다. 비록 특별한 기교는 없었지만 강력한 내공 덕분이었다.
"음?"
순간 적무강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곧이어 그의 눈에 진득한 살기
가 떠올랐다.
"감히!"
팡!
그가 배 밑창을 향해 진각을 내질렀다. 그러자 파도가 일어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어 물 위로 떠오르는 시체 두 구, 그들의
손에는 분수자(分水刺)가 들려 있었다.
물결에 흔들리는 시체를 바라보는 적무강의 눈은 더할 나위 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 쓰여 있는 한 글자 때문이
었다.
서(西).
천하에 많고 많은 조직이 있지만 황실을 제외하고 저런 글자를 옷
에 새기고 다니는 곳은 오직 단 한 곳뿐이었다.
"서천(西天), 십자성의 서천이 나선 것인가?"
예전에 서문아에게 들은 적이 있다. 암살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바로 문상 휘하의 서천이란 조직이라고.
적무강의 시선이 그가 지나온 태호 변으로 향했다. 수많은 십자성
의 무인들, 저들 사이에 문수영이 숨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다시 저곳으로 돌아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
해야 했다.
촤악!
그 순간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시 두 명의 남자가 달려들었다. 그
들의 손에서는 분수자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적무강은 추호의 흐트
러짐도 없이 손에 들고 있던 노를 휘둘렀다.
강력한 경기가 일고 하얀 물거품이 일어나며 서천의 암습자들을
덮쳐 갔다.
퍼버버벅!
"크헉!"
"큭!"
수많은 물방울이 전신을 강타하자 암습자들이 충격을 못 이기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들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방해할 작정인가?"
적무강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더욱 노를 저었다.
비록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문수영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지금
이들은 자신을 막으려 최대한 시간을 끌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들의 목적은....
그의 눈에 지독한 살기가 어렸다.
"결코 그냥 두지 않겠다, 문수영! 그녀의 몸에 생치기 하나라도
생기면 너와 십자성을 세상에서 말살시키겠다!"
콰ㅡ앙!
서문아가 벽을 후려치자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그들의 뒤쪽을 막
았다. 벌써 이 짓을 한 것도 열 번이 넘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서 나가요.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요."
"차라리 이곳에서 저자를 맞아 싸우는 것이...."
"그렇게 되면 정도련의 다른 인사들까지 위험해요. 그러니까 어서
달려요."
괜히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뽑은 철홍이 혀를 차며 서문아의
뒤를 따랐다. 비록 아쉬움이 남았지만 서문아의 위세에 눌려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사무독의 발걸음을 늦추며 그들은 맨 마지막으로 지하 통
로를 나섰다.
"어서 오십시오. 좀 늦었습니다."
입구에는 뜻밖에도 남궁성과 종남파의 문상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건가요? 여긴 위험해요."
"그래서 우리가 온 겁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럴 때 나서야지요."
문상인이 푸근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그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벽력탄입니다. 이거라면 그의 발걸음을 조금 더 붙잡아 놓을 수
있을 거예요. 이것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가 자신감 있는 웃음을 지었다. 이어 그는 벽력탄을 비상 통로
의 입구에 설치했다.
"단순히 천장만 조금 무너트리는 게 아니라 입구 전체를 폭발시키
는 것이기에 사무독의 발걸음을 늦출 수 있을 겁니다."
"언제 그런 준비를?"
"물러나십시오. 심지에 불을 붙이겠습니다."
콰쾅ㅡ!
문상인이 벽력탄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지하 통로 안쪽에서 굉음
이 점점 가까이 들렸다. 서문아와 철홍의 안색이 변했다.
"어서 붙여요. 그가 가까이 왔어요."
"예!"
문상인이 급히 벽력탄에 불을 붙이고 물러섰다.
콰ㅡ앙!
굉음이 터져 나오고 먼지와 함께 안쪽에서 사무독과 추영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욱한 먼지와 지독한 어둠속에서도 그들의 번뜩
이는 눈이 무섭게 들어왔다.
"이놈들!"
사무독의 광기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옥에서 뛰쳐나온 듯한
악마의 모습을 하고 사무독이 동굴 밖을 향해 달려 나오고 있었다.
그 지독한 광기에 남궁성과 문상인 등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가 어느새 동굴 입구까지 도달했다. 이제 몇 걸음만 더 다가오
면 서문아와 철홍에게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엄청난 폭발
이 일어나며 사무독과 추영객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콰쾅!
벽력탄이 터지는 충격을 못 이기고 지하 통로의 입구가 폭삭 무너
졌다. 단지 천장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입구 전체가 무너진 것이다.
"젠장~! 살다 살다 저런 괴물은 또 처음 보네."
철홍이 이마를 훔치며 기가 막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저런 광기
와 폭력으로 무장한 괴물이라니. 자신에게 저자를 죽이고 십자성을
무너트리라는 부탁을 한 철부쌍괴가 싫어질 정도였다.
"어서 이곳을 뜨자구요. 저 괴물이 꿈에 나타날까 무섭네."
철홍이 자신의 양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이에 서문아 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들썩! 들썩!
입구가 무너진 자리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ㅡ앙!
마치 벽력탄이 터진 것처럼 사방으로 바위와 돌멩이가 비산했다.
이어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
"흐흐~! 설마 벽력탄을 쓰다니."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중얼거리는 남자. 그는 무상 사
무독이었다. 그의 등 뒤에는 서른 두 명의 추영객이 건재한 모습으
로 서 있었다. 비록 벽력탄의 폭발이 대단하긴 했지만 사무독의 호
신강기를 뚫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 대한 추적을 재개한다. 흔적을 추적해라."
"존명!"
사무독의 명령에 추영객들이 앞으로 나서며 사람들의 흔적을 추적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무독이 중얼거렸다.
"감히 내 손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
이다. 내가 왜 무상이라고 불리는지 확실히 보여 주지."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먹잇감에 대한 탐욕이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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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잘봅니다.
무상답게 추격자를 보냈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