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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유주의를 갈구하는 자유지상주의의 단적인 예
이재원(2021.3.6. 토, 흐린 후 오후저녁 작은 봄비)
- 자유(自由)만이 도덕이고, 비자유(非自由)는 도덕이 아니다. -
1946년 3월 실시된 북한토지개혁을 선전하는 홍보포스터. (사진=미디어한국학 제공)
(남의 땅을 공짜로 받았다고 황홀하게 웃고 있는 1946년 북한 농민의 비도덕적인 모습, 그 후 이들은 다시 토지를 1953년부터 1958년까지 6개년 동안 완전 100% 몰수당하여 모조리 집단농장의 농노가 되어 땅을 팔 수도 살 수도 없게 되었다. 자기가 생산한 농작물도 절대 손대지 못하고, 오로지 당에서 주는 식량 및 의복 등 배급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들은 불행히도 자유시민교육을 전혀 받지를 못한 정신적 노예의 상태에서 해방이 되어, 공산주의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을 만나 진짜 노예가 되었다. 도적의 장물을 공짜로 받았으니, 공짜로 다시 빼앗겨도 도무지 반항할 수가 없었다. 백성들의 수준이 노예면 노예가 되고, 농노면 농노가 되고, 중세인이면 중세인이 되고, 근세인이면 근세인이 되고, 자유시민이면 자유시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역사상 압제로부터 해방된 백성들의 수준이 노예에 불과한데도 바로 자유시민으로 격상한 무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1945.8.15에 운좋게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어 1948.8.15에 이승만의 지도하에 건국한 대한민국이다.
세계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들의 자유와 행복권은 이승만에 의하여 출발부터 헌법으로 보장하였다. 공짜를 좋아하고 남의 물건을 노리고, 세계가 뭔지도 모르는 미천하고 무식하고 천박하고 저급하고 미개한 무리들에게 인권 중의 인권인 자유의 은총을 신(神, God)을 대신하여 헌법으로 무한히 확실하게 준 것이다. 우리가 알든모르든 우주는 끝없이 계속 돌아 가듯이 그것은 바로 자유의 정신으로 시종일관 절대자유를 그 핵(核)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쉽게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자유(自由)만이 도덕이고, 비자유(非自由)는 도덕이 아니다'.)
인간의 행동의 3근원인 이성과 감성, 오성에서 살펴본다면 대략 다음과 같이 논할 수 있다.
-. 이성(理性)에서 도덕이 나온다. 도덕적인 견지에서 보면 바로 도적이 지금 웃고 있다.
-. 감성(感性)에서 본능이 나온다. 남의 것을 수탈하여 공짜로 자기에게 주기 때문에 웃고 있다.
-. 오성(悟性)에서 사상이 나온다. 여기에서 남의 재물에 대한 좌(左)와 우(友)의 이념이 생긴다.
- 절대자유(絶對自由)를 갈구(渴求)하는 자유지상주의(自由至上主義) -
정치사상의 뿌리는 바로 자유와 비자유로 대별된다.
자유는 상호존중으로 독립을 수반하고 비자유는 상호대립으로 구속을 가져온다.
전자가 야생(野生)이라면 후자는 가축(家畜)이다.
전자는 대표를 지도자를 뽑지만, 후자는 서로 싸워 주인이 아니면 노예가 된다.
야생이 무척 위험해 보여도 쥐처럼 약한 동물도 계속 종족을 보존하듯이, 자본주의라는 복잡한 사회에서는 어떤 한 개인이 삶의 경쟁력이 무척 약해도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 그 영역을 통하여 무한한 자유를 누리면서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하나 가축이 되면 모든 면에서 무척 안전해보여도 언제 도축이 될지 모르듯이, 사회주의라는 간단명료한 사회에서는 단체로 훈련받고 교육받고, 직업까지 배당받아 일해야 하는 일꾼으로, 체제에 반항하면 반동분자로 처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한다.
자본주의는 최악의 경우 최소한 거지라도 되어 어디든지 갈 수 있지만, 사회주의에서는 그마저도 자유가 없다.
이것이 바로 절대자유주의를 갈구하는 단적(端的)인 예(例)다.
그리고 인간에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능률보다도 작은 하나의 도덕이다. 능률은 약자를 도태시키지만, 도덕은 강자나 약자의 개념자체가 없다.
무상몰수와 무상분배를 좋아하는 위 농부의 황홀한 모습의 비도덕적인 사진에서 벌써 대량살상이란 인류의 참극이 도래하고 있었다. 소련과 중공, 북한 등지에서….
- 좌익에는 경중이 따로 없다. 정신에 미친병이 든 자들이다. 모조리 공산주의를 꿈꾸는 사회주의이다. -
그렇다면 꿈의 낙원이란 노르웨이 등의 북구의 사회주의는?
엄밀한 의미에서 planning against competition형의 사회주의는 아닙니다.
원래는 다 같이 평등하다는 공산주의를 꿈꾸었으나, 그렇게 하다간 악질 소련에 복속되어 나라가 멸망하니까 얍삽하게 방향을 살짝 틀어 자유진영에 임시로 들어와 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정책상 자유기업이나 주식회사를 권장하고 보호하는 등 오히려 planning for competition형의 자유주의입니다. 그래도 자칭 사회민주주의라고 그네들이 명명(命名)하니, 그냥 우리도 사회주의라 합시다.
그래도 그거 낙원 아닙니다. 세금 왕창 떼 갑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의추종이 어려운 절대부자가 없습니다. 의심나면 그곳의 경제상황 등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처럼 다 공개되어 있습니다.
중국이나 북한처럼 실체를 숨기지 않습니다.
세금도 세금이지만 물가가 완전 고물가입니다. 수도꼭지 하나 갈아도 청구서를 보면 보통나라의 4~10배 정도로 주어야 합니다. 집안 고장 수리는 스스로 자가 수선하는 이유가 더 이런 이유입니다. 모조리 고물가입니다.
이발료도 워낙 비싸 대부분 집에서 다들 알아서 간단히 합니다.
일인당 국민소득 엄청 높다지만 60%는 복지용 국세로 빠져 나가 개인별 가처분 소득은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식료품 등 농·공산품을 제외하곤 사람의 손이 들어가는 서비스는 보통 나라의 4~10배로 완전 고물가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모조리 고만고만한 살림살이로 재미없고, 단순하게들, 가족끼리 소규모로 조용히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놀이거리도 별로 없어 60세 이상의 노년이 되면 고독사로 갈 정도로 고독이 짙게 감독자로 떠오릅니다.
우리가 만약 국력에 비해 국토가 상대적으로 매우 크고, 자원이 풍부하고, 인구밀도가 충분히 낮으면 고율 세금으로 국민복지하는 사회주의형 이네들보다 자본주의인 우리나라가 얼마든지 더 윤택한 사회로 꾸밀 수 있습니다.
어느 체제이든 그래도 전제조건은 절대다수의 시민들이 윤리적으로 건전하고 직업적으로 근면해야 합니다. 종교도 반사회 및 반체제적이지만 않으면 자유적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탕아(蕩兒)나 탕녀(蕩女)들만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사회의 부는 그런 3요인들과 제반조건들에 의하여 좌우됩니다.
그 정도는 우리도 할 수 있겠죠.
미국이나 영국, 독일, 프랑스 및 서구(西歐)나 폴란드나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등 동구(東歐)가 그런 거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제국(諸國), 중동(中東) 등도 그런 거 몰라서 못하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지도층에서 심술이 많아서 안 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건상 형편이 도저히 안 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북구 흉내를 내다가는 폭삭 망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좌익에는 경중이 따로 없다. 결국은 모조리 사회주의로 귀결됩니다. 흐르는 물결이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가서 바다와 만나는 곳은 동쪽 아니면 서쪽입니다.
- 아시아에서 자유주의가 그래도 가능한 나라는? 오직 대한민국만 가능합니다.
그냥 돌아다니는 본능적인 수준의 자유가 아닙니다. 도덕정치철학인 자유주의를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서구의 몇 나라를 제외하곤 우리 인류는 여전히 근대이전의 중세적 심성(心性)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근세도 아닙니다. 근세는 그래도 약간의 자유정신이 보입니다. 서구와 극동의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도무지 이들은 나라가 아닙니다. 그냥 모여서 살고 있는 인간들에 불과합니다.
서구와 미국 및 캐나다: 근대이후에 선험적 유전자 개발로 자유가 뭔지 서서히 구체적으로 알아 가는 무리들이 막막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다.
극동의 대한민국: 절대 태반이상이 비개방적 정신의 인간이지만, 운 좋게 20세기에 이미 자유를 막 구축한 신선한 미국의 피(血)를 통한 엄청난 지원으로 그나마 일부가 각성하여 자유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느껴가고 있다.
동유럽: 아직도 인습과 세습으로 자유의 실체가 뭔지 모릅니다. 용모는 출중한데 아직 멀고 요원합니다.
중동 및 아시아 전체: 정신수준이 몽골이 지배한 당시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생로병사의 모두가 주인 아니면 노예의 수준입니다.
아프리카: 기후가 너무 나빠 뇌의 발달이 대대 유전으로 지체가 되어 왔습니다. 원주민들을 빨리 살기 좋은 곳으로 이주를 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혹시 후대(後代)는 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미(南美): 철학이 탄생할 수 없는 곳입니다. ‘자유’라는 것처럼 ‘철학’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종류의 생각과는 수준과 격식, 발생이 완전히 다릅니다. 차원이 아니고 발생적 바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발생적 바탕이 다르면 들어도 알 수가 없습니다.
- 자유가 이렇게 어렵다고? -
맞습니다. 무척 어렵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공식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행동이 어렵습니다. 본인도 여태껏 살면서 자유의 정신을 바르게 지닌 이를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미국이나 서구에서 학위를 따고 온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서구인 최고급의 지식인 계층에게도 ‘자유’는 쉽지 않습니다. 하버드의 철학교수들조차도 존 롤스(Jhon Lawls, 1921.2.21.- 2002.11.24.)의 ‘정의’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1953.3.5.~)의 ‘협동조합’이니 하는 것으로 좌익목표를 하나 정해 자기 생의 목적타(目的打)로 찬양하지 않습니다. 이는 자유의 실체를 모른다고 봐야 합니다. 자유는 자유이지 다른 자유가 아닙니다. 모든 자유는 바로 절대자유 그 자체 그대로 입니다. 상대적 자유!!! 그런 것은 없습니다.
- 절대자유의 경지? -
간단히 말하면 김일성이나 모택동이 토지를 토지주인들로부터 뺏어 주면, 분배에 해당되는 농민들은 거절해야 합니다. 그거 바로 자유의 정신으로 절대자유의 경지입니다. 이제 이해가 됩니까? 그러니까 제가 여태껏 단 한명도 본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짜엔 모두가 황홀하여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바로 탑니다. 그 중에도 권력자가 불법으로 탈취한 재물을 제3자가 탐내는 것은 2중 절도로 종신토록 정신적 매독환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농민이 부자든 가난하든 실질적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을 위한 토지개혁이 필요한 경우 경자유전(耕者有田)의 토지경작자소유법률을 상호간에 맞게 국회를 통해 입법하여 이승만 대통령처럼 지주들의 재산을 충분히 살만큼 일정부문 살려주면서 나머지는 유상분배를 해야 한다. 유상분배를 한 금액만큼 정부가 지주에게 지급하고, 농민들에겐 정부가 몇 년에 걸쳐 수납을 받도록 해야 한다. 토지를 준 자와 받은 자들이 직접 거래를 하여 충동을 사전에 정부가 막고 정부가 이를 일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토지소유주가 몇 평 이상은 무조건 일정한 평수로 나누어 농사를 직접 짓는 그 지역 거주 농민들에게만 하나하나씩 팔게 하고, 취득자도 몇 평 이상은 절대 취득을 못하게 해야 하는 등 편법을 최대한 줄어야 한다. 그래도 토지를 강제로 팔아야만 하는 자들의 심정이 복잡하고 불편한데, 이를 무상몰수와 무상분배로 정부폭력으로 일거에 실시하니 정부부터 이미 남의 재산을 강탈하는 도적떼인 것이다. 북한의 경우는 지주들을 강제로 타 지역으로 기간 내에 전출을 시켜 주택은 물론 모든 재산을 모조리 강탈하였다. 요원해 보여도 복지도 필요한 자만 스스로 선택하여 받고 불필요한 자는 혜택이 있어도 관심을 두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노르웨이 등 북구마저도 비정상으로 비도덕이고 비자유적인 막대한 복지전용세금으로 모든 봉급 시민의 돈을 탈취하여 다시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공산주의의 전조가 있는 비정상적인 나라라는 것입니다. 조건이 미비한 나라나 사기성이 일정비율 이상으로 농후한 국민들이 많은 나라가 이렇게 하다간 바로 망합니다.
그리고 남의 물건을 노리거나 남의 돈으로 치부하는 자들은 노예로 전락시켜도 신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은 바로 비자유의 무리로 도적이거나 도둑입니다. 서민이든 지도자이든 그 누구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는 고대로부터 신도 그냥 바라본 경우입니다. 바로 사회의 악으로 Virus와 같은 비루한 연놈들입니다. 특히 한국인들 중에 남이나 친지, 가족의 돈이나 재물을 노리는 사기꾼들이 예상외로 많습니다. 특히 형제의 돈을 노리는 자들도 무척 많습니다. 어느 형제에게 저축한 돈이 있다고 어머니가 말하면 동생이나 형이 그 돈을 잠시만 빌려 달라고 옵니다. 심신허약 장애인이 큰돈을 가지고 있다고 알면, 잠깐 빌려달라고 상대가 형제고 뭐고간에 집요하게 노립니다. 일부러 환심을 사면서도 까지 합니다. 심지어 자라나는 조카들이 저축한 용돈을 노리는 자도 있고, 돈을 집안에 보관하고 있음을 알면 훔쳐가기도 합니다. 이게 우리 한국인들의 보통 가정의 수준입니다. 특히 부부직장인이거나 회사나 공직을 정년으로 퇴직을 하면 가까운 친지나 친척들이 돈을 탐내고 빌려러 꼭 옵니다. 정신이 짐승수준입니다. 농촌이나 어촌 등 시골 한 마을에 살면 오토바이는 기본이고 차도 빌려 달라고 옵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나 몰라라 합니다. 그래서 친지나 친척 중에 서로 원수가 많습니다. 안 빌려주면 온갖 음해와 방해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정든 고향 시골을 떠나는 분들도 제법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가 번창하고 있습니다. 경험을 해보니 도시야 말로 만인을 받아주고 사랑하는 우리의 주거지입니다. 몸만 건강하면 돈벌이가 수두록합니다. 이런 이치를 해방정국 당시엔 전혀 몰랐습니다. 만인이 모인 도시에서 자유와 평등과 신뢰가 싹 틉니다. 농촌이나 어촌에선 그게 불가능했습니다. 여성들도 시골보다는 도시가 성적으로 훨씬 더 안전합니다. 시골에 살면 다 크기도 전에 이웃 남정내들에게 성폭행 당합니다. 이는 한국만의 특징이 아니고 20세기 초반까지 전세계적인 악습이었습니다. 시골이면 서구인 유럽도 마찬가지였고, 이웃나라 일본은 더 했습니다. 근세까지만 해도 일본 시골에서는 처녀들은 거의 공용수준이었습니다. 일본보다는 나았지만 조선도 별반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을마다 도깨비들이 처녀를 성폭행했다는 전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를 미화하여 동화책으로 버젖이 살려 많은 어린이들이 멋도 모르고 재밌게 소리내어 읽고 또 읽으면서 자라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나라들의 도깨비 전설은 다 그런 막장 퍠륜에서 출처한 비극을 동화로 만든 왜곡된 이야기들 입니다. 잘 보면 모두가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도깨비 여러 마리가 한 명의 오둑막집 가난한 소녀를 노래 부르면서 노립니다. 바로 성폭행입니다.
그래서그런지 일제말 조선인 위안부들 모두가 다 시골농어촌출신들이었습니다. 조사해보면 도시출신은 한명도 없습니다. 그 오손도손으로 평화롭게 정답다는 시골농어촌에서 우리의 빈곤하고 오갈데가 없는 소녀들을 꼬시거나 일부러 구박하여 싱가폴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면서 모집책들에게 돈받고 계부나 계모 등 가까운 이들이 소녀들을 팔아 넘겼습니다. 이때 마을 촌장도 오빠나 삼촌들과 친지들도 좋은 데 간다면서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아무도 이의를 걸지 않았습니다. 수준 이하들이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일로 동네에서 소녀들을 못 가게 막았다는 당시의 신문기사는 연구학자들이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소장학자들이 찾아도 못 찾고 있습니다. 이건 진짜 노예수준이고 또 노예나 하는 짓들이었습니다. 학자들 논문에 의하면 영남과 호남 등지에서 대략 4,000명 정도의 빈곤하고 오갈데가 없는 시골소녀들이 멋도 모르고 좋은 데 간다면서 꿈을 안고 승선허가를 받아 군함을 타고 갔다고 합니다. 신도 부끄러운 상태입니다. 실로 해방전 조선인들은 정신상태가 노예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까 북쪽에선 공산당의 노예로 바로 전락하는 것이고, 남쪽에서 이승만이 자유를 주어도 온갖 사기와 부정과 부패로 나라의 앞길을 망치고 있습니다. 그래도 긴 역사를 보면 난교급으로 성이 개방적이었고, 가계의 족보도 없고, 제사도 지낼 줄 모르고, 신주(神主)도 뭔지 몰랐던 고려가 반대로 남녀가 유별로 조신하고 족보를 꼭 챙기고 제사와 신주를 철저히 모시는 조선이 되었듯이 노예들도 잘하면 자유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승만 덕분으로 아시아에선 최초로 가능한 무리들입니다. 그 실례로 많은 다른 나라들이 워낙 수준이하로 미개한 덕분에 대한민국은 어느덧 세계10대 경제강국으로, 수출은 세계 7위입니다. 또 이미 수년 전부터 최고 선진국 30-50클럽의 회원국입니다. 자유정신만 보강하면 세계3대 경제강국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의 정신은 절대 부족합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더 많이 보강하여야 합니다. 아직 자유의 체질화가 덜 되어 있습니다. 자유가 체질화 되면 그때부턴 관성의 법칙에 따라 노예수준들에겐 지극히 어려운 문제도 아주 쉽게 풀립니다. 요컨대 무지한 아시아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도, 나라마다의 정의를 위해서도 나 같은 절대자유주의자들이 더 많이 꼭 필요합니다. 모든 가치를 자유의 정신으로 키워야 합니다. 그 핵은 '절대자유'입니다. 일명 '모두를 위한 자유지상주의'라고도 합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보다는 서로가 안심이 되고, 삶의 격조도 확실히 높습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성폭행 따위도 절대자유의 세계에서는 일어 날 수가 없습니다. 탈북자들에 의하면 지금 북한은 성폭행의 천국이랍니다. 마을과 군대, 직장은 물론이고 남녀간에도 소문을 타고 수시로 자행되고, 더 황당한 것은 피해자는 신고할 곳도 없답니다. 신고하면 도리어 안전원이 성폭행을 하려고 하거나 비웃고 조롱한답니다. 노예가 노예를 침탈합니다. 북한정권은 노예인 인민들을 침탈하고, 노예인 인민들은 노예들 자기들끼리 수탈하고 침탈합니다. 당으로부터의 식량배급도 간헐적으로만 있답니다. 그래서 헐벗고 굶주려 해방 전보다 인민들의 키도 작고, 몸무게도 적고, 수명도 짧다고 합니다. 주식이 강냉이고 반찬이 소금이랍니다. 그것도 양이 부족합니다. 동남아시아 후진국보다도 더 열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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