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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콩
한국에서 콩은 예부터 5곡의 하나로 존중되었다. 쌀, 보리, 조, 기장에다 콩을 더하여 한국인의 주식으로 삼았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엔 5곡에 여러 묶음이 있다. 참깨, 보리, 피, 수수, 콩의 5종이거나 참깨, 피, 보리, 쌀, 콩을 5곡이라 하였고 또 수수, 피, 콩, 보리, 쌀을 5곡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간장용고 된장용을 따로 만드는 개량식 메주 만드는 방법이 도입된 것은 1960년대다.
재래식 메주는 콩을 삶아 으깬 후에 덩어리로 만든다. 그 덩어리를 볏짚 위에 얹는다. 2~3일 말린 후 볏짚으로 묶어서 방 안 선반에 매달거나 커다란 항아리 같은 곳에 짚을 깔고 2주일 정도 숙성시킨다. 숙성된 메주는 햇볕에 말린 후 다시 용기에 넣어 발효시킨다.
메줏가루를 질게 지은 밥이나 떡가루, 또는 되게 쑨 죽을 버무리고 고춧가루와 소금을 섞어서 만든 장, 바로 고추장이 한국인의 식탁을 점령했다.
장맛은 콩의 맛을 십분 살린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콩의 맛이 제대로 밴 것은 역시 두부다. 살이 찌지 않는 치즈, 미국인들의 두부에 대한 평가다. 건강식으로 알려져 미국 내에만 수백 개가 넘는 두부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 말년에 생애 최고의 음식이라고 찬미한 것이 바로 두부찌개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된장은 미소, 두부는 도후, 간장은 쇼유, 한국이 원산지이거나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이들 콩류 음식이 세계에는 하나같이 일본식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메밀
메밀은 오곡에는 속하지 않지만 흉년이 들 때마다 그 중요성이 새삼스럽게 강조되었다. 실제로 여름 메밀은 5월 중순에서 하순에 파종하여 7월 하순에서 8월 상순에 수확하고, 가을 메밀은 7월에 파종하여 10월에 수확한다. 자라는 기간이 60일에서 100일 정도로 짧은 데다가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라 가뭄에 강하다.
중국 진시황제는 만리장성을 쌓을 때 한반도인들을 많이 데려다 썼는데, 노임을 주기 아까워 메밀을 줬다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메밀을 먹으면 얼굴이 붓고 힘이 빠지는데, 한반도인들이 이것을 먹으면 감히 중국을 넘볼 힘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막상 한반도인들은 살만 잘찌고 혈색도 좋아져서 이유를 알아봤더니 메밀을 소화효소가 많은 무를 함께 섭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에 전파되었다고 하는데, 요즘 우리가 일식집에서 먹는 모리소바에도 무를 갈아서 넣는 것을 볼 수 있다.
메밀은 붉은 줄기, 푸른 잎, 하얀 꽃, 검은 열매의 다양한 색상을 갖추고 있다. 총천연색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오면서 메밀은 우리 음식문화의 다양성에 일조하였다. 메밀묵 외에도 전통적으로는 메밀국수가 지역별로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발달하였는데, 메밀국수는 조선시대 사례, 즉 관혼상제의 하나인 관례(일종의 성년식)가 끝난 뒤 주인과 손님이 함께 먹던 별식이기도 했고, 궁궐에서는 점심 메뉴로 자주 등장하곤 했다.
보신용 음식으로는 유탕이라는 요리가 있었다고 한다. 맑은 장국에 메밀묵, 닭고기를 함께 넣어 끓인 다음 계란을 풀고 고명을 얹어서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메밀은 기능성 곡물로 더 인기가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고혈압이나 변비에 좋다는 것인데, 이는 메밀이 변을 잘 보게 하는 성질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메밀의 검은 겉껍질에 그 성분이 많다. 기본적으로 메밀은 장과 위에 음식이 남아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질을 갖고 있고 만성설사에도 좋다. 피를 맑게 해주어 혈압도 안정시켜주며 비타민 B2도 많은 편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메밀은 곡류중에 드물게 기능성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메밀과자, 메밀음료, 메밀술, 다이어트 식품으로 널리 쓰인다.
메밀을 효능 중 하나로 한의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독기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감귤
맛과 씹을 때의 그 상큼한 쾌감도 일품이지만 감귤은 여러 가지 효능으로도 인정받았다. 한방에서는 감귤이 감기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보아 약재로도 사용되었다.
강귤차라는 것은 감귤과 생강을 섞어서 끓인 것이다. 귤껍질에는 비타민 C가 들어 있고 또 독특한 향과 맛이 난다. 또 페스페리딘이라는 성분은 모세혈관을 보호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귤껍질로도 위를 튼튼하게 하고 땀을 내는 약으로 쓰는데, 생강과 섞어 끓인 강귤차는 감기와 발한에 좋다고 한다.
독특한 음식으로는 감귤전이 있다. 이것은 주로 소음인 산모가 먹는 음식인데, 잘 익은 귤 30개에다 찐 굵은 대추, 쌀, 당귀, 감초를 함께 넣고 달여서 찌꺼기는 버리고 그 물에다 꿀을 타서 먹는다. 이것은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산모를 위한 것으로 소음인 산모가 먹으면 젖이 다시 나온다고 한다.
다들 인정하다시피 감귤은 감기에 좋다. 비타민 C가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감귤의 비타민에는 다른 과일에는 없는 비타민 P가 있는데, 이것은 모세혈관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어 고혈압에 좋은 효과를 본다고 알려져 있다.
감귤에는 또 칼슘이 많다. 따라서 임산부의 건강을 지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에게 절대 필요한 칼슘을 공급하게 된다. 또 감귤에 있는 구연산은 식욕을 증진시키는 일도 한다.
감귤이 피부를 매끄럽게 해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동시에 혈색도 좋게 하고 빈혈의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알칼리성 과일이기 때문에 피로회복제로서도 기능하며, 산성 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약효를 소개하자면 바로 멀미약 대용으로 좋다는 것이다. 향기가 좋거니와 산뜻한 맛이 있어 멀미로 고생할 때 감귤을 먹으며 멀미약을 대신하는 효과가 생긴다.
조선시대에는 제주도 감귤이 대단한 인기였고 희귀한 과일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은 그때의 재래종 감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현재 우리가 먹는 것은 대개 20세기 초에 일본에서 들여온 ‘온주밀감’이란 품종이다. 지금 남아있는 감귤나무는 병귤, 산귤이 그래도 좀 많이 남아있고 청귤이나 홍귤 등은 몇 그루밖에 되지 않는다. 맛은 좀 떨어지더라도 이런 재래 감귤은 문화재 보호차원에서 보존해야 할 것 같다.
-살구
풍수지리에 따르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정원에서는 북쪽에 살구나무를 심었다. 아마도 색깔에 따른 배치였을 터인데, 참고로 덧붙이자면 동에는 복숭아나무와 버들, 서에는 치자와 느릅나무, 남에는 매화와 대추나무를 심고 북에는 벚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었다.
조선시대 왕들은 해마다 한식에 신하들에게 불씨를 나눠주곤 했다. 보통은 버드나무에 구멍을 뚫고 문질러 불씨를 만들었다. 또 민간에서처럼 궁궐의 불씨도 꺼트리지 않고 계속 관리했다. 사철 내내 같은 불씨를 써야 하는가를 두고 중국의 예는 사철에 따라 불씨를 다른 나무로 새로 만든다는 것이어서 태종은 신하들의 청을 따라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는 푸르기 때문에 봄에 불을 취하고, 살구나무와 대추나무는 붉기 때문에 여름에 취하고, 계하(季夏)에 이르러 토기(土氣)가 왕성하기 때문에 뽕나무와 산뽕나무의 황색 나무에서 불을 취하고, 작유는 희고 괴단은 검기 때문에 가을과 겨울에 각각 그 철의 방위색에 따라 불을 취하는 것으로 하였다.
한식 때 먹는 음식으로 행인죽이라는 것이 있다. 행인(杏仁)은 살구씨다. 조리법을 보면 먼저 살구씨를 물에 담근 뒤 껍질을 벗긴다. 멥쌀을 살구씨 1홉에 티스푼 1.5에서 2개 정도의 비율로 준비해 물에 불린다. 둘을 섞어서 간 다음 체에 받쳐 찌꺼기를 없앤 것으로 죽을 쑨다. 쌉쌀한 맛이 특이한 죽인데, 살구씨에는 자양강장의 효능이 있으니 보양식의 하나다.
살구차도 보약처럼 먹을 수 있다. 살구껍질을 벗긴 다음 호두와 섞어서 볶아 가루로 만든다. 이걸 한달쯤 밀봉했다가 식후에 한 숟가락씩 넣고 차를 끓여 먹는다. 살구차는 특히 추울 때 몸이 허해지고 기침이 나는 사람에게 좋다.
건행(乾杏)이란 것은 씨를 발라 버리고 말린 살구다. 보관해두었다가 생각날 때 뜨거운 물을 부으면 행탕이 되는데 역시 자양강장의 보약이다.
과즙에 녹말이나 꿀을 넣고 졸여서 굳힌 음식을 과편이라고 하는데 살구도 과편을 만들어 먹는다. 조리법이 간단해서 집에서 한번 해먹어 볼 수 있다. 살구를 잘 씻어서 물에 넣고 끓인다. 충분히 풀어졌을 때 불을 끄고 체에 거른다. 여기에 맛을 내는 꿀을 넣은 다음 약한 불에서 오랜 시간 졸인다. 적당한 점도가 되었을 때 네모난 그릇에 부은 다음 차게 식힌다. 그 다음엔 먹기 좋은 모양으로 썰면 되는데, 맛도 맛이려니와 색깔이 무척 고와서 아이들도 좋아할 만하다.
중국에서는 귀한 잔치의 끝에 행인탕이라는 음식이 나온다. 살구씨로 만든 것이다. 살구씨에는 특히 아미그달린이라는 성분이 3%가량 들어있는데, 폐를 튼튼히 하는 데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위암, 장암, 폐암 등에 항암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또 살구씨에는 35%가량의 지방질이 포함되어 있다. 이 지방질이 사람의 피부를 하얗게 하고 윤기가 나도록 돕는 것으로 알려져 예부터 미인들이 많이 찾았다. 얼굴에 기미가 꼈을 때에도 껍질을 벗기고 가루로 만든 살구씨를 달걀 흰자위로 갠 다음 밤에 잘 때 바른다. 아침에 따뜻한 술로 얼굴을 씻으면 기미 제거에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없이 먹어서는 안 된다. 살구에는 독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이 먹으면 정신이 흐려지고 뼈나 근육도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덜 익거나 상처가 난 것 등은 먹지 않는 것이 좋고, 옛 문헌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씨가 두 개인 쌍인(雙仁)인데, 사람이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고 있다.
-유자
영하 9도 이하가 되면 얼어 죽는 유자나무의 특성 때문에 북진을 못한 채 제주도와 전라도 경상도의 남해안 지방에서만 재배했다.
유자는 큰 귤이라고 옛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만 귤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으니 첫째로 귤은 잘 생겼는데 유자는 울퉁불퉁 못생겼다는 점이고, 둘째로 귤은 껍질의 용도가 별로 없지만 유자는 껍질 없으면 시체라는 점이며 셋째로 귤은 껍질을 벗겨서 바로 먹을 수 있는데 유자는 그렇게 했다가는 인상을 찌푸릴 뿐이라는 점이다. 못생겨도 맛만 좋다는 말이 있지만 유자는 못생기고 맛도 좋지 않다.
그런데도 유자를 잘 아는 사람들은 유자차만 기억하는 일반의 상식에 대해 통탄하고 한다.
비타민 C가 레몬이나 다른 감귤류의 3배나 들어있고 구연산, 칼륨, 칼슘 등이 풍부한데다 피로해소, 소화불량, 감기, 기침, 기관지, 천식, 두통, 신경통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피부미용에도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유자를 유자차 이외에도 유자장, 유자화채, 유자술, 유자화장수, 유장정과, 두텁떡, 원소병, 유자잼, 유자청 등 다양한 식품의 재료 및 화장품으로 사용했다.
제주도와 남해안 지방에서 진상한 유자를 깨끗이 씻은 다음 네 쪽으로 가른다. 속에 든 알맹이는 빼내고 껍질을 가늘게 채를 썬다. 꿀물에 채 썬 유자와 배를 띄우고 석류와 잣을 띄운다. 바로 먹으면 안 되고 좀 기다려야 하는데 유자맛이 충분히 우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먹으면 유자 향기가 코를 가득 메운 가운데 석류와 잣이 보석처럼 떠 있는 유자화채의 제대로 된 맛을 볼 수 있다.
‘유자장’은 유자청을 물에 타서 마시는 음료다. 유자껍질을 저며서 꿀이나 설탕에 재워두면 맑은 유자즙이 우러나오는데 이것이 유자청이다. 이 맑은 유자청을 병에 저장해두었다가 한여름이 되어 물에 타서 마시면 이것이 바로 유자장이다. 달면서도 신맛이 어우러져 여름철 갈증 해소엔 그만이다. 게다가 소하불량이나 체했을 때와 설사가 날 때 약으로도 먹을 수 있는데, 특히 수험생들의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쫓아주는 효과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오이나 수세미 등이 화장수의 주재료로 쓰였고, 유자도 화장수의 재료로 쓰였던 기록이 남아 있다.
요즘엔 이렇게 만든다. 빈 병의 1/3을 유자씨로 채우고, 여기에 소주를 부어 밀봉한다. 두 달 정도를 어둡고 추운 곳에 두었다가 거즈로 걸러낸 다음 작은 병에 보관하여 화장수로 쓴다. 세수한 뒤에 발라주면 되는데 유자 속의 정유 성분 때문에 피부가 촉촉해진다. 만약 가려움증이 있다면 유자목욕을 권할 만한데, 욕탕 물에 유자즙을 탄 뒤 몸을 담그면 피부에도 좋고 혈액 순환은 물론 신경통이나 류머티즘에도 효과를 준다고 한다.
-모과
모과는 따뜻한 성질이 있다고 한다. 또 습기를 제거하고 몸이 허할 때 몸 안의 물질들을 보존하고 피를 만드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음식에 체해서 토하고 설사를 하는 급성위장병인 토사곽란, 찬바람에 떨려오는 신경통 류머티즘관절염, 각기병, 폐 속에 습기가 많이 차서 생기는 목과 여러 가지 기관지 질병들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모과의 효능에 대해선 좀 과장이 심한 편이다. 그런데 입덧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해당자는 실험해 볼 것. 또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는데 모과는 항이뇨 작용으로 소변을 농축시킨다. 따라서 신장질환자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모과를 차로 먹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말려서 먹는 것이다. 껍질 벗긴 모과에서 씨를 발라내고 얇게 썰어서 가을 햇볕에 잘 말린다. 이걸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타 끓여 먹기도 하고 그냥 달여서 먹기도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꿀에 재서 모과청을 만들고 즙을 내는 것이다. 얇게 저민 모과를 꿀에 재운 다음 항아리에 넣어 시원한 그늘에 저장하면 즙이 고인다. 이 즙에다 말린 모과 조간 한두 개를 넣어 물에 넣고 끓이면 달고 향기로운 모과차가 되는 것이다.
모과를 먹는 재미있는 방법을 하나 더 소개하면 모과에 진흙을 두껍게 바른 다음 젖은 한지로 여러 겹 싸서 아궁이에 묻어두는 것이다. 한참을 놔두면 모과가 알맞게 익어 모과구이가 된다. 이것을 꺼내 한지와 흙을 제거하고 숟가락으로 파먹으면 아주 독특한 맛과 향기가 나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호박
새콤하면서도 입 안에서 사각거리는 맛이 일품인 호박김치. 호박김치는 원래 황해도 향토음식이다. 말은 호박김치지만 사실은 호박김치찌개라고 해야 옳다. 잘 담근 호박김치는 그대로 먹는 것이 아니고 호박김치찌개로 끓여서 먹기 때문이다.
먼저 늙지도 어리지도 않은 호박과 너무 연하지도 쇠지도 않은 열무를 다듬는다. 열무는 통째로 넣고 호박은 반달 모양으로 두껍게 썬다. 이것을 켜켜이 소금에 절였다 건져서 단지에 담는다. 건져낸 소금물에 밀가루를 넣어 끓인 물을 섞는다. 이 물을 단지에 부어 건더기가 뜨지 않도록 해서 5일에서 6일 정도 익히면 누렇게 익는다. 이것이 호박김치고, 이 호박김치를 된장물에 넣어 고추장 풀고 끓이면 호박김치찌개다.
서과(西瓜)라고 불렸던 수박의 수분 함량은 98%나 된다고 하는데, 남과(南瓜)인 호박 역시 수분이 대단히 많아 95%나 된다. 이 밖에 단백질 2.0%, 지방 0.6%, 탄수화물 3.9%, 무기질과 비타민은 100g당 칼슘 15mm, 철 0.7mg, 비타민C 8mg이 들어 있고 비타민 A의 효과가 있는 키로틴도 들어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호박이 맛이 달고 독이 없으며 오장을 편하게 한다고 되어 있고, 산후 진통에 효험이 있으며 눈을 밝게 한다고 쓰고 있다.
우리 속담에서도 ‘동짓달 늙은 호박을 삶아 먹으면 1년 내내 병이 없다’거나 ‘중풍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도 하며, 추석 끝난 후의 늙은 호박은 ‘가을 보약’이라고 불렀는데 당도가 애호박의 두 배가 넘는다. 늙은 호박의 색깔은 우리 땅을 닮아 황토빛인데 이 색을 내는 카로티노이드에는 항암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담배 피우는 사람의 경우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데, 하루 반 컵 정도의 늙은 호박을 먹으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반으로 준다고 한다.
호박은 칼로리가 적어 밥 한 그릇 대신 호박죽 한 그릇을 먹으면 칼로리가 밥의 1/4 정도에 불과하다. 배고프지 않은 다이어트에는 제격인 셈이다. 술 먹은 다음 날 호박죽을 먹으면 설사를 멈추게 해주고 위를 보호한다고 하니 해장국 대신 호박죽을 먹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꿀
신라시대 이후 양봉은 동양종 꿀벌을 이용한 전통적 방법이 수천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은 채 계속되었다. 생청이라 하는 것은 벌집을 쥐어짜서 굴을 얻어내는 것이고, 밀폐된 방에 군불을 때어 꿀이 녹아내리도록 하는 방법이 화청(火淸)이다. 그런데 이 둘 모두 벌집을 파괴하는 방법이다. 벌집을 훼손시켜야 꿀을 얻을 수 있는 양봉법이 자리를 대체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한국에 온 독일의 선교사들이 개량종 서양꿀벌을 이용한 새로운 양봉법을 소개한 것이다. 요즘 우리가 볼 수 있는 벌통, 원심분리기식 꿀 채취법 등은 이 때에 비로소 등장했다.
꿀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자연의 신비가 등장한다. 꽃(유채, 메밀, 싸리나무, 아카시아, 밤나무, 밀감나무, 클로버, 자주개자리 등)에 있는 당의 성분인 수크로오스는 특히 사탕무나 사탕수수에 많다. 즉 설탕의 재료인 것이다. 만약 꿀벌이 이것을 그대로 벌집에 옮겼다면 우리는 설탕의 재료가 되는 수크로오스 이상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꿀벌의 입에서 나오는 소화효소가 이 수크로오스를 꿀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 소화효소의 존재야말로 꿀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핵심요소가 된다.
수크로오스는 벌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화효소의 작용에 의해 단당류인 과당과 포도당으로 바뀐다. 수분은 약 17%이고, 나머지 83%가 대부분 과당과 포도당이다. 단맛이 나는 당류는 단당류에서부터 단당류 두 분자로 이루어진 이당류, 그리고 올리고당(3~9개의 단당류로 이루어진 복합 당류) 등이 있는데, 그중 올리고당은 위에서 소화가 안 되기 때문에 장까지 내려가 비피더스균(즉 유산균)의 먹이가 되어 장을 튼튼하게 하는 작용을 할 뿐이고, 이당류 역시 다시 단당류로 분해되는 과정을 거쳐야 몸의 자양분이 된다. 반면 단당류는 몸에 바로 흡수가 되기 때문에 지극히 좋은 영양분인 것이다.
꿀벌이 꿀 1kg을 만들기 위해 빨아야 하는 꽃의 수는 약 560만 개라고 한다. 여왕벌이 있는 벌집 1통에 일벌이 약 5만 마리가 있으니, 벌 5만 마리가 날아가 1마리당 약 100개의 꽃에서 꿀을 빨아 부지런히 벌집에 옮기면 꿀 1kg이 나오는 것이다. 여왕벌 1마리가 있는 꿀벌가족이 이렇게 해서 1년 동안 모으는 총량은 약 13~14kg, 꿀벌의 입을 빌려서, 아니 그들의 소화효소의 힘을 빌려서 우리는 이 꿀을 먹게 되는 것이다.
꿀은 종합영양제라고 할 수 있다. 꿀에는 포도당, 과당 등의 에너지원이 되는 당분 이외에도 단백질, 미네랄, 비타민 B1,B2,B6 등이 들어 있고 꽃가루까지 몸에 좋다.
생약연구학자 홍문화 박사에 따르면 꿀의 효능은 피로해소, 빈혈 예방과 치료, 당뇨의 당원, 간장병의 예방과 치료, 숙취 해소, 미용효과, 유아의 발육촉진, 살균효과 등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건강보약의 으뜸이라 할 만하지 않는가.
-쌀
사람의 신체는 탄수화물을 단백질과 같은 다른 영양분으로 바꾸게 되는데, 쌀의 경우 양질의 탄수화물 덩어리면서도 빵과 같은 밀가루 음식에 비해 2배 이상 단백가가 높은 고영양 식품이다. 쌀에 없는 것은 비타민 A, 칼슘 정도라고 하니 쌀로 모든 영양분을 채운 조상들이 이해가 간다.
가마솥이 압력 밥솥이 되는 것은 단지 무쇠로 만든 뚜껑의 무게 때문은 아니다. 아무리 무쇠로 만들었어도 수증기의 압력 때문에 무쇠솥뚜껑도 들썩거리게 마련이다. 그러면 밥 짓는 이는 차가운 행주로 솥뚜껑 위를 계속 닦는다. 행주질로 솥뚜껑의 표면이 차가워지게 되고, 뚜껑에 닿은 김은 물방울로 바뀌며 가장자리로 흘러가 들썩거리는 솥뚜껑과 솥 사이에 나는 틈을 막아버린다. 그 덕분에 가마솥은 압력밥솥과 같은 효과를 내게 된다. 적당히 김이 빠지면서, 또 적당히 김이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20여 종의 쌀이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거의 오리자 사티바 라는 한 품종을 쓰고 있다. 이 오리자 사티바의 대표적 아종으로 자포니카와 인디카가 있는데, 온대 지방에서는 자포니카(한국, 일본), 아열대 지방에서는 인디카(중국, 동남아, 인도)를 주로 재배한다. 자포니카는 쌀알이 둥글고 끈적하며, 인디카는 쌀알이 길고 비교적 건조하다. 중국인들이 밥그릇을 들고 밥을 먹는 것은 바로 인디카가 찰기가 적은 쌀이어서 밥알이 자주 굴러 떨어지기 때문이다.
-보리
우리네 조상들은 해마다 입춘이면 보리뿌리로 점을 치곤 했다. 보리뿌리를 캐어 뿌리가 한 가닥이면 흉년이요 두 가닥이면 평년작이고, 세 가닥이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했다. 보리가 잘 자랐으면 당연히 뿌리가 많아 잘 성장할 징조를 보인다는 점에서 대단히 현실적인 점이다.
보리 베기에 좋은 날은 24절기 중 망종이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듯이 망종을 넘기면 보리 농사를 망친다고 보았다. 이날 사람들은 풋보리 이삭을 뜯어서 손으로 보리알을 비벼 모은 것으로 죽을 끓여 먹는다. 고려시대엔 매달 보름에 그 계절의 새로운 날 것을 조상신에게 바치는 천신이라는 풍속이 있었는데, 4월 보름이면 앵두와 함께 보리를 천신했다.
유월 유두의 계절식 중에도 보리로 만든 음식이 보인다. 햇보리로 만든 귀한 음료로 화채의 일종인 보리수단이다. 만드는 법을 보면 먼저 햇보리를 푹 삶아 여러 번 헹군다. 그 다음 보리 한 알 한 알에 일일이 녹말가루를 묻혀서 다시 삶아낸다. 이것을 찬물에 담갔다 건져 또 다시 녹말가루를 묻혀 삶는데, 3~4회 반복하여 보리가 콩알 만한 크기가 되도록 만든다. 여기에 꿀을 탄 오미자 물을 붓고 보리가 떠오르면 잣을 몇 개 넣어 먹는다. 얼음까지 띄우면 여름철 음료로 그만이다.
볶은 겉보리를 넣어서 끓인 보리차는 비타민 B1이 듬뿍 들어있는 여름철 비타민 공급원이고, 술 마신 다음 날 수분 보충용이며, 밥 먹은 다음의 구수함을 입 안에 남게 하는 음료수다. 수돗물 속의 중금속이 걱정된다면 이 역시 보리차다. 보리차는 물속에 들어있는 납과 카드뮴 등 중금속의 농도를 대폭 줄인다는 것이다.
-인삼
일찍이 고구려의 한시에서 해를 등지고 그늘을 좋아한다고 표현된 인삼은 음양을 겸비해야 잘 자라며 태어난 땅을 몹시 따진다. 한국산 인삼을 미국에 갖다 심어봐야 제대로 된 결실을 바라기 어렵다. 실제로 외국산 인삼과 고려인삼은 뿌리도 다르다.
우선 유럽에서 팔리고 있는 시베리아인삼은 드릅나무과인 건 같지만 속(屬)은 인삼속이 아닌 오갈피나무의 일종이다. 즉 풀뿌리가 아니라 나무뿌리다.
외국 인삼과 고려인삼은 원식물 자체가 다른 것이다.
-양파
우리가 먹는 양파는 열매도 뿌리도 아닌 비늘줄기이며, 거기에 잎들이 붙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에서는 양파를 후충이라고 부르는데, 기름기 많은 중국 음식과 훌륭하게 조화가 된다. 중국음식의 특징은 철철 넘치는 기름기. 이런 음식들을 많이 먹으면 혈전이 형성되어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병, 뇌졸중, 당뇨병 등 요즘으로 말하면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대단히 높아진다. 그런데 양파는 혈전을 막아주는 성분이 들어 있어 중국인들의 성인병을 예방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성분으로 분석하면 양파는 수분이 90%다. 그 밖에 단백질 약간, 당질, 비타민, 칼슘, 철 등도 소량씩 들어있다. 현재까지 인간의 몸에 좋은 성분만 약 150가지 정도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매운맛을 내는 성분이다. 이것은 열을 가하면 기화되어 일부는 없어지고 일부는 분해되어 프로필메르캅탄으로 바뀐다. 이 성분은 설탕의 약 50배 가까운 단맛을 낸다고 한다.
양파의 가장 특징적인 면은 조리하는 사람의 눈물을 강제로 흘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본 한 식품업체의 연구에 의하면 눈물이 나게 하는 것은 양파에만 있는 특유의 화합물로, ‘최루인자 신타제’라고 불린다. 양파 특유의 향은 눈물과는 관계없으며 티오설피네이트라는 또 다른 화합물의 작용이라고 한다.
경남농업기술원의 연구결과에서 양파에서 추출한 물질이 암과 관련한 효소활성화를 저해하는데 이 때문에 피부암, 위장암 등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만 양파는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는 어렵고, 하루 50g정도의 양파 추출물을 2년 이상 장기 복용해야 하는 것이 좀 불편하다. 이 밖에도 양파 껍질에 있는 퀘르세틴이라는 성분은 세포의 손상과 지방의 산화를 막고 알릴계의 휘발 성분은 소화분비를 촉진한단다. 또 술 먹는 사람에게도 양파가 좋은데, 양파에 들어있는 글루타티온 유도체는 간장의 해독 기능을 강화하니 술 먹을 때는 반드시 양파를 같이 먹을 일이다. 글루타티온은 이 밖에도 임신중독이나 약물중독의 해독에도 효과가 있다.
유럽인들은 양파를 포도주에 넣어 먹는 양파와인을 즐겼다. 양파 2개를 껍질 벗겨 병에 넣은 다음 적포도주 500ml을 넣어 2~3일 보관하면 양파와인이다. 양파는 건져내고 와인만 밀봉하여 하루 2~3잔을 먹으면 당뇨, 정력감퇴, 기침, 생리통에 좋다고 한다. 또 식초를 양파에 부어 10일 정도 저장한 후 꺼내 먹는 양파식초는 두통, 변비, 치매예방에 효과적이다. 양파를 찜통에 쪄서 햇볕에 말린 후 가루로 낸 양파가루는 냄새가 사리지기 때문에 그냥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도 있고, 조미료처럼 음식에 넣어 먹을 수도 있다.
-밤
단단한 밤나무는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신주는 중국 주나라 시대부터 늘 밤나무를 사용했고, 거문고나 향비파 등의 우리 고유 악기들은 밤나무로 공명통의 뒷면을 만들었다.
마을 어귀에 세워진 장승도 소나무가 아니면 밤나무였고, 지게의 가로지른 세장도 밤나무로 만든다.
<동의보감>에는 밤이 과실 중 가장 몸에 좋고, 특히 뜨거운 잿불에 진이 날 정도로 구워서 먹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생밤이나 찐밤 보다는 군밤이나 기름에 튀긴 것이 몸에 좋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밤을 말릴 때는 햇볕에 내놓는 것보다 바람에 의해 서서히 말리는 것을 더 좋게 친다.
밤 성분의 34.5%는 탄수화물이어서 과실 중에서 구황식품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또 비타민 B1이 쌀의 4배고, 비타민 C는 과일을 제외한 과실 중 최고 함량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안줏감으로 그만이다. 배탈이 나거나 설사가 났을 때는 군밤을 잘 씹어 먹으면 낫는다고 하는데, 몸의 장기 중에서는 특히 신장에 특효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밤껍질이다. <본초강목>에도 밤껍질을 꿀에 재어 바르면 피부를 수축하게 해서 노인의 얼굴에 있는 주름살을 펴게 한다고 되어 있는데, 요즘에도 율피팩이라고 하여 밤껍질로 만드는 천연성분 화장품이 인기다.
쌀가루 쑤던 죽에 약 2대 1의 비율로 밤가루를 넣어 푹 끓여서 만드는 것이 밤죽인데, 요즘처럼 전문 이유식이 없던 때의 이유식으로 각광을 받았다. 젖이 부족할 때도 밥물에 밤가루를 풀어 끓여 먹이기도 했다.
밤으로 만든 묵의 특징은 매끄럽고 비린내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밤국수를 만들 때는 완전히 말린 밤을 제분기에 넣어 가루로 만든 다음, 여기에 밀가루를 약간 섞어 반죽하여 국수를 뽑는다. 밤의 구수하고 달콤한 맛에다 양분까지 풍부하니 가을철 별미로 이만한 것도 드물다.
-물
과학적으로 따져보자면 우리가 맛 좋다고 느끼는 물은 칼슘, 칼륨, 규산이 적당히 들어있고 산소와 탄산가스가 충분히 녹아있는 물이다. 또 맛있는 물의 절대적 조건이 하나 있으니 냄새가 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물은 어떻게 마시는가? 산마루 높은 곳에서 솟는 샘물은 말고 가벼우며, 산 아래의 것은 맑고 무겁다. 흙 속에서 나는 샘물은 맑지만 희고, 모래틈의 그것은 맑되 차가우며, 돌틈의 샘물은 맑고 달다. 누런 돌 사이에 흐르는 물은 마실 수 있지만 푸른 돌틈의 물은 못 먹는다. 햇볕을 쬐는 물보다 그늘 속의 물이 향기로우며, 고여있는 물보다는 흐르는 물이 좋다.
우리나라 다도의 시조인 초의선사는 좋은 물의 8가지 덕목으로 가볍고, 맑고, 차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냄새가 없고, 비위에 맞고, 탈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억지로 전기분해를 하지 않는 한 물은 언제나 ‘H2O’라는 사실이다. 몇 년 전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물의 결정이 주변 환경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수원에서 난 물을 두 컵에 나눠 담고 한쪽 물에다가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다른 쪽 물에는 ‘죽여버릴 거야’하고 말한다음 사진을 찍었다. 그랬더니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물은 아름다운 육각수 모양을 띤 반면,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들은 물은 결정을 이루지 못한 채 산산이 흩어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