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쪽빛 바다에 봄 파도 밀려올 제 구룡포 바람받이 언덕에 쏴아쏴아 보리 물결 부서지는 것 일품이었다. 물회집 들창 너머로 이 광경을 이윽히 지며보던 서정주 영감 왈 “내 이담에 필시 이곳에 와 집짓고 살 것인즉 땅 나면 꼭 알려주소.”하였겄다. 몇 달 뒤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땅 나기를 알아본 늙은 문학청년이 선생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구룡포 언덕에 좋은 땅이 났습니다요. 어찌 잡아둘까요?” 그러나 스승은 영 딴전이었다. “아아 내가 언제 그런 말 한 적이 있었던가 이 사람아. 자네 바닷바람에 마신 소주가 좀 과하셨나보구먼그려!”
이시영의「미당이 구룡포 가서」라는 시를 읽고 있노라니 우리 포항 문학의 텃밭을 일구고 가꿔온 故 손춘익 선생이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선생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그리고 문학을 결코 게을리 하지 말라는 후배 문인들을 향한 따끔한 충고의 그 목소리가 다시금 그립다. 나는 시 속의 “늙은 문학청년”을 손춘익 선생으로 읽는다. 70-80년대 한국문단의 두 거장인 미당 선생과 동리 선생이 가끔 포항에 내려와 후배 문인들을 격려하고 송도와 구룡포 바닷가를 놀다 가셨다는 이야기를 손춘익 선생께 들은 적 있다. 능청스럽고 의뭉스러운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 생전의 목소리가 시의 행간에서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30대 후반의 동화작가 손춘익과 60대 중반의 시인 서정주의 만남, 그때 그 이야기일까? 미당의 말이 동해 바다와 구만리 청보리밭을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는 바람과 같다. 자유(自遊)의 품 그대로다. 이미 고인이 된 미당도 손춘익 선생도 새삼 그리워진다. 이시영의 시집『은빛 호각』은 이런 한국 문단의 이면사가 생생하게 가득 차 있어 그 읽는 맛이 참 재미난다. 시를 읽는 독자가 마치 그 시대 그 장면의 현장 속에 있는 듯. 주말이 되면 내 문학의 두 스승을 떠올리며 구룡포를 지나 대보 바닷가를 어슬렁 어스렁 거닐다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