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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9장
소돔의 불심판,
부끄럽게 구원받고 자손이 번성한 롯의 가문
(찬송 435장)
2024-1-22, 월
맥락과 의미
창세기 19장은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의 결론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는 11장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2장에서 아브라함이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13장에서는 아브라함과 롯의 재산이 많아졌기 때문에 두 가족은 따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롯은 소돔, 고모라를 선택했습니다. 에덴동산처럼 아주 풍요로운 애굽 땅과 같은 풍요로운 그곳을 택했습니다. 롯은 거기서 재산을 늘렸습니다. 딸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재산은 늘어났지만 자기 아내 사라와의 사이에 낳은 자녀가 없었습니다.
롯이 살던 풍요의 도시 소돔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롯이 소돔을 택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성령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13:13). 아마 롯도 그 도시의 악함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는 풍요에 눈이 멀어서 악한 도시에 살기로 선택했습니다.
당장 문제가 생겼습니다. 14장에 롯은 소돔, 고모라를 침략한 다른 나라 왕에게 잡혀 롯과 그 가족은 끌려갔습니다. 재산도 다 잃을 뻔했습니다. 그 떄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훈련한 군인들을 데리고 적들을 추격했습니다. 롯의 가정을 구출하고 재산도 빼앗아 왔습니다.
창세기 14장-18장 앞부분까지는 롯과 소돔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18장 후반부에 다시 소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8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두 사람의 몸에서 자녀가 태어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소돔을 멸하시려는 그분의 계획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의인이 있을 수 있으니 멸하시지 말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 10명이 있으면 멸망하지 않겠다고 응답하셨습니다. 과연 소돔에는 의인 10명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까요?
1. 천사들이 소돔에 사는 롯을 방문함과 소돔 사람들의 악함(1-11절)
2.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롯을 구원(12-38절)
1. 천사들이 소돔에 사는 롯을 방문함과 소돔 사람들의 악함(1-11절)
여호와께서는 하늘로 떠나셨고, 두 명의 천사들은 롯이 살던 소돔으로 들어왔습니다. 롯은 성문에 앉았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지역에서 성문은 물품을 사고 파는 곳, 정치가 이루어지고 분쟁에 대한 판결이 이루어지는 곳이었습니다. 성문에 앉는 사람의 의자는 판결자의 자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곳에 롯이 앉아 있었습니다.
소돔 사람이 롯을 향해 “네가 우리 재판관이 되려 하는도다”라는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롯은 재판관의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롯은 소돔을 구해냈던 아브라함(창 14장)의 조카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이는 롯의 관심사가 하나님의 의와 공도가 아니라 거기서 물질과 명예를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당시 소돔과 고모라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 욕구에 집착되어 살았습니다.
소돔의 남자들은 롯에게 찾아온 두 손님을 동성연애로 폭행하려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18:20). 죄가 가득차면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종말까지 가지 않아도 참고 참아 더 이상 참지 못하시고 심판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15:16). 그 경우가 바로 소돔이었습니다.
그러나 롯 개인의 삶은 경건함을 상당히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18장) 천사들을 잘 대접합니다. 아브라함은 3명의 사람들 (천사들과 여호와)을 보고 급히 달려가 집으로 모셔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롯도 두 천사에게 달려가서 모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롯 두 사람 다 모두 방문자들에게 “주여, 주여(아도나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로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롯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이 두 사람을 보내신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소와 무교병(떡)으로 아주 풍요로운 잔치를 벌였습니다. 롯은 고기는 없이 무교병을 구웠습니다.
4절에, 그 날 저녁에 소돔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롯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오늘 들어온 두 명을 바깥으로 보내라. 우리가 그 남자들과 동성성교를 하겠다” 롯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간청합니다. “내 두 딸이 있다. 아직 남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처녀다. 내 딸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 부분에서 소돔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롯 자신도 사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하는데 자기 딸을 음행의 도구가 되도록 내어 주려 합니다. 롯도 그 사회의 부패성에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돔의 사람들은 롯의 제안을 거부하며 말했습니다. “남의 땅에 나그네 살이 하는 너 한 명이 우리에게 재판관 노릇을 하려 하느냐? 그들보다 먼저 너를 해하겠다”(9절). 롯을 밀치며 문을 부수려 했습니다. 방문자 두 사람이 롯을 집 안으로 끌어당겨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 도시 사람들에게 어둠을 보냈습니다. 그들을 혼란하게 만들었습니다.
2.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롯을 구원(12-38절)
1) 두 천사들이 롯을 떠나게 함(12-22절)
두 사람(천사들)은 롯에게 말했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소돔으로부터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13절).
그 도시에는 억압받은 사람의 부르짖음이 있었습니다. 그 도시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서 폭력을 썼습니다. 또한 그들은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빼앗았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나그네를 성적인 노리개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심판하셨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통 가운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려 모세를 보내신 것과 같습니다(출 2:23).
롯은 자기 딸과 약혼한 두 남자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도망가자.” 그러나 그들은 조롱했습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이 사회를, 이 땅을 멸망시키실 수 있고 서울도 멸망할 도시 중 하나라는 것을 전도하러 나가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조롱합니다.
그런데 롯 자신도 빨리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천사가 재촉하며 말했습니다. “네 아내와 두 딸을 이 성에서 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멸망할까 하노라”(15절).
롯은 지체했습니다(16절). 믿음의 사람 롯이지만 소돔의 풍요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이미 그 도시의 악한 문화에 어느 정도 감염되어 있었습니다. 죄악에 어느 정도 타협해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자기 딸들을 음란의 도구로 내어 주려는 정도로 타협했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우리 손님들도, 내 딸들도 음행의 도구로 내어 줄 수 없다.” 그렇게 굳게 서야 했습니다.
이제도 그 물질적인 욕심 때문에 망설이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서 풍요롭게 살아 왔는데 이 재산을 어떻게 두고 떠나야 하나?”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머뭇거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여기를 두고 떠나라고 하시면 당장 두고 떠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고 하실 때 말씀에 순종하여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렇기 떄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롯이 멸망할 도시의 한 부분인 그 재산이 탐이 나서 머뭇거릴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크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16절). 천사들이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롯과 그 아내, 두 딸들의 손을 잡고 멸망의 성을 떠나게 했습니다. “소돔 성 밖으로 나가라! 빨리 가라!’ ‘빨리 저 산으로 가서 멸망을 피하라!”
멸망의 성 바깥에 나와서도 롯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산으로 힘을 내어 달려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불안해하면서 게으르게 말했습니다. “저 산으로 갈 수 없습니다. 저 작고 가까운 성으로 가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롯의 요청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내가 그 작은 성은 멸망시키지 않겠다. 네가 그 성에 들어갈 때까지 소돔, 고모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지연시키겠다”(21,22절). 하나님께서는 롯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그 작은 성으로 도피하게 하셨습니다. 그 성은 “작다”는 뜻으로 소알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그 소알 성 사람들은 롯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경건한 사람이 있는 곳의 다른 사람도 구원의 은혜를 부분적으로 받습니다.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받지 않더라도 이 땅의 삶의 축복을 받습니다. 롯이 그렇게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롯을 통해서 일반적 은혜를 그 성에 주셨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 즉 우리가 일하는 직장, 우리의 학생과 어린이들이 다니는 학교, 그들 중에 구원받기로 결정된 사람은 우리를 통해서 복음으로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구원받지 않더라도 우리 성도들이 있음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곳을 지켜 주시고 풍요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처럼 불을 내려서 소돔, 고모라를 멸망시키셨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자기 집과 그동안 쌓아온 재산이 아까웠을 것입니다. 몸은 소돔을 떠났지만 마음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27절에, 아브라함은 얼마 전에 소돔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했던 그 언덕에 섰습니다. 멀리 아래로 “연기가 옹기가마같이 치솟음을 보았습니다.” 그 연기는 하나님께서 거기 함께 하신다는 표시입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백성과 은혜로 언약을 맺으실 때도 옹기가마같은 연기가 났습니다(출 19:18).
거룩한 하나님께서 영광가운데 오시는 것은 구원이기도 하고 심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표시이나 악한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가 된 것을 감사합시다. 똑 같은 하나님의 임재가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될 것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악 가운데 있는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경건한 자들을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벧후 3:7)
“하나님께서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내보내셨습니다”(29절). “생각했다”는 “기억했다”는 뜻입니다. 기억하는 것은 “언약을 기억한다”에 쓰는 말입니다(6:18, 8:1, 9:15,16).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의인 10명이 있으면 그 도시를 멸망시키시지 않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기도와 언약의 복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누렸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의 복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을 향해 복을 나누어 주기 바랍니다. 성도들이 경영하는 기업과 일하는 직장에서 경제적인 부만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은혜까지 나누어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도행전 27장에서 사도 바울이 항해하는 중에 풍랑으로 배가 파손되어 죽을 뻔했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은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그 안에 있던 276명이 이로 인해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경건의 능력으로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큰 은혜를 끼치기 바랍니다.
2) 부끄러운 후손 번식(30-38절)
30절에 롯은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소돔, 고모라 사람들과 같이 그 곳 사람들도 악과 폭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성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지 않을까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롯에게 영적인 각성이 일어났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딸과 함께 소알로부터 나와서 산으로 올라 갔습니다. 굴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롯의 삶은 구차하게 되었습니다. 풍요로운 소돔에서는 물질적으로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성도가 믿음의 길을 가지 않으면 이 땅에서도 비참하게 됩니다. 물질적으로 비참하게 될 수 있습니다. 아담과 아브라함에게 땅을 정복하는 번성의 축복을 주셨지만, 롯은 물질적으로도 땅도 없이 굴에 거했습니다.
그리고 자손 번성도 어떻게 됩니까? 아담와 아브라함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자손 번성의 복을 주셨습니다. 롯의 두 딸은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에 아버지와 잠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아버지는 술이 취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두 딸을 통해서 태어난 아들들이 모압과 암몬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요단강 동쪽에 거주했습니다. 요단강 서쪽에는 이스라엘이 거주했습니다.
롯의 두 딸은 자연적으로는 임신과 출산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그들을 통해 불법적으로 자녀를 낳고 부끄럽게 번성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연적인 출산 능력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자랑스럽게 생육하고 번성했습니다.
부끄러운 번성이 되지 않으려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대로 나아가면 됩니다. 우선은 고난이 있고 불행해 보여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언약의 백성으로써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믿고 복종할 일
오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선택한 백성, 언약의 백성인 아브라함에게는 큰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그의 가정에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조카 롯의 구원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언약의 중심에 있지 않던 롯에게는 부끄러운 결말이 있었습니다. 물질의 풍요를 따라 소돔에 거주했던 롯은 이렇게 부끄럽게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롯은 의로운 사람으로 행동하려고 했으나 세상과 구별됨 없이 그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자신의 딸을 폭도들에게 내어 주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하지 않고 머뭇거렸습니다(8, 14, 16, 19-20, 30절). 그 결과 그는 재산도, 아내도 자녀들의 순결도, 그의 영적인 건강함도 다 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사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타오르는 불로 영원한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죄를 회개하지 않을 때 벌을 주실 것입니다. 그 죄의 길에서 돌아서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벌에는 하나님의 자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소돔같은 죄로부터 도망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합시다. 예수님께 자비를 구하고 의와 공도를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라고 간구합시다. 롯과 같은 결말이 아니라 언약 안에서 회복되고 성장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모두 함께 살아갑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4절, 무교병과 출애굽의 유월절, 제물로서의 무교병
롯이 두 사람들에게 무교병을 대접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무교병을 먹었습니다(출애굽기 12장).
무교병은 효모가 없이 구운 빵(전병)입니다. 효모를 넣으면 반죽을 부풀게 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급히 나와야 했기 때문에 그냥 효모 없는 빵을 구워 먹고 나왔습니다.
창세기 13장에서 이미 소돔을 이집트와 같다고 했지 않습니까? 이집트와 같은 소돔으로부터 벗어 나기 위해서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감동하셔서 롯에게 이렇게 준비시키신 것 같습니다.
<참고> 21절,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여호와께서는 처음에는 롯에게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롯이 너무 힘들다고 하니까 소알이라는 작은 성으도 도망하게 하셨습니다. 롯을 위해 소알 성을 멸망시키시지 않았습니다. 롯이 그 성에 들어갈 때까지는 하늘에서 불을 소돔에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백성의 약함을 봐 주십니다. 원래 계획도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지만 가혹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정을 봐주십니다. 상황의 어려움을 봐주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말씀을 읽으라고 하면 왜 그렇게 빡빡하게 성경말씀을 읽으라고 하느냐고 불편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말씀은 딱딱한 법조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수단입니다.
성전에 있는 진설병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갈 때 다윗과 함께한 젊은이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성전에 있는 진설병을 주어 먹게 하셨습니다(삼상 21:1-6, 12:3,4). 말씀으로 우리 길을 비추시면서도 우리의 상황에 맞게 부드럽게 적용시켜 주시는 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하나님을 우리가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 깊이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참고> 24절,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심과 노아 홍수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렸다는 것은 노아 홍수를 생각하게 합니다. 바로 노아 홍수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를 내리셔서 홍수로 멸하셨습니다.
노아라는 단어가 19:16에 나옵니다. 천사가 롯의 가족을 “성 밖에 두니” (누하)가 노아라는 말과 같습니다. 19:29절에 하나님의 성을 멸하실 (샤하트)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자카르) 롯을 거하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멸망시키는 것(샤하트), 생각하사(기억하다: 자카르)는 하나님께서 노아시대에 홍수로 모든 생명체를 멸망시키시면서도 노아를 기억하신 것과 비슷합니다.
노아시대에 세상은 부패하였기에(샤하트, 11,12),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셨습니다(샤하트, 6:13, 17). 그러나 홍수 후에는 다시 홍수로는 세상을 멸하시지 (샤하트) 않기로 언약하셨습니다(9:11,15). 하나님께서 그 홍수 중에 노아를 “기억하셔서(자카르)” 홍수를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홍수 심판이 끝난 후에 하나님께서 “내가 이제 물로는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창 8:2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불로써 심판하시기 위해 간직해 두셨습니다(벧후 3:7, 10, 12). 소돔, 고모라는 마지막 날의 불심판을 그림자처럼 보여줍니다.
<참고> 32절, 술취하여 딸을 통해 아들을 낳은 롯과 발가벗었던 노아(창 9장)
롯의 술취한 이야기는 홍수 후 노아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노아가 홍수에서 구원받은 다음에 술이 취해 벌거벗고 누워있었습니다(창 9:20-27). 그 때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를 보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첫째 아들 셈과 셋째 야벳은 자기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덮었고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해서, 함에게는 저주를 내리셨고 또 셈과 야벳을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롯도 노아처럼 술에 취해서 잘못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가정의 가장된 아버지들은 정말 절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의 쾌락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가정 전체를 위해서 절제해야 하고, 술에 취해서 가정을 망가뜨리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참고> 의인 롯(벧후 2:6-9)
롯도 우리보다는 사실 경건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베드로 후서를 통해서 롯의 경건에 대해서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시키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벧후 2:6-9).
롯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을 보고 고통했습니다. 그의 의로운 심령이 상했습니다. 이런 롯을 “의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사회에 혼인과 성의 순결이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물질적 행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의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돈을 많이 버는 것에 우리의 영혼이 다 소진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녀들에게도 세상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도록 교육하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경건함을 가르치는 데는 얼마나 정성을 쏟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우리 시대의 악함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있습니까? 우리 사회에 있는 음란과 물질의 탐욕에 노예가 된 세상 정부와 문화에 대해서 과연 우리는 마음이 상하고 있습니까?
마음이 상하고 있는 여러분에게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이 사회의 구조를 완전히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있는 곳에서 마음이 상하며 버티고 있는 여러분에게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악한 사회 가운데서 고통스럽지만 자신을 지켜간 롯에게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자기 목숨만 구하며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롯보다는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그 악한 세상에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릅시다.
경건의 능력으로, 그 도시를 멸망시키시지 않도록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립시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경건하게 사는 실력을 갖춥시다. 경건의 실력 때문에 물질적으로 이 세상을 사는 실력도 갖춥시다.
아브라함은 자기 땅도 없이 이리저리 유리하고 있었지만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을 주십니다. 나이가 지나도록 자손이 없었지만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손의 번성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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